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편해도 함께일 때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 황진아 '친구랑 학습 사회성 발달센터' 소장 | 추천 강연 강의 듣기 | 세바시 1926회
제가 요즘 저희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플러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30년 살자 아이가 3명임에도 일주일에 세 번만 밥을 하고 그럼 나머지 3일 동안은 오케스트라 합주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듣고 저는 저희 가족을 포함하여 과 함께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그건 바로
🎤 세바시 1926 요약
황진아 소장은 **“조금 불편해도, 함께일 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자신이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공동체 주거(한 지붕 7 가구)**의 경험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돌봄·고립·우울·노년 문제를 어떻게 관계로 풀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강연은 단순히 “같이 살면 좋다”는 이상론이 아니라,
우울증, 육아, 돌봄 노동, 개인의 꿈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1️⃣ 혼자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 강연자는 20대에 해외 승무원으로 일하며 심각한 우울증을 겪음.
- “비행기 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고립감이 깊어졌던 경험.
- 이때 함께 사는 사람이 생기자 삶의 리듬과 마음이 회복됨.
- 깨달음:
👉 개인이 가장 취약할 때, 개인 혼자서는 회복이 어렵다.
2️⃣ 육아의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
- 아이 셋을 키우며 두 번째 우울증을 경험.
- 공동 육아 여행을 통해 깨달음:
- 돌봄을 나누면 노동은 줄고
- 개인으로 존재할 시간과 에너지가 생긴다.
-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현실임을 체감.
3️⃣ 한 지붕 7가구, 현실적인 공동체 주택
- 성인 14명, 아이 10명, 고양이 1마리가 함께 사는 공동체 주거.
- 각 가구의 독립성은 유지하되,
- 공용 공간
- 공동 육아
- 공동 취미(보드게임, 음악, 글쓰기 등)를 공유.
- 함께 살며 생기는 문제들(소음, 냄새, 생활 방식 차이)은
👉 대화·합의·행동으로 해결.
4️⃣ ‘편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 상담가로서 아이들을 보며 얻은 통찰:
- 혼자가 가장 편한 아이들도
-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받을 때 가장 크게 웃는다.
- 인간은 결국 연결될 때 회복된다.
- 공동체는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서로를 수용하며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
5️⃣ 관계의 안전망이 만드는 삶의 여유
- 공동체 안에서는: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감
- “그럴 수 있어”, “나도 힘들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됨.
- 그 결과:
- 아이들은 더 풍부한 추억을 만들고
- 어른들은 각자의 꿈(밴드, 작가, 교육, 취미)을 계속 이어감.
- 공동체는 개인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 개인의 꿈을 지지하는 기반이 됨.
🌱 결론
지금은 혼자 버티는 시대가 아니라, 연결로 살아가는 시대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노년까지 이어질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필이 새 아들의 엄마이자 사회성 발달센터 소장인 황진아입니다.
저녁 있는 삶이라는 말 아시죠? 그건 칼퇴근도 가능하고 또 저녁을 누릴 수 있는 넉넉함을 의미하는 말인데요.
아이가 3명임에도 저의 저녁 풍경은 좀 특별합니다.

저희 집엔 식판이 총 7개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일주일에 세 번만 밥을 하거든요.
그럼 나머지 3일 동안은 오케스트라 합주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듣고 또 저녁 상담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때 많이 물어보세요. 아 그러면 애들은 어떡하고요?
네 저는 육아 품아씨를 하고 있고 나머지 3일 동안은 아랫집에서 저희 집 아이들을 먹이고 돌봐줍니다.
저는 저희 가족을 포함하여 7 가구가 함께 집을 지어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그 시작은 저희 후배 가정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부터였어요.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아이들을 세 명 키우면서 함께 키울 공동체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때 마침 20대 때 같이 방콕에서 살았던 후배도 아들을 두 명을 낳아서 아들 다섯 명 그리고 성인 4명 저희 9명은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독수리 오형제라고 저희가 불렀는데요. 사실은 여행이라기보다는 낯선 곳에서 하는 육아의 연속이긴 했어요.
그렇지만 함께 있으니 육아 노동이 줄어들고 또 개인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기적과 같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누군가는 밥을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고 누군가는 재워주면서 다섯 아이를 성인 4명이 돌보다 보니 성인 한 명당 돌봄의 노동력이 줄어들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밤에는 드디어 개인으로 돌아와 이야기도 하고 보드 게임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저희 아이들이 지금 저를 째려보고 있는데 여행의 횟수가 이렇게 잦아지면서 저희는 함께 사는 삶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뭐 가족끼리 여행은 다닐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사실 저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더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의 20대 때 직업은 태국 항공사인 타이항공의 승무원이었는데요


