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 | 세바시 2109회 |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대한민국을 휩쓰는 '삼전병·닉스병'은 가진 사람은 불안하고 못 가진 사람은 박탈감을 느끼는 마음의 병입니다. 정신과의사 이광민은 돈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온 우리 삶의 반대편에 반드시 따라오는 '마음의 상처'를 이야기합니다. 칼 융과 이순신, 성냥팔이 소녀, 그리고 자신의 할머니를 통해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 회복 탄력성의 비밀을 풀어냅니다. 진짜 행복은 밖에서 가져온 재료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이미 지어진 '집'을 발견하는 데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대한민국을 휩쓰는 '삼전병·닉스병'
2.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를 택한 이유
3.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칼 융의 6년
4. 이순신과 성냥팔이 소녀, 회복 탄력성
5.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6. 행복은 마음속 '집'을 발견하는 일

📈 대한민국을 휩쓰는 '삼전병·닉스병'
요즘 대한민국 정신의료계가 시끌시끌합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정신질환이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삼전병', '닉스병'입니다.
나만 두고 다들 부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에 이제라도 들어가야 하나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병이죠.

그렇다면 주식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편할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루 종일 올랐나 떨어졌나, 언제 팔아야 하나 들여다보며 불안에 시달립니다.
못 가진 사람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 가진 사람에게는 안절부절못하는 불안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삼전병·닉스병의 증상입니다.
주식 이전에는 코인이, 코인 이전에는 부동산이 그랬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이라고 하면 정말 치열하고 역동적으로 달려가는 힘이 있습니다.
💰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를 택한 이유
2021년 퓨리서치센터가 전 세계 17개국 선진국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 대부분의 나라는 압도적 1위로 가족을 꼽았지만, 대한민국은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 즉 돈을 꼽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돈에 미친 속물인 것은 아닙니다.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이미 가진 것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까, 미래의 행복을 바라보기에 물질적 풍요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이 열망이 교육으로,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가 엄청난 성취를 이룬 배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치열한 삶의 반대급부로 기본값처럼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시기와 질투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나의 부족함과 실수로 우리 마음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칼 융의 6년

마음의 깊은 골짜기까지 추락했던 한 정신분석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양대 산맥 중 한 명인 칼 구스타프 융입니다.
원래 융은 프로이트의 애제자 중의 애제자였고, 프로이트가 '나의 왕관을 물려줄 사람'이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국제 정신분석학회가 만들어지자 프로이트는 30대 중반의 융을 초대 회장으로, 그것도 종신직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융이 인정받기 시작하자 프로이트의 마음에 불안감이 밀려왔고, 모든 정신분석가 앞에서 일방적으로 결별을 선언합니다.
1인자가 2인자를 짓밟는, 정체성을 뒤흔드는 상처였습니다.
38세의 융은 이때부터 6년간 칩거합니다.
알 수 없는 글을 끄적이며 이상한 말을 했고, 사람들은 융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6년 뒤 융은 멀쩡하게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는 마음 깊숙한 무의식을 헤매며 상상 속 현자 빌레몬과 끊임없이 대화했다고 답했습니다.
공격성과 갈등, 상처와 치유를 빌레몬과 토론한 기록은 프로이트를 벗어난 융만의 독자적 심리학, '레드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상처를 치유한 융은 40대 중반부터 밑바닥에서 다시 자신만의 학파를 세워 나갔습니다.

🌱 이순신과 성냥팔이 소녀, 회복 탄력성
큰 상처를 입고 쓰러졌지만 스스로 재정비하고 회복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마음의 힘을 우리는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순신 장군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이 있다'며 왜군과 맞서 명량대첩을 이뤄냈지만, 그때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싸운다는 각오로 나갔을 것입니다.


회복 탄력성에는 결과가 담보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는 아이러니하게도 성냥팔이 소녀입니다.
추운 크리스마스,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성냥 하나에 따뜻한 집을, 성냥 하나에 엄마의 품을 떠올리며 사랑의 감정을 품은 채 눈을 감았죠.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내 삶의 가치와 의미, 소망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이것 역시 회복 탄력성입니다.
그렇다면 회복 탄력성은 어디서 올까요?
우리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그 누군가'로부터 옵니다.
융에게는 빌레몬이, 이순신 장군에게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성냥팔이 소녀에게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저에게 그 누군가는 할머니입니다.
2년 반 전 만 100세를 열흘 앞두고 돌아가셨고, 시신을 의과대학 실습용으로 기부하셨습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한평생 목사의 아내로 사셨던 분입니다.
돌아가시기 6개월 전, 99세로 인지 기능이 많이 떨어져 가족도 잘 못 알아보셨지만, 여력만 되면 책상에 앉아 성경을 필사하셨습니다.
삐뚤삐뚤 엉망인 그 글씨는 목숨이 있는 한 지켜야 할 삶의 가치이자 사명이자, 가족을 위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할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늘 말씀하셨습니다.
'광민아,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저도 상처받고 지치고, 그냥 돈이나 열심히 벌자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 정신과 의사로서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다시 붙잡게 됩니다.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야지, 힘을 내게 됩니다.
저에게 할머니는 마음의 가장 안전한 안식처이자 '마음의 집'입니다.
🏡 행복은 마음속 '집'을 발견하는 일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마음의 집이 탄탄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벌고 스펙을 쌓고 성취를 만들며 세상 밖에서 행복의 재료를 모읍니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외부에서 가져온 재료로 짓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이미 지어져 있는 가장 따뜻한 안식처를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마음의 집을 짓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회복 탄력성의 배경이 되는 그 누군가를 찾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쓰러졌을 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손잡아 줄 존재, 가족이나 소중한 가치, 종교적 대상, 반려동물도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그 누군가를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속 그 누군가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집이 되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꿈꾸고 버티고 함께하며 살아내는 것, 그 배경에는 나를 회복시켜 줄 소중한 마음의 집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속 가장 소중한 집을 다시 들여다보고 진정한 행복의 온기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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