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미국인이 매달 15달러씩 45년 동안 나를 후원한 진짜 이유 |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 | 후원 아동 월드비전 | 세바시 1435회
- 저는 어렸을 때요. 왜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하지? 왜 우리 집은 이렇게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지내야 되지? 왜 나는 왜 이런 집안에 태어났을까? 사실 좀 그런 불만이 좀 있었어요.
-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어우 저한테 그때 엄청난 제가 축복을 받고 있었다는 걸 이제 발견을 하게 돼. 왜 그러냐면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전 세계 100개국에서 2억 명의 어린이를 돕고 있는 월드비전 회장 조명환입니다.
시작부터 미안한데요. 제 자랑을 조금 하고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건국대학교를 졸업했고요.
미국에 가서 에리조나 대학에서 면역학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학교 생물학과, 생명과학 특성화과에서 교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노벨상 수상자 블룸버그 박사와 함께 스탠퍼드 대학에서 같이 국제 공동연구를 했고요.
또 하버드 케네드 스쿨에 가서 행정대학원에서 또 석사학위를 받았고
또 MIT 경영대학원에 가서 블록체인을 공부를 했습니다.
또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을 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아시아 지역의 에이즈 퇴출 운동을 했고요.
또 지금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님과 함께 넥솔바이오텍이라고 하는 벤처 기업을 만들어서 또 생명공학 사업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또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500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어때요? 저 멋있지 않으세요?
제가 처음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랑을 했는데, 사실 제가 지금까지 숨겨왔던 두 가지 비밀이 있어요.
바로 뭐냐 제가 공부를 너무 못했던 꼴찌를 하던 학생이었고요. 또 하나는 제가 후원을 받던 후원 아동이었습니다.
저는 불량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늘 이제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는데,
제가 이제 이해력이 떨어져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 늘 공부를 해도 그런 학생으로 성장을 합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제가 대학을 들어가야 되는데요.
제 실력으로 결국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없었고요.
근데 마침 우리 아버지 아시는 지인이 아주 좋은 길을 열어줬어요.
건국대학교에 공과대학에 미생물공학과 지금 생물공학과가 있는데 거기를 들어가면 합격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떡해요? 그랬더니 가끔 거기가 미달학과가 된대요.
여러분 지금은 여러분이 생명공학 그럼 무슨 말인지 다 알지만 제가 대학 들어갈 때는요.
우리나라에 생명공학이라는 단어가 거의 없을 때예요.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니까 안 가는 거죠. 그러니까 비인기학과였던 거죠.
어떡합니까? 제가 제 실력으로 갈 수 있는 학과도 없고, 정말 서울에서 대학생이 될 수 있는 길이 생겼죠.
그래서 비록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또 제 적성에도 물론 맞지 않았지만 결국은 이제 거기를 가게 됩니다.
근데 또 안타깝게도 막 열심히 열심히 해서 미국 유학을 갔는데요.
또 거기서 1년 만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공부를 못해서 재적이 돼요.
그래서 또 거기서 1년 동안 제가 받아주는 학교도 없고 너무 창피해서 한국 돌아갈 수도 없고,
그래서 공원 벤치에서 제가 한 1년간 또 지내는 그런 어려운 시절도 보내게 됩니다.
이제 또 하나 비밀은 여러분 보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치 저 사람 어렸을 때 금수저 아니었을까?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는데,
저희 아버지 부모님이 다 이북에서 피난 오셨는데, 너무나 가난해서 제가 원조를 받았던 그런 후원 아동이 됩니다.
그래서 태어났을 때부터 미국의 후원자가 이제 저에게 매달 15달러씩 이렇게 보내는 제가 후원 아동이 돼요.
그분의 성함은 이제 에드나 넬슨인데 저는 그분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저의 두 번째 어머니인데 105세가 되는 동안에 평생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저한테 이제 15달러를 이제 보냅니다.
그래서 45년간 사실 제가 후원을 이제 받게 되죠. 근데 제가 이제 미국에 공부하러 이제 갔는데요.
