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김서형 주연의 감동 드라마, 그 실제 주인공의 감동적인 이야기 | 강창래 인문학 작가 | #한석규 #오늘은 좀 매울 지도 몰라 #드라마 #김서형 | 세바시 1771회
어 한석기 배우와 제가 무척 닮았다고 합니다.
엄마 방귀 끼었어?
두 사람이 너무 진지하게 엄마 방귀 뀌었어를 너무 많이 한 거예요.
겁이 덜컥 났죠. 암병동이었거든요. 그날 많이 울었어요.
영원할 것 같았던 그 기쁨에 찬 얼굴을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어쩌자고 그런 얼굴을 보여주고 총총이 떠나 버렸는지 모르겠어요.
요약
- 배경 : 강연자는 에세이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실제 주인공으로,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아내를 돌본 경험을 공유. 이 이야기는 드라마로도 제작됨.
- 상황 : 부부는 이혼 절차 중이었으나, 아내의 부탁으로 남편이 요리를 하며 투병을 함께 함.
- 도전과 성장 : 요리를 전혀 못 하던 남편은 시행착오 끝에 다양한 요리를 익히며 아내를 위해 정성껏 준비. 페이스북에 레시피를 기록하면서 글쓰기를 통해 슬픔을 버팀.
- 소중한 순간들 : 아내가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음식(해삼탕, 대패삼겹살 등)과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마워, 사랑해”라는 고백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음.
- 의미 : 힘든 투병 속에서도 잠깐씩 찾아온 작은 기쁨이 삶을 견디는 힘이 되었고, 그것이 글과 책, 드라마로 이어짐.
- 메시지 :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나오며,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
- 마무리 :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준 아내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는 말로 강연을 끝맺음.

여러분들께서는 혹시 어 한석규 배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드라마 보셨나요?
보신 분 많으세요 오 반갑습니다.

어 거기에서 한석규 배우가 제 역할을 합니다.
오 반응 좋네요. 하 어 김서형 배우도 아시죠? 김서형 배우는 제 아내 역할을 합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어 한석규 배우와 제가 무척 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보시기에 제가 조금 더 낫죠? 예
김서형 배우도 사실은 제가 진짜 아내로 착각할 만큼 어 연기가 굉장히 연기가 실감 났어요.
제가 착각할 만큼 물론 닮았습니다.
어 못 보신 분들은 궁금하시죠? 예 도대체 어떤 드라마일까?
그 드라마 원작이 제가 책 같은 제목의 에세이인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해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지나고 보니 직접 경험한 저도 그 사건들이 꿈만 같거든요.
아마 상황이 좀 특별해서 그럴 겁니다.
이혼하기로 합의했던 남편이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부인을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하고 보살피면서 생긴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거든요.
저도 나중에 들었습니다마는 우리 사회에서는 남편이 이 암에 걸린 부인을 돌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대략 한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요. 제가 5% 안에 드는 겁니다.
어 그런데 부인이 남편을 돌보는 경우는 보통이죠.
좀 많이 불공평하죠? 어
그렇다고 해서 그 남편이 원래 요리를 잘했던 것은 아닙니다.
전혀 요알못이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제 이야기지만 남 이야기처럼 1인층이 아니라 삼인칭으로 들려드리려고 해요.
그러는 이유는 이야기가 끝날 때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알게 될 겁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남편과 부인은 이혼 수속 중이었기 때문에 대화도 없었고 마주칠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부인이 남편에게 전화했어.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병원에 가는데 보호자와 함께 오래 당신이 아직 남편이잖아'
그 남편은 깜짝 놀랐어요.
그 부인은 죽어도 병원에 안 가겠다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자세한 설명도 없이 예약 시간만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어요.
겁이 덜컥 났죠.
암병동이었거든요.
대장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은 그때의 충격은 어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요.
이 말을 하는 지금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속이 아픕니다.
그런데 의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상한 걸 물어요.
집에 먹을 걸 챙겨줄 사람이 있냐?는 겁니다.
투병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잘 먹어야 한다면서요.
진료실에서 나온 뒤 부인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돌봐주면 좋겠어.
남편은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의사가 그랬잖아요. 먹을 걸 챙겨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는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는데 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하는데 부인이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다음 주까지는 답을 줘. 당신이 못하겠다면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
무슨 부탁을 이렇게? 싶었지만, 부인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그건 그냥 넘어갔어요.
그 남편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헤어지는 것이라는 신념도 가지고 있었고요.
게다가 남편은 부인이 해주는 맛있는 밥을 20년 동안 잘 받아먹었거든요.
남편이 부인에게 해줄 수 있는 시간은 그 세월에 비하면 턱도 없이 짧을 겁니다.
그리고 그 부인은 늘 자기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며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에요.
마지막 가는 길에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죠.
그 남편은 그날로 결정을 했습니다.
부인을 돌보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나 정면 돌파가 최선의 해결책이죠.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요리를 제대로 배울 여유도 없이, 암 환자의 음식을 곧바로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렇잖아요? 우리는? 끊임없이 먹어야 하고, 환자는 그래야 약을 먹을 거잖아요.
부인은 시금치 나무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는 방에 들어가 버렸어요.
남편은 사 온 시금치를 보는데, 난감하기 그지없었어요.
그 남편이 가지고 있던 씻는다는 개념은 비누칠하고, 문지르고, 물로 헹구는 것이었거든요.
사온 시금치를 보는데 어디에 비누칠을 하고 어떻게 문질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 겁니다.
흐르는 물에 씻어 보았지만 아무리 씻어도 씻어도 흙이 나와요.
많이 씻었으니까 괜찮겠지 하고는 데쳐서 무쳐 내놓았어요.
부인은 흙이 남아 있네, 못 먹겠다 그러면서 젓가락을 놓아 버렸어요.
그 부인은 아주 잘 만든 음식이 아니면 먹질 않았어요.
같은 음식을 이어서 두 번 먹지도 않았고요. 가끔은 화를 내기도 했어요.
'이걸 내가 먹으라고 만든 거야?' 그럴 때면 남편은 부엌으로 돌아가 소리 없이 울기도 했어요.
참 이상하죠?
우리는 슬픈 이야기를 하는데 웃음이 나와요.
울면서 그런 생각을 한 겁니다.
밥을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어떡하나. 걱정하면서요.
부인이 강력한 진통제를 먹고 잠이 들고 나면, 그 남편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 암 환자를 위한 요리법을 연구했어요.


