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키 엠펑키스쿠 하이그나 와캔두" — 90년대 박명수와 함께 일세를 풍미했던 그 클래식 개그가 사실은 한 사람의 45년짜리 인생 전부였다면. 개그맨 김현철은 올해 평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정식 위촉됐다. 초등학교 3학년 오락반장에서 시작된 클래식 사랑이 이어진 거의 반평생의 결과다. 안전보건공단 특집 〈2025 세바시 안전한 콘서트 Beyond Safety〉의 한 꼭지로 등장한 그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한 사람이 어떻게 안전한 제2의 인생에 도착했는지를 19분 동안 풀어낸다.
📌 한 줄 요약
개그맨 김현철이 12년의 '지휘 퍼포머' 시절을 거쳐 올해 평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가 되기까지 —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안전한 제2의 인생에 도착한다는 이야기.
⭐ 추천 점수
★★★★☆ 4.5/5 — 19분 내내 웃다가 마지막 5분에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지는 강연. 정년을 앞둔 분, 자기 직업의 끝을 고민하는 분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정년·은퇴를 앞두고 '다음 인생'을 고민하는 50~60대
한 가지 일에 깊게 빠져 있는데 직업으로 삼아도 될지 망설이는 분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막연히 어렵게 느껴졌던 분
📑 목차
6. 라디오 12년이 만든 베스트셀러 〈고급진 클래식당〉
7. 어그부츠와 신발 180켤레 — 좋아하는 일이 안전한 인생이 되다
개그맨이 지휘봉을 든 45년 — 김현철이 도착한 '안전한 제2의 인생'
1. "체키 엠펑키스쿠" 그 클래식 개그의 주인공
강연은 자기소개부터 다른 결로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평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큰 인사 올리겠습니다." 박명수와 함께 90년대를 뒤흔든 클래식 개그 "체키 엠펑키스쿠 하이그나 와캔두" — 사람들이 가장 또렷이 기억하는 그 한 장면의 주인공이 이 강연자다.


"국민 개그맨이 누구죠? 유재석입니다. 저는 국민이면서 개그맨이에요." 본인을 그렇게 소개한 그는, 사실 12년 전부터 실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었다. 다만 한 번도 자신을 '지휘자'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2. 12년의 '지휘 퍼포머', 드디어 지휘자가 되다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은 제가 지휘를 한다고 해서 지휘자라고 얘기하기가, 클래식을 전공하는 분들에게 좀 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자신을 '지휘 퍼포머'라고 불러 왔다. 12년 동안. 연주자들도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려 했다. 개그맨 님, 연예인 님, 현철 오빠… 정식 연주회장에 가도 대기실에는 '특별 출연 김현철' 혹은 '개그맨 김현철 출연자'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러한 노력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알았는지, 올해 드디어 평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저를 상임 지휘자로 위촉해 줬습니다." 12년이라는 시간이 마침내 공식 직함이 된 순간이다. 강연 도중 그는 청중에게 한 번만 "지휘자"라고 불러 달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 한 번을 위해 12년을 버텼다.
3. 초등 3학년 오락반장과 브라운관 속 카라얀
왜 개그맨이 지휘를 하게 됐을까. 이야기는 45년 전, 그의 초등학교 3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그는 가장 큰 중책 — '오락반장'을 맡는다. "오락반장을 우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학습부장이나 체육부장은 선생님이 시킬 수 있지만 오락반장은 선출직입니다."

그 시절 이주일 선생님의 유행어를 모두가 따라하던 때, 어린 김현철은 화가 났다.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찾자." 어느 날 밤 9시 뉴스 직전 8시 50분쯤, 성악가가 돌담길에 서서 "바라자 가자 말 물결 같다" 하고 가곡을 부르는 프로그램을 봤다. "저거다, 저걸로 아이들을 웃겨야겠다." 그 다음 오락 시간은 대박이 났다.

매번 같은 걸 할 수는 없어 다음 곡을 찾던 중, 반 친구 삼촌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져온 비디오 테이프를 보게 된다. 세계적 거장 카라얀이 눈을 감고 지휘하는 영상. "저거다." 그때부터 젓가락을 들고 음악을 틀어 놓고 오락 시간마다 지휘 흉내를 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고, 또 다른 클래식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클래식이 그의 일상에 배었다.
4. 12년 연임 오락반장, 그리고 클래식 개그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그는 오락반장이었다. 재수하던 종합반에서도 학생들이 그를 오락반장으로 뽑았다. "치열한 몸부림이 있는 종합반에서까지 — 전무후무한 사실이지만 그 주인공이 여기 와 있습니다." 그러다 서울예대로 진학한다. 동기 명단이 화려하다. 안재욱·신동엽·유승룡·임원희. 그 안에서도 그는 또 오락반장이었다. 12년 연속 연임.

개그맨이 된 뒤에도 그는 클래식 개그를 했다. 다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박명수와 한 "체키 엠펑키스쿠" 한 장면뿐. 그는 그게 살짝 서운하기도 하다는 듯 웃는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많은 분들이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을까. 그 이유를 오늘 찾아왔습니다."
5. 클래식 제목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클래식은 말이죠, 제목 자체가 어려워요." 작곡가가 곡의 형식·형태·작품 번호를 붙이고, 후세 사람이 정리하면 그 사람 번호까지 붙는다. 그래서 제목을 듣는 순간 "아, 재미없어" 한다는 것이다.

