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소개 : 우리는 왜 숫자로 측정되는 것만 좋아할까요? 2001년 9.11테러, 굶주리고 있는 세계 절반의 사람들, 아프리카의 소년병, 급격한 인구 증가와 환경 파괴, 무엇인가 이상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 믿었던 대기업에 들어갔으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DCG(드림챌린지그룹)을 창업했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 찍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창작 활동도 펼쳤습니다. 뮤지컬 사업을 시작했다가 파산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제가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중요한 것은 열정(passion)보다 공감(compassion)이라는 것. 개인의 꿈도, 국가의 꿈도, 인류의 꿈도 모두 같습니다. 깊이있게 놀아야 합니다. 대담하게 실행해야 합니다. 자기답게 살아야 합니다.
게시일: 2011. 11. 16.
반갑습니다, 안영일입니다
저는 노래 한 곡하고 시작하겠습니다
god의 길이라는 노래고요
갑니다
GOD - 길
내가 가는 이길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날 대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수없지만x3
오늘도 난걸어가고있네
사람들은 길이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길을 만들어가는지
알수없지만x3
이렇게 또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에 끝에서 내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꿈을 이루면 난웃을 수 있을까
아하하하X2
Welcome to Doer's 길
네, 저의 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하고 제가 걸어왔던 길 중에
자연스러웠던 길과 약간 좀 삐딱하게 부자연스러웠던 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저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다들 원하는 것 학교에서 내신 1등, 수능 1등, 논술 1등,
막 그런 것만 맹목적으로 쫓아오다 보니까 얼떨결에 대학교에 와있었어요
저는 그걸 상당히 부자연스럽다고 생각을 했는데
대학교에 오면 뭔가 낭만과 로맨스가 가득할 줄 알았어요
막 지나가는 여학생들하고 뭔가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항상 그 여학생들의 관심사는 제가 아니라 언제나 그 여학생들도
학점 1등, 공모전 1등, 토익 성적 1등 뭐 그런거 1등에만 맹목적으로 쫓아가 라고요
그래서 저는 대학이란 곳에서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고등학교 때랑 큰 틀이 변한 게 없구나' 라고 약간 실망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실망을 하고 있던 어느 때에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났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그렇게 1등으로 돈도 많고 1등으로 군사력도 센데 왜 아랍권 국가로부터 이렇게 미움을 받아서 저런 테러를 당할까?
저는 그때 1등을 맹목적으로 하는 게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그러다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이 아직도 세계의 절반의 어린이들이 막 굶주리고 있대요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학교에 가야되는 아이들이 소년병
네,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고
그리고 세계인구가 2050년까지 95억명이 될 거라는데
우리가 이렇게 뭔가 좀 삐딱하고 맹목적으로 하나만을 쫓아가는 이 방식으로 우리의 세계는 지속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대학교 1학년때 정리를 해버렸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 10년이 흘렀어요
어느 날 제가 이제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다운로드를 받은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영화 <세 얼간이(3 idtiots)>
인도의 인류 명문대에 다니는 세 괴짜들이 진정한 꿈과 우정을 찾는 과정을 그린 인도 영화
이 영화를 보고 저는 엄청나게 큰 영감을 받았어요
'아, 볼리우드 영화산업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런 엄청난 영화를 만들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도로 여행 결심을 했습니다
근데 이제 제가 그 당시에 먹여살려야 되는 직원들도 있고 하기 때문에 명분으로 세웠던 건
나는 힌두어를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정도로 잘 하고 오겠다
두 번째로는 인도가 도시화가 굉장히 급격하게 진행되는데 그에 따른 인구 문제나 환경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내가 하고 오겠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왕 볼리우드 영화 보고가는 김에 가서 볼리우드 영화 출연도 하고 오겠다
라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그리고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정말 많은 인도사람들한테 제 얘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힌두어를 빨리 배울 수 있느냐 쇼핑,관광 필요없다
했더니 전부 다 다른 얘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지쳐서 저녁이 될 때 이러고 있었는데 어떤 한 고운 목소리로
누군가가 살짝 제 어깨를 두드리며 얘길 하더라고요
'Hey, What can I do for you?'
