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6. | 세바시 2087회 | 이수진 (소비트렌드 연구자)
주식은 뭐가 뜰지, 10년 뒤엔 어떤 진로가 유망할지 묻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는 것'을 묻는 사람은 드뭅니다. 소비자와 트렌드를 연구해 온 이수진 연구자는 25년치 소비 데이터를 추적하며 하나의 답을 찾았습니다. 세상도 기술도 산업도 바뀌지만, 인간의 욕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욕망을 이해하는 사람, 즉 '오래 가는 사람들'의 세 가지 특징을 이 강연에서 만나보세요.
📖 이 강연의 순서
1.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2. 과시 소비 25년 추적, 수단은 바뀌어도 욕망은 남는다
3. 첫 번째 특징, 자신의 확신을 의심한다
4. 두 번째 특징, 내 범주에 의문을 품는다
5. 세 번째 특징, 시스템을 만든다
6. 마지막 욕망 자율성, 삶은 레이스가 아니다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소비자와 트렌드를 연구하다 보면 정말 자주 받는 질문들이 있다.
주식은 뭐가 뜰까요, 우리 아이는 10년 뒤에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유망할까요, 당장 취업해야 하는데 어떤 산업이 좋을까요.
모두 '무엇이 바뀔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유명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10년 뒤에 무엇이 바뀔 것인지 자주 묻지만, 정작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고.
그런데 사업은 후자의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
변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통찰은 사업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면 무언가를 오랜 기간 추적해야 한다.
그래서 이수진 연구자는 20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소비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과시 소비 25년 추적, 수단은 바뀌어도 욕망은 남는다
코로나 전후, 명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백화점 앞에 줄을 서던 '오픈런'을 기억하는가.
이 현상에서 출발해 그는 과시 소비를 연구하게 되었다.
과시 소비란 자신의 부와 지위를 보여주기 위해 소비로 그것을 표현하는 행태를 말한다.
통계청 지출 데이터를 활용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사람들의 소비를 추적했다.
1980년부터 1990년 사이, 사람들은 주로 자동차와 가전제품, 가구를 사면서 과시했다.
2000년과 2010년대로 오면 양상이 달라진다.
외모 관리와 개인 서비스, 그리고 가장 많았던 해외여행까지, 과시의 무대가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 이후 지금 사람들은 무엇으로 '나 좀 괜찮은 사람이야'를 은근히 드러낼까.
최근 설문조사의 답은 의외로 식료품이었다.
젊은 소비자일수록 식품을 '나 꽤 잘 산다'는 감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문화에 따라서도 표현만 다를 뿐이다.
과시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독일 소비자도 과시를 많이 한다.
한국 소비자가 경제적인 면을 과시한다면, 독일 소비자는 '나는 윤리적 소비를 하는 사람,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임을 과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을, 누가, 언제, 어떻게는 전부 바뀐다.
그러나 '나는 꽤 괜찮은 사람'임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세상은 바뀌고 기술도, 플랫폼도, 산업도 바뀐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생각보다 잘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욕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야말로 오래 살아남지 않을까.
여기서 '오래 가는 사람들'의 세 가지 특징이 나온다.







첫 번째 특징, 자신의 확신을 의심한다
심리학은 인간의 기초 욕망 중 하나로 유능감을 꼽는다.
'나는 잘할 수 있어, 나는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라고 느끼는 감각이다.
많은 서비스와 제품이 바로 이 감각을 자극하도록 설계된다.
유명한 실험이 있다.
마트의 한쪽 복도에는 잼이 24종, 다른 쪽 복도에는 6종이 진열되어 있다.
소비자는 어느 쪽에서 더 많이 구매할까.
답은 6종 쪽이다.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통제감을 잃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지의 개수가 아니라 '내가 선택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감각이다.
오래 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조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잘 예측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분석해 보면 지능, 집요함, 투지, 야망 같은 요소도 나온다.
