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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은 공유될 때만 막을 수 있다 — 박승현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의 손끝의 안전 | 세바시 2010회

"안전은 같이 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회의에서도, 뉴스에서도 우리는 "안전 제일"이라는 말을 매일 듣는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는가. 박승현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이 풀어내는 14분짜리 강연은, 같은 공장 안에서도 안전 정보가 누구에게는 닿고 누구에게는 끊기는지를 차분하게 들춰낸다. 손끝의 안전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이는 메시지의 끝에는, 위험한 일은 있어도 위험해도 될 사람은 없다는 단호한 한 줄이 남는다.

 

📌 한 줄 요약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박승현이 풀어내는 사각지대의 안전 이야기 — 협력업체·외국인·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끊기는 안전 정보, 그리고 가장 바깥 사람까지 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진짜 안전.

 

⭐ 추천 점수

★★★★★ 5/5 — 산업 안전을 추상적인 슬로건이 아니라 TMAH·아리셀 참사·외국인 노동자 사망률이라는 구체적 사례로 풀어 준다. 안전을 다루는 글 중 단연 손에 꼽을 만한 강연.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제조·건설 현장에서 안전 관리·교육 업무를 맡고 있는 분

화성 아리셀 참사를 뉴스로만 흘려보낸 뒤, 그 사고의 진짜 구조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은 분

"위험한 일은 있어도 위험해도 될 사람은 없다"는 문장 앞에서 한 번 멈춰 서고 싶은 분

 

📑 목차

1. 20년 전 한 통의 전화 — 나일론에서 시작된 보람

2. 보이지 않는 위험 — 나일론66의 분자 구조

3. 2013년 TMAH 사례 — "모릅니다" 한 마디의 충격

4. 원청과 하청의 사망률은 다르지 않아야 한다

5. 화성 아리셀 참사 — 비상구가 사원증으로만 열렸다

6.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한 여학생의 한마디

7. 진짜 안전은 가장 바깥 사람까지 품을 때 완성된다

 

세바시 2010회 — 손끝의 안전, 안전에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 박승현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위험은 공유될 때만 막을 수 있다 — 박승현 연구원장의 손끝의 안전 14분

 

1. 20년 전 한 통의 전화 — 나일론에서 시작된 보람

강연은 가벼운 퀴즈로 시작한다. "여러분, 혹시 세계 최초의 합성 섬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정답은 스타킹의 원료, 나일론이다. 박승현 원장에게 나일론은 안전보건공단 직장 생활에서 처음으로 "내 전공과 일이 현장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보람을 안겨 준 물질이다.

 

2025 세바시 안전한 콘서트 강연자 정보 카드. 박승현 원장의 인물 사진과 강연 제목 손끝의 안전 안전에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가 함께 보인다.
박승현 —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

 

20여 년 전 어느 겨울, 한 사업장 보건 관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일론 수지로 브레이크 센서 주위를 코팅하는 작업에서 작업자들이 자극적인 냄새로 불편을 호소한다는 것. 현장에서는 원인을 찾을 수 없어 곤란한 상황이었다. 박 원장은 그 원료 물질, 나일론 66을 실험실로 가져와 공정 온도에서 가열하며 발생 물질을 분석했다.

 

산업 현장에서 빨간 방호복을 입은 소방관 세 명이 분말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하는 장면.
여러분, 지금 계신 이곳에 하얀 연기가 나고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2. 보이지 않는 위험 — 나일론66의 분자 구조

분석 결과 불쾌하고 자극적인 냄새, 비린내가 나는 케톤·알데하이드·아마이드·아민 등의 물질이 나왔다. 비밀은 나일론 66 수지의 분자 구조에 있었다. 가열·압출 과정에서 열 분해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화학물질이 생성됐고, 그것이 작업자들의 불편을 일으킨 원인 물질이었다.

 

나일론 폴리머 분자 구조식 슬라이드. 두 개의 모노머가 결합된 반복 단위 화학 구조와 함께 Nylon이라는 단어가 표시되어 있다.
세계 최초의 합성 섬유 나일론과 나일론 66의 분자 구조.

 

"나일론 수지를 가열·압출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해 물질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거죠." 화학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도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기가 어렵다. 인류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물질이라도, 가공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알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바로 여기다.

 

3. 2013년 TMAH 사례 — "모릅니다" 한 마디의 충격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가 숱하게 일어난다. 박 원장은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 안타깝다고 한다. 조사를 하다 보면 정말 중요한 안전 정보가 피해자들에게 공유되지 않았고, 현장 노동자들이 미리 알았더라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안전보건공단 급성독성 물질 누출 사고 사례 보고서 콜라주. 소방관들이 화학공장에 물을 뿌리며 진압하는 장면과 사고 보고서 페이지가 함께 보인다.
급성독성 물질 누출 사고 사례 — KOSHA-MIA-202020.

