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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슛이 들어갔다면 오히려 더 빨리 은퇴했을 거예요" 비난받던 2010 월드컵 그 슛에서 845경기까지 — 이동국이 전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의 힘 | 세바시 2050회

2025. 12. 8. | 세바시 2050회 | 이동국 (전 축구선수,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 저자)

 

 

23년, 845경기, 344골보다 중요했던 일 | 세바시 2050회

 

 

2010년 월드컵, 전 국민에게 비난받던 그 슛. 가장 빛나야 할 순간마다 찾아온 부상과 서른 살의 방출 통보까지. 모두가 끝났다고 말할 때, 이동국 님은 어떻게 다시 일어나 845경기를 뛰었을까요?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 — 화려한 기록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 흔적으로 채운, 과정의 힘에 관한 고백을 옮깁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그 슛이 들어갔다면? — '전설의 오리슛', 그 주인공
2. 욕먹는 자리, 그리고 845경기
3. 월드컵 두 달 전의 무릎 — "너의 자리는 없다"
4. 서른, 방출 통보 — 그리고 전북 현대
5. 서른아홉, 다시 부른 대표팀 — 2분의 박수
6.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 — 다음 날 운동화를 신는 것

 

 

이동국 · 23년, 845경기, 344골보다 중요했던 일 (세바시)
이동국 · 23년, 845경기, 344골보다 중요했던 일 (세바시)

 

 

그 슛이 들어갔다면? — '전설의 오리슛', 그 주인공

 

안녕하세요, 이동국입니다.

예전엔 잠시 '대박이 아빠'로 불린 적도 있지만, 제 직업은 오랫동안 하나였습니다.

골로 증명하는 축구 스트라이커였죠.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대한민국-우루과이 1:2로 지고 있던 그 순간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대한민국-우루과이 1:2로 지고 있던 그 순간

 

많이들 아시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 1 대 2로 지고 있던 상황.

마침 저에게 결정적인 찬스가 왔어요.

골키퍼와 1대 1.

매일 밤 자면서 상상하고 이미지 트레이닝하던 바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왔다!' 하고 슛을 했죠.

하지만 그날 비가 내려 운동장이 젖어 있었고, 공이 천천히 굴러가다 골키퍼 다리 사이는 빠졌지만 수비수가 걷어냈어요.

그 순간 제 머릿속엔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아, 이제 한국 못 들어간다.'

솔직히 이 장면을 보고 욕 안 하신 분은 없을 거예요.

네, 그 '전설의 오리슛'의 주인공이 바로 접니다.

 

욕먹는 자리, 그리고 845경기

 

축구 대표팀 스트라이커는 원래 욕을 많이 먹어요.

잘하면 환호받지만 못하면 온 국민이 질타하죠.

아마 역대 스트라이커 중 공개적으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선수가 저일 겁니다.

제 시대부터 인터넷이 생겼고, 23년이나 했으니까요.

 

골로 증명하던 대한민국 축구 대표 스트라이커
골로 증명하던 대한민국 축구 대표 스트라이커

 

그런데 그걸 너무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어요.

스트라이커의 연봉에는 '비난의 값'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욕먹을 각오까지 값으로 쳐서 받는 자리구나' 하고요.

저는 스무 살에 프로로 데뷔해 마흔두 살까지, 23년간 공식 경기 845경기를 뛰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아무리 잘해도 프로에 가는 건 극히 드물고, 가더라도 15년씩 버틴 선수들과 경쟁해야 해요.

1년 만에 나오는 선수도 많죠.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 베스트 일레븐으로 한 해 40경기씩 20년을 뛰어야 845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돌이켜 보면 제 인생을 만든 건 잘나가던 순간도, 무너졌던 순간도 아니라 — 그 다음 날 아침이었어요.

화려한 다음 날에도, 무너진 다음 날에도 저는 다시 운동화를 신고 훈련장에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래 버티는 사람'이 되어 있었죠.

 

월드컵 두 달 전의 무릎 — "너의 자리는 없다"

 

2002년 월드컵에 합류하지 못했기에, 2006년을 준비하며 4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몸 상태도 경기력도 제 인생 최고의 시기였죠.

그런데 월드컵을 두 달 남긴 시점, 1 대 0으로 앞선 85분에 보통은 포기할 긴 볼을 저는 '잡을 수 있다'며 뛰어갔어요.

방향을 트는 순간 무릎에서 '뚝' 하는 소리가 제 귓속에 들렸습니다.

독일로 가 진단을 받았어요.

닥터가 한참 얘기하더니 마지막에 말했죠.

"미안하다.

이번 월드컵에 너의 자리는 없을 것 같다.

수술이 불가피하다.

너의 눈이 너무 간절해서 바로 말해줄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4년의 노력이 필름처럼 지나갔어요.