그러나 1위는 따로 있었다.
바로 자기 생각을 의심해 보는 사람들이었다.
확신에 찬 사람이 유능해 보일 때가 많지만, 진짜 유능감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나' 다시 한번 점검하는 데 있다.




두 번째 특징, 내 범주에 의문을 품는다
인간의 두 번째 중요한 욕망은 관계성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싶어 하는 욕망,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퇴근길에 모르는 사람과 함께 통근하게 된다면 어떨까.
대부분 질색하지만 실제 실험 결과는 의외였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퇴근한 집단과 혼자 조용히 퇴근한 집단을 비교했더니,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낯선 이와 대화하며 온 통근길이 훨씬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남들과 어울리고 교류하고 싶어 한다.
이 관계성을 가장 잘 자극하는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다.
그런데 다정함이란 그저 착하고 따뜻한 말을 하는 것일까.
이수진 연구자는 수업 중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경제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 아무 생각 없이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했는데, 조용히 있던 베트남 유학생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그 전쟁을 베트남 전쟁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같은 역사 위에도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정함이란 내게 익숙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낯설 수 있음을 아는 태도,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범주가 세계 전체를 설명하지 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세 번째 특징, 시스템을 만든다
전등 하면 대부분 에디슨을 떠올린다.
그러나 에디슨은 전구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전구가 우리 일상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이다.
우리는 혁신적인 제품이 한 사람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잘 설계된 시스템이 하나하나 모여야 비로소 꽃이 핀다.
지속 가능한 성공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기업 오뚜기는 창업 후 사업이 안정된 뒤에도 매출의 약 1.5%를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한국 기업 평균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였다.
성공의 핵심은 단 한 번의 성과가 아니다.
실패를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 두고, 성공이 반복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마지막 욕망 자율성, 삶은 레이스가 아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망은 자율성이다.
자율성이란 내가 선택한 삶을 책임지는 힘이다.
사실 그는 스스로 게으른 편이라고 고백한다.
헬스장에 기부만 잔뜩 했고, 마감 직전 밤 11시 58분에 과제를 제출한 적도 많다.
박사 논문 심사에서는 두 번이나 떨어졌다.
머리가 나쁜가, 내 길이 아닌가, 내가 너무 싫다며 스스로를 의심하던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던 데에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IBK기업은행의 영화 투자 이야기다.
이 회사는 영화 투자에서 투자 수익률이 300%를 넘는 경우도 있을 만큼 높은 성과로 유명한데, 투자 체크리스트에 눈을 사로잡는 두 항목이 있다.
3연속 흥행 감독은 10% 감점, 직전작이 실패한 감독은 10% 가점.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라면 직관적으로 성공한 감독에게 투자해야 할 것 같지만, IBK는 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평균 회귀의 법칙이다.
크게 성공하면 다시 평범해지기도 하고, 크게 넘어지면 다시 올라갈 일이 생긴다는, 어떻게 보면 냉정하고 어떻게 보면 따뜻한 진리다.
그는 이 문장에 기대어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두 번 떨어졌으니 이제 올라갈 일이 있겠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조차 옆 사람을 보며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되뇌는 문장이 있다.
삶은 레이스가 아니다.
늦게 학위를 받고 여기까지 오며 그가 얻은 통찰도 같다.
우리를 끝까지 가게 하는 힘은 비상한 재능도, 남들보다 빠른 속도도 아니다.
타인의 보폭에 휩쓸리지 않고, 외부의 평가보다 나를 중심에 두고, 내가 선택한 울퉁불퉁한 길을 묵묵히 걸어내는 자율성에 있다.
앞으로의 삶은 수없이 오르내릴 것이다.
때로는 평균보다 빛나고 때로는 평균 아래로 곤두박질치겠지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결국 '나'라는 고유한 궤적을 완성한다.
흔들리던 시절 그의 밤을 지켜 주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다.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 갈 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잡을 리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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