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도 계속 반대를 하셨었어 가지고
"이 놈의 가시내야 너는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지금 어 ~?"
그리고 친구들도
"야 너 그거 언제까지 할 거야?"
"근데 그러다 만약에 안 되면 어떡해?"
"30살에는 좀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근데 난 도대체 왜 이렇게 안 되는 걸까?'
만약에 정말 포기해야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아닌 거예요. 후회할 것 같은 거예요.
나 아직 다 해본 게 아니구나. 좋아. 그러면 내 한계를 한번 시험을 해보자.
어 어떡해? 어머 안녕하세요 네네
자 그럼 여러분들 많이 보고 싶으셨을 텐데 성대모사 바로 들어갈게요. 네~
아 많이 아시는 주단텐
아~ 내가 진짜 미치겠다. 아직도 세반 씨 강연 보는 버릇을 못 고친 거야?
하 뭐 오늘 쓰복만이 나온다고 그러니까 내가 아~ 오늘 강연 상당히 설레는 곳 아직 안 끝났어요.
여러분 박수 아직입니다.
한은별아 엄마가 뭐라고 그랬어?
오늘 네가 세바시 강연 놓치면 콩쿠르 자격까지 잃는다는 걸 몰라서 그래?
아 강연 당장 진행시켜. 네~
아무래도 많은 분들께서 저를 성대모사를 통해서 좀 알게 되신 분들이 많아서 제가 이렇게 첫 시작을 좀 꾸며봤고요.
어~ 제가 여러분들께 여기서 질문을 좀 하나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여러분들 요즘 MZ세대 친구들이 쓰는 말 중에 가장 많이 쓰는 거 혹시 아시는 거 있으신가요?
어 "어쩔 티비" 맞아요 어쩔 티비 저쩔 티비 이런 거 있죠?
제가 아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오히려 좋아라는 말인데요.
들어본 적 있으세요? 혹시 있으세요? 있으신가요? 여기도 있으신가요? 있다고 또 해 주시네요.
저도 이거를 제가 그 스골파 보면서 거기에 이제 유니온이라는 친구들이 되게 좀 어려운 경우가 많았었는데,
막 '오히려 좋아 오히려 좋아' 하면서 막 그런 말들을 쓰더라고요.
근데 그 모습이 제가 봤을 때는 되게 멋져 보였었어요.
제가 이 얘기를 왜 드렸냐면 바로 제 오늘의 강연 주제하고도 조금 이제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저의 인생이 마치 되게 꽃길을 걷는 것처럼 마치 뭔가 이렇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의 10대 20대는 사실 정말 가시밭길이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게 저한테는 오히려 좋았거든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해요.
어 제가 우선 10대 시절을 한번 좀 이야기를 해 보자면은 저는 사실 가정환경이 굉장히 많이 어둡고 안 좋았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되게 엄하고 좀 좀 무서우신 편이었는데,
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좀 이렇게 엄한 거에서 좀 더 엄하고 근데 그거보다 좀 엄하고 엄하고 엄해서
제가 좀 어린 나이에는 감당하기 힘든 그런 시기였는데,
어떤 날에는 제가 늦은 저녁 시간에 급히 교복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리고 친구 집이나 아랫집, 옆집 등을 전전하면서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며칠 피해 있기도 하면서 좀 저한테는 어두운 그런 시간들이 꽤 지속되었었습니다.
그렇지만 되게 제가 너무 어렵고 사실 중학생이라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학교 가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근데 그런 와중에 학교에 가면 그래도 이제 친구들이랑 막 웃으면서 놀고 막 떠돌고 또 제가 막 웃기는 거 보여주면 막 웃어주고 막 이럴 때 그때 저한테는 되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그런 희망 같은 좀 희열과 해방감을 좀 느꼈어요.
그렇게 저는 학교 가는 시간이 저한테 굉장히 좀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런 제 마음속을 친구들의 어떤 웃음 또 그러면서 느끼는 행복들로 제가 대체해 보고자 굉장히 애를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 가면 이제 친구들한테 학교 선생님 성대모사도 해주고, 친구들 성대모사도 하고,
제가 막 이제 주말에는 그때 개그 콘서트를 굉장히 즐겨봤었거든요.
