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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해도 늦을까요?" 60대에 다시 열린 인생 —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도약할 수 있다, 백정림 박사 이야기 | 세바시 2047회

2025. 12. 3. | 세바시 2047회 | 백정림 (서울특별시 명예시민학위 제1호 박사)

 

 

혼자가 아닌 함께 할 때 도약할 수 있다 | 세바시 2047회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이 이토록 낯설 줄 몰랐습니다. 언어도 유머도 일상의 작은 것들까지 다시 배워야 했고, 집 밖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웠던 백정림 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서울시민대학에서의 배움과 '함께'한 커뮤니티였습니다. 시민 학사·석사·박사를 거쳐 다문화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 도약은 거창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가 함께할 때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옮깁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태어난 땅이 낯설어진 날
2. 집 밖이 두려웠던 나를 바꾼 것 — 서울시민대학
3. 혼자에서 '함께'로 — 커뮤니티를 만들다
4. 새벽 2시의 전화 — 내 질문이 된 한 사람
5. 선주민을 위한 다문화 프로그램
6. 도약은 '함께'할 때 온다

 

 

백정림 · 혼자가 아닌 함께 할 때 도약할 수 있다 (세바시 ‘서울 자랑회’)
백정림 · 혼자가 아닌 함께 할 때 도약할 수 있다 (세바시 ‘서울 자랑회’)

 

 

태어난 땅이 낯설어진 날

 

여러분 중에 혹시 문화 충격을 경험하신 분 있으신가요?

저는 '역(逆)문화 충격'의 경험자입니다.

오랜 외국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받은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저는 '이제 언어로는 스트레스 안 받겠구나' 했는데, 웬걸요.

못 알아듣는 단어가 너무 많은 거예요.

신조어에 줄임말까지.

사실 저는 '조폭'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 말이 나올 때마다 어리둥절했어요.

TV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식구들은 어느 구간에서 다 같이 웃는데, 저는 웃음이 나오질 않았어요.

웃기는커녕 울고 싶었습니다.

버스를 타면 카드를 엉뚱한 곳에 태그해서 당황했고, 저만 당황한 게 아니라 기사님들도 당황하셨죠.

언어도, 유머 코드도, 모든 시스템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이 땅이 낯선 땅이 되어 있었어요.

집 밖으로 나오는 게 두려웠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집 밖이 두려웠던 나를 바꾼 것 — 서울시민대학

 

그런 제가 지금은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서 제 이야기를 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의를 합니다.

무엇이 저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까요?

사실 저는 쉽게 지치는 사람이라 틈만 나면 누울 자리를 찾곤 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끈기 있게 잘하는 게 하나 있어요.

흥미 있는 분야의 강의를 듣는 것입니다.

역문화 충격에서 벗어나 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서울시민대학의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어요.

과제도 없고, 온라인 수강도 가능하고, 무료 강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공부 편식이 아주 심한 사람인데, 제가 원하는 것만 자유롭게 골라 들을 수 있어 딱 맞았어요.

열심히 듣다 보니 수료 시간이 어느덧 100시간이 넘어 '시민 학사'를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좋아하는 강의만 골라 듣다 보니 '시민 석사'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좋아하는 강의만 골라 듣다 보니 '시민 석사'가 되었습니다

 

또 열심히 공부해 200시간이 넘자 논문을 쓸 기회가 생겼고, 그 논문이 통과되어 '시민 석사'가 되었습니다.

 

혼자에서 '함께'로 — 커뮤니티를 만들다

 

그러던 차에 시민대학에서 커뮤니티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봤어요.

'내가 이 문화 수업을 살려 커뮤니티를 해볼까?' 싶었죠.

그런데 커뮤니티를 하려면 멤버를 모아야 하는데, 저는 친구도 없었고 같은 수업을 듣는 분들도 잘 몰랐습니다.

가만히 보니 수업 시간에 자꾸 마주치는 분들이 있었어요.

같은 취미와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었죠.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문화를 주제로 커뮤니티를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시간이 없어 안 된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선뜻 응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서울시민대학의 다문화 이해 커뮤니티 활동이 시작됐어요.