너를 위해 뭘 해줄까? 이런 얘기죠?
그래서 제가 쳐다봤는데 아, 남자더라고요?
뭔가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래서 제가 힌두어를 배우고 싶다고 얘길 했죠
그랬더니 이 친구가
'Oh, I have a good idea'
'If you go to the northern part of india'
'small village, very nice people, They'll teach you Hindi'
하더라고요
'너가 인도의 북쪽 마을에 가면 아주 착한 사람들이 너에게 힌두어를 가르쳐 줄거다' 라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거기에 갈 수 있냐? 고 했더니
자기가 지금 시장가는 길인데 중간에 날 내려 주겠대요
그래서 그 사람 차에 탔죠
이 친구가 이제 게이 친구였고요
이 차에 타서 이제 가다가 저를 중간에 내려주고 자긴 쭉 가더라고요
'오, 나를 속일 의도가 없는 정말 착한 게이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전 이 친구가 소개시켜준 델 들어 갔어요
들어가서 이제 앉아있는 직원한테 이제 힌두어를 빨리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랬더니 이 사람이 아까 그 게이 친구가 했던 말하고 똑같은 얘길하더라고요
저는 '아, 이게 정확한 정보구나' 하고 그 자리에서 약 150만 원 상당의
한 달 숙식권과 그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인도의 북쪽 히말라야 마을로 가는 비행기표를 결제 했어요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제 옆에 앉아있던 어떤 한 인도 비즈니스맨이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너 스리나가르에 왜 가냐?' 하길래
'아, 나 힌두어 배우러 간다' 고 했더니
이 친구가 한숨을 쉬면서 거기는 약 98% 사람이 페르시아계 이슬람인이며 그들은 카슈미리어라는 말을 한다
힌두어를 할 줄 모른다는 거에요
그때 저는 속았구나하고 알았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저한테 한 대 더 때렸어요
뭐였냐면
스리나가르라는 지역은 아직도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분쟁지역이라서
거기엔 너희 외교통상부에서 니가 거기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거다' 라는 거에요
저는 비행기를 뛰어내리고 싶지만 뛰어내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어차피 이제 픽업 나온 사람한테 따져야겠다고 하면서 갔는데
근데 그 사람들이 'Welcome to Kashmir' 카슈미리에 온 것을 환영한다면서 저를 반겨주더라고요
또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이 그 사람들 차타고 그 사람들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를 방으로 들이지 않고 마당에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기들 하인들을 집합을 시키더라고요
그러고는 제 앞에서
'아, 하인들 소개시켜주려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인들을 막 때리더라고요 막 때렸어요
오우, 너무 겁에 질려서
'아니, 이게 나도 하인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말인가?'
한 편으론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아니, 이거 나도 까불면 이렇게 얻어터진다는 말인가?'
너무 공포에 질리는 거에요 이 사람들이 굉장히 폭력적인 사람들이었어요
네, 그래서 저는 '아, 이거 안 돼겠다' '정말 이거 큰일 났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자꾸 히말라야로 트래킹 가라고 자꾸 저를 꼬시더라고요
안 된다X2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차리면 살 수 있다' 라는 생각에
방으로 혼자 들어가서 막 힌두어책을 배우고 공부를 열심히
가나다라마바사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뺨 맞은 하인이 저한테 오면서 차를 따라 주면서
제가 힌두어 공부하고 있는 걸 읽어주더라고요
'어? 너 힌두어 공부할 줄 아느냐'
했더니 자기 할 줄 안대요
어떻게?
