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G 사장은 어떻게 직원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이사 | #동기부여 #성장 #자기계발 #닥터지 | 세바시 1804회
3살 위에 누나와 손을 잡고 버스 종점에 가서 매일 저녁마다 막차에서 내리는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현실의 어머니는 죄송합니다.
아침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이튿날 아침에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로 3년 연속 선정
빈손으로 여겨지던 그때 친구가 해준 그 한 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강연 요약
- 추락과 좌절
- 30대에 대기업에서 벤처로 이직 후 IPO 성공, 최연소 팀장이 되었으나 마흔에 회사가 위기에 빠지며 공장으로 좌천됨.
- 본사 행사 진행자였던 자신이 공장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경험을 하며 존재감 상실과 좌절을 깊게 느낌.
- 지하 3층의 시간
- 공장 생활, 남동공단 발령, 술로 버티다 결국 해고.
- 새 회사에서 기술영업을 맡았지만 자존감 추락과 공황장애를 겪음.
- 출퇴근 5시간 동안 책 1000권을 읽으며 내면을 돌아보고 어린 시절의 가족 폭력과 어머니 부재로 인한 상처를 깨달음.
- 내면의 변화
- 문제의 원인은 상사가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을 인식.
- 친구의 조언 “과거는 미래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를 통해 과거를 재해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음.
- 이 경험으로 직원들을 소외되지 않게 돌보고, 연봉 동결 후 의자 교체, 성과급을 전체 공유하는 등 협력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냄.
- 성공과 회복
- 2014년 매출 100억도 안 되던 회사가 매출 2000억을 바라보는 기업으로 성장.
- 3년 연속 직원들에게 연봉 50% 보너스 지급.
- 스스로 빛나려 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할 때 자신도 빛난다는 깨달음.
- 메시지
- 고난은 연타석으로 오지만 그 시간을 통해 공감과 성숙을 얻는다.
-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선택에 의해 다시 쓰여질 수 있다.
- 누구든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변화할 수 있으며, 동료와 함께 더 큰 성공을 만들어갈 수 있다.


지금부터 13년 전 제 나이 마흔에 접어들었을 때 저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3년 반 만에 벤처기업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직한 회사를 당시 코스닥 최고 공모가로 IPO를 시키면서 회사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고요.
30대 중반의 나이에 회사의 최연소 팀장이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늘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저는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었고 상사들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제가 마흔의 나이에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당시 회사는 은행에 1800억 원이라는 큰 돈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공장으로 좌천이 되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조선족 근로자들과 함께 하루 종일 장비를 조립했습니다.
하루는 공장장님이 퇴직을 하게 되셔서 송별회식이 열렸습니다.
본사에 제가 기획팀장으로 근무할 때 친하게 지내셨던 분이라서 저를 특별히 초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 공장 간부 한 분이 저 끝에 앉아 있는 저를 발견하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거기 왜 와서 앉아 있노? 술이나 한 잔 먹고 얼른 가라.'
근데 자존심도 되게 상하고 음 저를 공장으로 내려보낸 사장님이 원망스럽기도 한 마음에 그날 밤에 기숙사 방에 와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습니다.
공장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는데요 제가 맨 뒷줄에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본사의 기획팀장으로 재직할 때 회사의 모든 행사를 제가 단상에 올라와서 주관을 했고 사회를 받고 그랬던 제가 지금은 맨 뒷줄에 서 있는 아웃사이더가 된 것입니다.
단상 위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동료를 보면서 박진영이 부른 네가 사는 그 집 가사가 떠올랐어요.
'네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돼.'
근데 저 없이도 행사가 너무 잘 진행되는 거예요.
허망했습니다.
배신감도 들었고요.
저는 회사에서 아무 존재감이 없는 존재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막의 나락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상사와 동료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지금은 닥터지라는 화장품 브랜드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로 3년 연속 선정 그리고 요즘 직장인들이 많이 하는 링크드인이라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지난 5개월 동안 제가 올린 글이 300만 뷰를 기록을 했습니다.
그래서 링크드인에서는 나름 좀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었는데요.
