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장사를 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 작년에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도 연매출 60억 가까이에, 8개의 직영점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정말 잘 되었습니다.
- 하지만 올해는 정말 많이 힘드네요.
- 그래서 가게도 지금 3곳 정도 정리를 했고, 4개 브랜드도 접었습니다.
- 아마 그들이 아니었으면 저는 아마 힘들게 또 무모하게 버티다가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부천에서 오빠 초밥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 오빠 이민호입니다.
요즘에 많이 힘드시죠? 예 지금 모두가 많이 힘듭니다.
저희 오빠 초밥도 3개 지점 문을 닫았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겠더라고요.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겠지만 제일 힘든 건 이 코로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제겐 가족과 식구들이 있기 때문이죠.
내 아내 그리고 내 아이들 이들을 생각하면 저는 쉽게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다른 사장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이런 책임감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합니다.
진짜 아빠의 책임감으로 일하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 식당 이름이 오빠 초밥이 아니라 아빠 초밥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빠 초밥이라고 했으니 우리 또 첫아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는데요.
우리 첫아 애입니다.
너무 이쁘고 귀엽죠? 네 그런데 아이가 발육이 늦고 반응도 늦었습니다.
보통 돌쯤 아이들이 걷기도 하고 말도 조금씩 하는데 저희 아이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녀봤지만 원인 불명이라고만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아이에게 희귀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이게 무슨 천벌인가 싶기도 하고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우리 아이 돌잔치 아침이었는데요.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질병이 왔나? 억울해하고 또 원망하면서 아내와 둘이 부둥켜안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저희 아이 잘 크고 있습니다.
약하니까 특히 신경 써야 되는 것도 많고 또 언어치료 감각 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돈 많이 벌어야 합니다.
돈 많이 벌기 위해서 초밥도 많이 팔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이 저희 오빠 초밥 많이 이용해 주셔야 합니다.
창업 초기에 제가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배달을 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자동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크게 사고를 당했습니다.
진짜 장사고 뭐고 저는 바로 입원을 했고 큰 수술과 함께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제가 돈을 못 벌게 되니까 아내가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더라고요.
아내는 커피나 음료 브런치를 파는 조그마한 카페를 하나 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고 또 한편으로 너무 고마웠습니다.
어느 날 재활치료를 받고 목발로 아내가 일하는 곳에 갔는데 멀리서 보니까 첫째 아이를 뒤로 업고 둘째 아이를 앞으로 안은 채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절뚝거리면서 그 모습을 보니까 또 갑자기 눈물이 올라왔습니다.
가게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길로 돌아서면서 또 한참을 울었습니다.
물론 제가 우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첫 창업은 동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정말 잘 되었어요.
매일 줄 서서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또 동네에서 맛집으로 소문도 났습니다.
배달도 잘 되니까 여기 배달의 민족에서 배달 대상도 수상할 정도로 정말 대박집이었습니다.
이때 제가 배달 사고를 당한 거였는데요.
이후로 동업자와 갈등도 생기고 분쟁도 일어나면서, 결국 저는 투자한 원금만 받고 쫓겨나듯 그 사업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쉽고 또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래도 쉴 수는 없으니 조그마한 횟집을 하나 하고 있었는데요.
새벽에 연안부두에서 이 장을 보고 활어차에 혼자 앉아 있는데 해가 이렇게 뜨더라고요.
새 아침을 여는 해가 뜨는데 저는 그 모습이 뭐가 그렇게 또 서러운지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허라차에 혼자 앉아서 한참을 또 울었습니다.
이번에도 남 몰래 제 이 마음을 그 누구한테도 전달하지 못했죠.
사고로 이 다리도 망가지고 또 재활치료도 열심히 받았어야 했는데 일만 하다 보니까 또 치료를 제때 못 받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걷는 게 굉장히 많이 불편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면 많이 욱신욱신 거리고 또 잠들기까지 그 고통은 많이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대박집에서 쫓겨나듯 나와서 혼자 하는 장사는 정말 형편도 없었고요.
그 대박집에서 나 때문에 들어와가지고 일하고 있던 동생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형님 어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저희도 형님 따라갈게요. 그 말을 듣는데 너무나도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친구들과 함께 오빠 초밥을 창업하게 됩니다.