이제 어머니하고 같은 나라에 있게 됐잖아요. 그래서 제가 너무 반가운 마음으로
"어머니 제가 미국에 유학 왔어요. 어머니 한번 좀 가서 찾아볼게요. 보고 싶어요."
그래서 그걸 제가 세 번이나 요청했는데 어머님은 이상하게 오지 말라 그랬어요.
"올 필요는 없다."
그래서 그때는 왜 오지 말라고 그럴까? 저는 너무너무 놀랐어요.
당연히 그냥 어서 오구나라고 막 반갑게 오라고 하실 것 같았는데 이제 그러지 않았죠.
그래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에드나 어머님은 그냥 오른손이 하는 거를 왼손이 모르게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이제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결국은 한국으로 돌아왔고요.
근데 저도 이제 막 바쁘게 막살다 보니까 어느새 보니까 에드나 어머님이 99세가 돼 계신 거예요.
벌써 99세야 지금까지 살아계신 것만 해도 정말 너무 감사한데, 그래서 안 되겠다.
그래서 이제 이번에는 내가 어머님을 꼭 살아계실 때 만나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또 이제 가겠다고 그러면 또 오지 말라 그럴까 봐 옛날 생각이 나서
이제 이번에는 간다는 얘기를 안 하고 그냥 주소만 하나 달랑 들고 저도 이제 처음 가보는 네브래스카주에 있는 세인트폴이라고 하는 이제 그곳을 찾아가게 돼요.
그래서 이제 네브라스카 오마하 공항에 내려서 거기서 차를 렌트를 하고 이제 한 운전을 해서 찾아갑니다.
그래서 1시간 정도 갔는데요.
어머님이 살고 있는 동네가 세인트 폴이라고 하는 마을이었는데, 그 세인트폴 25마일 이제 그건 25마일 남았다는 얘기거든요. 그 이제 이정표가 앞에 딱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 동네 이름을 보는 순간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어요.
왜 그러냐면 너무나 이 가슴에 막 감격이 감동과 막 쏟아져 와서 제가 도저히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왜 그러냐면 저는 그 세인트 폴이라고 하는 걸 늘 편지를 받으면서 편지 봉투에서 봤던 그 주소를 지금 제 눈앞에서 보는 거예요.
세인트 폴 25마일.
그래서 이제 다시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이제 운전하고 갑니다.
그래서 이 조그마한 마을에 들어 들어가는 입구에 조그마한 가게가 있었어요.
그래서 또 그 사이에 어머님 혹시나 돌아가셨나 혹시 너무 연세가 많으시니까
그래서 이제 가게에서 물 한잔 사면서 물어봤어요.
이름하고 주소를 보여주면서 내가 이분을 만나러 왔는데 이분이 지금 여기 살고 계시네요.
그러니까 이렇게 보더니 살고 있대요.
그래서 너무 좋아가지고 이제 차를 몰고 글로 찾아갑니다.
그래서 에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이 하얀 2층집이었는데요.
그 앞에 차를 딱 세웠는데 이제 우리 어머니가 저 안에 계시는구나 생각하니까요.
막 그 감동이 또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거기서는 거의 1시간 이상을 차 안에서 그냥 펑펑 울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정리를 하고 이제 문을 두들기니까 어떤 할머니가 나오시는데 보니까 그 3살 아래 릴리안 동생분이 나오고 있어 그러니까 저한테는 이제 이모뻘이 되는 거죠.
그분이 절 보고 깜짝 놀라서 "너 여기 웬일이냐"고 그래서 저 어머니 보러 왔어요.
그래서 놀래가지고 이제 저를 소파로 1층에 안내를 하고 이제 소파에 앉혀놓고 에드나 어머님은 2층에 계시대요.