무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지만 입사한 지 6개월 만에는 되게 지독한 우울증을 겪었었어요.
일이 미숙해서 선배님들이 이렇게 눈초리를 보내면 저만 되게 일을 못하는 것 같고
선배님들끼리서 이렇게 태국 말로 대화를 하시면 너무 큰 소외감과 고립감에 이렇게 저를 가두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그 점프슛에 앉아 있는데 아 그냥 이렇게 비행기 문 열고 뛰어내리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면서
아 내가 우울하구나 를 깨달았습니다.

주로 한국으로 비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그리워했고 또 향수병에 걸렸고 집 바깥에는 나가지 않고 집과 공항만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았는데요.
그때 마침 되게 소중한 손님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게 바로 앞에서 말씀드렸던 그 독수리 5형제의 엄마 후배와 함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배가 방콕에 6개월 정도 머물게 되었고요.
함께 살기 위해서 원룸에서 투룸 거실이 있는 집으로 옮기면서 제 우울증에도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방과 거실이 분리된 공간을 갖게 되면서 자는 시간과 활동하는 시간이 구분되기 시작했고 햇빛이 드는 거실이 생겼고
또 비행 다녀왔을 때 비행은 어땠어? 밥은 먹었어?
이렇게 물어주는 누군가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빈 공간이 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우울했던 경험을 통해서 저는 소중한 걸 하나 깨달았는데요.
개인이 취약해져 있을 때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어 큰 아이를 낳고 16개월 만에 둘째 아이를 낳아서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두 아이를 양육할 때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운이 좋아서 친정 부모님께서 근처에서 도와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둘과 지내다 보니 재미있는 것도 없고 또 육아라는 짐에 놀리는 느낌만 들었던 것 같아요.
엄마로서 잘하고 있나 이런 회의감도 많이 들고 그때 이제 가족과 함께 여행을 시작하면서 공동 육아라는 걸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아 이것이 돌봄 노동력을 줄이면서도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물론 여행을 같이 다니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희 집처럼 일곱 가구가 공동체 주택에서 산다는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반반 나뉘는데요.
어떤 분은 정말 재밌겠다 정말 좋겠어요 하시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아이 왜 그렇게 굳이 힘들게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사십니까? 이런 반응도 하세요.
두 가지 반응이 모두 이해가 되는데요 음 저는 그 답을 제가 일할 때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 저의 직업은 아동 심리 상담가인데요.
10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서 감각이 예민한 친구들이 가장 편안하게 여기는 순간이 바로 혼자 있을 때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의견을 맞춰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관계를 피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아왔는데요.
그렇게 혼자 지내는 시간이 가장 편한 친구들도 언제 가장 활짝 웃는지 아시나요?
그건 바로 누군가랑 통했을 때 그때 아이들이 활짝 웃거든요.

더 나아가서 어 나 힘들었어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옆에 있는 친구가 음 나도 그런 적 있었는데 이렇게 툭 무심코 던지는 말에 아이들이 오 다행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이렇게 느끼는 미소를 보면서 저는 두 번째 깨달음을 알았습니다.
편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그때쯤 우연히 길이 열렸습니다.
서울시에서 공동체 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후배와 저는 함께 살 사람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싶은지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도 하고 사업 설명회를 열기도 했는데요.
또 함께 살기를 주저하는 친구들에게는 찾아가서
이렇게 삼고초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곱 가정이 모이고 집을 지을 땅을 찾는 데 1년이 걸렸고 집을 짓는 과정이 1년이 걸려서 2년 만에 저희는 한 지붕 7 가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한 저희 집을 소개하겠습니다.
저희 집엔 성인이 14명, 아동이 10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는데요.
모든 공간을 다 같이 쓰는 건 아니고요. 옛날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 혹시 기억하시나요?
네 그 집처럼 각각의 집이 한 지붕 아래에 있습니다.

