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6. | 세바시 2045회 | 조다인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생)
학교가 '숨 막힌다'고 말하던 한 멘티를 만나며, 조다인 님은 우리가 지나온 2,280일의 학교를 처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진짜 힘들어한 건 공부가 아니라 비교와 시선, 그리고 끝없는 경쟁이었습니다. 좋은 대학만을 향하던 '당연함'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질문 — 학교는 더 나은 성적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한 아이의 고백이 바꾼 이야기를 옮깁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네모난 일상, 네모난 학교
2. "학교에 가는 게 숨 막혀요" — 한 멘티의 고백
3. 나는 왜 학교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4. 내 학창시절, 그리고 너무 당연했던 것들
5. 학교 밖 아이들을 만나다 —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
6. 학교는 '더 나은 나'를 준비하는 공간이어야

네모난 일상, 네모난 학교
여러분, 오늘 아침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네모난 스마트폰을 본 뒤, 네모난 가방에 네모난 책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지나 네모난 건물의 네모난 교실에 앉지는 않으셨나요?
최근 아이유 님이 리메이크한 '네모의 꿈'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제 오늘 이야기도 이렇게 네모난 곳에서 시작합니다.
특히 저와 여러분이 다녔던 학교의 모습이 그러한데요.
단지 공간의 모양뿐 아니라, 그 안에서 느껴지던 감정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 가는 게 숨 막혀요" — 한 멘티의 고백
저는 2023학년도부터 서울런 멘토로 활동해 왔습니다.
서울런 멘토단은 일주일에 한 번 멘티를 만나 1대 1로 멘토링을 진행하는 역할이에요.
그해 여름, 제가 처음 멘토링을 맡은 첫 멘티를 만났습니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 어머님과의 상담에서 멘티가 꽤 오랜 기간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으로 멘토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멘티는 제게 어느 정도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는 듯했어요.
처음 만난 사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해 크게 마음에 두진 않았습니다.
멘티는 평소 잘 지내고 학교도 그럭저럭 다니고 있다고 했고, 제가 진도를 나가면 어느 정도 따라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제게는 다소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요.
멘토링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난 뒤, 저와 어머님이 다시 전화 상담을 했는데 "멘티가 평소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담 내용을 어머님이 그날 멘티에게도 말씀하신 거예요.
그날 멘티는 약 20분 늦게 도착했고, 그 얼굴에는 빨간 눈물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멘티는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감정이 벅차 울기도 하고, "왜 나는 이럴까, 왜 나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지" 같은 비관적인 말을, 때로는 굉장히 극단적인 말까지 쏟아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멘티가 이렇게 말했어요.
"학교에 가는 게 숨 막혀요."
학교에 가면 큰 압박을 받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더 들어보니, 학교에선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 같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하고, 활동 하나하나로 평가받고, 그 평가와 선생님의 시선과 분위기가 너무 답답하다는 거였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굉장히 멍해졌습니다.
"학교에 가는 게 숨 막힌다"는 그 한마디가, 제게는 아주 큰 인생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나는 왜 학교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나는 왜 한 번도 '학교가 어떤 공간이었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을까?
그날 이후 저는 학교라는 곳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학교에 다닐 때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단순히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 학교에 있는 것 자체를 견뎌내야 하고, 억압받는다고 느끼는 그런 생각요.
저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제 개인적인 궁금증이 엮이며 고민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어요.
그래도 고민을 멈추지 않고, 그 질문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서울런 멘토단과 함께 활동하던 교육 단체가 있었는데요.
'멘토링엔'이라는 대학생 교육봉사 동아리였습니다.
이 동아리에서 '학교에 대한 청소년의 공간적 인식'을 주제로 사회적 가치 포럼을 열었어요.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어떻게 세워졌고 무엇을 가르치는지, 세계 여러 나라의 학교와 의무교육은 어떤지, 그 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 토의하는 자리였습니다.
내 학창시절, 그리고 너무 당연했던 것들
저는 대한민국의 학제를 굉장히 성실하게 이수한 학생이었어요.
초·중·고를 착실히 다니고 대학에도 진학했죠.
제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대학'이라는 목표가 상당히 뚜렷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역사를 정말 좋아했고, 좋은 대학에 가서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국사학과에 진학해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게 배움은 교실 안보다 교실 밖에서의 배움이 더 좋았어요.
역사기념관의 청소년 도슨트 수업을 듣거나 외부 대회에 나가는, 그런 능동적인 배움을 훨씬 좋아했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대학 진학이 중요했기에, 고등학교를 고를 때 제 최우선 기준은 "어떤 학교가 대입을 준비하기에 더 유리할까"였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 커리큘럼도 대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그때는 너무나 당연했고, 오늘 말씀드리는 고민을 하기 전까지 전혀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진학이 어느 정도 강제되는 '학교'라는 기관이, 그저 거쳐 가는 하나의 단계로만 여겨져도 괜찮은 걸까?
나에게 배움이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었는데, 정작 학교가 내게 그런 의미였을까?
학교 밖 아이들을 만나다 —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
포럼 이후, 저는 이 고민을 잇는 다음 프로젝트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서원들과 회의를 거듭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커리큘럼이 대입에 맞춰져 있었다면, 대입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학교를 다니는 모든 학생이 꼭 대학을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좋은 대학'을 당연한 사회적 목표처럼 이야기하곤 하죠.
그래서 우리는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채택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사실 막막했어요.
단체 안에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운영 경험도, 참고할 자료도, 멘티를 모집할 방법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홍보하고 여러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처음 해 본 일 중 하나가 '공문 쓰기'였어요.
대학생인 제가 공문을 쓸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정부 문서24로 공문을 작성해 보내고, 관련 단체에 이메일도 보냈어요.
그런 노력 끝에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긍정적인 답을 주셨고, 지역의 여러 '꿈드림' 지원센터가 홍보를 도와주셨습니다.
저희가 진행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인사이드 아웃'이었어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후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굿즈를 만들어 플리마켓에서 판매해 보기도 했고요.
이 과정에서 제가 든 생각은, 이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생각 이상으로 잘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직접 상품을 만들어 플리마켓 참여를 신청하고 개인 사업자 등록까지 한 친구도 있었어요.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난 친구들이죠.
벗어난 이유는 제각기 달랐지만, 모두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제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의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요.
그런데도 '학교 밖 청소년'에게 씌워진 사회적 프레임은, 이 아이들이 미래로 힘차게 나아갈 때 오히려 발목을 잡는 두려움이 되곤 합니다.
학교는 '더 나은 나'를 준비하는 공간이어야

학교가 다양한 아이들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학교가 그 다양한 아이들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는 공간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학교는 '더 나은 대학'이 아니라 '더 나은 나'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어디서든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배움의 형태를 존중하는 동시에, 공공기관으로서 학교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시간은 약 2,280일 정도라고 합니다.
그 2,280일이 앞으로 2만 8천 일이 넘는 인생을 좌우한다면, 우리의 배움과 그 배움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제가 서울런 멘토단에서 처음 만났던 멘티와 같은 고민을 하는 아이가, 더는 우리 사회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 배워야 하는 건, 상위 대학 입시를 위해 거쳐 가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조다인이었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