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4. | 세바시 2048회 | 박세미 (개그우먼)
10년 무명을 끝내고 '서준맘'으로 최고의 정점을 찍은 개그우먼 박세미. 하지만 그 황금기 속에서 그녀는 머리도 감지 않고 일주일 내내 방에 틀어박혀 술만 마실 만큼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꿈을 이룬 순간 왜 극한의 절망을 느꼈을까요? 넘어질 때마다 더 강해져서 벌떡 일어나는 '혼자 일어서는 근육' — 그 세 가지 비밀을 솔직하게 풀어놓습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대한민국을 흔든 '서준맘', 그런데 저는 무너져 있었습니다
2. 황금기에 찾아온 극한의 절망
3. 가난이 준 최고의 선물 — 혼자 일어서는 근육
4. 10년 무명, 알바생 박세미 — 슬퍼하되 다음을 준비하기
5. 잘 일어나는 3가지 근육
6. 100번 쓰러져도 괜찮습니다 — 문제는 머무는 것

대한민국을 흔든 '서준맘', 그런데 저는 무너져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개그우먼이자 희극인 박세미입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대부분 '서준맘'으로 알고 계실 거예요.
피식대학이라는 유튜브 채널, 다들 한 번쯤 보셨죠?
서준맘은 신도시에 사는 30대 젊은 엄마예요.
고깃집을 운영하는 남편과 아들 서준이를 키우는데, 정도 많고 오지랖도 넓고, "어머~", "아이러뷰예요~" 같은 톡톡 튀는 유행어를 하는 캐릭터죠.

"저 여자 우리 동네에도 무조건 있어!" 하실 만큼 현실의 젊은 엄마들과 똑같다며 정말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셨어요.
맘카페에서 어찌나 유명했던지, "누가 연기하는 거냐", "실존 인물이냐"고 궁금해하는 분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 완전한 미혼입니다.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어요.
사실 그전에는 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방송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캐릭터가 대히트를 쳤습니다.
지구까지는 아니고, 대한민국을 살짝 흔들어 봤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히트를 쳤던 바로 그 시간에 무너져 있었습니다.
황금기에 찾아온 극한의 절망
믿기지 않으시죠?
그렇게 밝은 여자가, 너무나 행복한 그 순간에 무서운 절망을 경험했어요.
서준맘으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 하루 3~4시간밖에 못 잘 만큼 바빴고, 그 유명한 라디오스타에도 나갔습니다.
유튜브 조회수가 250만 뷰를 넘었고, 신인인 제가 감히 스페셜 MC까지 했어요.
그러다 연말에 딱 일주일 휴일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일주일 동안 머리도 감지 않고 방 안에서 술만 마셨어요.
밥도 먹고 싶지 않고, 나가고 싶지도 않고, 정말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쉬라고 일주일을 통째로 비워주셨는데, 저는 그 공백을 견뎌내지 못한 거예요.
갑자기 시간이 텅 비어버리니, 머릿속엔 "올해 진짜 바빴고 잘했는데, 내년에도 이만큼 할 수 있을까?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커튼을 다 치고 밤인지 낮인지도 모른 채, 울다 자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우울감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이야기하려고 이 무대에 섰어요.
가난이 준 최고의 선물 — 혼자 일어서는 근육
저는 어릴 때부터 제 힘으로 용돈을 벌며 컸어요.
집안 형편이 너무 안 좋아서 아르바이트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돈을 정말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있었어요.
키우던 강아지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더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데 수술비가 100만 원이었습니다.
집안 돈을 다 털어도 그 돈을 마련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스물세 살이었는데, 깨달았죠.
'나, 빨리 돈 벌어야겠다.'
짐을 싸니 김장 봉투 두 개가 나오더라고요.
보증금도 없어서 여러 사람 집에 얹혀살며 일했습니다.
집도 돈도 없고, 가족이 도와줄 상황도 아니었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혼자 일어서야죠.
김장 봉투 두 개로 시작한 제가, 12년 전 이사할 땐 트럭 서너 대가 왔습니다.
이 가난했던 경험이 저에게 준 건, 바로 '혼자 일어날 수 있는 힘'이었어요.
누가 손을 잡아줄 수 없으니 스스로 일어나야 했고, 그래서 저는 지금 어떤 일로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크게 믿습니다.
이미 여러 바닥에서 제 두 발로 일어나 봤으니까요.
어려운 가정 환경이 제게 준 최고의 선물, 그것이 바로 이 '혼자 일어서는 근육'입니다.
10년 무명, 알바생 박세미 — 슬퍼하되 다음을 준비하기
스물세 살부터 개그맨 공채 시험을 정말 열심히 봤어요.
10년을 넘게, 1년에 한 번뿐인 그 시험을요.
그런데 죽어라 해도 안 붙더라고요.
10년 동안 제 꿈은 '개그우먼 박세미'였지만, 현실은 '알바생 박세미'였습니다.
한번은 아르바이트 중에 합격 발표를 봤는데, 서류 1차에서 떨어졌다는 거예요.
1년을 준비했는데 개그를 보여주지도 못하고요.
손님 앞에서 숨도 못 쉬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저, 울면서 뭘 했는지 아세요?
극장 오디션을 알아보면서 걸었어요.
"이제 어디서 또 준비하지?" 하면서요.
그렇게 또 극장에 들어가 혼자 코너를 짜고 준비했어요.
팀을 짤 수가 없었거든요.
아르바이트로 교통비와 월세를 벌어야 했으니, 팀원들과 시간을 맞출 수 없었죠.
제가 해본 아르바이트만 50가지가 넘어요.
그래도 '난 평생 알바만 하는 팔자야'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좀 설레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유명해져서 세바시 나가면 이 이야기 꼭 해야지" 하고요.
그게 제 '일어나는 근육'이었어요.
넘어지되 빠르게 일어나는 것, 힘껏 슬퍼하되 동시에 다음을 준비하는 것.

