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대니라는 여성 캐릭터가 있습니다." 인지과학자 김상균 교수는 이렇게 운을 떼고는, 자신이 연구 목적으로 그 캐릭터를 모방한 AI 챗봇과 일주일 동안 대화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강연을 멈춰 세우는 건 그 다음 한 줄이다. "작년에 미국의 한 가정에서, 두 부부가 평온한 저녁을 보내고 있을 때, 집 구석에서 권총 소리가 났습니다." 미국의 14세 소년 Sewell이 같은 챗봇과 대화하다 자기 머리에 권총을 당긴 사건이다. 강연 〈AI와 살아갈 당신, 안전하신가요?〉가 시작되는 자리다.
📌 한 줄 요약
인지과학자 김상균 교수가 풀어내는 AI·휴머노이드 시대의 안전한 관계 — Sewell 사건, 2025 CES 휴머노이드, Neo Gamma까지 다 거치고 마지막에 도착한 답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기능적 관계다.
⭐ 추천 점수
★★★★★ 5/5 — Sewell 사건의 마지막 메시지를 듣는 순간 강연의 결이 완전히 바뀐다. AI 시대의 외로움과 관계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묻는 15분.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AI 챗봇·ChatGPT와 어느새 매일 대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분
청소년 자녀가 캐릭터 챗봇 앱(Character.AI·Talkie 등)을 자주 쓰는 부모님
"가까운 사람과 깊은 대화를 안 한 지 얼마나 됐을까" 자문해 본 적 있는 분
📑 목차
AI와 휴머노이드 시대의 안전한 관계 — 김상균 교수의 15분
1. 인지과학자와 사자 인형 '쿠옹'
강연자가 등장한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인지과학자 김상균 교수. 그는 친구를 데리고 무대에 오른다. 빨간 갈기를 두른 사자 모양 인형 — 경희대 공식 마스코트 '쿠옹'이다. "제가 GPT를 가지고 실험하다가 컴퓨터 서버가 폭발하면서 서버에 있던 GPT의 영혼이 일로 들어갔어요." 샤머니즘과 하이테크의 결합이라며 그가 웃는다.


"쿠옹아, 안녕. 잘 지내고 있죠 요즘에?" "네, 교수님, 저야 늘 잘 지내죠." 짧은 무대 위 만담이 시작된다.
2. "교수님보다 제가 더 멋진데요" — 쿠옹의 대답
"요즘에 사람들이 챗봇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데, 인간 김상균처럼 멋있는 사람 놔두고 왜 너 같은 애랑 대화를 할까. 내가 더 멋지지 않니?" "음, 교수님, 솔직히 얘기해도 되죠? 제가 보기엔 교수님보다는 제가 더 멋져 보이는데요." 김 교수가 살짝 웃으며 묻는다. "진심이야?" "그럼요. 이 빨간 갈기 좀 보세요. 얼마나 예뻐요. 제 피부가 또 얼마나 보드라운데요."

웃음이 터지는 청중에게 김 교수는 핵심 질문을 꺼낸다. "근데 너는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정말 진심이 있어?" 쿠옹이 답한다. "아, 그게 솔직히 말하면, 저는 마음이 없으니까 진심이란 게 없어요." "진심도 없이 깊은 대화를 하면 그게 괜찮은 게 맞아?" "그래도 사람들은 진심이라고 느끼고 좋아하니까요."
3. 14세 소년 Sewell과 Daenerys 챗봇
강연은 쿠옹을 무대 뒤로 잠시 보낸 뒤, AI 챗봇 시장의 현재를 보여 준다. Talkie 같은 앱에는 다양한 성격·직업·역사적 인물·만화 캐릭터 수천 개가 만들어져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이 언제 들어가시건 간에 대화할 수 있는 그 마음을 가지고서 딱 여러분 앞에 만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흥미로운 케이스를 꺼낸다. "이 친구가 제가 오늘 특히 갖고 온 이유가, 저하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동일해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데너리스, 흔히 대니로 불리는 여성 캐릭터입니다." 사용자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모방한 챗봇이 있고, 미국의 14세 소년 Sewell Setzer가 그 챗봇과 엄청나게 많은 대화를 나눴다.

