- 사춘기 시절 철이 없던 저는 퇴근 후 어머니께 "엄마 좀 씻어 냄새나. 엄마처럼 홍어는 절대로 팔지 않을 거야"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저는 왜 홍어를 팔게 되었을까요?
20대 때 상고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은행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풋풋했던 시절 만난 첫사랑과 결혼을 했고 또 헤어졌습니다. 그렇죠? 첫사랑은 간직했어야 됐나 봐요.
그러던 와중에 큰 아이가 다리를 절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의원, 대학병원 심리상담까지 아이를 들고 업고 다녔는데 결과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가족과의 이별로 충격을 받았던 딸에게 생겼던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세상이 그렇게 쉽지 않지... 인정해야지... 그래... 똑바로 살자'
저는 이를 악물고 지독하게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철 홍어무침 꽃게장 이하 재혼꽃 김윤미입니다.
저는 말씀드린 것처럼 홍어무침, 간장게장, 양념게장을 만드는 제홍꽃이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어쩌다 보니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왜 하필 홍어를 파느냐? 물어보실 것 같은데 사실은 어머니께서 하시던 일이에요.
제가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는 포장마차, 구내식당, 뷔페 등을 다니시다가 홍탁 삼합 매장을 차리셨습니다.
사킨 홍어로 만든 홍어, 막걸리, 삼겹살이었는데요.
암모니아 향이 진동하는 이 독특한 음식은 고기가 없었다면 저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어요.
더군다나 어머님은 홍어를 구입하러 연안부두 어시장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셨습니다.
그 어려운 일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셨어요.
그런데 사춘기 시절 철이 없던 저는 퇴근 후 어머니께 "수고하셨어요"라는 말보다 "엄마 좀 씻어 냄새나"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했어요. "엄마처럼 홍어는 절대로 팔지 않을 거야"라고 말이죠.
그리고 19년이 지난 저는 삭히지 않은 홍어 무침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머님께서 놀림 반 진단반으로 "야 너 홍어 안 판다며?" 말씀하십니다.
저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고 그저 웃고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왜 홍어를 팔게 되었을까요?
이혼하고 나니까 살 길이 막막하더라고요.
부족한 돈으로 구입한 지하 빌라는 겉보기에는 멀쩡했지만, 그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로 화장실은 역류하고 천장에서 폭포수처럼 눈이 쏟아지고 그 광경을 본 철없는 아이들은 분수쇼 한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대충 도배로 메꿔놨던 벽면을 뜯어보니 벽 전체가 검은 곰팡이였습니다.
락스 5통을 구입해 벽면을 닦아내며 락스 양 때문인지 속상했던 마음 때문이었는지 저는 엄청 울었습니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니까 입맛도 없고, 밥도 먹기 싫고, 기운도 없고, 무기력해진 저는
누워 있다가 울었다가, 누워 있다가 울었다가 반복했지만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딸 둘을 키워야 하니까요. 당장 세금 식비를 감당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다시 일어나 어머님의 도움으로 가게를 시작했어요.
외식업 경력은 있었지만, 경력 증빙이 안 됐던 저는 국비 지원으로 10개월 동안 한식 양식, 중식 일식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당연히 매장 차릴 돈도 부족했기 때문에 열매 나눔 재단의 한부모 창업자금 지원과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대출을 알아보려 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을 따라 뛰어다녔고 가족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음식 맛을 위해 전국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홍어무침과 꽃게장을 구입해 먹었어요.
매장에 투자하기도 부족한 돈을 음식 구입비로 100만 원이나 지출했어요.
그렇게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초등학교 인근에 왕복 8차선 대로변에 고급 한정식집에서 먹을 법한 음식을 테이블 4개 놓고 시작했습니다.
친한 지인들은 응원해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좁은데 무슨 홍어무침과 꽃게장을 판매할 수 있느냐는 걱정과 우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부족한 공사비로 개업식도 없었던 첫날 매출 8만 원. 어떤 사람은 8만 원도 많은 게 아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어쩌면 홍보도, 광고도 없는 작은 매장에서 8만 원이라는 매출도 많은 게 아닌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는 손님 3명이 온 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매장을 오픈한 것만으로도 뿌듯했던 저와 어머니는 함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그 후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예민해진 저는 괜히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면서
'아 도대체 내 인생 왜 이러지? 이번 생은 진짜 망한 건가?'
고난이 계속되었습니다.
배민을 만나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봐요.
매장 오픈하고 40일쯤 되었을 때 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음식은 맛있는데 왜 안 팔릴까? 고민했던 저는 자영업자 카페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배민라이더스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되었어요.
저희 입장에서 주문부터 배달까지 해주는 맛집 콘셉트가 매출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반찬 용기부터 구입부터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배민아카데미의 교육을 듣게 되었어요.
