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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선, 배우로 성공하고도 비밀리에 감독이 된 이유 | 세바시 20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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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 27. | 세바시 2080회 | 구혜선 (배우·영화감독·작곡가)

 

 

너무 예쁘다는 말보다 자기애가 강하다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는 배우 구혜선. 그는 배우로 크게 성공한 순간에도 비밀리에 감독과 작곡가의 길을 걸었고, 자신이 만든 작품이 모두 실패한 것을 오히려 가장 잘한 일이라 말합니다. 긍정이 아니라 부정의 힘을 믿는다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흔들리는 시간을 견디는 전혀 다른 방식을 만나게 됩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우연히 배우가 되다, 진짜 꿈은 자립이었다
2. 성공 뒤의 공허, 비밀리에 20년간 만든 것들
3. 내가 만든 모든 작품이 실패했다, 그게 가장 잘한 일
4. 나는 부정의 힘을 믿는다
5. 비교하지 말라고요? 저는 철저하게 비교합니다
6. 헬기에서 뛰어내린 순간 알게 된 것

 

 

구혜선 배우 영화감독 작곡가 세바시 2080회 강연
구혜선 배우 영화감독 작곡가 세바시 2080회 강연

 

 

우연히 배우가 되다, 진짜 꿈은 자립이었다

 

근래에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쁘다는 말보다도, 저 사람은 자기애가 너무 강한 것 같다, 자기를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제가 어떻게 지금의 저로 살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습니다.

 

'하두리(HADURI)' 셀프카메라로 남긴 데뷔 초 시절의 사진들
'하두리(HADURI)' 셀프카메라로 남긴 데뷔 초 시절의 사진들

 

제가 저의 시간을 살기 시작한 것은 데뷔를 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시작한 뒤부터였습니다.

인터넷이 활발해지고 얼굴이 알려지면서 우연히 배우가 되었죠.

배우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저는 이것을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브이 포즈를 취한 배우 데뷔 무렵의 구혜선
도서관에서 브이 포즈를 취한 배우 데뷔 무렵의 구혜선

 

사실 제 꿈은 배우가 아니었습니다.

제 꿈은 자립하는 것이었어요.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비로소 제 삶을 스스로 세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배우가 되어 독립한다면 어쩌면 예술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성공 뒤의 공허, 비밀리에 20년간 만든 것들

 

감사하게도 저는 배우로 성공하는 작품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잘되고 나니 오히려 공허한 시간이 너무 컸습니다.

배우란 결국 남의 삶을, 내가 주체가 아닌 삶을 사는 일이고, 그 안에는 깊은 고뇌가 함께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구혜선을 스타덤에 올린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 포스터
구혜선을 스타덤에 올린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 포스터

 

 

배우로 성공한 뒤 찾아온 공허함을 털어놓는 구혜선
배우로 성공한 뒤 찾아온 공허함을 털어놓는 구혜선

 

게다가 배우는 굉장히 기다리는 직업입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캐스팅될 때까지 오매불망 기다려야 하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고립과 허무함이 희망과 낭만으로 피어오르는 시간, 곧 예술을 하는 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점점 풍성해졌으니까요.

 

5편의 단편·3편의 장편·광고까지 연출한 영화감독 구혜선의 촬영 현장
5편의 단편·3편의 장편·광고까지 연출한 영화감독 구혜선의 촬영 현장

 

 

50곡 이상을 직접 만든 작곡가 구혜선의 음악 목록
50곡 이상을 직접 만든 작곡가 구혜선의 음악 목록

 

저는 다섯 편의 단편 영화와 세 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고, 광고 감독이자 20년 차 제작자 겸 감독입니다.

게다가 50곡이 넘는 음악을 만든 작곡가이기도 하죠.

많은 분들이 저를 배우로만 알고 계셔서, 저는 이 모든 일을 20년 동안 비밀리에 해 왔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내가 만든 모든 작품이 실패했다, 그게 가장 잘한 일

 

이 모든 일은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었습니다.

배우로 한창 잘나가던 때였기에 주변에서는 다들 저를 말렸어요.

지금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왜 다른 일을 벌여 시행착오를 겪느냐는 것이었죠.

그럼에도 제가 배우로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저는 제가 만든 이 모든 작품이 다 실패했다는 사실이라고 답합니다.

만약 실패하지 않았다면 저는 제가 너무 잘났다고 여기며 오만하게 살고 있었을 거예요.

인생이 이렇게 고통스럽고 좌절로 가득하다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배우로서 정점을 찍던 시기에 선택한 창작의 길
배우로서 정점을 찍던 시기에 선택한 창작의 길

 

그렇게 좌절하며 저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인생 공부가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학부를 꼬박 4년 다녔고, 대학원도 끝까지 다녀 조기 졸업을 했습니다.

