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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금 전 숙명여대 총장, 밀쳐졌던 다섯째 딸의 인생 역전 | 세바시 21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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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7. 3. | 세바시 2110회 | 장윤금 (전 숙명여자대학교 총장)

 

 

1961년, 아들을 바라던 집에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나 갓난아기 때 밀쳐졌던 아이가 훗날 대학 총장이 되었다. 장윤금 전 숙명여대 총장이 들려주는, 편견과 가난과 육아를 넘어 온 인생 이야기다. 소 한 마리를 팔아 딸을 대학에 보낸 우간다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묻는다. 어떤 사회가 진짜 행복한 사회일까.

 

📖 이 강연의 순서
1. 수술할 수 없다는 의사, 왜 정답을 못 맞힐까
2. 다섯 번째 딸, 태어나자마자 밀쳐지다
3. 학비가 없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4. 독종과 만성피로, 그래도 다시 책상 앞으로
5. 소를 판 우간다 여성, 그리고 모두의 진보

 

 

장윤금 전 숙명여대 총장 강연
장윤금 전 숙명여대 총장 강연

 

 

🤔 수술할 수 없다는 의사, 왜 정답을 못 맞힐까

 

강연은 오래된 퀴즈로 시작되었다.

아빠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아빠는 현장에서 숨졌으며 아들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아이를 수술할 수 없습니다.

이 아이는 제 아들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정답은 의사가 아이의 어머니였다는 것이다.

이 퀴즈는 하버드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무의식적 편견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물어도 정답률은 높지 않았고, 여학생만 있는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여성을 차별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의사도 과학자도 기업의 총수도 총장도 지도자도 남자라는 이미지를 너무 오래 보고 자랐다.

그것이 바로 무의식적 편견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까.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일까, 가장 부유한 사람이 많은 사회일까.

아니면 지금은 미약해 보이는 사람도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사회일까.

강연자의 삶은 그 답을 찾기 위해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가 말합니다'라는 자막이 보이는 수술실 화면
'그런데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가 말합니다'라는 자막이 보이는 수술실 화면

 

 

👶 다섯 번째 딸, 태어나자마자 밀쳐지다

 

1961년 용산구 후암동, 간절히 아들을 바라던 여인에게 다섯 번째 딸이 태어났다.

딸입니다라는 말에 너무 속상했던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알아보지도 않고 밀어버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몹시 서러웠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머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의 문제였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결혼해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석사와 박사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훗날 숙명여자대학교 총장, 그리고 154개 사립대학을 대표하는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집안의 지원을 받아 편하게 공부했으리라 짐작하지만, 그녀는 석사부터 박사가 끝날 무렵까지 부모님께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했다.

여자는 대학 나와 결혼 잘 하면 된다, 누구네 집 딸이 박사 공부하다 과로로 죽었다더라.

선하고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던 어머니는 딸을 막으려던 것이 아니라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그 사랑 속에도 시대의 한계가 있었다.

누군가는 공부를 숨겨야 했고, 공부하기 위해 침묵해야 했다.

 

'저는 이 아이의 엄마 입니다'라는 자막이 보이는 흑백 수술실 화면
'저는 이 아이의 엄마 입니다'라는 자막이 보이는 흑백 수술실 화면

 

 

📚 학비가 없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내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장학금이 없으면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석사 첫 학기, 다음 등록금이 없어 고민하다 용기를 내 교수를 찾아가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학비가 없습니다라고 절박하게 고백했다.

훗날 평생의 멘토가 된 그 교수는 오히려 격려하며 장학금을 알아봐 주고 추천서를 써 주었고, 그녀는 최초로 외국인 학생 특별 장학금을 받았다.

박사 과정에서는 학비와 생활비가 지원되는 강의 조교 자리가 필요했다.

학부 없이 석사와 박사만 있는 인문사회 계열이라 외국인이 조교를 맡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녀는 학과장을 찾아가 한 학기 동안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보조로만 일하게 해 주세요, 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편도 1시간 반 거리의 학교에 도착해 복도 불부터 켜고 한 시간 전에 수업을 준비했다.

한 학기 뒤 교수는 그녀를 정식 강의 조교로 채용했고, 이후 조교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잡을 원하면 윤금처럼 해라라고 말했다.

그녀가 그때 얻은 것은 조교 자리만이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은 조건보다 의지가 먼저 결정한다는 믿음이었다.

 

'다섯 번째 딸이 태어나다' 자막과 함께 보이는 아기 시절 흑백 사진
'다섯 번째 딸이 태어나다' 자막과 함께 보이는 아기 시절 흑백 사진

 

 

💪 독종과 만성피로, 그래도 다시 책상 앞으로

 

그 시절 가장 어려운 것은 공부도 돈도 아닌 육아였다.

두 딸을 키우며 낮에는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과제를, 새벽에는 논문을 썼다.

하루 서너 시간 자는 일이 일상이었고, 늘 눈이 충혈되고 피곤해 보여 붙은 별명이 독종과 만성피로였다.

너무 피곤했던 어느 날, 학과 건물의 작은 휴게실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깨어 보니 건물은 깜깜하고 아무도 없었다.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 건물에 갇힌 채 집에서 기다릴 가족을 생각하니 아득했다.

또 어느 날은 수업이 취소되어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딸은 베이비시터 가족의 식탁이 아니라 구석 장난감 테이블에 홀로 앉아 아침에 싸 준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돌아오는 내내 울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수없이 흔들렸지만 결국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전문성을 가지고 삶을 이끄는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소를 판 우간다 여성, 그리고 모두의 진보

 

교수가 된 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여성을 위한 교육 사업을 이끌며 그녀는 인생을 바꾸는 질문과 만났다.

교육은 정말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가.

답은 현장에 있었다.

우간다의 한 여성은 간단한 컴퓨터 교육을 배운 뒤 마을에서만 팔던 곡물을 더 넓은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닭을 사고, 닭을 팔아 염소를, 염소를 팔아 소를 샀다.

그리고 그 소를 팔아 딸을 대학에 보냈다.

그 순간 행사장의 모든 사람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 여성은 단순히 돈을 번 것이 아니라 한 세대의 운명을 바꾸고 있었다.

교육은 개인의 성공을 만드는 일을 넘어 한 세대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었다.

2014년 세계 여성의 날, 유엔은 여성의 평등은 모두의 진보다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여성이 교육받을 때 가정이, 경제 활동에 참여할 때 지역 사회가, 리더십을 발휘할 때 조직이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AI 시대를 살고 있지만, 기술의 혜택을 누구와 함께 누릴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아직도 세계에는 학교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동과 청소년이 2억 5천만 명에 이른다.

진짜 경쟁력은 기술 수준이 아니라 가장 약하고 소외된 사람의 가능성을 얼마나 키워 주는가에 있다.

사랑이 가능성을 발견한다면 교육은 그 가능성을 키우고, 사회적 제도는 그 가능성이 꽃필 수 있도록 지켜 준다.

다섯 번째 딸이었던 그녀의 삶과, 소를 팔아 딸을 대학에 보낸 우간다 여성의 삶이 그 증거다.

여성의 평등은 여성만의 진보가 아니라 가정과 지역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인류 전체의 진보다.

 

 

밀쳐졌던 다섯째 딸, 총장이 되다 | 세바시 21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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