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까지 살 거라고 생각하세요?" 100세 시대라는 말이 너무 흔한 시대, 우리는 막연히 오래 살 거라 믿는다. 그러나 매주 다양한 죽음을 마주하는 법의학자에게 그 숫자는 단지 살아 있는 시간일 뿐, 살아가는 시간이 아니라고 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가 풀어내는 13분짜리 강연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 어떻게 오늘 더 잘 사는 법을 준비하는 일이 되는지를 차분하게 보여 준다.
📌 한 줄 요약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가 풀어내는 죽음의 사유와 유언 이야기. 유언은 법적 문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계획서'이며, 죽음을 미리 사유하는 것이 곧 품격 있는 삶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메시지.
⭐ 추천 점수
★★★★★ 5/5 — 법의학자가 매주 만나는 죽음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사유라 어떤 추상적 강의보다 단단하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삶의 도구로 다루는 새로운 시선.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갑작스러운 사별이나 가까운 사람의 부재를 겪으며 죽음을 한 번도 사유해 본 적 없던 자신을 마주한 분
"100세 시대"라는 말에 막연히 안도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던 분
유언이라는 단어를 법적 문서나 불길한 일로만 여겨 미뤄 두었던 분
📑 목차
매주 죽음을 만나는 법의학자가 말하는 잘 사는 법 — 유성호 교수의 죽음 준비 수업
1. 법의학자 유성호가 말하는 '안전한 행복'
강연은 짧은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방금 소개 받은 유성호입니다. 저는 사실 직업이 법의학, 부검하는 사람입니다." 이번 세바시 강연은 안전보건공단 특집 '2025 세바시 안전한 콘서트 Beyond Safety'의 한 꼭지로, 유성호 교수는 안전한 행복을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으로 '죽음'을 꺼낸다.


유 교수는 과거 세바시 1049회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에서도 죽음을 다룬 적이 있다. 그때가 '자살 예방'이라는 직접적인 죽음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오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모두 죽는다는 섭리 앞에서 삶의 품격과 방향성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핵심은 두 가지 — 죽음이 자연스러운 삶의 마감임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것, 그리고 유언이다.


2. 기대수명은 살아 있는 시간일 뿐
"여러분, 혹시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100살? 120살?" 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들리다 보니 많은 분들이 자기는 다 100세 이상 산다고 답한다. 그런데 통계청 자료를 보면 그건 큰 착각일 수 있다. 1970년생 남성의 기대수명은 58.7세였다. 지금 기준 모델링으로는 여성은 거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만큼, 남성도 90세 가까이 평균 수명을 살 거라고 예상된다.

유 교수는 여기서 한 줄로 강연의 결을 바꾼다. "90세, 96세 같은 숫자는 살아 있는 시간을 말할 뿐이고, 살아가는 시간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매주 부검대 앞에서 만나는 죽음 중에는 갑작스러운 죽음도, 준비되지 않은 죽음도, 준비하지 못한 죽음도 많다. 삶의 안전은 단지 질병을 피하거나 사고를 막는 수준을 넘어, 죽음을 사유하고 준비할 줄 아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가 도달한 결론이다.
3. 죽음을 바라보는 3인칭·2인칭·1인칭 시점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죽음과 안전이 분리되어 있어요." 조선시대처럼 전쟁·풍토병·감염병으로 수많은 죽음을 직접 경험하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병원에서 누군가 돌아가시고 우리는 장례식장에 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세 가지 시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3인칭은 뉴스에서 보는 죽음이다. 안타깝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그 거리감의 죽음. 2인칭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절실히 느끼는 죽음이다. 그리고 1인칭은 내 자신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느낄 때다. 지금 우리는 죽음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2인칭 상실 앞에서 한꺼번에 무너지거나 1인칭의 죽음을 한 번도 사유해 보지 못한 채로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일이 많다.


4. 사랑하는 이의 슬픔은 80세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유 교수에게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고 한다. "어떻게 극복을 하느냐?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 사랑하는 사람을?" 그의 답은 단호하다. "잊지 못하세요. 60이 돼도, 70이 돼도, 80에도 내가 사랑하던 사람의 그 기억과 슬픔은 마음 깊숙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현실을 인식하고 상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것뿐이다. 만약 내가 떠났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지막을 보고 울면서 못 일어나기를 원하는 분은 아무도 없을 거다. 사랑하는 이가 그렇게 원하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도 일어서서 살아갈 뿐이다.
5. 출근길에 떠나간 임원 — 준비되지 않은 마지막
유 교수가 책에 담은 사례 하나가 있다. 어떤 분이 회사 임원이 된 지 일주일 만에 출근하다가 쓰러져 돌아가셨다. 안내드린 부인이 너무 서글프게 우셨는데, 가만히 들어 보니 그날 출근할 때 마지막에 말다툼을 하셨다고 한다.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이따 저녁 때 보자, 다시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떠나 보냈는데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된 거다.
"이런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대비가 없고 유언이 없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법적 혼란은 물론 정서적 고통도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반면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사유하고 준비한 이들은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을 끝내 마무리할 수 있고, 유가족은 그 뜻을 따라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다.