자기는 중부지방에서 나고 자랐는데 여기 북쪽지방의 노예로 잡혀 왔대요
'어, 그래? 너 일 끝나고 내 방에 올라와라 같이 나한테 힌두어 알려주면 내가 사례를 하겠다' 했더니
이 친구가 밤에 일 끝나고 제 방에 오더라고요 해서 이 친구랑 이제 힌두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밤에
근데 밤에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이 친구가 하루종일 그렇게 제일 일찍 일어나서 제일 일찍 잠들면서 얻어 터지면서 하루종일 버는 돈이 약 1달러
두 번째로 제가 알게 된 사실은
이 친구가 원래 와이프가 있었고, 이 집에 같은 하인이었어요. 그리고 애들 둘이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에 계속 된 구타와 지불되지 않는 임금에 견디지 못해서 도망친 거에요
저는 이 얘기를 듣고 너무 열받았어요
사기 당해서 안 그래도 북받쳐 오르는데 이 슬픈 가족사를 들으니까
"에이씨, 너 마누라 안 보고 싶나!!" 하면서 제가 막 울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도 자기도 막 보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는 거에요
노예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이 친구한테는 이 집이 바깥 세상보다 안전한 거에요 이 사람 머리 속에는
어우, 제가 너무 답답해서
'네가 밤마다 올라와서 힌두어 공부를 가르쳐주는 척해라'
'그럼 내가 네 아내와 아이들을 찾는 것을 도와 주겠다'
라고 얘기하고선
그다음날부터 그 인근 지역에 은행, 병원, 파출소, 관공서 다 찾아 다녔어요
'이런 여자와 애들이 있다' 하면서 하는데 인도에 그런 인구가 몇 억명 있을 수 있겠죠? 네
오우, 안 되는 거에요
한 5일 째 되는 날 너무 힘들어서 관공서 직원한테 아, 이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갔으면 찾을 수 없는 거 아니냐
안 돼겠다, 난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너라도 계속 신경을 써달라 그러면서 약간 돈을 줬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눈빛이 확 바뀌면서 어디로 막 뛰어가더니
뭘 들고 와요 막 들고 와서 딱 놓더니 막 뒤지는데 이게 뭔고 보니까 주민등록부 같은 거였어요
'아니? 너 이거 왜 안 보여줬냐, 여태까지?' 그랬더니 '아, 몰랐다' 하는 거에요
'아, 돈 주니까 하는거냐' 너무 열 받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서 아무 정보가 안 나왔어요
또 다른 데다 전화를 걸더니
어떤 뚱뚱한 사람이 또 장부를 들고 와서 제 앞에 놓고 딱 이러고 있는 거에요
무슨 얘기죠?
돈 달란 얘기죠 또 돈을 줬어요
그랬더니 막 뒤지는데
이제 여기서 그 와이프와 애들 둘이 어느 날 배식을 타간 정보가 나온 거에요
옳거니, 어디 있냐 했더니 모른다는 거에요
아~
그래서 그 정보를 가지고
또 제가 갔던 데를 다 찾아 다녔어요
그렇게 했더니 이제 제가 인근에 소문이 났어요
어떤 동양인이 불가축천민 가족들을 찾고 있다'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저한테 정직한 정보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탐색을 하다가 간 곳이 군부대였습니다
아주 위험한 곳인 줄 알았는데 남쪽에는 안전하대요
그래서 이제 군부대에 원래 제 성격 같았으면 주저리 주저리 설명을 하고 들어갔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어요
군인들에게 돈 주니까 위병소 통과도 아주 간단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세 번째 군부대에서 비슷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그래? 한번 들어가보자 해서 그 군인을 따라 들어갔다가
식당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이 여자를 찾은 거에요
'애들 둘이 어디있냐?' 둘이 내무실에 있대요
오케이, 거의 90% 확실하구나 해서 집에 가서 이 하인을 데리고 나와서 공중전화로 군부대에 전활 걸어 가지고 둘이 통화를 시키고
100% 가족이 맞는 걸 확인하고 그날 밤에 제가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가족상봉을 시켜버린 거에요
(박수)