입주자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14평의 공용 공간을 만들었고요.
거기에서 보드 게임도 하고 책 읽기 모임도 하고 요가 수업도 하고 미술 수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저희 집에 가수가 꿈인 친구가 있어서 5 평의 방음실도 만들었는데요.
거기에서 지금은 입주자 기반 밴드 구성원들이 연주를 하기도 하고 개인 악기 연습을 하고도 있습니다.
이렇게 멋지고 커다란 공용 공간을 만일에 제가 그냥 살던 아파트에 살았다면 절대로 가질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같이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은 건 아닙니다.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그대로 행동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실은 공용 공간을 사용하고 관리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번 여름 엄청 길고 더웠는데요.
저희 단체 채팅방의 주요한 이슈가 신발 냄새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였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발냄새를 공유하는 것, 그리고 집 안에서 울리는 소리들이 들리고 나오는 것을 공유하는 것은 불편할 수 있는 일인데요.
그래서 저희가 해결 방법을 찾았습니다.
단체로 신발 빨기 날을 정하기도 하고, 공용 공간의 소리가 바깥으로 들리지 않도록 문을 방음문으로 바꾸는 방법을 제안을 해서 그렇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런 건 아직 문제점이 남아 있어요.
P와 J처럼 신발장을 신발장에 꼭꼭 넣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신발장에 넣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저희가 터득을 했는데요.
그건 바로 다음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3년 동안 지금은 그 사람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서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애니어그램을 같이 하기도 하고 감정 소통 활동을 하기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된 거죠.
그리고 어 제가 40대지만 20대처럼 새벽이 더 가까워질 때까지 그렇게 대화를 하는 밤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서로 다른 것이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서로 수용하고 양보해야 할 문제라는 걸 경험적으로 배우게 됐습니다. 3년 소통의 결과 저희에게는 한 가지 약속이 만들어졌는데요.

그건 바로 서로에게 완벽하지 않은 민낯을 보여도 괜찮다는 안정감과 신뢰감입니다.
그럴 수 있어. 힘들었겠다. 나도 힘들었어.
이렇게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대상이 되었어요.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결국은 스스로를 용납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삶으로 깨달았습니다.
이런 과정은 서로에게 음 이미 충분해 라는 메시지를 주게 되었고요.
이런 안전한 공동체는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겪어보지 못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편안하게 느끼니까 재미있는 추억도 늘어나요.
몇 주 전의 일인데요 길가에서 쑥개 쑥게 떡 사세요 하면서 아저씨가 지나가는데
그 소리를 처음 들은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쑥개떡 아저씨 떡 사줘야 될 것 같아요
하면서 1층으로 우다다다 내려가서 쑥개떡을 사 왔거든요.
그때부터는 아이들이 쑥개떡을 사와서 복도에서 목소리를 높여서 떡 사세요 떡 사세요 하면서 다녔고 사람들이 이제 지문을 열어서 얼마예요?
물어보니까 공짜예요 이러면서 떡을 나눠주는 그런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희 아이들 일기 제목은 쑥개떡이었어요.
아마 함께 살지 않았다면 이런 재미도 겪어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쯤 다들 궁금하시거나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 지금은 행복하지 알겠어 근데 언제까지 그렇게 같이 살래?
이런 질문도 받아봤는데요. 제가 요즘 저희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플러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30년 살자 노년 공동체까지 같이 가자 이렇게 제가 계속 제안을 하고 있어요.
공동체원들과 이렇게 살면서 겪는 뭐 교육 문제라거나 아니면 노년의 삶에 대한 문제라는 부분들에 대해서 같이 책도 읽고 있고 얘기도 나누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함께 대안적인 방향들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왔듯이 앞으로도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기대가 있습니다.
공동체에 맞추느라 개인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개인의 꿈과 낭만에도 충실하게 살고 있는데요.

젊었을 때 꿈이 가수였던 친구는 밴드 공연을 하고 작가가 꾸민 친구는 책을 내고,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고양이 돌봄을 부탁하고 학창 시절 외국에서 보냈던 친구는 아이들 대상으로 영어 교육을 시작합니다.
보드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집에 200개가 넘는 보드 게임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한 달에 몇 번씩 보드 게임의 밤을 열어주고 있는데요.
그 친구는 저희 미래의 그 노년 공동체에 꼭 필요한 재원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 친구는 대학생 때 처음 만났는데 지금은 직장인이 되었고, 아이 고양이, 어른까지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세대를 초월하는 그런 존재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대상이 있는 저희는 이미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 힘들기도 하고 불편할 때도 있지만 결국은 이 길이 더 좋은 길임을 믿고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가겠습니다.
조금 불편해도 함께일 때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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