과연 지난 13년 동안 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인생의 문제들과 고난이 그 해답이 외부에 있지 않더라고요. 제 안에 있었습니다.
지난 13년을 돌아보면 제 안에 있는 답을 찾아서 전혀 다른 저로 변화하기 위한 몸부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작이 된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공장에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루는 한밤중에 화장실을 가려고 기숙사 방문을 나가려다가 문턱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습니다.
실수로 제가 스마트폰 프레시를 얼굴에 제 얼굴에 비추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앞이 안 보였던 겁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여기 왜 와 있는지.
그동안 저는 인생의 스포트라이트를 저한테만 비춘 겁니다.

저만 주인공이고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저를 빛나게 해 주기 위한 엑스트라였던 겁니다.
저에게는 마흔의 나이에 공장에 내려와서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 하고서야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드 높은 자존심 하나로 태양을 향해서 하늘을 달리려던 저는, 이카로스가 되어서 땅에 형편 없이 곤두박질 쳐진 겁니다.
이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고, 바닥을 이제 한번 쳐봤으니까 올라간 일만 남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더라고요.
잠깐의 깨달음으로 제가 바뀌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공장에서 8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고요
아무리 기다려줘도 본사에서 저를 다시 불러들이지 않길래 하루는 한밤중에 사장님 숙소로 찾아갔습니다.
이제 이 정도면 저를 다시 본사로 불러주실 때가 되지 않았냐 고 따지듯이 대들었더니,
저에게 돌아온 대답이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계열사로의 발령이었습니다.
공장에서 몇 달만 참고 기다리면 저를 다시 불러주리라는 희망은 무참히 깨졌고요.
그때 저는 무너지게 됩니다.
저의 지하 2층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남동공단에 있는 계열사로 발령을 받은 저는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이튿날 아침에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던 저는 결국 회사에서 내쫓기게 됩니다.
집에도 얘기도 못 했고요.
회사에서 휴가 받았다고 그러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습니다.
다행히 제 첫 직장이던 대림코퍼레이션에서 제가 모셨던 김장진 상무님께서 본인이 당시에 근무하던 회사로 저를 다시 불러주셨습니다. 저는 새로운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잘해야 되겠다
그런데 그게 지하 3층으로 가는 출입문이 될 줄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어요.
당시에 그 회사는 IPO를 하기 위해서 저를 불러주셨는데, 가보니까 회사가 IPO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해외 영업이라는 업무를 하게 됩니다.
문과 출신의 그동안 했던 일은 회계나 기획 업무처럼 관리 쪽의 업무만 했었는데,
제가 갑자기 통신 분야의 기술 영업을, 그것도 외국인들을 상대로 영어로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KT나 SK텔레콤에 근무하는 정통 엔지니어들한테 가서 제가 영업을 해야 되는 거였죠.
저는 매일 낮아지는 자존감에 무너져 내렸고요 회사에서 저의 존재감은 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공황장애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됩니다.
불연듯 찾아오는 공황장애를 무릅쓰고 아침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외벌이 가장이었습니다.
죽지 못해서 겨우 버티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당시에 회사는 강서구 가양동에 있었고요. 집은 용인 민속촌 앞에 있었습니다.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와서 5011번 버스를 타고 강남역에 와서 9호선으로 갈아타고 회사에 도착하면 8시 반이었습니다.
저녁 6시에 회사에서 나와서 강남역에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저녁 8시 40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5시간 이상 걸리는 출퇴근 시간에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살기 위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읽은 책이 1천 권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제가 제 자신의 과거를 만나게 됩니다.
제 안에 있는 어린 시절의 가족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그것 때문에 직장 상사를 볼 때마다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상처가 하나 있더라고요.