그날 밤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을 만큼 울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창밖엔 해가 떠 있고 세상은 잘 돌아가는데 —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인정하자' 싶었어요.

'경기를 뛰었다면 1년짜리 더 큰 부상이 왔을 수도 있어.

6개월 부상이면 오히려 다행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6개월이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진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구나.

후회 없이 준비하면 어떤 결과가 와도 받아들일 수 있구나.

 

서른, 방출 통보 — 그리고 전북 현대

 

부상에서 복귀해 잠깐 영국 무대를 거쳐 K리그로 돌아왔는데, 어느 겨울 휴가 중 감독님께 전화가 왔어요.

"나이 든 선수들은 다른 팀을 알아봐야겠다." 서른 살, 정말 자존심이 상했죠.

계약이 1년 남아 그냥 벤치에서 연봉을 받는 길도 있었지만, 저는 새 팀을 찾는 쪽을 택했습니다.

 

서른이 되던 해, 연봉을 낮추고 전북 현대에 입단하다
서른이 되던 해, 연봉을 낮추고 전북 현대에 입단하다

 

그렇게 간 곳이 전북 현대예요.

그때 전북은 지금처럼 화려한 팀이 아니라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솔직히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의심도 했죠.

그런데 최강희 감독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지금 경기력이 떨어졌을 순 있어도, 난 네가 지금까지 해온 걸 알아.

그건 네 몸속에 있는 거야.

내가 그걸 끄집어내 줄게."

누군가 나를 믿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동계 훈련 연습 경기 10경기에서 한 골도 못 넣어 감독님 표정이 어두웠지만, 시즌 첫 홈경기부터 골이 터졌고 그해 22골로 K리그 득점왕, 전북의 첫 우승컵을 안겼습니다.

저를 방출했던 구단 관계자들까지 축하 전화를 해줬어요.

그때 몸으로 배웠습니다.

위기가 와도 다시 일어날 용기가 있다면, 세상은 기회를 계속 준다는 걸요.

 

서른아홉, 다시 부른 대표팀 — 2분의 박수

 

전북에서 다섯 번을 더 우승하며 왕조 시대를 보내고, 통산 200득점을 넘기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던 어느 날 —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여름, 대표팀 감독님께 전화가 왔어요.

"동국아, 네가 좀 와줘야겠다."

10년 전 "나이 든 선수는 다른 팀 알아봐라" 하셨던 그 감독님이, 서른아홉이 된 저를 다시 찾은 거죠.

"예선을 통과해도 본선에 데려간다는 보장은 없다"고 하셨어요.

저는 결심했습니다.

열아홉에 프랑스 월드컵에 어린 유망주로 나갔던 것처럼, 이제 서른아홉의 제가 후배들에게 그 경험을 만들어 줄 차례라고요.

'예선까지가 내 임무라면, 하고 빠져주자.'

 

서른아홉 살 대표팀 선수에게 찾아온, 최고의 함성과 박수
서른아홉 살 대표팀 선수에게 찾아온, 최고의 함성과 박수

 

한 경기라도 지면 탈락인 상황, 홈에서 이란전 경기 종료 2분 전에 교체 투입 지시가 떨어졌어요.

'39살 베테랑을 2분 뛰게 한다고?

이러려고 불렀나' 싶어 입이 나오기도 했죠.

그런데 라인에 서서 들어가려는데, 제가 축구하며 받아본 함성 중 가장 열정적인 박수가 쏟아졌어요.

'여기서 가장 나이는 많아도, 가장 에너지 넘치는 선수가 되자'며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그건 '이동국'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다한 사람에게 보내주는 박수였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아니라 무대를 지탱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제가 편안해졌습니다.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 — 다음 날 운동화를 신는 것

 

사람들은 지금도 물어요.

"그때 그 슛이 들어갔다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저는 답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그 골을 넣었다면 더 빨리 은퇴했을 거예요."

결국 그때의 실패들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배운 게 하나 더 있죠.

인생에는 '결과를 아는 선택'은 없다는 겁니다.

좋은 선택이라고 꼭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어떤 결과가 오든 그 결과에 부끄럽지 않은 것, 그러려면 과정이 좋아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어떤 결과 앞에 서 있든, 그 결과가 여러분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다시 나아가는 마음이죠.

845경기라는 숫자는 화려한 기록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 흔적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각자의 경기장에서 살아가고 계실 거예요.

결과를 미리 알 순 없지만, 최선을 다한 과정이 모이면 그것이 결국 여러분의 커리어가 됩니다.

결과가 늘 제 뜻대로 되진 않았지만, 다음 날 운동화를 신는 건 언제나 '나의 선택'이었어요.

저는 그 선택을 23년 동안 반복했습니다.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여러분의 방식으로 끝까지 뛰어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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