얼마 전까지 저는 SBS 라디오에서 DJ를 맡았어요.
수없이 떨어지던 제 사진이 SBS 로비에 대문짝만하게 걸렸을 때,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달콤함에 속지 않았어요.
'이것도 언젠가 끝이 나겠지' 하는 생각을 계속했죠.
정말로 하차하게 됐을 때, 저는 오열할 줄 알았는데 울지 않았어요.
이미 그다음 단계를 밟고 있었거든요.
하차를 상상하며 새 콘텐츠를 기획해 두고, 다음 일을 미리 구상해 둔 거예요.
이게 제가 요새 키우는 근육이에요.
좋은 시간이 올 때부터 미리 안 좋을 때를 대비하는 근육.
잘 일어나는 3가지 근육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어려운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잘 일어날까요?
제가 발견한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생각에서 빠져나오기'.
안 좋은 생각이 몰려올 때 그 생각에만 갇혀 있으면 안 돼요.
저는 그냥 소리를 지르고 움직이고, 뭐든 다른 행동으로 전환합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생각의 고리를, 무한 루프를 끊어내는 게 첫 번째 근육입니다.
두 번째, '설레임을 만들기'.
작은 것에 설렘을 느끼는 거예요.
어릴 때 소풍 가기 며칠 전부터 설레던 것처럼요.
"이번 주 토요일엔 소곱창 먹을까?" 약속을 잡아두고, 술을 좋아하지만 일주일을 딱 참습니다.
이 작은 설렘이 하루를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고, 조금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요.
세 번째, '15분의 법칙'.
이게 가장 실질적이에요.
무너지고 싶을 때, 침대에서 나오기 싫을 때 저는 '딱 15분만 움직이자' 생각해요.
15분만 샤워하자, 15분만 설거지하자.
그러면 '이제 밥이나 먹을까', '뭘 해볼까'로 이어지더라고요.
일주일 동안 술만 마셨던 건 이 법칙을 몰라서였어요.
이제는 압니다.
15분이 시작점이 된다는 걸.
마음이 바닥을 칠 때도 '15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견디기가 조금 쉬워집니다.
100번 쓰러져도 괜찮습니다 — 문제는 머무는 것
사람이 계속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저도 지금까진 잘 일어났지만, 앞으로 어떤 극단적인 시련이 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일 없을 거야, 난 강하니까'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큰일을 만나면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게 돼요.
그럼 일어나기 어렵죠.
오히려 '쓰러지는 일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리 그때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불안해하면서도 동시에 '그땐 이렇게 해야지' 준비하는 거예요.

소리를 질러 나쁜 생각을 떨치고, 작고 확실한 설렘을 만들고, 15분이면 내 세상이 바뀌는 걸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벌떡벌떡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우리 다리를 걸고 넘어뜨려도, 바짓가랑이를 잡아도 벌떡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근육을 함께 키워봐요.
혹시 지금 쓰러져 있는 분이 계셔도 괜찮습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100번도, 1,000번도 쓰러져도 됩니다.
문제는 거기에 머무르는 거예요.
딱 15분만, 일어나서 움직여 보는 거예요.
그 시간이 모여 우리 인생이 됩니다.
지금까지 박세미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