제 무의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5살 때 아버지를 피해서 집을 나가셨던 어머니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는 3살이에 누나를 손 붙잡고 매일 저녁에 버스 종점에 가서
3살 위에 누나 손을 잡고 버스 종점에 가서 매일 저녁마다 막차에서 내리는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현실의 어머니는 석 달 후에 집에 돌아오셨지만,
제 마음속에는 아직도 집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유기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다섯 살짜리 꼬마가 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 안에는 저보다 7살 많은 형에 대한 어머니의 편애로 인한 열등감과 컴플렉스까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장 과정에서 제 마음 안에는 미처 자라지 못한 상처 투성이의 어린 아이가 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덩치만 커진 넥타이맨 어린아이가 돼버린 제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저는 가는 곳마다 직장 상사에 대한 반감과 분노로 똘똘 뭉친 골칫덩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상사들이 처음에는 저를 정말 예뻐하시다가, 나중에는 골칫덩어리로 생각하고 밀어낸 게 상사의 탓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제 안에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와 같은 상황을 겪어보신 분은 없으신가요?
동료나 상사,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상처를 한번 들여다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안에 해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 같은 빈손으로 여겨지던 그때 아직 제가 가진 게 하나 있었어요.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그리고 그 친구가 해준 그 한 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던 어느 날, 저는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대학 친구 태완이를 찾아갔습니다.
제 꼬임에 빠져서 30대 초반에 DMS에 이직을 했다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사무실을 개업을 했는데요.
6개월 동안 집에 100만 원도 가져다 주지 못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5년 만에 다시 만난 태완이는 저에게 자기 지금 수입의 절반 이상이 DMS 시절에 알게 된 분들이 소개해 준 거래처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태완이가 주호야 살아보니까 과거가 미래에 의해서 다시 쓰여지더라

자기 처지를 원망하고 한탄하기보다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시간이 재해석될 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저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 마흔 아이의 시간들이 지나고 지금의 '고운세상'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출근 첫날, 예전 같으면 보이지 않았을 직원들의 낡은 의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 년 전에 회사에 왔을 썼던 낡은 중고 의자를 그대로 직원들이 쓰고 있더라고요.
저를 포함한 임원들의 연봉을 동결하고 그 돈으로 직원들의 의자를 바꿔줬습니다.
회사에서 예전에 나처럼 소외된 직원들은 없는지 살폈습니다.
사무실을 돌면서 직원들의 얼굴을 살피는 일이 하루의 저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청년이 저에게 링크드인 일촌 신청을 했는데요 알고 봤더니 저희 직원의 남자친구였습니다.
여자친구가 하도 대표님 얘기를 많이 해서 어 그래서 저에게 일촌 신청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성과급도 잘한 부서 한 부서만 주는 게 아니고 어떤 부서에서 성과가 잘 나서 전체 회사 성과가 달성하면 다 같이 받는 구조로
혼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를 도우면서 협력하는 그런 직원들이 우대받는 회사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부임했던 2014년에 매출 100억도 못 하던 회사가 이제 매출 2천억 원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3년 연속 직원들에게 연봉의 50프로 보너스를 주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링크드인에 글을 쓰면서 13년 동안 내면의 변화를 경험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공장에 내려가서 한밤중에 화장실 가다가 스마트폰 불빛에 넘어질 뻔한 순간에
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빛나게 비춰야 내가 빛날 수 있구나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제가 제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요.
휴대폰 케이스 코팅하는 그 라인에서 일을 하면서 제가 인생의 바닥이라고 생각한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들도 꿈이 있고 욕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에 5시간씩 만 3년을 출퇴근하면서 읽은 책들을 통해서 제 내면의 상처들을 돌아볼 수 있었고,
저를 채우던 애고와 자의식을 비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못난 존재가 돼 보니까 소외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이 팩트백으로 오더라고요. 한 번에 오는 게 아니고 계속 연타석으로 그래서 인생의 바닥 1층도 아니고 지하 3층까지.
그런데 그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 같아요.
그 고난의 시절에 저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됐고요.
그래서 '고운세상'에 와서도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만난 대학 친구 태완이가 저에게 들려준 말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과거는 미래에 의해 다시 쓰여집니다.
여러분은 지금 과거에 갇혀 계신가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과거는 여러분에 의해 다시 쓰여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얼마나 깊은 고난 속에 있든지,
저는 여러분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빠져나와서,
저처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족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더 큰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변화가 이루어지셨다면 꼭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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