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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474회 | 먹고사니즘의 진짜 의미 | 전범선 가수 겸 작가, 밴드 '양반들'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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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의 진짜 의미

 

 

합격했던 미국 로스쿨 진학을 취소하고, 글 쓰고 노래하면서 예술가로 살아야겠다.

어머니 아버지는 저의 결정을 존중하시면서도 

"야 범선아 그래도 변호사 자격증은 따두는 게 좋지 않냐?"

저희 고등학교 동기들 대다수는 변호사 아니면 의사입니다.

1위 로펌에 다 모여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저만큼 저희 친구들 사이에서 밥을 먹고 삶을 사는 일에 진심인 친구도 없습니다.

이제는 제가 자신 있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상위 0.1% 학벌을 버리고 글 쓰고 노래하며 내 마음대로 사는 이유

 

 

안녕하세요.

저는 글 쓰고 노래하는 전범선입니다.

오늘은 제가 먹고사는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나왔습니다.

사실 요즘 우리한테 먹고사는 일이 도전이잖아요?

그래서 오늘 저는 저의 지난 5년 동안 먹고 살아왔던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시작은 2016년 11월 12일이었습니다.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촛불 집회에 처음으로 백만 명이 나왔던 날이었어요.

저는 그날 저희 밴드 양반들과 함께 광화문 민중 총궐기 무대에 올랐습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노래를 연주했는데요.

영상 찾아보시면 나중에 나옵니다. 거기서 제가 북채를 들고 자 한 번 엎어보자.
그리고서 북을 마구 때렸어요. 혁명의 북을 올렸습니다.

자 한번 엎어보자


평생 그렇게 짜릿한 경험이 없었어요. 

솔직히 앞으로도 제가 백만 명 앞에서 공연할 날이 올까 조용필 선생님도 힘들거든요.

이거는 스물다섯 살에 전범선은 진로를 결정했어요.

아! 예술가로 살아야겠다. 

글 쓰고 노래하면서 세상과 어울리고 싶다.

변화의 물결에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 합격했던 미국 로스쿨 진학을 취소하고 현재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야말로 백만 촛불이 일으킨 제 인생의 일대 혁명이었던 거죠.

주변에선 이랬어요. 

"야 너 어떻게 먹고 살라고 그러냐?"

한국에서 로큰롤 밴드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음악만 할 게 아니라 글 쓰는 일도 할 겁니다. 작가가 될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는 저의 결정을 존중하시면서도 

"야 범선아 그래도 그래도 변호사 자격증은 따두는 게 좋지 않냐?"

고생해서 석사까지 했는데 소위 말하는 딴따라가 된다고 하니까 굉장히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저는 법조인이 되는 것보다 예술가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었어요.

돈보다는 재미와 의미를 쫓고 싶었습니다. 

안정적이지만 불행한 삶보다는 불안정적이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 가수 겸 작가로 서 있습니다.

 

먹고사니즘 : 먹고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

 

엠제트 세대의 특징을 흔히들 먹고사니즘이라고 이야기해요.

먹고사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일에는 좀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

그렇죠? 돈 버는 일에 급급하여 사회 문제나 정치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뜻합니다.

저의 진로 선택은 법조인 대신 예술가로 살겠다. 

이거는 어찌 보면 요즘 애들의 세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먹고사니즘에 배치되는 결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저희 고등학교 동기들 대다수는 변호사 아니면 의사입니다.

 

 

문과는 변호사, 이과는 의사예요. 150명 중 10명이 여러분들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1위 로펌의 다 모여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저도 

대학교 동기들은 대부분 금융 컨설팅 it 이런 대기업에 종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저한테 예술가가 되겠다는 것은 친구들로부터 멀어지는 길이었어요.

다 같이 되게 신나게 타고 가던 버스에서 (요즘 버스가 유행인데) 버스에서 내려서 혼자 다른 곳으로 이렇게 향하는 그런 기회였습니다.

 

 

호기롭게 나서긴 했지만, 솔직히 저도 5년 전에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되나 두려웠습니다.

뭐 대책이나 보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제가 TV 예능 방송에 처음 나왔을 때 검색어에 이게 올라왔어요.

전범선 금수저, 뭐 자사고 출신의 아이비리그 유학 갔다 왔다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합니다.

저희 아버지 자동차 부품 대리점 운영하셔서 허리띠 졸라면서 저를 지원해 주셨지만,

그래서 제가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지만, 예술가로 살겠다고 한 이상 글 쓰고 노래하는 삶을 선택한 이상 생계는 오롯이 저의 몫이었습니다.

3년 전에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더더욱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 저는 대출금과 월세, 카드값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우리 뭐 대부분 그렇듯이, 내 집 마련 솔직히 포기했고요. 전셋집이라도 좀 얻으면 좋겠습니다.

먹고사는 집에서 어긋나는 진로를 자신만만하게 택해서 그런지 저는 동창들에 비해서 생계유지가 어렵습니다.

 

 

2년이 지나서 2018년 11월 22일 그 사이에 제가 군대를 갔다 왔는데요.

