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사람들은 이 언니에게 한국소식을 듣습니다 | 릴리언니 틱톡 크리에이터 | #틱톡 x세바시 #K콘텐츠와 꿈꿈 | 세바시 1773회 @LiryOnni
사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항상 뭐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만 하고 만약에 한국이라고 하면 뭐 남한 북한 그런 질문밖에 안 받았습니다.
어릴 때 정체성 혼란이 너무 심했습니다.
나는 아르헨티나 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
남아공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랑 한국이 붙은 거예요.
그때 너무 갈등 때리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될지
약간 엄마 아빠를 고르라는 것처럼 이렇게 느껴져요. 저는 저는 둘 다 좋은데
아르헨티나에 살았을 때 한국이 먼 나라였거든요.
하지만 멀리 있어도 우리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 요약
- 정체성의 혼란
아르헨티나 교포 2세로 태어나 “나는 아르헨티나 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라는 질문 속에 성장. 2010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와 한국이 맞붙으면서 극심한 갈등을 경험함. - 한국 문화 콘텐츠 제작
아르헨티나에서 35년간 살다가, 5년 전부터 “릴리 언니”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어권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콘텐츠 제작 시작. 한국인의 자발적 협력, 기부 문화 같은 긍정적인 소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도 다룸. - 가족사와 한국 역사
외할아버지가 흥남 철수 작전 당시 거제도로 내려온 피난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한국전쟁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짐. 이 경험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여 해외 동포 2세들에게 한국 역사를 알리고자 함. - 한국 정착
코로나로 아르헨티나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이주. 치안, 편리한 생활, 음식 문화 등 한국 생활에 만족하며 한국 국적을 회복함. 직접 현장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며 이태원 참사 추모 등 사회적 이슈도 다룸. - 아르헨티나와 한국 연결
한국인들이 아르헨티나를 경제 위기의 나라로만 보는 것을 아쉬워하며, 와인(특히 말벡), 음식, 역사 등 다양한 문화를 알리고자 함. 한국에서도 아르헨티나 음식(엠파나다 등)을 그리워하며 문화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 - 마무리 메시지
아르헨티나와 한국이 서로를 더 잘 알고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연을 마무리함.

안녕하세요.
저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교포 2세 송 릴리아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혹시 한국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얼마나 걸리시는지 아십니까? 32시간 걸립니다. 제일 먼 나라예요.

전 이 먼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35년 동안 계속 쭉 살았고,
5년 전부터 릴리 언니 한국어로는 릴리 언니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어로 한국 문화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영상 보신 적 있으신가요?

춘천에서 어느 트럭이 도로에 갑자기 넘어져 맥주를 다 쏟았었는데 주변 분들이 다가와서 끝까지 다 치워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떠난 영상이에요.
저는 이거 보고 너무 충격 먹었어요.
아니 남의 일이기도 하고, 우리 뭐 유리가 깨져서 뭐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분들은 모른 척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도와줬다고?
이건 꼭 공유해야겠다.

이걸 리뷰해서 올렸더니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었어요.
공동생활의 표본 한국 시민들 간의 존중과 협력이 정말 감탄스러워요.
이런 사람들은 전 세계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댓글들을 남겨주셨어요.

사실 해외에서는 트럭이 넘어지면 도움 주기보다 기회 삼아 사람들이 물건을 가져가는 뉴스가 더 많거든요.
그리고 한국엔 이런 뉴스도 제가 자주 봐요.

어느 할머니가 사회에 평생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셨다는 뉴스
아니면 경찰서에서 좋은 이래 써주세요. 라고 써져 있는 돈 봉투만 남기고 간 익명의 기부 천사 이야기
이런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서로를 어떻게 도와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 좋은 면들에 대한 영상들이 바이럴 많이 되더라고요.
근데 사실은 좋은 이슈만 올리지만 않아요.
어 한국 드라마 영향 때문에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분들이 계셔서
어 그분들 위에 이제 한국도 다른 나라들처럼 좋은 점도 있지만 안 좋은 일들도 있다고
그리고 어 풀어야 할 문제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도 많이 다루기도 합니다.
제 어린 시절에 대해서 좀 얘기하자면요
어 전 어릴 때 정체성 혼란이 너무 심했습니다.