그래서 저는 이제 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금방 뛰쳐나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30분을 기다려도 1시간을 기다려도 1시간 반을 기다려도 나오시질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아니 미국 문화에 온다는 얘기를 안 하고 이렇게 불쑥 내가 찾아와서 불쾌하신 걸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한국에서 아들이 찾아왔는데 이건 도저히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태평양 건너 비행기 타고 오면서 정말 막 드디어 내가 40년 만에 어머님을 만나는구나 하고 그 터질 듯한 심장이 터질 듯한 막 이 심장을 제가 안고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은 어머니는 저를 만나기 위해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이게 보지 못하고 결국은 나는 한국에 돌아가야 되나? 그런 어떤 실망감 좌절감 너무 막으로 이제 앉아 있었어요.
근데 이제 2시간이 흘렀어요. 그런데 어머님이 2층에 딱 서 계신 거예요. 나와서
그래서 이렇게 놀래가지고 쳐다보니까 금방 어머님이 왜 2시간 만에 나타나셨는지 알 수가 있었어요.
99세다 보니까 이 움직임이 굉장히 힘드셨을 거 아니에요.
이 힘드신 분이 혼자서 뭐 하고 계셨냐면은 목욕을 하고 계시고, 머리를 이쁘게 다듬고, 화장을 예쁘게 하고,
그리고 99세 할머니가 빨간 루주를 바르고 이쁜 귀걸이 목걸이 빨간 옷을 입고 하얀 바지에다가 시를 신는 빨간 시를 신었는데 그것도 뒤에 굽이 이렇게 높은 거 그걸 신고 99세 할머니가 위에 딱 서 계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정말 하늘에서 무슨 천사가 내려온 것 같은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여성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런 여성의 모습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처음 만날 때 이게 처음 만남이니까 얼마나 할 말이 많겠어요.
저도 그래서 너무 할 말이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둘은 뭐 하고 있었냐면은 둘이 손을 붙잡고 둘이서 그냥 울고만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말은 안 했지만은 마치 눈물로 계속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하면서 거의 이제 한 5분 이상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어머님이 제 얼굴을 만져주면서 안아주면서
"와줘서 고맙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제가 40세가 됐을 때 처음으로 이제 어머님을 만났고요.
그래서 지금도 이제 잊을 수 없는 참 아름다운 그런 시간을 이제 보내고 같이 먹고 자면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그때 에드나 어머님을 만나고 나서 사실은 제가 깜짝 놀랐던 사실은
에드 어머님 만나러 갈 때 이제 비행기 안에서 우리 에드나 어머님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갑부는 아니더라도 미국 시민이고 또 저한테 매달 40년 넘게 돈을 보내줬으니까
부자로 살고 있을 것이다.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요. 너무나 가난하게 살고 계신 거예요.
그러니까 마지막 직업이 편의점에서 청소를 하셨고요.
가보니까 저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후원은 부자들이 하는 건 줄 알았어요.
돈이 많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줄 알았는데, 너무나 가난한 소시민이 저한테 제가 대학 교수를 하고 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45년 동안 저한테 후원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 만나면서 후원은 꼭 부자해야 하는 게 아니구나 이제 그런 거를 깨달았고요.
저는 사실 대학 교수를 하면서 그동안 전세기를 비행기 타고 많이 다녀봤는데,
우리 에드나 어머님은요. 100년 동안 비행기를 한 번도 안 타봤어요. 한 번도 안 타보고
저는 거기서 여권이 없는 미국 사람을 처음 봤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때 에드 어머님은 저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었어요.
저는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가 됐고, 그분은 그냥 나이가 많으시고 연금을 받고 겨우 살고 계시는 이제 그러한 이제 분이었는데 사실은 그때 그분이 왜 저한테 이렇게 사랑의 행동을 계속하시는가 잘 이해를 못 하고 이제 살아왔죠.
그런데 사실은 제가 지금 이제 지나고 나서 보니까
저는 어렸을 때요.
'왜 왜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하지?'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저기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지내야 되지?'
'왜 내가 테레비 보고 싶으면 텔레비전 있는 집 친구 잘 꼬셔가지고 그 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봐야 되지?'
'왜 나는 왜 이런 집안에 태어났을까?'