 

2013년 어느 날, 그는 TMAH라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한 사업장을 방문했다. 피부에 닿기만 해도 단 몇 분 만에 호흡 부전으로 사망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물질이다. 그 무렵 TMAH 중독으로 2명의 노동자가 잇따라 사망했고, 정부와 안전보건공단은 관련 사업장에 긴급 경고 조치를 내린 상태였다.

 

뉴스 보도 화면. 화학공장 내부 폭발 사고 장면과 TMAH 누출 사고를 다룬 자막이 함께 보인다.
TMAH 누출 사고 — 화학공장 50대 작업자 중태, 안전 경보 발령.

 

사업장 관리자들은 충분히 교육을 했다고 답했다. 박 원장은 그 말을 믿고 현장에 나가, 실제로 물질을 다루고 있는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취급 중인 물질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돌아온 대답은 단 한마디였다. "모릅니다."

"순간 저는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 왔습니다. 관리자들은 교육이 이뤄졌다고 했지만, 실제 가장 위험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그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단순한 실수나 누락이 아니라 구조적 방치였다. 그리고 이번 강연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또 다른 현장에서 TMAH가 얼굴·팔·눈에 노출되어 심정지로 병원에 이송된 사례가 있었다. 이번에도 하청 노동자였다.

 

4. 원청과 하청의 사망률은 다르지 않아야 한다

"위험은 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협력업체라는 이유로, 하청이라는 이유로, 작업 지시만 전달되고 위험은 공유되지 않는 구조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원청과 상주하청업체의 사고사망만인율을 비교한 막대그래프. 원청은 약 0.2, 상주하청업체는 약 0.7로 표시되어 있다.
원하청 사고사망만인율 비교 — 원청 대비 상주하청업체의 사고 사망률이 월등히 높다 (2017년 연구 사례).

 

2017년 실태조사 자료를 시각화한 그래프는 그 차이를 한눈에 보여 준다. 1,000인 이상 제조업과 철도·궤도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상시근로자 1만 명당 발생하는 사고 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사고사망만인율이 원청보다 상주하청업체에서 월등히 높았다. "원청의 안전과 하청의 안전, 다르지 않습니다. 위험은 충분히 공유해야 해결할 수 있고, 함께해야 진정한 안전인 것입니다."

 

5. 화성 아리셀 참사 — 비상구가 사원증으로만 열렸다

"여러분, 지금 계신 이곳에 만약 하얀 연기가 나고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교과서대로라면 바람을 등지고 핀을 뽑아 소화기를 뿌리는 것이 답이다. 화성 아리셀 참사의 희생자들 역시 분명 그렇게 배우고 실천했을 것이다.

 

공장 내부 CCTV 화면. 한 작업자가 분말 소화기로 진압을 시도하는 가운데 큰 화염이 박스 무더기 너머에서 일어나는 폭발 순간.
화성 아리셀 참사 — 1분도 채 되지 않아 유독 가스가 피해자들을 집어삼켰다.

 

이 참사로 총 23명이 사망했고, 그중 외국인 노동자는 18명이었다. 비극의 첫 번째 원인은 리튬 배터리가 일반 분말 소화기로는 전혀 화재 진압이 되지 않는 화학 제품이었다는 점이다. 진압 효과가 없는 소화기를 뿌리는 사이 1분도 채 되지 않아 리튬 배터리에서 발생한 유독 가스가 피해자들을 집어삼켰다.

 

화학 공장에서 빨간 방호복을 입은 소방관 세 명이 큰 화염을 향해 분말 소화기를 뿌리고 있는 장면.
분말 소화기로는 리튬 배터리 화재 진압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탈출조차 할 수 없었다. 비정규직이어서 비상구의 위치를 제대로 몰랐고, 어떤 출입구는 심지어 정규직 사원증을 대야만 열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일반 소화기로 진압이 안 되는 물질을 다루는 산업 현장이라면 노동자들에게 특별 안전 교육을 했어야 한다. 위급 상황에서는 누구나 비상구로 빨리 탈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원청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6.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한 여학생의 한마디

올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의 10% 정도가 외국인 노동자였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그 사고 사망 발생 비율은 월등히 높다.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시각화한 청록색 막대그래프.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산재사고 사망자 수가 단계적으로 줄어드는 모습이 보인다.
최근 3년간 산재사고 사망자 — 2022년 874명, 2023년 812명, 2024년 617명.

