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0. | 세바시 2056회 | 양재현 (귤메달 대표)
3대째 귤 농사를 짓는 집에서 자랐지만, 그래서 오히려 귤을 외면하고 싶었던 청년이 있습니다. 홈쇼핑 MD로 서울 생활을 하던 그는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제주로 돌아와 다시 귤과 마주합니다. 징글징글하게 흔하다고 여겼던 그 귤이 어떻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을까요. 너무 가까워서 보지 못했던 내 안의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3대째 귤 농사, 그 흔한 귤이 무기가 되기까지
2. 제주를 떠나고 싶던 청년, 아버지의 쓰러짐
3. 30여 종의 귤, 치명적 단점이 가능성이 되다
4. 귤을 '시트러스'로, 다양성을 브랜딩하다
5. 더현대·유니클로·해외 어워드, 공감의 증명
6. 가장 익숙한 소재에서 한 끝 차이를

📖 3대째 귤 농사, 그 흔한 귤이 무기가 되기까지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에서 귤로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귤메달이라는 브랜드의 대표 양재현입니다.
저는 원래 제주의 귤보다는 콘텐츠나 패션, 뷰티에 더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귤메달을 시작하기 전에는 홈쇼핑 MD로서 매일 고객 앞에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는 일을 했습니다.

매일 치열하게 생방송으로 상품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멘트에 반응하는지 시시각각 살피고 고민했습니다.
무척 힘들었지만 짜릿한 도파민을 느끼며 정말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귤을 팔다가, 오늘 이 자리까지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 집은 3대째 귤 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봐왔기에 오히려 피하고 싶었고, 그것을 업으로 삼는다면 저조차 흔한 사람이 될 것 같아 무서웠던 바로 그 귤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징글징글했던 귤이 어떻게 저의 특별한 무기가 되었을까요.
저는 오늘 너무 가까워서 못 봤던 내 안의 스토리에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 제주를 떠나고 싶던 청년, 아버지의 쓰러짐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제주에서 벗어나 육지로 가고 싶다,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갔고,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원하던 직장까지 얻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꿈을 이뤄가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지시면서 저는 제주도로 내려오게 됐고, 다시 귤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제주로 내려온 초반에는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물론이고, 매년 스승의 날마다 연락드렸던 은사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스승의 날마다 전화를 드리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저를 대견해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주에 내려왔다고 말씀드리면 왜 왔느냐고, 서울에 있으라 하지 않았느냐고 하실 것 같았습니다.
안 그러실 수도 있지만 저는 스스로 작아졌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옆 동에 사시는데도 아직 전화로는 서울에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에 돌아온 몇 년은 제 자존심과 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기존에 가진 것과 새롭게 얻은 관점이 만났을 때 어떤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는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 30여 종의 귤, 치명적 단점이 가능성이 되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귤로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귀포에서 귤 농장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귤 농장집 아들인 저조차 몰랐을 정도로, 제주도에는 정말 많은 귤 품종이 있었습니다.

카라향, 황금향, 신비향, 홍매향, 윈터 프린스.
각자 이름도 다르고 맛도 다른데 사람들은 그냥 다 귤로만 알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는 귤 품종이 30여 종이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사업에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하 시기도 제각각이고 대량 출하도 안 되며, 품종 이름을 잘 모르시니 홍보를 하려 해도 그냥 고당도 귤이라고만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농가분들께 여쭤보니, 저마다 자기 집 품종이 맛있어서 단골이 많고 그분들이 매년 그것만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작년에 그 향으로 끝나는 귤이 맛있었는데 올해도 나오느냐, 서울에서는 그 맛을 찾을 수 없다는 전화가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 품종을 바꾸지 않고 계속 키우고 계셨습니다.
귤은 종류가 많아 일일이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오히려 내 입맛에 딱 맞는 귤을 찾았을 때 기쁨이 두 배가 됩니다.
입맛에 맞는 품종을 찾는 재미, 이것이 제주라는 섬이 쌓아온 귤만의 내러티브이자 히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귤을 '시트러스'로, 다양성을 브랜딩하다
그래서 저는 귤을 단일 단어가 아니라 시트러스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넓혀, 귤의 다양성이라는 콘셉트에 브랜드를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선보인 것은 귤의 다양성을 한 번에 보여주는 귤 샘플러였습니다.
귤 네 개를 한 개씩만 담아 당도, 산미, 향, 바디를 다르게 느낄 수 있게 한 작은 세트였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귤을 들어 맛을 비교하며 자기 입맛에 맞는 품종을 찾을 수 있게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카라향 주스, 황금향 주스, 윈터 프린스 주스 등 귤을 다양한 주스로 선보였습니다.
저장성이 좋으니 1년 내내 비교하며 먹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와인이나 원두처럼 품종, 당도, 산미, 바디가 모두 달라 품종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이라고 생각했고, 제게는 무척 큰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돌아오는 반응은 크지 않았습니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 귤은 그냥 겨울에 많이 먹는 국민 과일로 충분하다는 말씀이 많았습니다.
버티는 시간이 짧지 않았고, 정말 귤은 그냥 싸게 많이 파는 게 다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니, 한번 견뎌보자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어, 팀원들과 MBTI 검사처럼 귤 취향 찾기 게임도 만들고 품종별 굿즈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자 조금씩 신기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더현대·유니클로·해외 어워드, 공감의 증명
이러한 접근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귤을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콘셉트, 귤을 즐기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알아봐 주시고 연락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더현대 같은 유명 백화점에서 팝업 제안이 왔고, 올해는 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기업과 협업도 하게 됐습니다.
큰 상도 받고 해외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도 했으며, 투자자들의 응원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비즈니스가 잘된다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런 궁금함과 니즈에 공감한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이 작은 성취들은 제게 사업의 방향성을 확신하게 하고 추진력을 다시 얻게 해준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내 주변과 내 안에 있는 소재도 얼마든지 특별할 수 있고, 얼마나 고민하고 관찰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 가장 익숙한 소재에서 한 끝 차이를
저는 살면서 부족한 사람, 평범한 사람으로 느껴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주로 돌아왔을 때 가장 저를 괴롭힌 것은, 귤이라는 소재가 저까지 평범하게 보이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역설적으로 그 뻔하고 흔한 귤이, 한 끝 차이를 더했더니 이제는 가장 특별하고 강력한 무기가 됐습니다.
제주 사람으로서 어릴 때부터 봐온 귤의 다양함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고 새로운 가치로 확장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결국 나만 가진 무기를 어떤 한 끝 차이로 바라보느냐, 그 차이였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들 속에 각자만의 무기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당연하고 익숙한 소재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한 끝 차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 여러분의 세계는 전혀 다르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귤이라는 가장 익숙한 과일 속에서 나아갈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안에 숨어 있는 무기를 발견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고 도전하시도록 제가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양재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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