저희 오빠 초밥도 정말 잘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 되었냐면요.
작년에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도 너무 잘 되었으니까요.
연매출 60억 가까이에 8개의 직영점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정말 잘 되었습니다.
박수한번 주세요.
저는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썼습니다.
요즘엔 초밥 레시피도 많이 공유가 되고 또 초밥집도 많이 생기다 보니까 저희끼리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젠 뭐 학교 급식에도 초밥이 나오겠어'
그만큼 많이 대중화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조건 우선은 재료가 남달라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연안부두에 제가 직접 가서 신선한 재료를 구했습니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하는 건 당연했고 또 친절을 넘어서 친근감 있게 대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이 단골로 많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오빠 초밥을 함께 세운 동료들과 함께 지분을 나눴습니다.
내 가게가 아닌 우리 가게가 되어서 모두가 주인처럼 서로 밀어주고 또 끌어주면 그런 팀워크로 일했던 것이
지금 오빠 초밥이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정말 많이 힘드네요.
진짜 4단계 앞에서는 장사 없더라고요. 그래서 가게도 지금 3곳 정도 정리를 했고 4개 브랜드도 접었습니다.
더 이상 버티는 게 의미가 없었고요.
문을 열고 있는 것만으로도 빚은 계속 늘었고, 또 그 빚을 갚으려면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혼자라면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힘들어서 정말 포기하고 싶어도 우리 가정 또 우리 가게 식구들 이 많은 사람들만 생각하면 쉽게 접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저는 정읍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자랐습니다.
소위 촌놈이고요. 저희 아버지는 큰 양계장을 하셨는데요.
옛날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저희 아버지도 친구에게 빚 보증을 잘못 쓰셨다가 수십억 원의 빚을 떠안게 되셨어요.
결국 모든 걸 잃어버리셨죠.
한때는 제가 중학생 때였는데요.
술도 못 하시고 술도 안 드시던 양반이 저를 앞에 앉혀놓고는 술을 드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다 같이 여기서 죽든가 아니면 다 같이 서울 올라가서 돈 벌자"
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결국 막 우시는데, 정말 슬프게 우시면서 저한테 미안하다고 그렇게 흐느끼셨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우는 모습은 제 뇌리에 각인이 되었고,
그때 아버지의 그 무거운 어깨를 짓누르던 책임감은 제 이 가슴에 제 어깨에 옮겨뒀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대학 경영학과를 수시에 합격하고도 대학 등록금이나 조금 벌어보겠다고 서울에 올라와서 혼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도 학교에 복학은 못하고 일만 하고 있으니까요.
힘든 시기에 많은 사장님들이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아마 가족 그리고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대다수 분들께서 어려워도 또 힘들어도 그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실 겁니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고 저도 그랬으니까요.
제가 이렇게 덩치는 좋고 또 힘도 세 보이지만 되게 순수해요.
오늘 처음 고백했던 것처럼 저는 남몰래 울기도 잘 웁니다.
그런데 제가 장사를 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 내 가족, 내 동료들, 후배들, 그 사람들이 결국엔 저를 지켜준다는 사실이었어요.
어려워도 버텨보겠다고 전전긍긍하던 제게 오빠 초밥 동료 후배들이 사업을 일부 정리하자고 먼저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이 몇 걸음만 물러나서 다시 또 집중을 해서 다시 해보자고, 그게 이번에 가게를 정리하게 된 계기였어요.
아마 그들이 아니었으면 저는 아마 힘들게 또 무모하게 버티다가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모두가 많이 어렵습니다.
소상공인, 외식업하는 사장님들 특히 더 어렵습니다.
아마 이런 많은 분들께서 까만 속이 타들어가도 겉으로는 표현을 못하실 겁니다.
또 울음도 이 안으로 안으로 꾹꾹 눌러 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한국 가장들이 세계에서 최고의 책임감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그 힘든 내색을 그 누구랑도 잘 나누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걸 혼자 짊어진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더라고요.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직장 동료들과 그 마음을 나누면 그 사람들이 우리 사장님들을 책임져줍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제가 오빠 초밥을 경영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이 모든 사장님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냅니다.
대한민국 사장님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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