나는 아르헨티나 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에 아르헨티나랑 한국이랑 축구하면 누구를 응원하지?
근데 실제로 그런 날이 오더라고요. 2010년이었는데요. 남아공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랑 한국이 붙은 거예요.
전 어릴 때부터 이제 학교에서 월드컵 때마다 수업도 안 하고 이제 강당에 다 모여서 아르헨티나를 응원했거든요.

그날은 이제 길거리에도 사람이 없고 뭐 가게들도 문 다 닫아요.
이제 역시 축구의 나라죠
이제 어 그렇게 축구를 하는데 이제 한국이 경기를 하면 저는 이제 가족이랑 그리고 교포 친구들이랑 모아서 이제 한국도 응원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2010년 때는 어땠냐면요
제가 그때 LG 아르헨티나 법인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200명 정도는 현지인들이고 한 20명은 한국 사람들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법인장실에서 법인장님은 한국분이시니까 다 같이 모여서 한국을 응원하고
나머지는 이제 사무실 전체는 아르헨티나를 응원했었죠.
전 그때 너무 갈등 때리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될지 처음에는 전 아르헨티나 사람들이랑 같이 있었어요.
근데 아르헨티나가 골을 너무 많이 넣는 거예요.
그날 몇 대 몇으로 한국이 졌는지 혹시 기억하시는 분 계십니까? 4대 1로 졌습니다.

그래서 골이 들어갈 때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머스 바머스가 가자 이거거든요.
그래서 막 이렇게 환호하고 그랬었는데,
저는 이제 아르헨티나가 이기는 것도 좋은데 이제 뭔가 동시에 한국이 지는 것도 이제 좀 싫은 거예요.
그래서 중간부터는 저도 이제 법인장실로 가서 한국 분들이랑 한국을 응원하게 됐어요.
제가 이걸 갖고 이제 뭐 아르헨티나보다 한국을 좋다 이런 게 아니라 정말 마음이 이제 복잡하거든요.
약간 엄마 아빠를 고르라는 것처럼 이렇게 느껴져요. 저는 둘 다 좋은데
그리고 제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건 각 나라가 주는 메시지였어요. 너무 정반대거든요.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에 태어나면 평생 아르헨티나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한국은 어디에 태어나든 부모님이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는 확실히 다른 외모 때문에 온전히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느끼는 거에 좀 어려움을 느꼈었고 소속감을 느끼는 게 좀 힘들어했습니다. 제가 왕따를 당하거나 저를 일부러 따돌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깊은 관계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전 문화가 너무 달랐고 가치관이나 취향도 너무 달랐습니다.
전 어릴 때 뽀뽀뽀 보고 자랐거든요. 아기 공룡 둘리랑요. 그리고 사극 그 허준 64편도 다 봤었어요.
어 엄마 아빠 옆에서 봤었는데 사극은 어렵잖아요.
그래서 옆에서 뭐래 왜 왜 그런 거야 뭐 무슨 일이야 막 이해를 잘 못 하면서 끝까지 다 봤던 걸 기억나요.
그때는 인터넷 시대가 아니어가지고 주말에 가면 한인 비디오 가게가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다 비디오 빌리고 주 중에는 이제 다 보고 또 주말에 가서 반납하고 다시 빌리고 그렇게 해서 봤었습니다.
음악도 Kpop만 들었어요.
전 SES 언니도 진짜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제 현지인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좀 들려줬고 그랬었는데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좀 관심을 별로 뭐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가 뭐 좋아하는 게 아니면 제 문화가 좀 인정되지 못해가지고 아니면 공감을 못 받아가지고
저는 현지인 친구들이랑 그렇게 깊게 가까워지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 요새는 좀 더 알려지긴 했는데, 사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서로의 나라들이 아무 교류도 없고, 아르헨티나에서 제일 먼 나라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생소했어요.
항상 뭐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만 하고, 만약에 한국이라고 하면 뭐 남한 북한 그거밖에 그런 질문밖에 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내면에는 한국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30살 됐을 때 그 친구 채널에 출연하게 되었는데요.
한 중 일 비교하는 콘텐츠였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을 대표해서 나갔거든요.
근데 그게 너무 바이럴 된 거예요.
얼굴도 좀 팔린 것 같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한국 문화 대한 콘텐츠를 만들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 그런 주제를 한국 문화로 정한 거였어요.
제가 크리에이터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을 한 것 중에 하나가 저희 외할아버지의 슬픈 과거를 알게 된 것입니다.

