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치료사인 내가 난치병 환자가 되었다 | 정동균 세브란스 재활병원 물리치료사 | 추천 강연 강의 듣기 | 세바시 1929회
물리치료사로서 자부심이 상당히 컸어요. 환자들의 회복을 돕는다는 게 저의 정말 큰 보람이었.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이상한 증상들이 저에게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병명을 알아내기 위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게 되었는데
결국 저는 올해 강직척추염이라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 요약
정동균 치료사는 환자를 돕던 치료사에서 ‘재활 난민’이 된 당사자로서,
희귀 난치병 진단 이후 몸과 마음의 재활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증언합니다.
이 강연은 “극복담”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나누는 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재활 난민, 그리고 내가 그 난민이 되다
- 중증 재활 환자들이 치료 공백 속에 병원을 전전하는 현실을 **‘재활 난민’**이라 부른다.
- 그는 환자들을 돕는 6년 차 물리치료사였지만,
강직척추염(희귀 난치병) 진단으로 환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 완치가 어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굳는다는 말에 삶이 흔들린다.
2️⃣ ‘옳음’에 취했던 치료사, 공감을 잃다
- 실력과 자부심이 쌓일수록 원칙과 효율을 앞세우며
보호자와 환자의 절박함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돌아본다. - 이후 자신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깨닫는다.
👉 치료는 기술만이 아니라 공감의 문제라는 사실을.
3️⃣ 환자가 되어 알게 된 ‘진짜 치료’
- 통증·불안·부정적 예후 한마디가 주는 공포를 몸으로 경험.
- “내가 나를 치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자기 재활을 시작한다. - 약물 조정, 가족의 도움, 꾸준한 관리—그리고 무엇보다
👉 회복은 몸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4️⃣ ‘야다(Yada)’—경험으로 아는 공감
-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이해가 있다.
- 중환자실에서 만난 젊은 환자에게
“울어도 괜찮다. 하지만 함께 조금씩 움직여 보자”라고 말하며
되는 동작을 보여주는 희망을 건넨다. - 그 환자는 미소를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5️⃣ 희망은 나눌 때 더 커진다
- 그는 아직도 아프고, 싸움은 진행 중이다.
- 그럼에도 재활의 본질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으로 돌려보내는 것. - 고통 속에서 발견한 희망은
👉 다른 이의 회복을 돕는 힘이 된다.
🌱 결론
한계는 누구에게나 온다. 중요한 것은 절망을 멈추는 게 아니라, 자신을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힘이다.
재활 난민은 떠도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나눌 때 더 강해진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브란스 재활병원의 물리치료사 정동균입니다.
혹시 재활 난민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실까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이 말은 병원에서 충분히 치료를 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중증 재활 환자를 이야기합니다.

뇌졸중이나 척수손상처럼 전문적인 의료진의 관리가 꼭 필요한 환자들이 이에 해당하죠.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생겨나게 될까요?
중증 환자의 관리가 가능한 대형병원에서는 입원 기간이 길지 못하다 보니까 더 이상 치료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고는 합니다.
그러다 보니 치료를 계속 이어나가야 되는 환자들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 있는 환자들을 흔히 재활 난민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돕고 있는 6년 차 물리치료사이고요.
그리고 올해 저는 새로운 재활 난민이 되었습니다.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았기 때문인데요.
계속해서 환자들을 돕던 제가 이제는 환자의 입장이 돼서 치료를 받아야 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사실 저는 이 병을 진단받기 전에 물리치료사로서 자부심이 상당히 컸어요.
전국에서 재활로는 제일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환자들의 회복을 돕는다는 게 저의 정말 큰 보람이었거든요.
특히 최근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로봇 재활 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잊지 못할 환자들도 참 많았어요.
한 번은 강직 때문에 팔에 보톡스를 맞고 울면서 온 어린 환자가 있었어요.
로봇을 타는 동안에 걸으면서 계속 울다 보니까 치료 시간 내내 그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죠.
그랬더니 그 다음날 그 아이가 저에게 그림일기를 가져와서 저에게 한 장 건네는데요
'기분 좋은 날'이라는 제목이 적힌 그 그림일기에는 주사를 맞아서 너무 아팠지만 내 손을 잡아준 선생님 덕분에 너무 행복한 날이었다.

이런 순간들을 통해서 저는 제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느꼈고요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도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 실력도 쌓이다 보니까 이런 저를 환자들이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어요.
