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4. | 세바시 2092회 | 이규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치과의사)
키 188에 못하는 운동이 없던 스물의 청년은 어느 여름 다이빙 한 번에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목 아래로는 아무 감각도 없는 영구적 전신마비, 그는 죽으려 혀를 깨물었지만 죽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환자실에서 다시 치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극복이 아니라 그저 버티고 또 버틴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스물의 여름
2. 중환자실에서 다시 꾼 꿈
3. 모두가 반대한 복학, 그리고 썩어 가는 몸
4. 세계 최초의 도구, 그리고 괴물 손
5. 느리지만 실수하지 않는 치과의사
6. 극복이 아니라, 버팀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스물의 여름
안녕하세요.
저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치과의사 이규환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앉아만 있어서 키가 1미터도 안 되게 작아졌지만, 제 원래 키는 188센티미터였습니다.
몸무게도 85킬로그램이었고,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못하는 운동도 없었습니다.
공부도 잘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제 인생이 꽃길만 이어질 줄 알았습니다.
세상이 다 제 마음대로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사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2002년 여름, 너무 더워서 수영장에 갔습니다.
다이빙대에 올랐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그 순간 목이 완전히 꺾였습니다.
제 목에서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순간의 다이빙이 스물의 청년이 알던 세상 전부를 바꿔 놓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다시 꾼 꿈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잘 잤다'였습니다.
그동안 수업하고 진료하고 공부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까요.
하지만 기분 좋은 현실이 지옥으로 변하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목 아래로는 아무 감각이 없었습니다.
손도 발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목 신경이 끊어진 영구적 전신마비, 그것이 제게 내려진 진단이었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이건 꿈이라고, 자고 일어나면 날아다니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 있을 거라고 되뇌며 수면제를 계속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면 여전히 중환자실이었습니다.
죽으려고 혀를 깨물었지만 죽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죽지도 못하고 지옥 같은 통증 속에서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 간호사 선생님께 책이라도 보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일부러 희망적인 책들을 많이 보여 주신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죽으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죽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수만 번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숨도 못 쉬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감각도 없는데, 놀랍게도 저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 포기하면 죽을 때 천추의 한이 되어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그는 다시 치과의사가 되겠다고 외쳤습니다.

모두가 반대한 복학, 그리고 썩어 가는 몸
모두가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손도 못 쓰는 치과의사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요.
다친 지 딱 1년 만에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어 치과대학으로 복학했습니다.
어떤 교수님은 아예 문을 열어 주지 않았고, 학점을 못 준다, 졸업을 못 시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때 딱 한 분의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같이 해보자.
학생이 이렇게 간절히 공부하고 싶어 하는데 도와주라고 교수가 있는 거다.'
그러나 '공부하다 죽겠다'던 그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척수마비 장애인은 감각을 느끼지 못해 살이 썩어 들어가도 알지 못합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온종일 앉아만 있어야 했고, 결국 엉덩이가 썩어 들어갔습니다.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오한이 몰려오던 어느 날, 전동 휠체어에서 기절해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엉덩이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큼 살이 썩어 패혈증이 온몸으로 퍼진,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당장 입원해야 하고,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으며, 최소 3개월은 엎드려만 있어야 하는 큰 수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휴학하면 다시는 학교로 돌아올 수 없고, 그러면 꿈이 정말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간청했습니다.
'방학하면 그날 바로 와서 수술받겠습니다.
그때 다리를 자르더라도 절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한 달만 죽지 않고 버티게 해 주세요.' 임시로 고름을 짜내고 독한 약과 진통제를 부으며, 죽을 고비마다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버텼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비장애인과 똑같은 조건으로 치과의사 면허증을 땄습니다.

세계 최초의 도구, 그리고 괴물 손
면허증까지가 목표였는데, 막상 치과의사가 되니 취업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20여 년 전에 손도 못 쓰는 전신마비 장애인을 써 줄 병원이 어디 있을까요.
또다시 모두가 반대했지만 무턱대고 전국 어디든 지원했고, 전부 거절당했습니다.
거절을 하도 많이 당하다 보니 어느새 거절에 면역이 생겼습니다.
지금 근무하는 분당서울대병원에도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모를 남겼습니다.
'고용하지 않아도 되니 딱 한 번만 보여 줄 기회를 달라'고요.
그렇게 귀찮게 하니 드디어 '한번 와서 보여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버티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기회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기회를 잡으려 수만 번을 연습하고 준비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손가락을 전혀 쓸 수 없고 어깨 아래로 완전히 마비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손에 치과 기구를 고정할 수 있는 도구를 세계 최초로 발명했습니다.
환자가 다치면 절대 안 되기에, 제 손이 다쳐 가며 수십만 번을 연습했습니다.
수십만 번을 연습하니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훈련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손은 흉터와 굳은살로 뒤덮여, 딸아이는 이 손을 '괴물 손'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보이기 부끄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손이 제 삶의 훈장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서울대병원 명의들 앞에서 멋지게 해냈습니다.
손가락을 쓸 수 없는 치과의사는, 자기 손을 대신할 도구를 스스로 발명해 진료실에 섰습니다.

느리지만 실수하지 않는 치과의사
20년 전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습니다.
진료 준비를 하고 있으면 어떤 할아버지는 저를 보더니 화를 내며 나가셨고, 재수 없다고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냥 버텼습니다.
그리고 환자분들께 진료 전에 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느립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정확하게 진료하겠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버티니, 감사하게도 환자분들이 일부러 저를 찾아오시기 시작했습니다.
꼼꼼하고 정확하고 친절하다고요.
저는 여전히 느린 치과의사입니다.
하지만 절대 실수하지 않는 치과의사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기도 많고 인정도 받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느린 것은 흠이 아니었습니다.
느리기에 그는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극복이 아니라, 버팀
우리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는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성공담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고 있는, 최중증 전신마비 장애를 가진 한 인간의 무식한 삶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예전의 저처럼 삶을 포기하려는 분들에게 '저렇게 심각한 사람도 살고 있네, 저렇게 버티고 있네' 하는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선택이 내 인생을 만듭니다.
그 공간에서 무엇을 근거로 행동을 선택하느냐, 저는 그것이 바로 '마음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 올라오는 감정을 파괴로 쓰지 않고 이해로 바꾸는 연습, 그 연습이 반복될 때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그것이 태도가 됩니다.
삶은 선택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태도를 결정하는 핵심은 결국 내 마음을 읽는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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