사실 좀 그런 불만이 좀 있었어요.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저한테 그때 엄청난 제가 축복을 받고 있었다는 거 이제 발견을 하게 돼. 왜 그러냐면요.
그 당시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아마 부잣집 아이들도 그런 경험이 없었을 텐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 편지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저는 우리나라만 전 세계에 우리나라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때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구나
미국 사람들이 이런 글자를 쓰는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성장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그때 당시에 어린아이들은 맨날 동네에서 그냥 뛰어 놀기만 바빴을 텐데,
저는 그거를 넘어서 다른 나라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미국이란 나라가 있구나. 이 사람들이 이런 언어를 쓰는구나.
그러다가 나도 언젠가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은데, 그럼 영어 공부를 해야 되겠구나.
이런 저는 생각을 하면서 성장을 한 거예요.
그래서 사실 저의 배경을 보면 굉장히 저는 글로벌한 활동을 많이 했는데,
바로 에드나 어머님의 그런 영향이 저한테 큰 영향을 이제 줬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근데 사실은 제가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45년 동안 궁금증이 궁금증이 뭐였냐면
"왜 에드나머님은 어렵게 사는데도 대학 교수한테 돈을 보냈을까?"
그게 사실은 궁금했어요.
그런데 사실 올 1월에 제가 그 해답을 찾았어요.
제가 올해 1월달에 월드비전 회장이 됐거든요. 회장이 되고 나니까 이제 그 이유를 알겠어요.
에드나 어머님은 비록 본인은 가난했지만은 저에게 15달러를 보낸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었고 저한테
"너는 후원 아동"이라고 하는 거를 잊지 않게 하기 위했던 것 같아요.
그렇잖아요. 너 후원 아동이야 제가 어렸을 때 후원을 받고 그냥 끝났다고 하면은 저 살면서 잊어먹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45살이 될 때까지 계속 매달 15달러를 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평생 살면서 내가 후원 아동이었다는 거를 하루도 잊은 적이 없어요.
매달 돈이 오고 편지가 날아오니까.
그래서 사실은 이 에드나 어머님의 15달러가 내가 후원 아동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었고요.
또 더 나아가서 이제는 이제는 네가 이제는 니가 어린아이들을 도와다오 그런 메시지였다고 하는 것을 제가 올 1월에 이제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에드나 어머님이 저한테 너무 고마웠던 것은 에드나 어머님 제가 어렸을 때 마다요.
가끔 물어봐요. "명한아 너 꿈이 뭐야?" 그러면 저는 이제 "어머니 저 소방관이 될 거예요." 그러면요.
어머니는 또 답장이 오는데 "너 세계 최고의 소방관이 될 거예요." 그래요.
그러니까 저는 이제 물어보니까 답변을 했고 또 물어보니까 답변을 하다가
결국은 후원이 이 어머님의 후원 덕분에 저는 꿈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때는 저는 꿈이 없었죠.
매일매일 그냥 맛있는 거 좀 마음 놓고 먹어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성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 후원자 덕분에 저는 꿈을 꾸게 됐고, 또 꿈을 꾸고, 꿈을 꾸고 그래서 결국은 제가 이제 교수가 되고 월드비전 이제 회장이 됩니다.
칼릴 지브란의 시집 예언자에 보면은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어른은 활, 아이들은 화살
이 아이들이 살아있는 화살이 돼서
힘차게 미래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도록 어른들한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화살은 절대 혼자 날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화살을 힘차게 쏘아 올려줄 이제 활이 필요하죠.
에덴 어머님은 저의 활이었어요.
여러분이 이 아이들의 어려운 아이들의 활이 되어주지 않으시겠어요?
지금 이 시간도요.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꿈을 포기한 채 지금 살아가고 있어요.
여러분이 그들에게 조금만 도와주면은 바로 그들이 그 아이들이 저처럼 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여러분 여러분이 저는 그 아이들의 또 다른 에드나 어머님이 되어 주셔서
저와 같은 기적을 만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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