군대를 갓 전역한 전범선은 영등포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왜 그러냐?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과 함께 국회 의사당 돔에다가 레이저 빔을 쐈어요.

뭐라고 썼냐면요. 그 태권브이 나오는 그 돔 있잖아요.

거기에다가 개 도살 금지 라고 하는 레이저 빔을 쌓습니다.

개 도살 금지


이게 뭐 엄청난 화제가 돼서 뉴스에 여기저기 보도가 되었어요.

왜 그랬냐면은 당시 표창원 의원이 발의했던 동물 이미 도살 금지법의 통과를 촉구하는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부의 책임 회피를 비판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국회 앞에 있는 국회 바깥에 있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저희가 쐈기 때문에 처벌받을 법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집시법에 어긋나지 않았어요. 기껏해야 전기 절도죄였습니다.

저는 하루 만에 풀려났고요. 검찰도 불기소 처분을 했습니다.

 

27살의 전범선은 그때 또 다른 결심을 합니다.

아 운동가로 살아야겠다.

나의 말과 글에 어울리는 행동과 실천을 해야겠다.

그것은 변화의 물결에 함께하고 싶다고 했던 2년 전 저의 바람과도 사실 일맥상통했습니다.

로스쿨 대신 로큰롤, 법조인 대신 예술가로 살면서 저는 이 먹고사니즘을 아예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특히나 인수 공통 감염병 코로나와 기후 생태 위기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먹고사니즘이 아닌 비거니즘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비거니즘

 

지구가 아프고 동물이 아프면 우리 인간도 아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코로나19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의 유일한 집, 지구에 함께 사는 식구들 모두의 안위를 챙겨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거니즘에 관한 책 두 권을 썼고요. 세 권을 번역했습니다.

 

 

 

바쁘게 살았습니다.

먹고사니즘 대신 비거니즘 먹고살기 좀 돼 비거니즘 개인이 먹고사는 게 중요하냐 아니면은 이 모든 생명 생명이 중요하냐 이 문제는 저에게는 상충하는 것이었어요.

서로 어긋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면은 주류에서 비주류로 벗어났던 버스에서 내렸던 저의 개인적인 진로 선택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얼마 전 작년입니다. 

얼마 전 집에서 이렇게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흔히 유레카는 이제 욕조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저는 이제 설거지 통 앞에서 유레카가 있었는데, 

아! 그때 제가 느낀 것이 먹고 사니 짐이랑 비거니 짐이 다르지 않구나

아니 오히려 비거니즘이 곧 먹고사니즘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반대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였어요. 

 

살림

 

힌트는 살림이라는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에 있습니다.

엄마 생각이 났어요. 

불안하고 무기력했던 갓난아기 우리 모두 태어날 때 그렇잖아요.

굉장히 불안하고 무기력했던 갓난 아기 전범선을 살리기 위해서 어머니가 했던 모든 노동을 우리는 살림이라고 부릅니다.

장보기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돌봄, 환대, 경청, 공감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살림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모두가 귀찮아하는 일, 밥을 먹고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지만 경제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입니다.

하지만 살림은 사전에 검색해 보면 원래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에요.

그렇잖아요. 

말 그대로 집안 식구를 살리는 일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를 살려주었듯이 

 

 

그렇다면 살림을 등한시하는 오늘날 2022년 인간 중심의 사회는 무엇에 집중하고 있을까요?

간단하죠. 살림의 반대인 죽임입니다. 

대한민국은 한 해에 식용으로만 12억 명이 넘는 동물을 죽입니다.

이거는 물살이 동물은 제외한 숫자예요. 

농림축산부 통계입니다.

이미 전 세계 포유류의 36%가 인간이고요. 

60%는 오직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입니다.

나머지 4%만이 해방된 야생 동물이에요. 

 

 

공장식 축사는 인류 최악의 범죄이자 기후 위기를 일으키는 탄소 배출의 주범입니다.

 

2018년 옥스퍼드 대학의 조세프 푸어 연구에 따르면 

비건이 되는 것이야말로 채식을 하는 것이야말로 

지구에 대한 개인의 환경적 영향을 줄이는 단 한 가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여러분 우리 죽임의 문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공장식 축산과 어업을 불매하고 채식 위주의 가까운 새 로컬이라고 그러죠.

가까운 먹을거리를 택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저는 비거니즘을 그래서 살림의 철학이자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채식주의는 부족합니다. 먹는 것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거든요.

음식뿐만 아니라 실험, 전시, 오락 등등 온갖 불필요한 이유로 인간은 동물을 죽입니다.

비거니즘은 우리 사회의 최약자인 동물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구라는 한 집안을 다 같이 이루어 살고 있는 우리 식구를 돌보는 일이죠.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함께하고 계신 우리 모두 인간은 이성적인 인간이기 전에 감성적인 동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동물이에요.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이 없어도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있다면 누구든지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건이 되는 것은 나의 먹고사는 일이 다른 생명의 죽임인지 혹은 살림인지 지구의 죽임인지 살림인지 곰곰이 따져보는 일이었습니다.