어 저희 할아버지도 아르헨티나에 같이 사셨어요.
80년대 저희 어머니 쪽이 다 가족이 전체가 다 이민 가셨거든요.

어 어릴 때는 외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말씀이 없으시지 귀가 잘 안 들리셔서 그러신가 아예 감정 자체가 없으셨던 느낌이었어요.
뭐 좋다거나 싫다는 표현도 없으시고 너무 무덤덤하셨거든요.
어 좀 더 커서 생각해 보니까 할아버지가 6 25 때 월남하셨다는 건 알았지만,
저희 가족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할머니께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전쟁 중에 흥남에서 미군 화물선을 탑승해 거제도에 도착하셨다는 것만 알고 계셨어요.
할아버지 어머니와 형들은 북한에 남고 혼자 내려오셨어요.

좀 더 알아보니까 국제시장이라는 영화 아시죠? 거기에 나오는 흥남 철수 사건이 할아버지 경험과 일치하더라고요.



당시 미군은 흥남에서 철수할 때 북한 피난민들을 구출할 계획은 없었지만 결국 약 10만 명의 북한 피란민들을 기적적으로 함께 구출했어요.
그중에 저희 할아버지도 계셨던 거죠.
좀 더 알고 싶어서 할아버지에게 물어봤는데 귀가 잘 안 들리셔서 제대로 소통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외할아버지의 이북에 국민학교 동창이 한국에 계신다는 걸 생각났어요. 그건 알았었거든요.
그래서 그분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할머니가 저희 외할아버지랑 그분이랑 편지를 주고받고 계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편지를 저한테 이렇게 보여주셨는데, 외할아버지가 직접 동창에게 쓰셨던 편지를 복사를 하시고 남기신 거예요
그 복사본을.
더 놀란 건 제가 알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가 자세하게 다 써져 있었던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왜 우리한테 안 해 주셨지? 이해가 안 갔거든요.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까 너무 아픈 이야기라 할아버지가 가족한테 얘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침저녁 두 끼 주먹밥에 소금을 찍어 먹고
밤에는 더러운 얇은 포대를 덮고 추위로 견디기 보름이 지나자
이제는 춥고 배고픔을 더 견디지 못해 젊은 방공 청년들은 불만을 품고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전쟁터에 나가 싸우자는 싸우다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혈서도 쓰고 상부에 진정했어.
그러니까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거든요.
그래서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더 슬픈 건 한국의 모든 분들의 역사라는 게 더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 있으셨는데요

고향을 다시 한번 방문하는 게 평생소원이셨지만, 못 이루시고 2년 전에 세상 떠나셔서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 역사, 특히 한국 전쟁에 대한 제 관심이 커졌어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런 역사 배운 적도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이런 영상을 스페인어로 만들면 저와 같은 2세들도 한국의 역사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엄청 공부하고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 제가 크레이터를 일하기 전에 편의점 장사를 아르헨티나에서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거든요. 망했어요.
그래서 아르헨티나에서 따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한번 한국에 살아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르헨티나에 살았기 때문에 쉬운 결정이 아니어서 작년 3개월 동안 남편이랑 먼저 살아보기로 결정했어요.
기대도 되고 동시에 적응 못할까 봐 걱정됐는데 와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돌아가서 5개월 동안 다 정리하고 올해 1월부터 한국에 거주하게 됐습니다.
어 한국이 뭐가 좋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으실 것 같아요.
일단 치안이 너무 좋아요. 길거리에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게 한국 분들에게는 너무 당연하시잖아요. 전 아니거든요.
그리고 모든 면에서 너무 편리하고 빨라요. 제가 은행을 갔는데 이제 바로 그 체크카드를 바로 주더라고요.
저는 이제 아르헨티나에서는 한 열흘 정도 걸리는데, 그런 거 보면 막 너무너무 깜짝 놀라고,
그리고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주로 한식을 먹었었는데 뭐 좀 더 당연하게 들리시겠지만
역시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이 최고인 것 같아요.
제가 아르헨티나에서는 그 육수를 만들려고 다시마도 넣고 멸치도 이제 똥도 하나하나 다 바르면서 이렇게 육수를 만들었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제 제가 어묵탕을 끓여 먹으려고 그러고 있었는데, 이제 육수 다 끓여놓고 그랬는데,
이제 어묵을 이 봉지를 이렇게 뜯어서 넣으려고 할 때 보니까 그 수프 그런 게 있더라고요.
벌써 그런 걸로 육수를 할 수 있는데, 저는 그걸 모르고 열심히 육수를 만든 거예요.
그래서 아 이런 걸 막 약간 한참 이렇게 쳐다봤어요.
역시 한국에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다 되어 있구나 저는 그런 걸 몰랐던 거죠.
이런 거 보면 아 나 역시 한국인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의 1년 돼 갔는데 적응도 너무 잘했고 정착하기로 결심했어요.
제가 국적이 아르헨티나인데 저번 달에 한국 국적을 회복했습니다.
처음으로 주민번호도 생겼어요. 감사합니다.