그러면 대사를 외우고 있다가 방에 들어가서 까먹기 전에 막 적어요.
그 당시엔 제가 '갸루상'이라는 혹시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짧게 야 내가 '너네 혹시 저번 주에 개콘 봤어? 내가 보여줘 볼까 한번 봐 봐 봐 나 봐봐' 이런 다음에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갸루상이 무니다' 이러면
'어 갸루상 너 오늘 학교 입학했는데 입학하자마자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아 저는 자퇴를 하고 싶수무니다.'
뭐 약간 이런 식으로 뭔가 지금도 아직도 얼마나 했으면 그게 기억이 날 정도예요.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막 친구들이 너무 재밌다고 해주고
거기서 그 재미있다는 소리 듣는 게 저한텐 너무나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비록 그 당시에 저는 공부는 못했지만 그게 저한테는 장점이자 아주 큰 행복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를 생각해 보자면 또 한 가지 장점이 또 있어요.
바로 독립심과 자립심을 제가 자립심을 좀 가질 수 있게 된 거?
왜냐하면 이제 극한의 상황에서 제가 막 즉흥적으로 뭔가 생존하고 막 이러다 보니까
세상에 대한 그런 두려움, 바깥세상에 대한 좀 무서움이 별로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런 장점들이 저한테는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20살에는 제가 이제 취업 준비를 자연스럽게 시작을 했는데,
서비스직 그쪽으로 제가 먼저 시작을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이제 아무래도 막 사람을 즉흥적으로 막 만나고 대하고 막 그런 상황들이 저한테는 어떻게 보면 일상이었다 보니까 그런 거에 대한 이제 두려움이 거기서부터도 없었고,
그리고 그 당시에 제가 굉장히 활동적이기도 했고 또 이렇게 말하는 거를 좋아하다 보니까 제가 적성에 맞다고 판단이 돼서 이제 '호텔리어'로 사회생활을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어 그렇게 반복되는 저의 불화로 인해서 사실 점점 좀 저의 정신이 좀 피폐해져 갔고요.
어 어느 순간부터는 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제 자신이 그 죽음에 가까워져 있는 그런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됐어요.
정말 근데 이게 죽는 것도 쉽지가 않은 일이잖아요.
참 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어지지도 않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내 자신도 너무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그게 저한테는 참 괴로웠었는데,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저한테 되게 좋은 자극제가 되더라고요.
매일같이 나의 죽음을 상상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 인생의 의미가 보이게 됐어요.
그때 어떻게 보면 제 삶의 가치관이 형성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죽는다면, 내가 이렇게 죽는다면 난 내 삶이 너무 억울할 것 같은 거예요.
솔직히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그렇지만 내가 살아야 된다면, 대체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거지? 난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그래 사람은 누구나 사실 행복하려고 살지 않나?
누구나 사실 뭔가를 하든 다 행복하는 게 우리의 목표잖아요.
그래 맞아 행복이야.
그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적어도 나만큼은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직업도 솔직히 마찬가지로 뭔가 남들이 쉽게 이렇게 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직장을 다니는 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는 거나 사실 이 세상에는 쉬운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제가 만약에 성우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했어도 그것조차도 아마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이 세상에 쉬운 거는 없으니까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그래서 제가 이제 성우에 도전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제 성우라는 직업은 제가 정말 어렸을 때 마음속에 그냥 이루지 못할 꿈처럼 그냥 간증만 했었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성우라는 직업 좀 생소하시죠?
이제 성우는 이제 방송국 공채가 뜨면은 이제 공채 시험을 봐 가지고 성우가 되는 건데,
현재는 이제 KBS, EBS, 투니버스, 대원, 대교 이렇게 5개 방송국에서 공채를 보고요.
보통 1차에는 연기랑 내레이션 음성 파일을 보냅니다.
그래 그래서 거기서 이제 합격이 되면 현장에 가서 방송국에 가서 이제 연기 실기 시험을 보고요.