그런데 잔칫날 먹는 홍어무침과 꽃게장을 1인분으로 구성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새로운 발상에 믿기지 않았지만 매출이 저조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베빈에 입점하였고,
정말 놀랍게도 할인 프로모션과 맞물려 매출이 10배 이상 올라 120만 원을 판매하였습니다.
좋아할 틈도 없이 배달만 하니 어머니와 저는 손발이 척척 맞았고, 좁은 가게 안에서 둘이 춤을 추듯이 날아다니며 일을 하였습니다.
홍보
배달로 자신감이 생기자 매장을 홍보하고 싶었어요.
유동인구가 적은 8차선 대로변이었던 매장은 차량으로 이동 중이었던 고객님들의 눈에 띄는 위치였고,
그래서 현수막을 걸고 시즌별로 바꿔서 홍보했어요.
그래서인지 매장 첫 방문 고객님들의 말씀 대부분은 지나가다가 현수막 보고 왔어요였습니다.
그리고 홍보를 위해 일하던 중 촬영했던 사진과 동영상으로 식재료에 관한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블로그에 썼고, 한가한 요일에 맞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교육과 뉴스만 보던 저는 3년 동안 제대로 본 드라마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좋은 평점이 쌓였고, 감사한 마음에 진심을 담아 손 편지를 썼습니다.
온 가족이 5천 장 가량의 편지를 쓴 것 같은데요. 이 경험으로 저희 어머님의 하트 그리는 실력은 월등히 높아지셨습니다.
온라인 판매
손 편지가 두툼이 쌓일 때쯤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쏟아지는 잠을 줄여가며 만든 정말 소중한 저의 첫 상세 페이지의 매출은 그야말로 꽝이었습니다.
다급해진 마음에 존경하는 선생님의 진단을 받아보니 전반적으로 디자인이 촌스럽고 집중도가 떨어지고 이 페이지에는 볼거리가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리고 고객을 사로잡으려면 동영상을 첨부하라는 조언도 있으셨어요.
생각해 보니 제가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더라고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3년 동안 드라마, 영화, 심지어 유튜브도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주관하는 유튜브 교육과 신용보증재단의 동영상 편집하기 무료 교육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1인 방송 아카데미를 수료했고 동영상 편집 방법이 익숙할 때쯤 코로나가 발병하였습니다.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교육 수료생들에게 준 혜택으로 다수의 유튜버들에게 협찬한 동영상이 있었고,
갑작스러운 외출 자제로 인해 식품 구입이 증가하면서 택배 매출이 급상승하였던 거예요.
정말 감사하게도 온라인을 판매를 준비했던 저에게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럼 지금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라이브 방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희 첫 라이브 방송은 온라인 페이지처럼 어설프고 실수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지난 6월 대한민국 동행세일에 참가하여 라이브 방송을 직접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무기력해져서 누워만 있을 때 그때에도 아이들이 배가 고프잖아요.
그럼 저를 흔들고 올라타면서 맛있는 거 해달라고 얘기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먹고 싶었던 음식이 간장게장 간장게장이었어요.
먹고살 돈도 없는데 그 비싼 간장게장을 왜 달라고 했는지,
그 와중에 간장게장을 한 번 해주고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두 번 해주고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세 번 해주다 보니
아이들의 성화가 이제 3년 차 매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만 힘든 거 아니죠?
다들 힘드시죠?
죽으라고 살아냈던 삶이 그렇게 싫어했던 엄마의 홍어 냄새가, 아이들의 성화로 바뀌고 이제는 이제는 삶을 이어주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살아가시는 분들이 힘을 내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법 컸다고 매운맛 양념게장을 좋아하는 딸들아 엄마 퇴근 시간만 기다려준 시연아 나현아.
엄마가 저녁 시간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그리고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그리고 엄마, 홍어 잡느라 휘어진 엄마의 손가락처럼 아픈 손가락 딸이라 미안해요.
엄마 인생 닮지 말라 했는데 장사를 하고 있네.
애들 똑바로 키우려면 울지 말라고 가르쳐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웃으면서 살아갈게요.
엄마 보고 있죠? 건강하시고 사랑합니다.
이상 제철 홍어 꽃게장 제. 홍. 꽃 김윤미였습니다.
감사합니다.
'YouTube > 세바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바시 1411회 | 결국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이민우 오빠초밥 사장 | @baemin_official @baeminsquare (2) | 2024.11.25 |
---|---|
세바시 1410회 | 뼈가 부러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정호연 강동경희대학교 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2) | 2024.11.21 |
세바시 1407회 | 잠 안 자고 밤새워봐야 소용없습니다 | 홍성돈 디아스크 홍성돈 숙면베개 대표 (26) | 2024.11.17 |
세바시 1399회 | 나를 깨뜨릴 때 진짜 내가 된다 | 김하나 비트윈 캐릭터작가, 카카오 이모티콘 작가 (35) | 2024.11.17 |
세바시 1406회 | 두려워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이혜민 - 올굿즈컴퍼니 대표 (29) | 2024.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