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제 막 울고 있는데 울고불고 있는데
저는 이제 그 가족들한테
'절대 넌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이 돈을 들고 튀어라'
하고 돈을 한 묶음 주고는
'그리고 나도 새벽에 이 집을 도망칠 거다'
라고 얘기를 하고는 이 집 가족들이 이제 전 안타까운 건 생사를 지금은 확인할 수 없어요
저도 이제 그날 새벽에 그 집에서 짐을 싸고 담을 넘어 도망을 쳤습니다
네, 새벽에 저는 이제 그 버스센터에 가서 버스를 빌려서 남쪽으로
제가 저는 인도는 더운 줄 알고 여름 옷만 가져 갔는데 북쪽지방에 잡혀가다 보니까 너무 추운 거에요
남쪽으로 빨리 도망가자 했는데 남쪽으로 가는 길은 다 얼어서 막혔대요
아, 그럼 동쪽으로 가자고 했더니 동쪽으로는 갈 수 있대요
그래서 지프차를 타고 20시간 동안 이런 길을 달렸습니다
이게 이제 '조질라'라는 길인데요
인터넷에 검색해보시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자동차 도로로 검색이 될 거에요
그래서 이 도로를 따라서 20시간을 도망쳐서 고대 도시 '레' 라는 곳에 도착을 했고요
여긴 라다크란 지역인데
여기에서 저는 이제 바로 관공서 찾아가서 바로 요령껏 처리를 했죠
힌두어도 배울 수 있도록 처리를 하고 도시개발프로젝트도 참여하고 했죠
그래서 이 거대한 태양들을 보면서
'우와, 쥑이네~'
이런 날을 매일 매일 보내다 보니까
마음이 막 정화가 돼더라고요
해서 내가 이제 발리우드 영화 출연은 안했지만 그냥 일단 한국에 돌아가야 겠다
내가 겪은 게 다 발리우드다
하고 이제 바로 한국에 돌아올 결심을 하고 델리로 돌아와서
다음날 돌아가는 항공권을 끊고
그다음 한국인 식당에 가서 바로 김치찌개를 먹고 막 소주를 먹으면서 꽐라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바로 인도사람 만나고 싶지가 않았어요 또 사기당할까봐 그래서 막 꽐라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어떤 인도여자가 들어와서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내일 발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동양인을 찾고 있다'
헐
어머 저는 심장이 막 벌벌벌벌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다른 한국인들은 이게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막 못 들은척 하고 이러고 있어요
그런데 저도 이제 이성적으로는 이게 분명히 사기일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에서는 이게
'아, 이제 발리우드 영화만 하면 되는데'
하다가 'ME, ME, ME, ME!!' 했더니 이 여자가 저한테 와서
'오, 너처럼 눈 째진 사람 찾고 있었어'
하더라고요
눈 째졌단 말도 저는 칭찬인 줄 알고 너무 좋아가지고 막 이러고 있었는데
이 여자가 이제 자기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적어주더니
'내일 새벽에 이 앞에 지프차를 댈 거다 거기에 타라'
라고 하는 거에요
'어, 이거 어떡하지?' 하고 이제 저는 그날밤 잠도 안 자고 운동하고
맥가이버 칼을 편 채로 주머니에 넣고 (호신을 해야 되니까)
차를 기다렸어요 / 오더라고요 / 탔죠 / 타고 문 딱 잡고 있었어요 (혹시 낌새 이상하면) 문 열고 뛰어내려버릴려고
그래서 주욱 갔는데 이제 저를 내려 줬는데 이제 거기서부터 전 믿기 시작했어요
영화 배우들이 막 있고
거대한 촬영장비들이 내려오더라고요
오전에 엑스트라 촬영을 마치고 너무 기뻐가지고
저는 막 사람들한테
'내가 원래 중국 가려다가
이 영화 보고 여기 와서 이 개고생을 한다고
이제 이거만 못하고 한국에 갈 참이었다'
얘기했는데
이 스탭이 저한테 '너 세 얼간이란 영화 몇 번 봤냐?'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네 번 봤다고 대답했어요
한국에서 두 번 보고 (불법다운로드였지만...)
그리고 이제 인도에서 두 번 봤다고 얘기 했더니
이 친구가 저한테 뭐라고 얘기했는지 아세요?
THANK YOU
그 영화 제작사였어요 거기가
(박수)
그 영화 제작사였어요
'내 동생의 신부'라는 제목의 타이틀이고요 개봉하면 여러분도 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춤추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해피엔딩이죠?
