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1. | 세바시 2095회 | 김승환 (엔젤로보틱스 선임연구원·사이배슬론 선수)
29살에 교통사고로 하반신 완전마비 진단을 받은 김승환 연구원은 180cm의 세상에서 110cm의 시선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 대신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다시 걷는 길을 택했습니다. 욕창과 패혈증으로 대회를 놓치는 좌절을 딛고, 마침내 사이배슬론 무대에서 우승을 거머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장애가 그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다는 고백이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180cm에서 110cm로, 달라진 시선
2. 식장에는 걸어서 들어왔으면 좋겠다
3. 절호의 기회를 앗아간 욕창
4. 기술과 현실을 잇는 통역사
5. 같은 눈높이, 그리고 결승선
6. 이제 두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봅니다

180cm에서 110cm로, 달라진 시선
안녕하세요.
웨어러블 로봇을 만드는 엔젤로보틱스 선임 연구원 김승환입니다.
저는 원래 180cm의 키를 가졌었지만, 오늘은 여러분을 110cm의 높이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9년 전 29살이 되던 해에 교통사고가 났고,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었으며 아무런 감각도 없었습니다.
예전에 발 수술을 하며 척추 마취를 한 적이 있었는데 딱 그 느낌이었기에, 처음에는 그저 마취가 덜 풀린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마취는 끝내 풀리지 않았고, 저는 척수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완전마비 진단을 받았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게 되면서 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했습니다.
카페 카운터는 높았고 지하철 손잡이는 저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더 크게 달라진 것은, 예전에는 제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들과 환경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10cm의 높이에서, 180cm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저에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식장에는 걸어서 들어왔으면 좋겠다
사고 후 가장 막막했던 시절, 지금의 아내가 제 곁에 있었습니다.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할 제가 짐이 될 것 같아 수없이 헤어지자고 밀어냈지만,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퇴근하면 병원으로 와 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함께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재활병원에서 처음 기립기로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 그리고 로봇을 입고 처음 일어나 걸었을 때, 하네스에 몸을 맡긴 채 트레드밀 위에서 제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잠시 잊고 있었던 걷기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쯤, 아직 제 몸 상태를 정확히 모르시던 장인어른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결혼은 허락한다.
근데 어떤 방식이든 좋으니 식장에는 걸어서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 한마디에 병원에서 막연했던 걸음을 향한 마음이 비로소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래, 내 다리가 안 되면 기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한번 걸어보고 싶다.

절호의 기회를 앗아간 욕창
재활을 마치고 퇴원한 저는 필사적으로 보행 로봇을 찾기 시작했고, 그때 처음 사이배슬론 대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사이보그 올림픽이라 불리는 이 대회는 장애인이 첨단 기술을 이용해 계단을 오르고 문을 여는 등 일상을 모사한 미션을 수행하는 국제대회입니다.
운 좋게 선수 후보 7인에 선발되어 난생처음 제 몸에 맞춘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20m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전의 시간을 빨리 따라잡고 싶다는 조급함에 재활도, 로봇 훈련도, 일도 놓치지 않으려다 무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열이 펄펄 끓어 응급실로 실려갔는데, 원인은 욕창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작은 점 같던 상처가 안쪽으로는 주먹보다 큰 고름집이 되어 있었고, 패혈증까지 와 근육이 녹아내린 고름을 긁어내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반 년간을 거의 엎드린 상태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대회도 약속도 다 놓쳤습니다.
걸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다쳤을 때보다 더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결국 스스로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휠체어를 타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제 가슴은 또 한편으로 다시 뛰고 있었습니다.
그래, 언젠가는 나도 저 로봇을 다시 타고 말 거다.
기술과 현실을 잇는 통역사
시간이 흐른 뒤 거짓말처럼 기회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엑소랩에서 장애인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고 전부터 제 자리를 비워둔 채 기다려준 회사를 떠나기가 죄송해 한참을 망설였지만, 대표님은 1초의 고민도 없이 "네가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느냐"며 등을 떠밀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천재적인 카이스트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문과생인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이 로봇을 설계하고 알고리즘을 만들 때, 저는 그 로봇을 직접 입는 사용자로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감각이 없어 상처가 나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휠체어 생활이 어떤 불편과 긴장을 안고 있는지를 전했습니다.
저는 수동적인 실험 대상이 아니라, 자칫 차갑게 흐를 수 있는 공학 안에 사람의 감각과 삶의 경험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연구실에서 기술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통역사 같은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걸을 수 없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고, 그게 제가 걷는 길을 만드는 저만의 방법이었습니다.




같은 눈높이, 그리고 결승선
훈련을 이어가던 어느 날, 로봇을 입고 일어났다가 우연히 아내와 나란히 같은 눈높이에서 눈을 마주쳤습니다.
180cm의 시선을 되찾았다는 느낌보다,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크게 울렸습니다.
제가 다시 걷고 싶었던 이유가 단지 걷는 행위가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누군가를 마주 보고 싶었던 마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기술과 걸음을 맞춰가던 시간은 결국 저를 다시 사이배슬론 대회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늦은 밤과 새벽까지 이어진 훈련 속에서 로봇과 호흡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치열했지만, 가족들은 늘 같은 마음으로 저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경기 당일, 저는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 혼자 로봇을 착용하고 일어나 목발 없이 걸었고, 장애물을 피해 소파에 앉았다 일어서는 여러 미션을 하나씩 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승선은 단지 대회의 끝이 아니라, 제 삶이 다시 앞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두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봅니다
저는 제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여전히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제 삶을 김승환답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만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처음 간 카페에서는 당연히 보이던 카운터 너머 직원의 얼굴도, 메뉴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전의 저 역시 누군가에게 턱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을 수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장애인으로만 살았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감각과 질문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서고 걷고 싶은 이유, 로봇의 가능성을 믿는 이유는 이 기술이 단순한 이동의 문제를 넘어 삶의 선택지를 다시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섯 살 아들 주호에게 삶의 방식에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늘도 110cm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로봇을 착용하면 180cm의 시선으로 아내를 마주합니다.
장애는 제 삶을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으로 오늘도 사람을 보고, 기술을 보고, 미래를 바라봅니다.
'YouTube > 세바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캐서린 모어, 엔지니어에서 로봇수술 개척자가 된 세 번의 인생 | 세바시 2097회 (0) | 2026.07.15 |
|---|---|
| 오지현, 지적장애가 있어도 무대에 선 강사의 세 마디 | 세바시 2096회 (0) | 2026.07.15 |
| 김윤지, 동계패럴림픽 금메달 5개 19세 국가대표의 진짜 이야기 | 세바시 2094회 (0) | 2026.07.14 |
| 저신장 배우 김유남, 도움받는 게 부끄럽지 않은 이유 | 세바시 2093회 (0) | 2026.07.14 |
| 이규환 치과의사, 전신마비 뚫고 진료실에 선 진짜 이유 | 세바시 2092회 (0) | 2026.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