2 3차에 걸쳐서 또다시 실기와 면접을 통해서 그렇게 성우가 되는데요.
아무래도 성우에 대한 정보가 저도 없었다 보니까,
저도 이제 학원을 자연스럽게 찾게 됐었고,
돈이 없었던 저로서는 이제 그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이제 '텔레마케터'라는 거를 시작하게 돼요.
'텔레마케터'가 이제 특별한 경력이 없어도 쉽게 할 수 있었고,
그게 또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제가 공부하는 데 좀 도움이 될 것 같더라고요.
어 그리고 되게 제가 아무래도 연기를 공부하다 보니까 직업적으로 그때 진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제가 민원 업무를 좀 잘 처리했거든요.
보통은 '아 고객님 저희가 도움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저는
'네 고객님 저희가 도움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호흡을 섞어서 저는 그 감정이라는 것은 사실 호흡에서 나오거든요.
저의 불찰로 인해서 고객님 저희가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다가
진짜 막 짜증 나가지고 이러다가 이러다가도 알겠어요 그냥 다음에 좀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저는 조금 다른 상담원들에 비해서 좀 괜찮았던 거죠.
그런 장점도 있었고요.
어떤 날은 또 제가 상담 끝에 어떤 고객님이 저한테 이게 되게 목소리가 되게 좋으시네요.
그래서 성우 하셔도 되겠어요 이런 얘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근데 '맞습니다. 고객님 전 성우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여기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다른 직업 안에서 이제 그렇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팀장님 바로 앞에 계셨고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뭐 그랬지만 너무나도 정말 기뻤어요.
왜냐하면 나를 모르는 제삼자가 어떻게 보면 객관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해 준 거잖아요.
그래 역시 나는 성으로 해야 되는 사람이야 하면서 되게 용기도 얻고 자신감도 넘쳤던 것 같아요.
그렇게 회사랑 학원을 병행하면서 이제 수업이 없는 날과 제가 주말에는 이제
시각장애인 낭독 봉사를 같이 이제 다녔었는데 회사 끝나고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면 이제 계란 2개랑 이제 박카스 하나 들고 이제 낭독 봉사를 하러 갑니다.
그 당시에 제가 무협 소설을 처음으로 맡게 됐었는데, 이제 낭독봉사에서 무협 소설이 사실 되게 좀 어려운 분야예요.
다른 분들이 되게 하기 싫어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어려워서 왜냐하면 무협 소설 읽어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거기 나오는 배역이 열에 아홉은 다 남자고요.
어쩌다 여자 배역이 하나 나오고, 이제 내레이션까지 있고, 굉장히 내용들이 무겁다 보니까
제가 이제 연기랑 내레이션을 다 같이 이제 했었어야 됐어요.
근데 이제 센터 선생님께선 그냥 너무 그렇게 막 열정적으로 연기 안 하셔도 되고
그냥 이제 구분되는 정도로만 해주세요라고 했지만, 나는 성우 지망생인데 이 연기를 그냥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이거를 들으시는 분들한테 내가 제대로 구별이 되게끔 들려드리고 싶었고,
막 욕심이 나니까 남자가 안 되는데, 그때 어떻게 보면 남자를 막 목소리를 연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막 대충 어떤 느낌이었냐면 약간 이런 거죠.
제가 이거 면접에서도 나중에 EBS 최종 면접에서도 이걸로 보여드렸었거든요.
제가 할아버지 약간 목소리 잘 내가는데
'그래 니놈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내 것을 바라봐라 점프 와이'
뭐 이런 식으로 하면은 갑자기
'그의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려버렸다. 아 도사님 괜찮으십니까?'
뭐 이런 식으로 혼자서
왜 그러세요?
아니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그때는 아직 성우가 아니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러니까 뭐랄까요
이 표현이 안 될 정도의 굉장히 큰 가치 그리고 보람 이런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내 목소리가 누군가한테 이렇게 도움이 될 수가 있구나
내가 이거는 진짜 시간을 쏟아도 될 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그렇게 열심히 지망생의 나날을 이제 보냈습니다.