학부를 마흔에 다니다 보니 스무 살 어린 신입생들과 함께였고, 첫사랑에 성공했다면 제 아들딸과 같이 학교를 다녔을 거라는 농담도 자주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인생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는 그저 저만의 속도로 살았을 뿐입니다.

 

나는 부정의 힘을 믿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참 많이 겪었지만, 제가 가장 믿는 것은 역설의 힘입니다.

그중에서도 부정의 힘을 가장 믿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긍정이 너를 믿게 할 거라고 말하지만, 그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부정의 힘' — 나를 향한 비난을 나아지는 거름으로 삼는다
'부정의 힘' — 나를 향한 비난을 나아지는 거름으로 삼는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생각보다 많이 부정당하며 살아옵니다.

무언가를 못한다고 혼나고, 틀렸다고 혼나고, 이유도 모른 채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누구나 하며 자라죠.

저 역시 배우가 처음이라 서툴다고, 스키를 이상하게 탄다고, 말을 버벅인다고, 무대 공포증으로 떤다고 부정당했고, 나중에는 저라는 사람 자체를 부정당하는 시간을 오래 겪었습니다.

인기가 많아졌다는 이유만으로 잘한 일도 없이 찬양받을 때 저는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반대로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부정당할 때는 저를 자책했죠.

그런데 그 자책 속에서 반항심이라는 원동력이 생겼습니다.

 

'빛에는 늘 그림자가 함께한다'를 보여주는 그림자 손 장면
'빛에는 늘 그림자가 함께한다'를 보여주는 그림자 손 장면

 

나를 오해했구나,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겠다, 어차피 부정당할 거라면 나는 내 길을 가겠다.

그렇게 부정이 원동력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소리와 상관없이 오직 내 길을 내 속도로 가도록 저를 몰입하게 해 주었습니다.

 

비교하지 말라고요? 저는 철저하게 비교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에는 언제나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있습니다.

밝음 안에 어둠이 있고, 빛과 그림자가 다르지 않듯이 말이죠.

좋다고 생각한 일이 나빠지기도 하고 나쁘다고 여긴 일이 좋아지기도 하니, 좋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스타그램만 열어도 남의 삶이 보이고, 밖에 나가면 다 남이고, 거울만 봐도 다 다른데 어떻게 비교를 안 할 수 있을까요.

비교하지 않으려면 혼자 동굴에 살아야 한다는 뜻이니, 애초에 말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가 아니라 '철저하게 비교하라'는 역설
'남과 비교하지 말라'가 아니라 '철저하게 비교하라'는 역설

 

그래서 저는 생각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차라리 철저하게 비교하되, 그것을 좋은 곳에 쓰자고요.

부족함이 보이면 방향을 새로 잡으면 되고, 부럽고 질투 나는 감정과 열등감은 나를 발전시키는 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그런 불안 없이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안 좋은 감정조차 우리에게 굉장한 원동력이 된다고 믿고, 그래서 부정의 힘을 굉장히 신뢰합니다.

 

헬기에서 뛰어내린 순간 알게 된 것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저 멀리서 낙하산이 떨어지고 있었어요.

스카이다이빙이었습니다.

저는 충동적으로 그곳을 찾아갔고, 헬기에는 저를 포함해 일곱 명이 탔습니다.

놀랍게도 그 일곱 명 모두가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는 길, 차창 너머로 보이는 산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는 길, 차창 너머로 보이는 산

 

헬기가 뜨고 한 명씩 뛰어내리라는 순간, 저의 수많은 자아가 동시에 살고 싶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내려 땅에 발이 닿는 그 몇 초 동안, 저는 제가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곱 명 모두가 서로를 껴안으며 우리 살아서 다행이라고 외쳤죠.

 

헬기에서 뛰어내린 순간 '너무 살고 싶다'를 깨달았다는 구혜선
헬기에서 뛰어내린 순간 '너무 살고 싶다'를 깨달았다는 구혜선

 

우리의 자아가 한마음이 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믿는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저는 믿는 대로 된다는 것을 정말 믿고, 남이 아니라 나를 믿어야 하며, 나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바시 무대에서 '냉정'과 부정의 힘을 이야기하는 구혜선
세바시 무대에서 '냉정'과 부정의 힘을 이야기하는 구혜선

 

예측 불가능한 미래 속에서 저는 또 부서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서지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

부서진 그 모습 자체도 새롭고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요.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힘은 어쩌면 긍정이 아니라 부정당하는 것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를 삐뚤어지게 할지 말지의 결정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냉정을 찾는 데 있습니다.

 

 

부정의 힘을 믿는 배우 구혜선의 이야기 | 세바시 20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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