네 한국에 직접 와서 콘텐츠에 도움도 훨씬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영상이나 기사로만 리뷰했는데 지금은 직접 나가서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게 돼서
이제 그런 영상들을 만들 수 있는 게 너무 좋고요.
특히 제가 사건에 대해서 리뷰를 자주 하는데,
이번에 이태원 참사 1주기 맞이했는데 제가 직접 추모 현장에 가서 느낀 점들을 공유하기도 했어요.

제 콘텐츠를 보시는 분들은 제가 한국에서 잘 정착하고 있는지 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문화 충격받는지 그런 관심이 있어서
이런 것도 제가 경험해서 공유할 수 있게 되어 한국으로 온 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전 아르헨티나에 살았을 때 한국이 먼 나라였거든요.
하지만 멀리 있어도 우리나라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제 한국에서 살게 되니까 아르헨티나가 먼 나라가 된 거예요.
그래서 이젠 여기 와서 보니까 한국 분들이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너무 모르시고 일단 관심도 많지 않으신 것 같아요.
한국이랑 정말 접점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제일 안타까운 게 아르헨티나를 뉴스로만 접하시니까 뭐 경제가 힘든 나라로만 생각하시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아르헨티나 경제가 힘든 것도 맞지만 그 이상의 것들이 많아요.
뭐 문화, 음식, 역사, 자연 아르헨티나만의 독특한 면들이 있죠.
혹시 와인 좋아하시나요?
아르헨티나 와인 진짜 좋습니다.
와인이라고 하면 칠레 와인은 알아주시잖아요.
근데 아르헨티나 그 와인도 정말 좋은데 잘 모르시더라고요.
아르헨티나 와인이라고 하면 말백이 제일 유명해요.

원래 프랑스에서 시작된 포도 품종이었지만 아르헨티나의 기후와 땅에 더 잘 맞아서
말백은 아르헨티나의 와인의 상징이 되었어요.
저는 한국 사람들이 이런 부분도 더 많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르헨티나에 있었을 때는 한국은 말이야~ 이랬었는데
한국에 오니까 끊임없이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지금 한국 생활하는 게 너무 만족스러워요.
근데 최근에 한 번 크게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르헨티나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그 엠바나다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내용이었어요.

엔바나다가 남미식 만두거든요.
근데 갑자기 와 엔바나다 엔 바나나 먹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미치겠더라고요.
아 저는 아르헨티나에도 한식만 먹었었는데 근데 이제 거의 1년 동안 안 먹으니까 아르헨티나 음식 하나도 안 먹으니까 정말 그립네요.
여러분도 엠빠나다를 한번 드셔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내년에는 어 한국어로 아르헨티나랑 남미 문화 콘텐츠를 한번 도전해 볼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을 응원해 주시면 시작할 힘이 생길 것 같습니다.
아르헨티나에도 한국에 대해서 더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한국 사람도 아르헨티나나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관심을 더 가져주시면 전 그것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상호 교류가 더 활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강연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릴리언니였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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