그가 두 곡을 들려준다. 첫 번째 곡은 우리가 아는 캐논. 정식 제목은 "세 대의 바이올린과 통주 저음을 위한 캐논과 지그 D장조". 한 줄씩 풀면, 세 대의 바이올린·바소 콘티누오(첼로와 챔발로) 통주저음, 캐논과 지그까지가 한 곡이다. 두 번째 곡은 베토벤 합창 교향곡 — 정식 제목은 "쉴러의 송가에 의한 종결 합창을 수반한 관현악·독창 4부와 합창을 위한 교향곡 9번 작품 125 D단조 코랄". 그는 이 긴 제목을 악보 없이 외워서 읊는다. 45년의 시간이 만든 암기다.
6. 라디오 12년이 만든 베스트셀러 〈고급진 클래식당〉
강연 중반, 그는 최근 펴낸 책을 소개한다. 〈김현철의 고급진 클래식당〉. 클래식을 음식의 맛으로 비유한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그는 솔직히 고백한다. "저는 책을 내려고 한 게 아닙니다."

12년 전, 그가 클래식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누군가가 라디오에 매주 한 곡씩 클래식을 소개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직접 원고를 써서 가져갔다. 작가들이 환영했다. 그 원고가 12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 책으로 묶인 것이다. "한강 작가, 생텍쥐페리 같은 분들이 책을 내야지, 책을 제가 왜 냅니까.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책이 나오게 된 겁니다."
7. 어그부츠와 신발 180켤레 — 좋아하는 일이 안전한 인생이 되다
강연 후반, 그는 한 사례를 꺼낸다. 10년 전쯤 그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홀트학교의 명예 지휘자로 3년 동안 재능 기부를 했다. 아이들과 친해진 어느 날, 신발 회사 사장님께 찾아가 부탁해 어그부츠 한 켤레씩을 학생들에게 선물했다.

한 학부모님이 8월에 학교 앞에서 그를 붙잡았다. "선생님, 우리 애가 선생님이 사 준 신발이 너무 좋아서 오늘도 그 신발 신고 왔어요." 어그부츠를 8월에. 발이 뜨거운데도 너무 좋아서 신고 왔다는 말에 그는 속으로 잠깐 '그럼 샌들을 사 달라는 건가' 하고 웃었지만 마음이 뭉클했다.
6개월 뒤 큰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또 다른 학부모가 달려와 그의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우리 애한테 이런 걸 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가 깨달은 건 이런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거를 했을 뿐인데 누군가가 큰 칭찬을 하고 감동스럽게 생각한다면, 나 이거 계속해야 되겠다."
"제 나이에 한 가지 직업을 가지고 정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많은 분들이 불안해 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안 불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정말로 오늘의 주제에 걸맞게, 안전한 제2의 인생이 되어 있더라 이겁니다."
✍️ 내가 밑줄 친 세 문장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은 제가 지휘를 한다고 해서 지휘자라고 얘기하기가, 클래식을 전공하는 분들에게 좀 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낮춰서 '지휘 퍼포머'라고 12년 동안 했던 겁니다."
"한강 작가, 생텍쥐페리 같은 분들이 책을 내야지, 책을 제가 왜 냅니까.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책이 나오게 된 겁니다. 지금 어쨌든 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더니 책을 쓴 작가가 되어 있고,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어 있다 이겁니다."
"제 나이에 한 가지 직업을 가지고 정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많은 분들이 불안해 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안 불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정말로 오늘의 주제에 걸맞게, 안전한 제2의 인생이 되어 있더라 이겁니다."
📝 블로거 한 줄 후기
19분 내내 시종일관 웃긴 강연이라고만 생각하면 끝부분에 살짝 당한다. 김현철의 "버팀의 안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추상적이라고 느꼈는데, 마지막 어그부츠 일화에서 그 단어의 뜻이 명확해진다. 정년·은퇴라는 단어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본업 외에 또 무엇을 가지고 살아갈지를 고민한다. 김현철은 자기 답을 12년 동안 본명으로도 못 부르는 '지휘 퍼포머'라는 자리에서 만들어 왔다.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2년 동안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자기를 낮춰 부른 그 시간이, 결국 평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라는 공식 직함으로 보답받았다는 이 결말이 어딘가 단단하다.
가장 오래 남는 건 라디오 원고 에피소드였다. 12년 동안 매주 자기가 쓴 원고를 들고 라디오에 나간 시간이, 일부러 책을 쓰려고 들였던 시간이 아니라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한 시간이었다는 점. 그게 베스트셀러로 묶여 나왔다는 한 줄은, 우리가 흔히 듣는 "한 가지에 미쳐 봐"라는 동기부여형 문장과는 결이 다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즐거워서 한 일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시점에 그게 자기를 살리는 두 번째 인생의 토대가 된다는 이야기. 그게 김현철이 말하는 '버팀의 안전'이고, 19분 강연이 도착한 자리다.
💡 오늘, 단 한 가지만 해본다면
지금 본업과 무관하게 — 그러나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 한 가지를 떠올려 본다. 그것을 누구한테 인정받지 못해도 10년, 12년을 묵묵히 이어 갈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김현철이 도착한 안전한 제2의 인생은 그런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된다.
📚 더 보면 좋을 자료
김현철의 베스트셀러 〈김현철의 고급진 클래식당〉. 평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일정. 그가 사랑하는 카라얀의 베를린 필 지휘 영상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강연 중 그가 직접 들려준 파헬벨 캐논과 베토벤 합창 교향곡 9번, 정식 제목을 외워 두면 다음 클래식 공연이 한 뼘쯤 가까워진다.
♥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안전한 인생이 옵니다. 오늘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 떠올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