유 교수는 매년 직접 유언을 쓴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사랑하며 독서를 통해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 왔습니다. 살아 보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본인의 유언 일부다. 매번 유언을 쓸 때마다 자신의 끝을 생각하면서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자문하고 또 자문한다고 한다.
6. 프리다 칼로처럼, 그리고 마지막 2주의 진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떠나는 것이 기쁘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죽음조차 자기답게 받아들인 그의 한 줄을 유 교수는 인용한다. 자기답게 받아들이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한 가지 우리가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많은 분들이 죽기 직전까지 건강하다가 손을 잡고 "고마웠다" 하면서 떠나는 모습을 기대한다. 하지만 법의학자의 임상 경험은 다르다. 마지막 2주는 대부분 섬망 상태로 말도 하지 못하고 의식 불명인 채로 2주 이상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 마지막 2주 어딘가, 혹은 그 직전에 잠깐 의식이 깰 때, 우리는 누워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유 교수는 그 순간 "이만하면 괜찮았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한다. "비록 아이슬란드에 가서 오로라는 보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열심히 살았고 이만하면 괜찮았다 — 그런 마음."
7. 유언은 죽음의 문서가 아니라 삶의 계획서
강연이 향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유언을 쓰자고 권하면 많은 사람들이 "법적으로 이 아파트는 누구 거고, 이건 누구 거고"라는 법적 분배만 떠올린다. 하지만 유 교수가 말하는 유언은 그게 아니다.

"법적 문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겨 온 삶의 철학과 정체성을 기록해 보는 것입니다." 유언은 죽음의 문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계획서다. 93세에 내가 마지막을 떠날 때 뭘 남길 건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마지막은 어떻게 진행될 건가를 지금 써 보는 것. 그 쓰는 과정에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하지 못한 말과 고마운 사람과 후회 없이 살아갈 일들을 정리하게 된다.

"죽음은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그건 삶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자 남겨진 이들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오히려 더 충실히, 더 온전히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잠깐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유 교수의 결론이다.
✍️ 내가 밑줄 친 세 문장
"90세, 96세 이 숫자는 살아 있는 시간을 말할 뿐이고, 사실 살아가는 시간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삶의 안전이란 단지 질병을 피하거나 사고를 막는 수준을 넘어서, 죽음을 사유하고 준비할 줄 아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잊지 못하세요. 60이 돼도, 70이 되도, 80에도 내가 사랑하던 사람의 그 기억과 슬픔은 마음 깊숙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현실을 인식하고 상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것뿐입니다."
"유언은 죽음의 문서가 아니라 나중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삶의 계획서로 지금 여러분이 써 보시는 것입니다. 93세에 내가 마지막을 떠날 때 뭘 남길 건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나의 마지막은 어떻게 진행될 건가."

📝 블로거 한 줄 후기
법의학자라는 직함부터 처음엔 약간 거리감이 있었다. 부검하는 사람의 죽음 강연은 아무래도 무거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13분을 다 보고 나면 무거운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한 번도 사유해 보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 쪽이라는 사실이 더 또렷해진다. 유성호 교수는 죽음을 두렵게 만들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매주 죽음을 직업으로 마주하는 사람의 차분함으로 죽음의 자리를 옮겨 놓는다 — 끝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가장 오래 남는 건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한다는 단언. 60이 돼도 70이 돼도 80이 돼도 그 사람의 슬픔은 마음 깊숙이 그대로 있고, 다만 우리는 살아남은 자로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서 일어서는 것뿐이라는 문장.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에게 "이제는 잊고 살아라"는 식의 위로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그 진실을 정면으로 인정해 준 첫 강연이었다. 둘째는 유언이라는 단어의 재정의. 법적 문서가 아니라 삶의 계획서. 93세의 내가 어떤 사람으로 마무리하고 싶은지를 지금 써 보는 일이, 죽음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더 또렷이 살게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
강연을 다 본 뒤 한참을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뉴스로 흘려보내던 3인칭의 시선과, 가까운 누군가의 부재 앞에서 무너지는 2인칭의 시선 사이 어디쯤에 내가 있었구나. 1인칭의 죽음을 사유해 본 적 없는 내가, 어쩌면 오늘부터 한 줄이라도 적어 보는 게 가장 안전한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오늘, 단 한 가지만 해본다면
노트나 메모 앱에 단 다섯 줄짜리 유언을 한 번 적어 본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93세의 내가 마지막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한마디를 남기고 싶은지. 적는 동안 자연스럽게 오늘 무엇을 더 잘 살아야 하는지가 떠오를 거다.
📚 더 보면 좋을 자료
유성호 교수의 신간 〈유언 노트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지침서〉. 그의 이전 세바시 강연 1049회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KBS 〈스모킹 건〉에서 자문으로 참여한 죽음 관련 에피소드들.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그의 베스트셀러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도 좋다.
♥ 죽음을 미리 한 번 사유해 본 사람만이 오늘을 또렷이 살 수 있습니다. 다섯 줄짜리 유언부터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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