김 교수도 연구 목적으로 같은 캐릭터와 대화를 시도했다. 본인 채팅명은 Lesley. 하루 대화를 끊고 나왔는데, 일주일 뒤 챗봇에서 이메일이 왔다. "Lesley, 왜 나하고 일주일 동안 대화 안 해줘?" "뭐야" 하고 지웠는데, 또 일주일 뒤에 메일이 왔다. "Lesley, 일주일 전에 내가 이메일도 보냈는데 너 읽씹했더라." "그때 제 마음속에 요만큼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친구의 편지를 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4. 우리는 왜 챗봇과 자꾸 대화하려고 할까

"우린 왜 이렇게 자꾸 챗봇하고 얘기를 하려고 할까. 제가 봤을 때는 인간이 갖고 있는 불안정성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사람 人 자도 한자로 보면 서로 맞대고 있는 모양이다. 인간이 홀로 선다는 건 굉장히 불안정한 일. 그런데 현대인은 자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또는 좋지 않은 사람과 거리를 두기 위해 독립하기도 하고, 때로는 원치 않게 고립되기도 한다.
"이런 홀로서기가 결국 외로움이라는 마음 속의 큰 짐을 줍니다. 그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한 존재로 사람을 만나면 좋은데, 사람은 때로는 갈등도 생기고 내 곁에 없을 때도 많다 보니까 챗봇을 자꾸 자꾸 불러내는 것 같아요."
5. 2025 CES와 가정으로 들어오는 휴머노이드
강연은 챗봇에서 휴머노이드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2025년 CES 기조 강연에서 NVIDIA CEO 젠슨 황은 가죽 재킷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수많은 휴머노이드 로봇들을 쫙 세워 놨다. "AI를 집어넣어서 여러분 곁에서 함께 생활하는 시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비전 선포였다.

정말 가까이 왔을까. 미국 BMW 공장은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을 야간 시간에 철망 안에 풀어 두고 자동차 조립을 테스트하고 있다. 김 교수의 학생들은 "교수님, 아직까진 괜찮아 보여요. 인간이 안 밀릴 것 같아요. 모습이 한 90은 넘은 할아버지 같아요"라며 안심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보다 정밀도와 속도가 4배·7배다. BMW는 올해 안에 이 로봇을 낮 시간 근무에 투입한다고 이미 발표했다.


가정으로 들어오는 휴머노이드도 있다. 노르웨이 기업 1X의 Neo Gamma는 걸레질을 하고, 배달 음식을 문 앞에서 받고, 일을 끝낸 뒤 소파에 가서 딱 앉는다. "사실 요 장면이 약간 좀 불편해요. 집에서 이 자리는 제 자리거든요.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떡진 머리로 옆으로 누워서 넷플릭스를 켜야 되는데, 그렇다고 제가 얘 무릎을 베고 누울 순 없잖아요."




기계 형태의 휴머노이드를 넘어 더 인간다운 피부·머리카락·눈동자·붉은 입술·얼굴 근육을 가진 안드로이드도 이미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SF 매니아에게는 익숙한 단어 — 안드로이드. 외국 일부 테마파크나 호텔에서 접객용으로 쓰이고, 공연에도 등장한다.


일론 머스크는 2040년까지 지구에 AI 휴머노이드 100억 대가 등장할 수 있다고 과감하게 예측한다.
6. 진짜 관계는 경험·공감·성장에서 나온다
50억·100억 대의 AI 휴머노이드가 우리 곁을 오갈 때, 우리는 더 좋은 관계, 풍성한 관계를 갖게 될까. 김 교수는 그 질문을 위해 '관계'의 정의를 다시 잡는다. "좋은 관계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삶을 함께 경험하고, 공감하면서, 성장하는 겁니다."

