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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게 내 무기였어요" 똥개 밥주던 시골 소년에서 K힙합 대세로 — 머쉬베놈이 전하는, 세상에 먹히는 나만의 '멋' 찾는 법 | 세바시 2049회

2025. 12. 5. | 세바시 2049회 | 머쉬베놈 (래퍼)

 

 

세상에 먹히는 나만의 ‘멋’ 찾는 법 | 세바시 2049회

 

 

어릴 적 시골에서 자유분방하게 뛰놀던 마음 그대로, 남들보다 조금 느리고 구수한 자기 색깔을 지켜온 래퍼 머쉬베놈. 놀림받던 충청도 목소리를 오히려 무기로 바꾸고,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 하나로 K힙합 대세가 되기까지. 촌스러움을 인정한 순간 비로소 나아갈 수 있었다는, 있는 그대로의 '멋'을 찾는 이야기를 옮깁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멋이 밴 놈', 독버섯 소년 — 남들과 반대로 가던 아이
2. 공주 시골에서 몸에 밴 '구수함'
3. 놀림받던 목소리를, 무기로
4. 용접공에서 래퍼로 — '확신'을 얻은 순간
5. "이것저것 다 해봐라" — 일단 발 담그기
6. 오리지널리티와 자기 확신 — 있는 그대로의 '멋'

 

 

머쉬베놈 · 똥개 밥주던 시골 소년에서 K힙합 대세로, 세상에 먹히는 나만의 ‘멋’ 찾는 법 (세바시)
머쉬베놈 · 똥개 밥주던 시골 소년에서 K힙합 대세로, 세상에 먹히는 나만의 ‘멋’ 찾는 법 (세바시)

 

 

'멋이 밴 놈', 독버섯 소년 — 남들과 반대로 가던 아이

 

안녕하세요, 여러분.

머쉬베놈입니다.

이름이 좀 특이하죠?

어릴 때부터 뭔가 '멋이 배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에요.

한국어로만 하긴 좀 간지가 안 나서 영어를 섞어 '머쉬베놈(멋이 밴 놈)'으로 지었습니다.

어렸을 때 또 다른 별명은 '독버섯'이었어요.

왜인지 저는 늘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주변에선 "쟤 좀 튄다,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걸 할 때, 저는 뭔가 좀 다른 걸 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저는 늘 남들 가는 길의 반대로 갔던 것 같아요.

 

공주 시골에서 몸에 밴 '구수함'

 

저는 태어나자마자 공주 유구의 할아버지·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친구들은 못 겪어본 걸 정말 많이 겪었죠.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유년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유년 시절

 

요강에 일을 보고, 옛날 '똥간'도 써보고, 소·돼지·토끼·개까지 안 키워본 동물이 없어요.

저는 그게 다 당연한 줄 알았어요.

시골엔 산불이 많아서, 할아버지가 '산불 조심' 팀 리더로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셨는데, 두세 살 무렵의 저를 그 뒤 노란 배달 바구니에 묶어 태우고 유구 시내를 누비셨어요.

인사도 다니고 고스톱도 치러 다니시고요.

오일장의 엿장수, 품바 아저씨들을 늘 봤고, 제가 처음 들은 노래도 트로트였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러운 '구수함'이 그때 제 몸에 뱄던 것 같아요.

 

놀림받던 목소리를, 무기로

 

초등학교에 갈 무렵 대전 신탄진으로 이사했는데, 거기서 제 목소리와 구수한 말투 때문에 정말 많이 놀림을 받았어요.

공주에선 그런 게 하나도 없었는데 자꾸 놀리니까 처음엔 서러웠죠.

그런데 신기한 게, 처음 본 사람도 다음에 만나면 또 제 목소리로 놀리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이 목소리가 사람들 기억에 남는구나."

그래서 생각했죠.

'기억에 남는 이 목소리로 랩을 해보면 어떨까?'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의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 장면에 꽂혀서, 충청도를 섞어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라는 곡을 두세 시간 만에 만들었어요.

그게 제 데뷔곡입니다.

같이 하던 동생들이 제 노래를 듣고 처음으로 박장대소를 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재밌어서 만든 건데요.

무명 8년 차에, 제 단점이라 여겼던 걸 장점으로 바꾼 순간이었습니다.

 

용접공에서 래퍼로 — '확신'을 얻은 순간

 

저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마이스터 고등학교 용접과를 나왔어요.

졸업 후엔 천안의 괜찮은 중견기업에 취직해, 2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기숙사 생활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 창밖의 달을 보는데, 취업 전에 버스킹하며 사람들 앞에서 랩하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문득 스쳐 간 생각, "아, 내가 이걸 해야겠구나!"
문득 스쳐 간 생각, "아, 내가 이걸 해야겠구나!"

 

그때 확실히 느꼈습니다.

'아, 내가 이걸 해야겠구나.'

취직도 해보고 용접도 해봤기에 — 양쪽을 다 겪어봤기에 — 저는 비로소 이걸 선택할 수 있었어요.

무언가를 '안 해봐서' 막연히 동경하는 게 아니라, 직접 해보고 비교했기에 확신이 생긴 거죠.

 

"이것저것 다 해봐라" — 일단 발 담그기

 

친구들은 아직도 제게 "넌 어떻게 하고 싶은 걸 찾았냐"고 물어요.

그럼 저는 늘 이렇게 답합니다.

"이것저것 다 해봐라.

발이라도 한번 담갔다 빼봐라."

 

다양한 경험이 주는, 다양한 선택지
다양한 경험이 주는, 다양한 선택지

 

두렵더라도,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싶어도 일단 해보세요.

어차피 리스크는 자기가 거는 거니까요.

해보다 보면 신기하게, 밤을 새워도 계속 하게 되는 일이 있어요.

그리고 대충 했는데도 "너 잘한다"는 칭찬을 더 받는 일이 있죠.

그게 한두 번 쌓이면 '어,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거구나'로 바뀝니다.

제겐 그게 랩이었어요.

사람도 많이 겪어보는 게 중요해요.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알고 보니 진국인 친구들이 있거든요.

제 곡 '보자 보자', '가다'도 다 친구들과 통화하며 나눈 말장난에서 나왔습니다.

돈은 정말 없었지만, 없었기에 더 부딪힐 수 있는 절실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판사판, 다 부딪혀 봤습니다.

 

오리지널리티와 자기 확신 — 있는 그대로의 '멋'

 

저는 오리지널리티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누가 썼던 단어나 비슷한 플로우·라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예 쓰지 않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고, 트로트를 듣고, 구수하게 살아온 제 배경을 그대로 가져갔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해 주기 시작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

 

꾸며진 모습 말고, 고유의 자기 자신만이 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사실 저보다 랩 잘하는 친구도, 키 크고 잘생긴 친구도 정말 많아요.

쇼미더머니 준우승 때도 처음엔 아무도 저를 우승 후보로 안 봤죠.

하지만 '촌스럽다'는 말에 저를 놓아버렸다면, 지금의 머쉬베놈은 없었을 거예요.

제가 잘되기 시작한 출발점은, "나는 구수하고 촌스러운 사람이다"라는 걸 인정한 순간이었습니다.

나를 아는 순간,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요.

여러분 인생의 주인공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만의 곤조와 철학, 그리고 '멋'을 꼭 찾으면서, 앞으로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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