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5. | 세바시 2083회 | 강철원 (에버랜드 동물원 주키퍼)
푸바오 할부지로 불리는 에버랜드 주키퍼 강철원 사육사가 세바시 무대에 섰다. 판다를 돌보는 사육사가 왜 조경학을 공부하고 식물 책까지 쓰게 되었을까. 어머니와의 1000일 통화, 손가락만 한 당근 농사, 그리고 푸바오를 배웅하던 날의 이야기까지. 텃밭에서 길어 올린 연결의 철학을 전한다.
📖 이 강연의 순서
1. 푸바오 할부지에서 남천바오 할부지로
2. 판다 사육사가 식물 책을 쓴 이유
3. 1년에 단 3일, 아기 판다의 무게와 텃밭이라는 안식처
4. 어머니와의 매일 통화, 그리고 텃밭의 옥수수
5. 손가락만 한 당근, 그리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
6. 인생을 타인의 평가에 방치하지 마라

푸바오 할부지에서 남천바오 할부지로
강철원 사육사는 요즘 불리는 이름이 참 많다.
강푸로, 강마마, 강바오, 판다 아빠, 판다 할아버지.
대부분 판다를 만나면서 붙은 별명인데, 그중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역시 '푸바오 할부지'다.
지금도 푸바오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가 직접 중국 판다 기지에 다녀와 확인한 푸바오는 식욕과 활력이 좋고 눈빛도 똘망똘망한,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판다월드를 떠난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 푸바오는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잘 적응한 것 같다고 그는 전했다.
최근에는 '남천바오 할부지'라는 새 별명도 생겼다.
판다들이 사는 공간에 남천나무를 심어 잔잔한 숲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푸바오가 제 체급에 맞는 남천나무를 스파링 상대 삼아 갖고 놀았던 것이다.
그 남천나무를 푸바오 못지않게 정성껏 가꾸는 그를 보고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푸바오에 이어 쌍둥이 아기 판다 루이바오와 후이바오도 남천나무와 함께 잘 성장했다.
지난 3월 3일에는 루이바오, 후이바오, 아이바오, 러바오가 사는 공간에 유채를 가득 심었다.
유채는 2016년 러바오와 아이바오를 데리고 한국에 온 이듬해부터 9년째 계속 심어오고 있다.
3월 3일은 아이바오와 러바오가 한국에 처음 온 날이자, 푸바오가 일반 팬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기도 한 특별한 날이다.



판다 사육사가 식물 책을 쓴 이유
그는 '에버플랜토피아'라는 식물 카페에 매주 글을 연재해 왔고, 그 글을 모아 『매일 아침 나는 텃밭에 간다』라는 책까지 출간했다.
동물원에서 일하는 판다 주키퍼가 어떻게 식물 책을 쓰게 되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식물이야말로 동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의 바탕이라고 늘 생각한다.
배를 채워주는 먹이가 되고, 몸을 숨기고 쉴 은폐물이 되고,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며, 무엇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터전 말이다.
그래서 동물원에 근무하면서 동물 공부뿐 아니라 식물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경학과에 편입해 식물을 공부했다.
이때 배운 조경학은 동물들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1988년 에버랜드 동물원에 입사해 약 80여 종의 동물을 만나고 관리해 온 사육사다.
판다는 1994년부터 5년 정도 처음 관리했고, 2016년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만나며 다시 인연을 맺었다.