환자들에게 사랑받는 치료사가 되었고요
'선생님 아니면 저 진짜 치료 안 받을 거예요' 하는 환자들까지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이 점점 커질수록 저는 환자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재활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중증 환자들이다 보니까 보호자들의 상황도 상당히 절박한 상황에 속합니다.
하루아침에 장애를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들은 감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한 번은 한 환자가 치료 중에 저에게 소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사람 몸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걸맞아봤는데요
제가 이제 주변에 소독도 해야 되고 이제 5분 뒤면은 다른 환자가 오다 보니까 그 상황을 정리하고 치료를 끝내려고 했죠.
그런데 보호자가 저에게 오더니 남은 5분 정도의 치료 시간을 계속해달라고 요구를 하더라고요.
제가 다음 환자를 치료해야 되니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보호자가 저를 붙잡고 실랑이를 시작한 거예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저는 환자들에게 단호하게 대하면서 원리와 원칙을 강조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옳다는 확신에 빠져서 점점 환자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잃었던 것 같아요.
나는 항상 건강하게 의료진으로서 나의 역할을 잘 해낼 거야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참 안타깝게도 몸도 마음도 변해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 제가 몸에 아주 해로운 거 하나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그게 뭘까요? 술, 담배?
대학원생이 됩니다.
제가 대학원생이 되면서 그 석사 과정과 직장 생활을 같이 이어가게 되는데요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이상한 증상들이 저에게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엉덩이 주변이 조금씩 아프더니 통증이 점점 심해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염증이 점점 퍼지면서 하루는 귀가 안 들리고 하루는 눈이 안 보이는 합병증까지 생기더라고요.
병명을 알아내기 위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게 되었는데
결국 저는 올해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병은 면역 체계가 비정상적으로 반응을 해서 척추 관절에 염증을 만들어내고 그리고 통증과 합병증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자가 염증 질환인데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완치는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몸이 굳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삶은 통째로 흔들어버리게 됩니다.
저는 진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너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만 가득했죠.
그 이후로 제 삶은 정말 고통의 연속이었어요.
새벽이면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서 고통에 몸부림쳤고요
아침이면 생겨나는 새로운 증상들 때문에 점점 더 절망에 빠졌죠.
며칠 전 한 환자를 평가할 때 있었던 일인데요.
제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긴장을 하시길래 혹시 왜 그러세요?라고 연유를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병원에 입원하시고 난 후에 의료진으로부터 너무 부정적인 말이랑 최악의 상황을 많이 듣다 보니까 이제는 무슨 말을 들어도 저절로 겁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딱 제가 병을 진단받았던 그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딱 그랬거든요.
저도 병원에서 한 마디만 들어도 너무 긴장을 했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선 집에 와서 논문이나 정보를 찾아봐도 겁부터 냈어요.
그렇게 우울하고 힘든 시간 속에서 살던 어느 문득 제 머리로 이런 생각이 딱 스쳐 갑니다.
내가 나를 치료할 수 있을까? 그동안 저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제 몸을 돌봐야 되는 상황이 된 거죠.
완전히 나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제 몸을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요.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어요.
제가 학생 때 읽었던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이 생각났어요.
신경외과 의사인 폴 칼라티니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쓴 마지막 기록에 대한 책인데요.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좋지 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저는 이 문장처럼 항상 치료사의 입장에서만 환자를 바라봐 왔는데요
이제는 제가 철저하게 환자의 입장이 돼서 스스로를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재활의 길에 들어선 거였죠.
교수님과 상의하면서 제 몸에 맞는 약을 찾았고요.
그리고 물리치료사 선배이신 어머니의 헌신적인 치료와 그리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굳어가던 제 몸을 조금씩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복은 신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제가 저한테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늘 하던 말이 있어요.
재활은 시간이 필요해요. 절대 조급하시면 안 되고요.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더라도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더 나아지면 됩니다.
그 말을 매일 아침 이제는 제 자신에게 되뇌면서 저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기로 결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몸은 조금씩 회복될 조짐을 보였어요.
물론 통증은 계속됐고요. 예전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그런 중에도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고 그 안에서 성장할 기회도 찾을 수 있었어요.
저는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섰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았어요.
이 희망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눌 수 있는 힘이라는 걸요.
그렇게 몇 개월의 병가를 끝내고 저는 다시 병원으로 복귀해서 지금도 물리치료사로서 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요.