 

박 원장은 자신도 외국인 노동자를 남처럼 생각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2008년 여름, 산업 현장에서 화학물질 중독 사고가 잇따랐고 그중 많은 피해자가 외국인 노동자였다. 회사 내부 논의 끝에 주말마다 돌아가며 외국인 노동자센터에 가서 상담하기로 결정했고, 그도 그 일환으로 나가게 됐다.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나 혼자서 뭘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주말마다 시간을 쪼개야 한다는 부담."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서 한 여학생을 만났다. 평범한 대학생처럼 보였던 그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박 원장과는 달리 아주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봉사에 임했다.

"어떻게 이곳에 오셨어요?"라는 물음에 돌아온 답이 그를 멈춰 세웠다. "저는 외국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 저와 같이 자란 사람들이 한국에서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서요. 저라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쳤다. "저는 회사에서 시켜서 나온 사람이었고, 이 여학생은 마음이 시켜서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한참 어린 학생이지만 그 마음은 어쩌면 어른보다 더 깊고 순수했던 것입니다."

 

7. 진짜 안전은 가장 바깥 사람까지 품을 때 완성된다

안전보건공단에서 수십 년을 일하며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지만 여전히 처참한 사고가 발생한다. 박 원장은 마음을 가장 미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가 안전을 너무나 쉽게 말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 정보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 즉 시스템 안에서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에 더 자주 노출되고, 정보를 덜 받으며, 책임에서도 종종 제외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건 원청 책임이 아니다", "개인이 조심했어야지", "그 직업은 원래 위험해"라는 말을 손쉽게 한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란 있어도 위험해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는 구분도, 등급도, 예외도 있을 수 없습니다." 안전은 누군가에게는 적용되고 누군가에게는 빠지는 조건부 개념이 아니다. 진짜 안전이란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품에 넣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안전 장비를 갖춘 두 노동자의 뒷모습 위에 작은 관심이 사람의 생명을 바꿉니다라는 자막이 떠 있다.
작은 관심이 사람의 생명을 바꿉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안전이 보일 때 우리 사회도 더 안전해집니다. 우리의 안전과 그들의 안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안전해야 합니다. 진짜 안전은 같이 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 내가 밑줄 친 세 문장

"관리자들은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지만, 실제 가장 위험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그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단순한 실수나 누락이 아니라 구조적인 방치였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시켜서 나온 사람이었고, 이 여학생은 마음이 시켜서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한참 어린 학생이지만 그 마음은 어쩌면 어른보다 더 깊고 순수했던 것입니다."

"위험한 일이란 있어도 위험해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는 구분도, 등급도, 예외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진짜 안전이란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품에 넣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 블로거 한 줄 후기

화성 아리셀 참사 뉴스를 처음 봤을 때, 23명이라는 숫자와 외국인 노동자 18명이라는 숫자만 기억에 남았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나면 다른 뉴스에 떠밀려 잊혔다. 박승현 원장의 14분은 그 잊힘의 자리를 정확히 비집고 들어온다. 진압이 안 되는 소화기를 뿌리는 사이 1분도 채 안 되어 유독 가스가 덮쳤다는 문장, 비상구가 정규직 사원증으로만 열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그 한 줄들은 이번 참사가 단순한 화재 사고가 아니라 정보의 차별과 구조적 방치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는 사실을 정확히 박아 놓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는 건 2013년 TMAH 사례였다. 박 원장이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지금 취급 중인 물질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모릅니다" 한 마디. 관리자들이 분명 교육했다고 답했는데도, 가장 위험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그 정보가 닿지 않았다는 그 거리감. 산업 안전이라는 단어가 어디서 어떻게 끊기는지를 그보다 더 잘 보여 주는 장면은 본 적이 없다.

강연 마지막 "위험한 일이란 있어도 위험해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문장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안전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한 줄일지 모른다. 안전은 슬로건이 아니라 가장 바깥 사람에게도 닿는 정보와 설비여야 한다는 그 단단한 결론이 오래 남는다.

 

💡 오늘, 단 한 가지만 해본다면

내가 매일 마주치는 일터에서 — 사무실이든 매장이든 작업장이든 — 가장 안전 정보가 닿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한 번 떠올려 본다. 그 사람에게 "여기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같은 가장 단순한 한 마디를 건네 본다. 박승현 원장이 말하는 손끝의 안전은 그 한 마디에서 시작된다.

 

📚 더 보면 좋을 자료

안전보건공단 KOSHA의 산업안전보건 자료실에서 사고 사망 만인율과 화학물질 안전관리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화성 아리셀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정리한 정부 합동 조사 결과 보고서, 그리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외국인 노동자 산재 통계도 함께 보면 강연이 인용한 숫자들의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 안전은 누구에게도 빠짐이 없어야 합니다.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의 안전부터 한 번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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