그때도 역시나 저한테는 이제 참 어두운 시기였지만,
그 시간 속에서 저는 사실 누구보다도 제 마음속에 열정으로 빛났던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자 근데 이제 그렇게 하다 보면 성우가 됐을 것 같죠? 아니에요.
일 년, 이 년, 삼 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4년, 5년 아직도 안 돼 있더라고요.
제가 이제 22살 초반에 시작을 했는데, 어느덧 서른을 앞두고 있는 거예요.
오 마이 갓
자 이제 그쯤 되니까 주위에 친구들은
아 얼마를 모아가지고 결혼은 어떻게 할 것이며 결혼 자금을 얼마를 모았고, 막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저한테는 공감도 안 될뿐더러 뭔가? 이 친구들은 인생의 막 다음 단계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나는 직업적으로 내 직업이라는 걸 가지지도 못했는데, 뭔가 막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 거예요.
심지어는 이제 부모님도 계속 반대를 하셨었어 가지고,
제가 몰래 이제 초반에는 나 성공하겠다고 해놓고서 나중에는 계속 안 되니까 '관뒀어'라고 이렇게 거짓말하고 몰래 공부를 했었거든요.
정말 그때 정말 억울했던 게, 이제 회사 끝나고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이제 11시에 와요.
그럼 엄마가 '이놈을 가시 애야 너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지금 어 아이고' 이런 식으로 핀 전을 들으면서
근데 속으로는 나는 이제 나도 공부하다 온 건데 이런 얘기 듣는 거 너무 억울하고 그러면서 이제 주먹밥을 먹으면서 더 오기를 막 '내가 반드시 성우가 됐겠어' 그랬었었죠.
더군다나 그리고 친구들도
'야 너 그거 언제까지 할 거야?'
'근데 그러다 만약에 안 되면 어떡해?'
'다른 차선책이라도 막 좀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야?'
'30살에는 좀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막 이런 막 온갖 얘기를 들으니까 주변에서 점점 저를 조여 오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아니 나는 나름 되게 열심히 진짜 나 좀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내 꿈을 위해서 이렇게 나아가고 있는 내 자신이
'근데 난 도대체 왜 이렇게 안 되는 걸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죠.
그래 사람들이 이제 뭐 서른이다 뭐다 얘기하면서 그렇다면 내가 만약에 이걸 지금 만약에 정말 포기해야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아닌 거예요. 후회할 것 같은 거예요.
그렇다는 거는 내가 미련이 남았다는 건 내가 후회가 남고 미련이 남는다는 건
내가 아직 그 정도로 뭔가를 다 해본 게 아니구나.
사실 후회를 하더라도 진짜 미련이 없어야 되는 거잖아요.
왜냐하면 그만큼 나한테는 소중한 꿈이었으니까
그래서 나 아직 다 해본 게 아니구나. 좋아. 그러면 내 한계를 한번 시험을 해보자.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남들이 소위 말하는 진짜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한번 해볼까?
그래서 제가 이제 다니던 회사를 이제 그만두고요.
돈이고 뭐고 그런 것보다도 이제 시간을 더 이제 타이트하게 목소리로 채울 수 있는 그렇게 나날들로 보내기 시작합니다.
이제 카페 오픈 쪽 알바로 이제 하루를 조금 더 일찍을 시작해서 제가 학원비 학원비 벌 수 있는 정도로 이제 알바를 하고요.
그리고 이제 제가 소일거리로 녹음 알바도 조금씩 이제 했었고, 마찬가지로 이제 주말이랑 평일 할 거 없이 다 낭독 봉사를 이제 갔었고, 또 이제 학원도 마찬가지로 계속 계속 나갔고, 또 할 게 없으면 그냥 무조건 친구들이랑 같이 이제 잡았던 스터디룸 스터디룸 가 가지고 뭐라도 뭐라도 하자 뭐라도 읽자. 그리고 제가 체력 단련도 두세 시간씩 했어요. 그때는
그냥 체력 단련이라도 하면 이게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정말 막 뭐 이렇게 제가 막 어느 정도였냐면은 막 이렇게 공원에 가서 막 열심히 이제 막 운동을 합니다.