제가 정말 싫어하는 거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딱 오늘 같은 날이에요. 비하고 눈이 오는 날이고요.
또 다른 하나가 뭘까요? 비하고 눈이 오는 날 밖에 나가는 거예요.
전 어릴 때부터 정말 싫어했는데요.
그런 날은 제 증상이 조금 더 심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 날이면 잠을 못 자고 출근하기 일쑤였고요 통증을 참아가면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몸이 이렇다 보니까 제가 이전에 일하던 부서에서는 그대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중환자실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중환자실은 재활을 이제 막 시작하게 된 사람들이 난민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곳인데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더 환자들의 마음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곳이기도 하죠.
얼마 전 중환자실에서 한 어린 환자를 치료하게 되었어요.
갑작스러운 뇌혈관 질환 때문에 몸에 반이 마비된 상태로 입원하게 됐는데요
너무 충격을 받았는지 제가 근력 평가를 하려고 팔을 드는데 움직이지 않는 팔을 보면서 막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젊어서 그런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히브리어에는 알다라는 뜻을 가진 야다라는 단어가 있어요.

이 야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암을 의미하는데요.
같은 곳을 아파본 사람끼리는 굳이 그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기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환자였을 때의 경험 덕분에 환자들의 이런 반응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환자는 첫날도 둘째 날도 저를 보면서 계속 울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분께 제 병이 이야기를 해드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얼마든지 울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저를 믿고 조금씩이라도 저랑 같이 움직여 봐요.
제 한마디가 얼마나 무겁게 들릴지도 알았기 때문에 되도록 안 되는 동작보다는 되는 동작들을 보여주면서 희망을 주려고 애를 썼어요. 그랬던 제 진심이 통했던 걸까요?
이후로 그 환자는 제 치료를 차츰차츰 즐겁게 따라올 수 있게 되고요.
어느새 20대 소녀다운 밝은 미소를 되찾고, 중환자실에서 나와 남은 치료를 잘 받고 집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겪은 절망이 누군가에게 더 큰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죠.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물리치료를 뜻하는 피지컬 세라피라는 단어는 원래 서양에서부터 발생된 단어인데요.
이 단어가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올 때 이학 요법이라고 하는 잘못된 뜻으로 들어오다 보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물리치료사라는 단어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피지컬 세라피에서 피지컬은 물리라는 뜻보다는 원래 신체라는 의미에 더 가까운데요.

그래서 물리적인 치료를 하는 사람보다도 신체의 통증이나 기능과 같이 신체 전반을 치료한다는 뜻입니다.
거기다가 최신의 물리치료는 신체적인 문제를 볼 때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요인도 함께 살펴보는 것을 권고하고 있어요.
신체적인 회복과 정신적인 회복은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저는 제 병을 통해서 이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몸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회복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요.
이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제가 병을 극복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아프고요 병과 계속 싸워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만나는 재활 난민들도 결국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삶의 마침표를 찍거나,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자신의 한계를 마주해야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넘을 수 있을까? 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도 느끼게 되죠.
하지만 그 한계를 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절망에 멈추는 게 아니라 자신을 믿는 힘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믿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재활은 어렵게 얻은 생명을 단순하게 유지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귀한 생명을 진정한 삶으로 돌려주기 위해서 생겨난 학문인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난민은 비록 떠돌아다닐지라도 희망을 품고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발견한 희망은 그들의 삶을 더 강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이 겪는 그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그 의미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길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서로에게 이 희망을 나누는 것입니다.
희망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을 때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제가 인턴 때 치료했던 환자의 이야기인데요.
그 환자는 다시는 걷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고 저에게 치료를 받았던 환자입니다.
절망 속에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야 됐고요 치료를 받는 동안에 울기도 많이 울었죠.
하지만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고 몇 년간의 재활의 온 힘을 다한 끝에 마침내 다시 걸을 수 있게 됐어요.
여전히 장애는 남았지만, 스스로 걷고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가 치료를 하고 있는데 제 등 뒤로 뚜벅뚜벅 걸어와서 제 어깨를 잡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 나 형처럼 물리치료사가 되기 위해서 물리치료학과에 들어갔어.'
저는 그 말을 들었던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너무 감동적이었거든요.
이제 그 환자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라 저와 함께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동료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돼서 여러분들의 삶에도 펼쳐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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