갓난아기 전범선을 위해 살림하던 어머니의 마음으로 지구 생명체 모두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올해로 채식을 10년째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세 번 식사라고 하는 의식을 치를 때마다 생명의 순환을 생각합니다.

저는 비거니즘을 실천할수록 살림꾼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밖에서 사 먹는 게 솔직히 좀 많이 불편해서 하루 종일 세네 시간은 그래서 집안 살림하는 데 쓰고 

세네 시간은 비건 운동 뭐 하는 데 쓰고, 세네 시간은 글 쓰고 노래하는 데 씁니다.

 

근데 그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저의 동기들 저희 친구들은 만나보면은 매일 야근에 주말도 없다고 합니다.

먹고 사니스트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그렇죠? 우리 흔히들 먹고사니즘이라고 얘기하면은 먹고사는 일에 지쳐서 모든 거 뭐 엔포 세대라고 그러죠.

모든 걸 포기하고 정말 커리어, 스펙 앞으로의 진로 여기에만 신경 쓰는 것이 먹고 사는 이스트의 정의잖아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저만큼 저희 친구들 사이에서 밥을 먹고 삶을 사는 일에 진심인 친구도 없습니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그거에 대해서 글 쓰는 게 저의 직업이거든요.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기를 살리는 게 루콘룰 밴드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같이 저는 고민하고 실험하고 있습니다.

예술가이자 운동가로서 살겠다고 했던 저의 진로 선택의 결과인 것이죠.

우리  MZ 세대는 먹고사는 리스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기후 생태 위기로 인해서 모두의 삶이 불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지만 제가 여기에 대해서 많이 공부를 하고 연구 결과도 찾아보고 정치인들이 하는 말도 잘 경청하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기후생태위기 올해는 훨씬 더 심각해질 거고요. 

그리고 사회 불평등 구조 대선이 코앞이지만 크게 나아질 거라고 희망하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힘듭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더욱 불안해질 거라고 저는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내가 당장 월세 내고 카드값 내고 대출금 갚는 게 힘든데,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의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먹고 사는 짐에 빠질수록 말 그대로 진짜 밥을 먹고 삶을 사는 일은 뒷전으로 미루는 게 아닐까요?

정말 우리가 일 때문에 공부 때문에 직장 일 때문에 밥을 먹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이 밥을 먹는 일은 비윤리적이고 환경 파괴적이고 건강에도 해로운 방식으로 편의점에서 간편식으로 자극적인 배달 음식으로 대충대충 빠르게 해치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전 그래왔어요.

제가 작년까지만 해도 이 살림이라는 생각하기 전까지는 비건 운동을 하면서도 비건 라면과 비건 버거로 끼니를 때웠고요.

고기를 안 먹고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게 중요하지 나의 건강을 챙기는 건 솔직히 뒷전이었습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건강 때문에 채식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근데 저는 아 그런 건 진짜 채식이 아니야 윤리적인 이유에서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하는 채식이 정말 윤리적인 채식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대충대충 때웠습니다.

작년부터 자연식물식을 하니까 저의 삶이 굉장히 달라졌어요.

저의 몸에 있었던 모든 등드름과 여드름이 다 사라졌고, 어 이건 비건을 하면서도 안 사라졌던 건데 

제가 직접 요리를 해 먹고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장을 보고 이게 뭐 유기농인지 뭐 가까운 먹을거리인지 뭐 다 따져보니까 훨씬 더 살림 실력이 아직도 미약합니다만 

어 이제는 제 입속에 들어가는 음식에 대해서는 뭐가 들어오는지 압니다.

사실 많은 경우 우리가 성분표 찾아보지 않는 이상 뭐가 들어오는지도 모르잖아요. 제 입속에 

비건이 되었을 때 처음부터 하는 것이 바로 마트에 가서 성분표부터 따져보는 거예요.

여기에 과연 동물의 고통이 담겨 있는가? 동물의 죽음이 담겨 있는가? 그걸 따져보기 시작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이 들어오는 이 음식이 나의 살림인가? 아니면 나를 죽이는 음식인가? 이걸 따져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설거지를 하면서 오늘도 설거지를 하면서 다시 다짐했는데요.

사실 5년 전 진로 선택이 어머니 아버지가 걱정하셨던 소위 딴따라가 되겠다고 했던 그 진로 선택이,

먹고사니즘에 굉장히 충실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신했습니다.

저희 아버지 3년 전에 굉장히 희귀한 아무도 원인을 모르는 암으로 5년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는데요. 지금도 기억이 나요.

이런 거 제가 나오면은 아버지가 가장 반겨워하셨을 텐데,

근데 지금 기억나는 마지막 아버지의 목소리 중 하나는 아까 말씀드린

"범선아 어떻게 먹고살려고 그러냐?

하 그렇게 열심히 내가 유학 보내왔는데, 어떻게 먹고 살려고 그러냐?"

이제는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비롯해 저의 모든 걱정해 주신 모든 주변 분들께 자신 있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좋은 밥을 먹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거니즘과 살림이야말로 진정한 먹고사니즘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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