가 갸 하면서 막 뛰면서 막 하고 쉬면서도 옆에 이렇게 정자에 할머니들 쫙 앉아 계세요.
그럼 거기 옆에서 어머니 할머니들이 무슨 얘기하시지 어떤 할머니들은 어떤 말투를 하실까?
가면서 또 그런 식으로도 공부하고
저 위에 할아버님들이 또 장기를 두시네 거기를 한번 가볼까 이런 식으로도 하고
제가 밥을 먹을 때도 신문지 펼쳐놓고서는 주로 밥 먹거든요.
근데 밥을 먹다가도 뭐가 보이면 읽었어요.
저는 이제 볼일을 볼 때도 핸드폰 많이 보잖아요.
핸드폰 그냥 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냥 혼자 뉴스를 읽어도 네 오늘 이렇게 이게 제가 연기한다 생각하고 그 시간을 그렇게 이렇게 쓴 거예요.
아 네 오늘의 뉴스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쓰복만이 뭐 새바시 강연에 나온다고 합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인데요. 뭐 한번 연결해 볼까요?
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세바시 강연에 나와 있는 수봉만 기자입니다.
이런 식으로 혼자서
그럼 엄마가 쟤 넌 도대체 화장실에서 뭐 하는 거냐고 빨리 안 나오고
그런 식으로 저는 제 진짜 눈에 닥치는 모든 것들을 다 그렇게 읽었고, 제 삶을 목소리로 채워 나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정말 흔들릴 뻔했지만 제 마음의 그런 울타리를 제가 단단하게 만들어 나갔어요.
왜냐하면 주변에서 자꾸자꾸 저를 막 자꾸 흔들었으니까.
근데 왜 저하고 한 약속이 있잖아요.
나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그 약속
그거를 저는 성으로 증명을 해 보이고 싶었어요.
그동안에도 저는 비록 시험은 수없이 떨어졌었지만, 제가 어느 순간부터는 어 이게 결과보다도 과정을 즐기게 됐어요.
왜냐면은 혹여나 내가 성우가 안 되더라도 내가 정말 후회가 없을 것처럼 살고 있었거든요.
내가 선택한 이 삶과 과정 이 모든 건 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우리는 다 결과를 보지만 내 과정은 내가 잘 알잖아요.
거기에 가치를 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그래서 결과가 중요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떨어져 있던 그런 제 자신감 자존감 이런 것들도 점점 다시 생겨났습니다.
자 그렇게 여전한 암흑기 스물여덟 살의 김보미는요.
어 그때도 역시나 전 가출을 한 상태였어요. 놀랍게도 아휴~
그랬지만 제가 이제 그런 상태에서 친구네 집에서 이비에스 시험을 보았고요.
육 년 만에 오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저는 합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우가 되어서 당당히 집으로 갔습니다.
어~ 제가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저희 가족들하고 서로 많이 좀 이해하게 됐어요.
그 당시에는 좀 서로가 서로에게 서투를 수밖에 없었던 그런 이유
부모도 처음이고 자식도 처음이고 우린 다 그렇잖아요.
그런 마음에 대해서 좀 이해를 하게 됐고, 지금은 누구보다 저를 믿고 지지를 해 주시고 계세요.
어쩌면은 그 시간 속에서 저 때문에 속상하신 시간들도 많으셨을 텐데,
공부 잘하라는 얘기 없이 묵묵히 저를 좀 믿고 기다려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얘기를 저희 부모님께도 꼭 드리고 싶어요.
어 이제 지금 생각해 보면요.
전 아직도 내가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버텼지 싶을 정도로, 정말 사실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런 과거의 어떤 고난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죽음에 가까웠기에 제 삶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그래 내 인생이 가시밭길이었지만 뭐 어때? 오히려 좋아. 덕분에 나는 강해졌으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꽃길만 걷지 않으셔도 뭐 어때요?
그만큼 나의 인생의 진짜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그런 기회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여러분들의 그런 가시밭길도 꽃길로 이어지시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