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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지, 동계패럴림픽 금메달 5개 19세 국가대표의 진짜 이야기 | 세바시 20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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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5. 8. | 세바시 2094회 | 김윤지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 한국 선수 단일 대회 최다 메달 기록을 세운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김윤지. 하지만 그는 메달 이야기를 하려고 무대에 선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록은 언젠가 깨지지만, 도전은 그것을 해 본 사람 안에 끝까지 남기 때문입니다. 작은 턱 하나를 넘어 자기만의 길을 만든 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동계패럴림픽 금메달 5개, 그러나 메달 이야기는 아닙니다
2. '너는 크게 될 거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
3. 나는 못해서 밀려난 게 아니라, 기준 밖에 있었다
4. 장애는 내 몸이 아니라 환경 속에 있었다
5. 사기당해 시작한 노르딕 스키, 출발선 안으로 들어오다
6. 기록은 깨져도, 도전은 남습니다

 

 

김윤지 장애인노르딕스키 국가대표 '크게 되는 사람'이 되는 방법 세바시 강연
김윤지 장애인노르딕스키 국가대표 '크게 되는 사람'이 되는 방법 세바시 강연

 

 

동계패럴림픽 금메달 5개, 그러나 메달 이야기는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김윤지입니다.

저는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총 5개의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한국 선수로는 단일 대회 최다 메달 기록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그 메달 이야기를 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기록은 정말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기록은 언젠가 깨집니다.

누군가는 저보다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누군가는 저보다 더 많은 메달을 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메달을 어떻게 땄는지보다, 그 기록이 깨지고 난 뒤에도 남을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밀라노 코르티나 2026 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메달들이 마스코트 인형과 함께 놓인 모습
밀라노 코르티나 2026 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메달들이 마스코트 인형과 함께 놓인 모습

 

 

'너는 크게 될 거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집으로 가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제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시더니 '너는 나중에 꼭 크게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사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너는 특별한 사람이 될 거다', '너는 크게 될 거다' 같은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크게 된다는 것은 꼭 유명해지는 것도, 메달을 많이 따는 것도,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요.

살면서 자꾸 마주치는 작은 턱 하나를 넘고, 내 앞에 놓인 벽 앞에서 한 번 더 도전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크게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못해서 밀려난 게 아니라, 기준 밖에 있었다

 

중학교 때, 훈련 때문에 학교를 결석한 날이 하필 제가 좋아하던 체육 수행평가 날이었습니다.

대체 평가를 보게 해 주신다는 말씀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학교로 돌아온 뒤에도 평가일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생님께 직접 여쭈었더니, 이미 다른 친구들의 점수까지 모두 채점을 마쳤고 제게는 최하점이 매겨져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동작이 수행평가 과제로 나왔습니다.

당연히 다른 동작으로 바꿔 주시거나 기준을 조정해 주시리라 생각했지만, 선생님께서는 '다른 학생들도 인정할 수 있게 높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나는 못해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기준 안에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준 밖의 사람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시도해 보고 그 점수를 받는 것과, 아예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애는 내 몸이 아니라 환경 속에 있었다

 

저는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 장애에 적응하며 살아왔기에, 오히려 장애의 불편함을 잘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커 가면서 제가 기준 밖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동안은 제 몸이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제 장애가 아니라 환경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어디를 갈 때 저는 맛집보다 로드뷰를 먼저 봅니다.

입구가 넓은지, 문턱은 없는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계단뿐인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디를 갈지'의 문제가, 저에게는 '갈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됩니다.

집 앞 1분 거리 편의점에 턱이 있으면 10분 거리 편의점으로 돌아가야 하고, 지하철도 가장 가까운 출구가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있는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장애는 제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턱과 계단과 좁은 입구, 그리고 저를 기준 밖으로 밀어내는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도전도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전은 대단한 기록을 세우는 일만이 아니라, 나를 자꾸 밀어내는 환경 속에서 '나는 쉽게 지지 않겠다'고 말해 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기당해 시작한 노르딕 스키, 출발선 안으로 들어오다

 

제가 이 종목을 정말 사랑해서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지만, 사실 저는 이 종목을 '사기당해서'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한 감독님이 노르딕 스키 합숙을 권유하셨고, 스키도 타고 사격도 한다는 말에 친구도 만나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그것은 캠프가 아니라 시합을 위한 합숙이었습니다.

다행히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때라 시합은 취소되었고, 저는 훈련에 참여하며 노르딕 스키를 시작했습니다.

스키를 타고 사격을 하는 이 종목은 할수록 점점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는 자꾸 기준 밖으로 밀려난다고 느꼈는데, 장애인 스포츠 안에서는 비로소 출발선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제 몸에 맞춰진 기준 안에서 실력을 겨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에 놓인 허들을 하나씩 넘으며 저는 성장했습니다.

운동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이 전혀 없던 제가 신인팀에 들어가고,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국제대회까지 뛰게 되었습니다.

작은 도전들이 저를 밀어내며 새로운 궤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평창 2018 사격장에서 엎드려 조준하는 좌식 노르딕스키·바이애슬론 선수 — “저한테 권유를 해 주셨습니다”
평창 2018 사격장에서 엎드려 조준하는 좌식 노르딕스키·바이애슬론 선수 — “저한테 권유를 해 주셨습니다”

 

 

“너는 나중에 꼭 크게 될 아이야” — 공원에서 어른이 휠체어에 탄 소녀의 손을 잡아주는 장면 (AI 생성 이미지)
“너는 나중에 꼭 크게 될 아이야” — 공원에서 어른이 휠체어에 탄 소녀의 손을 잡아주는 장면 (AI 생성 이미지)

 

 

기록은 깨져도, 도전은 남습니다

 

늘 밀어 두기만 하던 도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20km 경기입니다.

체력 부담이 크고 어깨와 팔꿈치에 무리가 많이 가서 주로 베테랑 선수들이 뛰는 종목이라, 저는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패럴림픽을 준비하며 '첫 패럴림픽인데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경기 당일 아침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설상 종목은 날씨가 중요한 데다 한 번도 뛰어 본 적 없는 경기라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겁이 나기보다 오히려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길래 다들 이렇게 만류하실까.

완주만을 목표로 출발한 그 경기에서, 저는 두 번째 금메달을 따게 됩니다.

저에게 더 크게 남은 것은 그 메달이 아니라, 결과를 몰라도 도전했던 그 선택이었습니다.

도전은 저의 후회를 줄여 주었고, 주변도 바꾸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운동장에 가려면 계단을 빙 돌아가야 했는데, 휠체어를 탄 학생들이 몇 해 동안 그 불편을 감수하며 다닌 끝에 운동장으로 바로 들어가는 경사로가 생겼습니다.

누군가 먼저 불편을 겪고 그 불편이 모두의 것이 되면, 결국 환경이 바뀌기도 합니다.

여러분 앞에도 각자의 벽이 있을 것입니다.

거창한 도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놓인 작은 턱 하나를 넘어 보시길 바랍니다.

넘어 보면 그것은 더 이상 벽이 아니라, 여러분만의 고유한 길이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벽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기록은 깨져도 도전은 남는다 | 세바시 20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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