1년에 단 3일, 아기 판다의 무게와 텃밭이라는 안식처
판다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담당자로서 그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아기 판다를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판다의 번식은 결코 쉽지 않다.
암수 궁합을 맞추기도 어렵고, 임신이 가능한 가임기는 1년에 딱 3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시기에 짝짓기에 성공하기도 어렵고 수정률도 매우 낮으며, 임신 여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너무나 가녀린 미숙아로 태어나기에 초기 생존율도 높지 않은 동물이다.
그 힘든 시기를 거쳐 아기 판다가 태어나 많은 사람들이 환호할 때도, 그는 이 가녀린 생명체에게 뭔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긴장감을 덤으로 안고 살았다.
다행히 그에게는 긴장을 풀 수 있는 안식처가 있었다.
영화 '안녕 할부지'에서도 소개된 작은 텃밭이다.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텃밭에 달려가 농작물을 돌보고 농막에서 쉬는 것을 좋아했다.
숲에 둘러싸인 이 텃밭은 4~5년 동안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맹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첫눈에 반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고, 아기 판다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담과 긴장이 밀려올 때마다 이 텃밭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매일 통화, 그리고 텃밭의 옥수수
그 무렵 그는 어머니와 매일 통화를 했다.
멀리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대신, 매일 통화하며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달래드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잘 지내시죠, 식사는 하셨어요, 아픈 데 없으시죠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나눌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며 다시 이야기하는 시간은 즐거운 경험이자 새로운 추억이 되었다.
매일 통화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빼먹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쓰는 일기에 통화 1일 차, 2일 차, 10일 차, 100일 차, 1000일 차 하고 기록을 남겼다.
낮에 통화를 놓치면 저녁에 일기를 쓰다가 전화를 드렸는데, 늦은 시간에도 어머니는 그렇게 좋아하셨다.
철원이랑 통화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마을회관에서 통화가 오면 동네 어른들 앞에서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우셨다고 한다.
텃밭에서도 어머니와 통화할 일이 많았다.
옥수수를 심을 때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구덩이에 몇 알씩 심는지, 간격과 깊이는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거름은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옥수수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마솥에 쪄주시면 6남매가 호호 불며 먹던 특별 간식이었다.
어머니는 대충 심으라며 껄껄 웃으시면서도 작은 것까지 다 가르쳐주셨고, 그 뒤로도 북은 주었냐, 곁순은 따주었냐 하며 당신이 농사짓듯 챙기셨다.
그렇게 키운 옥수수는 잘 자라서 어머니가 쪄주시던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텃밭은 작은 고향이었고, 어머니와 가족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손가락만 한 당근, 그리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
3년 전부터는 한 번도 길러본 적 없는 당근을 심기 시작했다.
판다들이 당근을 워낙 좋아하니, 직접 농사지은 당근을 먹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해에는 잎만 울창하고 정작 당근은 손가락만 하게 자랐다.
그래도 수확했으니 바오 패밀리에게 가져다주었는데, 판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절친인 아이바오만 그저 먹어주는 느낌으로 먹었을 뿐이다.
허탈했지만 나름대로 실패의 이유를 분석하며 진심을 담았고, 이듬해부터는 제법 그럴싸한 당근을 수확했다.
입맛 예민한 푸바오도, 마트 당근에 길들여진 편식대장 러바오도 직접 재배한 당근을 먹는 모습에 그는 감동하고 감사했다.
텃밭은 판다 가족들과 그를 진심으로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어머니는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날 돌아가셨다.
전용기에 탈 인력을 당장 바꿀 수 없었기에 그는 어머니의 상을 다 치르지 못한 채 푸바오를 중국에 데려다주고 와야 했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 병원에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을 때, 어머니는 병원에서 무슨 사진이냐며, 퇴원하고 너 중국 다녀와서 예쁘게 찍자며 거절하셨다.
그때 한 장만 찍자고 조르며 남긴 셀카가 어머니와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어머니, 푸바오 잘 데려다주고 올게요.
그렇게 인사를 건넨 마지막 대화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어머니도 푸바오도 곁에 없지만, 텃밭에 가면 어머니도 푸바오도 가족들도 바오 패밀리도 모두 연결되어 그와 함께하고 있다.
인생을 타인의 평가에 방치하지 마라
그의 고향은 초등학교 4학년 때에야 전기가 들어온 아주 깊은 시골이었다.
호롱불을 켜고 살았고, 4km를 걸어 학교에 다녔으며, 검정 고무신에 형들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고 자랐다.
책을 보자기에 말아 어깨에 메고 다녔고, 꽁보리밥에 신 김치뿐인 도시락에서 김칫국물이 새어 나와 책이 빨갛게 물들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 보자기를 마루에 던져놓고 들판으로 달려가 고추, 벼, 배추, 깨, 보리, 콩, 옥수수 농사를 도왔다.
그 시절 그는 지긋지긋한 농사일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앞으로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고향을 떠났다.
그런데 테마파크에 입사해 야생동물과 함께한 40년이 되어가는 지금 돌아보면, 그 어린 시절은 감추어야 할 가난이 아니라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고 반듯하게 자라도록 이끌어준 재산이자 보물이었다.
그에게 텃밭은 추억 가득한 어린 시절의 식물들을 심고 그 추억을 함께 가꾸는 작은 고향이며, 동시에 연결이다.
가족과의 연결, 바오 패밀리와의 연결, 자연과 동식물과의 연결.
그는 사육사이자 강사, 저자, 유튜버, 카페지기, 학생, 농부, 영화배우로 살아가는데,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직업들도 모두 연결을 통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연결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모두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을 탓하기보다 촛불 한 자루를 켜라.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 해결할 이유가 생기고, 할 일이 생기고, 움직이게 된다.
그것이 세상을 탓하지 않고 느리지만 긍정적으로 바꿔가는 방식이라고 그는 믿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인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며 이렇게 당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좋은 사육사다, 성공한 사육사다 말해주지만, 성공한 사람과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하는 것인가.
남들이 나를 평가하고 결정하게 내버려 두는 순간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사라지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자아존중감이 무너지면 자신이 작고 초라해져 다른 사람도 존중하거나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그가 일하는 테마파크에는 무대와 연기자라는 개념이 있다.
일터는 무대이고 일하는 사람은 캐스트이니, 무대에 선 연기자처럼 몰입하고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는 39년 차 무대에 서는 연기자인 셈이다.
동물과 식물,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려 연기해 온 39년.
특히 동식물과 자연은 진심 없이는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 진심이 판다 할부지와 바오 패밀리를 바라보는 팬들의 신뢰와 사랑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인생을 타인들이 평가하고 결정하도록 방치하지 마라.
성공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고, 좋은 사람의 기준을 자신이 만들고, 의미와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하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라.
그러면 어떤 삶을 살아도 행복한 삶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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