네, 그런데 이제 아까 제가 10년을 건너 뛰어 버렸죠
이렇게 인도 여행을 하고 와서 제 10년 전을 다시 돌아보니까
'아, 아직까지도 이런 문제들이 세계 곳곳에 너무나도 상존해 있구나'
나는 이걸 풀기 위해 어떤 일들을 이때까지 해왔나? 라는걸 곰곰히 생각을 해 봤어요
저는 사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 대학교 때는 서비스사이언스라는 학문에 굉장히 매진을 했었고요
그리고 서비스사이언스라는 이 학문은
사실 IBM이라는 글로벌 회사에서 가장 먼저 용어를 만들고 가장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IBM에 입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직장생활 해보신 분들 다 느끼시죠? 한 6개월쯤 되면 '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죠?
해서 저도 이제 조직에 매몰되는 것보다는 내가 정말 지금 오늘 당장부터 내 꿈을 위해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퇴사를 해버리고
DCG(Dream Challenge Group) 꿈이라는 것은 고유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숫자를 따로 너무 가혹하게 매길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드림챌린지그룹을 창업했어요
그러고나서 저 개인의 꿈만이 아닌 국가의 꿈을 위해서
일본을 밴치마킹하자 해서 이제 30일 동안 30만 원을 가지고 일본에 자전거 여행을 후쿠오카부터 동경 아래까지 여행을 했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많은 장인들을 만나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 그분들로부터 돈을 빌려가지고 뮤지컬사업을 일으켰습니다
이걸 하고나서 이제 소니엔터테인먼트에 이제 팔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고요
그 후에 제 경제력이 대한민국 상위0.1%로 진입을 해버렸어요
네
앞에서 1등이 아니라
뒤에서 1등이었어요
완전 파산X2
그때 제가 죽을 고비를 넘겨버렸습니다
네,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그리고 이제 이 빚을 갚았던게 세계환경회의라는 행사에 코디네이터로 이제 들어 가서 일을 하면서 빚을 갚았던 거죠
그런데 이 시기쯤 되니까 제 주변에 사람도 왔다갔다 돈도 왔다갔다 하니까
너무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사실 이 이후에 인도 여행을 갔다 왔던 거에요
이 중간 중간에
제가 이후에 깨달았던 것을 말씀드리면요
제가 너무 이상하게 막 이렇게 살다 보니까
제 개인의 뜨거운 열정이 있는 것을 확인 했어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렇게 뜨거운 열정이나 자기 열정을 시계와 스케줄을 관리하며 대변하죠?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 아닐까?
시계보다 나침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요
저는 그 삶의 방향성을 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내 공감
passion이 아닌 compassion
열정이 아닌 공감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방향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부자연스러운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자연스러운 건 과연 무엇일까요?
지구는 왜 존재하죠?
지구는 지구를 끌어당기는 태양과 튕겨나가려는 이 에너지가
만유인력과 튕겨나가려는 원심력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존재를 하는 게 아닐까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져 버리면 모두 다 이 자리에 못 있고 튕겨져 나가버릴 거에요
저는 조화와 균형이 이 자연의 본질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데 지금 이 사회는 너무 한 쪽으로 많은 것들이 정신을 경시한채 물질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저는 부자연스러운 건 반드시 아프고 병든다고 보고요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방향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깊이있게 놀자 대담하게 하자 자기답게 살자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디자인합니다
DCG의 안영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세요.
추신 : 여러분의 공감 클릭은 제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YouTube > 세바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막 세바시 80회 의사, 세계 치유에 도전하다 | 김현철 Project Malawi 책임자 (3) | 2018.09.22 |
---|---|
세바시 79회 유기농업의 즐거운 혁명 | 이태근 흙살림 회장 (7) | 2018.09.21 |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 최영미 시인 | 세바시 77회 (8) | 2018.09.19 |
자막 세바시 76회 Smart와 Stupid의 차이 | 홍순성 스마트워킹라이프 저자 (7) | 2018.09.18 |
세바시 75회 내 인생의 혁신 | 김동준 이노캐털리스트 대표 (8) | 2018.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