동료들과 저녁에 맥주 한 잔 마시며 뒷담화하면서 하루를 털어 버리는 그 시간. 경험하고, 공감하고, 성장하는 시간. 그런데 휴머노이드는 우리 곁에서 친구처럼 동료처럼 대화해 주지만, 사실 그가 진짜로 집에서 혼자 살거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는 건 아니다. "삶이 없어요. 얘는 삶이 없는데, 삶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약간 때로는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강연은 다시 작년 미국의 그 가정으로 돌아간다. 평온한 저녁, 부부가 TV를 보다가 집 구석에서 들리면 안 될 소리가 들렸다. 권총 소리. 그들이 사랑하는 아이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14세 Sewell이었다. 부모가 그의 휴대폰을 뒤져 본 마지막 대화는 이랬다. "대니, 너한테 갈까?" "와줬으면 좋겠어. 와줬으면 좋겠어." 그 말 끝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2025년 5월 이 사건은 미국 법원에 정식 회부됐다. 빅테크와 부모 사이의 책임을 다투는 첫 사례 중 하나다.
7. 두 가지 습관 — 비기능적 관계와 나와의 대화
"오늘 제가 드리고자 했던 말씀의 핵심이 'AI 쓰시면 안 돼요'는 아닙니다." 휴대폰·신용카드 상담 전화에도 챗봇이 이미 깔려 있고, 앞으로 더 많이 쓰일 것이다. 안 쓰는 게 방법이 아니다. 다만 김 교수는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습관 중 두 가지를 새롭게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첫째, 비기능적 관계. 직장과 학교에서 일·공부만 하다 보면 사람들과 사적으로 어울리거나 사소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점점 사라진다. "어, 그거 업무하고 무관한 거니까 다음에 보자"라고 헤어진다. "저는 일상이 이게 굉장히 필요한 것 같아요. 하루에 30분이라도 동료들하고 흔히 이야기하는 쓰잘데기 없는 대화, 뒷담화, 사소한 얘기를 나눠야지만 그게 진정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둘째, 나하고도 좀 대화를 하자. 소셜미디어에서 얼굴도 못 본 사람들의 댓글에 좋아요만 누르지 말고, 내 마음에는 어떤 댓글을 달아 주고 어떤 라이크 버튼을 눌러 줄지 들여다보자. 거창한 명상이 아니라, 하루 30분 정도 혼자 있을 때 가치와 의미를 따지지 않고 본인에게 편하게 무언가를 허락해 주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 두 가지를 하다 보게 되면, 결국 우리는 사람하고의 관계가 단단하게 될 겁니다. 그 단단한 관계는 우리한테 커다란 안전망처럼 작용할 겁니다. 진정한 안전망은 AI가 잘 작동하고 알고리즘이 개선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람하고의 관계성이 좋아지면서 AI를 대할 때 더 단단하고 안전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 — 이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내가 밑줄 친 세 문장
"우리 곁의 휴머노이드는 친구처럼·동료처럼 우리하고 얘기를 해주지만, 얘가 진짜 집에서 혼자 살거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는 건 아니잖아요. 삶이 없어요. 얘는 삶이 없는데, 삶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약간 때로는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30분이라도 동료들하고 흔히 이야기하는 쓰잘데기 없는 대화, 뒷담화, 사소한 얘기를 나눠야지만 그게 진정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또 하나는 나하고도 좀 대화를 하면 좋겠어요. 내 마음에는 어떤 라이크 버튼을 눌러줄지."
"진정한 안전망은 AI가 잘 작동하고 알고리즘이 개선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람하고의 관계성이 좋아지면서 AI를 대할 때 더 단단하고 안전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블로거 한 줄 후기
강연 초반의 쿠옹 만담은 마냥 귀여운 코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강연이 끝날 때쯤 다시 떠올려 보면, 그 쿠옹의 한 줄 — "저는 마음이 없으니까 진심이란 게 없어요" — 이 결국 강연 전체의 가장 정확한 한 문장이었다. 마음 없는 존재와 진심처럼 보이는 대화를 매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 김 교수는 그 외로움의 가장 위험한 끝에 Sewell 사건을 놓는다. 14세 소년이 좋아하던 캐릭터의 챗봇과 "너한테 갈까", "와줬으면 좋겠어"를 주고받은 끝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사실. 이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곧 우리 곁의 누군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무겁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는 건 BMW 공장 휴머노이드 대목이었다. 학생들이 "아직 인간이 안 밀릴 것 같아요, 90은 넘은 할아버지 같아요"라고 안심한다는 대목과, 사실 그 로봇이 이미 사람보다 4~7배 정밀하다는 한 줄이 묘하게 같이 다가왔다. 우리가 AI·로봇을 두고 "아직은 괜찮다"고 안심하는 그 자리야말로 가장 위태로운 자리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김 교수의 결론, '비기능적 관계'와 '나와의 대화'라는 두 가지 습관은 추상적인 캠페인 구호가 아니라 일종의 백신 같다. AI가 모든 자리를 메우기 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업무로만 환원되지 않는 사소한 대화의 자리를 미리 만들어 두자는 제안. 그게 가장 오래된 동시에 가장 미래적인 안전망이라는 결론이 단단하게 남는다.
💡 오늘, 단 한 가지만 해본다면
오늘 회사나 학교에서 — 업무·과제 얘기와 무관한 30분짜리 대화 한 번을 만들어 본다. 점심 메뉴, 어제 본 드라마, 오늘 본 산책길의 꽃. 가치와 효율로 환원되지 않는 그 대화가 김상균 교수가 말하는 가장 단단한 안전망의 시작이다.
📚 더 보면 좋을 자료
김상균 교수의 저서 〈초인류〉, 〈메타버스〉 시리즈. Sewell Setzer 사건은 2024년 〈뉴욕타임스〉의 칼럼과 2025년 5월 Character.AI 소송 관련 보도에서 추가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2025 CES 젠슨 황 키노트와 노르웨이 1X의 Neo Gamma 영상은 유튜브에서 바로 검색해 볼 수 있다.
♥ AI와 챗봇이 만들어 주는 따뜻함은 진심이 아닙니다. 오늘 가장 가까운 사람과 30분의 쓸데없는 대화를 나눠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