그 내용을 잊지 않으려고 레시피를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려두기도 했고요.
소질은 있었던가 봅니다.
오래지 않아 그 남편은 어떤 요리든,
그러니까 한국 음식은 물론이고 일본, 태국, 중국 음식, 이탈리아 음식까지도 거의 호텔 음식 수준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어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이었지만 어 그 부인은 어 아주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었죠.
물론 스물두 가지 재료를 사용해서 세 시간 정도 정성스럽게 고아야 하는 히포크르테스 수프 같은 것도 만들긴 했습니다.
그 부인은 맛있는 요리를 맛보면서 가끔 잦아드는 불꽃처럼 행복한 얼굴을 보여주고는 했어요.
그러나 부인은 점점 더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갔습니다.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었거든요.
언제부턴가는 먹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었어요.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을 꼽으라면 아마 해삼탕일 겁니다.
해삼탕은 재료 준비에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쉽고 간단한 요리입니다.
맛있기도 하고요.
끝내지 못한 요리는 탕수육이었어요.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탕수육을 준비를 하는데 위급한 응급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쓰나미가 덮쳐 모든 것을 덮어버렸죠.
119가 출동해서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어요.
장폐색이었습니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장을 막아 버린 거죠.
그날 많이 울었어요.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참 마음이 아팠거든요.

탕수육을 금방 맛있게 만드는 방법도 있어요.
그러려면 반죽을 식용유로 반죽을 해야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암 환자를 위한 요리였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거든요.
시간이 없을 때 타협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든 요리입니다.
신락 같은 희망이 없던 건 아니었어요.
위장과 대장을 연결하면 되니깐요.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어요.
대수술이었기 때문에 늦은 시간은 걸린다고 했죠.
그런데 한 시간 만에 끝나버렸어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덮어버렸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한참 만에 회진을 온 의사가 싱글벙글하면서 말해요.
방귀만 끼고 나면 먹을 수 있게 잘 연결했습니다.

그때부터 질문은 하나밖에 없었어요.
엄마 방귀 뀌었어?
아들과 교대하면 남편이 물었어요.
엄마 방귀 뀌었어?
두 사람이 너무 진지하게 엄마 방귀 뀌었어? 를 너무 많이 한 거예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엄마 방귀 뀌었어?
엄마 방귀 뀌었어?
여러분한테 한번 물어봐 주실래요?
엄마 방귀 뀌었어?
엄마 방귀 뀌었어요.
어 아들이 큰 소리로 삼일째였을 겁니다.
아들이 큰 소리로 엄마 방귀 뀌었어요.라고 이야기를 외쳤어요.
전화해 대고 방귀가 그렇게 반갑고 기쁜 것이었다니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정도였죠.
부인에게 뭐가 먹고 싶었냐고 물어보니깐, 완전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어요.
고소한 대패 삼겹살이 먹고 싶어.
그날은 무한 형제 대패 삼겹살 파티를 열었습니다.
부인은 겨우 한두 점 꼭꼭 씹어 먹으며 아 맛있어 살 것 같다라고 말하며 행복해했어요.
영원할 것 같았던 그 기쁨에 찬 얼굴을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어쩌자고 그런 얼굴을 보여주고 총총이 떠나버렸는지 모르겠어요.

부인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어요.
책 읽듯이 제가 읽을게요.