커뮤니티 구성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선생님, 처음엔 말도 없고 쌀쌀맞아서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 하셨는데, 이렇게 몇 년째 함께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제가 그만큼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 커뮤니티는 한 달에 두 번 모여 다른 나라의 문화를 연구하고, 그 내용으로 시민대학에서 학습자를 모집해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많게는 60분 넘게 오셔서 오전반·오후반을 나누기도 해요.

그렇게 활동하며 수강 시간이 300시간을 넘었고, 다문화를 주제로 '시민 박사'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벽 2시의 전화 — 내 질문이 된 한 사람

 

박사 논문의 방향을 고민하던 차에, 저는 평생 잊지 못할 한 통의 전화가 떠올랐습니다.

새벽 2시에 전화가 울렸어요.

제가 한국어를 가르쳤던 외국인 근로자였는데, 거의 울다시피 "선생님, 나 이 공장에서 일 못 해요" 하더군요.

사연은 이랬습니다.

같이 일하는 반장님이 무슬림인 이 친구를 속여서 돼지고기를 먹였다는 거예요.

이 친구는 평소 반찬도 가리고,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기도하러 가야 했는데, 그런 일로 갈등이 있었답니다.

반장님은 "돼지고기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데 그깟 일로 유난이다"라고 했다더군요.

저는 전화를 받고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참고 일해 봐"라는 말도, "다른 공장 알아보자"는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다음 날 만난 사장님은 "장난으로 한 건데 별일 아닌 걸로 회사를 그만둘 순 없다"고 하셨고, 그 친구는 그날로 아무 말 없이 공장을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니면 불법 체류자가 되었을까요?

그 친구의 소식을 저는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그깟 일', '별일 아닌 일', '장난으로 한 일' — 이런 대부분의 일들이 타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때부터 한 가지 질문이 저를 떠나지 않았어요.

"다문화 프로그램을, 이주민이 아니라 우리 선주민 성인에게 하면 어떨까?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먼저 이해한다면?"

이 질문이 제 박사 학위 논문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선주민을 위한 다문화 프로그램

 

 

박사 논문 — "성인 선주민의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박사 논문 — "성인 선주민의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제 논문은 '성인 선주민의 다문화 수용성 제고를 위한 평생교육 다문화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것입니다.

다문화 수용성이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다른 문화에 개방적이고 이주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 — 나아가 편견과 차별 없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저는 커뮤니티 공유 프로젝트로 지역 주민들에게 여러 나라의 문화를 소개합니다.

이슬람 문화 시간에는 히잡 같은 모자를 함께 만들고 써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인도네시아 시간에는 전통 손염색 '바틱'과 우리 자수의 문양을 비교하며 우리의 정체성도 돌아봅니다.

호주를 배울 때는 그 나라가 어떻게 다문화 사회가 되었는지, 어떤 갈등과 노력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는 어떤 다문화 사회가 되어야 할지'를 팀을 나눠 토론합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연결되었습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연결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참여자 평가를 받는데, 이번엔 5점 만점에 4.9점을 받았어요.

신나죠?

참여자분들은 "다문화와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인식이 많이 유연해지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변화가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저의 끈질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순간입니다.

 

도약은 '함께'할 때 온다

 

여러분, '도약'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저는 이 강연 의뢰를 받고 제일 먼저 사전을 찾아봤어요.

 

'도약'의 두 가지 뜻 — 몸을 위로 솟구치는 일, 그리고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것
'도약'의 두 가지 뜻 — 몸을 위로 솟구치는 일, 그리고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것

 

'몸을 위로 솟구치는 일', 그리고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것'.

생각만 해도 거창하죠.

엄청난 노력과 불굴의 의지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도약의 순간은, 그저 보통의 존재인 우리가 모여 함께 배우고 경험한 데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도약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시민대학이라는 든든한 장,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지지, 그리고 함께 배우고 고민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죠.

여기 오신 여러분에게도 저마다의 질문이 있을 겁니다.

그 답을 찾는 도약의 순간을 위해, 누군가는 책 속으로, 누군가는 사유와 성찰로, 또 누군가는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잊지 마세요.

서울시민대학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함께 배우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시도해 보세요.

어쩌면 그곳에서 여러분의 도약의 순간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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