내가 당신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맛있는 음식을 이렇게 오랫동안 잘 먹고 떠날 줄 몰랐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
고마워 사랑해.
남편은 부인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책에 쓰지 못했어요.
참 아이러니하죠?
삼십 년을 함께 살았는데 병 때문에 함께 했던 그 짧은 세월이 가장 행복했다니 말입니다.
간절한 마음과 정성 어린 시간을 고명으로 잔뜩 올린 맛있는 요리는
죽음을 향해 가는 두렵고 슬픈 터널을 지나는 동안 순간순간 반짝이던 짧지만 큰 기쁨이었어요.
그 행복했던 순간을 영원히 살려두고 싶어 그 남편은 일기를 썼습니다.
내내 불안했던 그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 덕분이었을 겁니다.
마법 같은 시간이었어요.
글을 쓰면 슬픔도 기쁨이 되니까요.
그 글에 처음으로 매력을 느낀 사람들은 페이스북 친구들이었어요.
건조한 레시피였지만, 예민한 친구들은 그 글에서 슬픔을 느꼈던 겁니다.
불치병에 대한 두려움과 영원한 이별을 예감하는 슬픔이 글 주변에서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있었겠죠.
다들 그 글을 사랑했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습니다.
그때만큼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경험한 적이 없을 겁니다.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그 남편은 자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끝없이 지속되던 걱정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불안증이 생겼고, 일시적인 건강 악화로 조금 고생했지만 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은 겁니다.
그 무엇보다 작가로서 글 곧 삶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그 남편은 일기를 전혀 퇴고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책을 냈습니다.
그랬지만 한 시인은 이렇게 격찬했어요.
이토록 아름답고 눈부시게 슬프며 놀랍도록 담담한 요리책이라니 침샘과 눈물샘이 동시에 젖는다.
그 남편은 깜짝 놀랐어요.
전혀 퇴고하지 못했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글이라니 말도 안 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글쓰기 이론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은 좋은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라고 하더라도 다이아몬드 없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이론처럼 그랬던 걸까요?
잘 모르겠지만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그건 그 남편이 혼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부인이 연출자였고, 아들이 마음을 다해 도와주었으며,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응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언제나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제가 아니라 당신들을 믿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 남편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부인을 보살피고 요리하는 데만 몰두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아들과 더없이 좋은 관계가 된 것도 얼마나 큰 선물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통화하면 두세 시간은 보통이고 만날 때나 헤어질 때 아들이 뺨 뽀뽀를 해줍니다.
그 아들의 정성 어린 도움이 없었다면 그 힘든 시간을 버텨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이 말을 여기에서 공개적으로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를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기쁨과 자유도 얻었습니다.
요리를 해서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대접하고,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편 자신도 언제 어디서든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어요.
부인은 자신이 떠난 뒤 개으른 남편의 먹을거리를 걱정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슨 음식이든 마음대로 만들어 먹으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죠.
이렇게 하라고 그런 거였어?
그 남편이 자기 이야기를 이처럼 남 이야기처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두 가지입니다.
그 남편은 글쓰기도 가르치는 인문학자입니다.
훈련 방법 가운데 이런 게 있어요.
우리는 1인층 글을 쓰는 것이 3인층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러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 1인층으로 쓴 글을 3인층으로 바꿔 보는 겁니다.
그러면 표현과 문장이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이렇게 다시 되새기고 보니, 이 스토리가 그 남편에게도 미래의 삶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느껴집니다.
우리 인생이 늘 그렇잖아요.
힘든 시간을 지내야 하고 그동안 잠깐씩 찾아오는 작은 기쁨이 그 시간을 이겨내는 힘이 됩니다.
아무리 힘든 시간이라 해도 그것 또한 흘러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때마다 드물게 찾아오는 작은 기쁨을 큰 기쁨으로 만들어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인층으로 말한 또 하나의 이유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잘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잘 못했죠?

남 이야기처럼 하면 좀 덜 슬플 테니까요.
그 남편은 이번 세바시 강연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자기의 지난날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책과 드라마를 보았어요.
다시 본 것이 아니라 처음 본 겁니다.
그동안에는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는 동안 그 남편은 자기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투병 기간 동안 가끔씩 찾아온 작은 기쁨들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기억 덕분에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어요.
한석규, 김서영 배우가 주연한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인문학뿐만 아니라 인생 레시피를 주제로 한 강연 요청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오늘 여기 세바시에도 출연하여 여러분과 함께 과거를 영원한 현재로 부활시키고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한 번 더 반복하고 싶군요.
이 세상은, 우리 삶은 우리 모두가 다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아니라 당신을 믿습니다.
그리고 자칫하면 슬픔과 두려움으로 묻어버렸을 내 인생의 한 부분을 기쁨으로 빛나는 순간의 기억으로 남게 해 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사랑을 전합니다.
기회가 되면 오늘이라는 과거를 함께 해 준 여러분들께도 오늘도 좀 매울지 모르지만 제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해 드리고 싶군요.
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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