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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418회 백수의 정치경제학 | 고미숙 문학평론가


강연 소개 : 이태백.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자조섞인 신조어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만큼 오늘날 우리 사회엔 백수가 넘쳐납니다. 게다가 요즘은 사회적 정년이 빨라지면서 중년 백수, 장년 백수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명은 늘어가는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사람들의 마음엔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백수'는 삶의 새로운 형식을 창안할 수 있는 21세기적 존재 형식일 수 있습니다. 삶을 관조하는 한량이자 '백수'였던 공자 부처 노자 연암과 다산 등의 과거 인물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백수'의 대처 자세를 생각해봅니다.


게시일: 2014. 5. 11.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좀 시대를 앞서서 아주 오랫동안 백수로 지냈거든요

처음에는 조금 외롭고 꿀꿀했어요

근데 이제 날이 갈 수록 이 맛이 너무너무 쏠쏠해서

세상에 이렇게 좋은 팔자가 있나

그런데 이거를 이렇게 얘기할 데가 없었어요

근데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제 주변에 백수가 늘어나는 거에요

드디어 백수 천국의 시대가 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백수의 정치경제학을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되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강의는 아주 특별하게 지금 15분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벌써 2분이 지났네요

제가 세가지 파트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 백수의 존재론인데요

우리는 디지털 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디지털이란게 뭔가요?

끊임없이 유동하는 겁니다

성과 세대, 국가, 인종 이런 모든 경계들이 흔들리고 있어요

저는 가끔 제가 여잔지 남잔지 애인지 어른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정신줄 놓으실 때가 많죠

그게 어떻게 보면 되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것이 흔들린다면

직업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금도 많은 것을 사실 기계가 다 해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기계가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일자리가 더 늘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 전 세계가 백수로 넘쳐나게 되겠죠

청년백수는 기본이고요

중년백수

그리고 직업을 계속 가지고 계시다고 하더라도

정년이후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또 백수로 지내야 되는

정년백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수는 전 세대에 걸쳐서 누구나 겪어야 되는

삶의 어떤 단계인 것이죠


그런데 지금 사회가 이래서 그런가요?

정규직에 올인을 합니다

대학가는 이유? 정규직 공부하는 이유? 정규직

그 다음에 스펙을 왜 이렇게 열심히 쌓느냐 하면 정규직

답이 다 정규직이에요

근데 이건 정말 이상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던가

어떤 활동을 싶다가 아니라


정규직 자체를 어떻게 열망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렇게 됐어요

더 놀라운 거는 그렇게 청춘을 바쳐서 정규직을 얻은 다음에

그 다음에 너무 많이 직장을 옮깁니다

그만 두는 사람도 너무 많고 이직률도 너무 많아요

그럼 이거는 도데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겁니까?

모두가 정규직을 열망하면서 정규직에 들어가서는

거기에 붙어있질 않아요


도데체 이게 무슨 현상일까요?

이게 바로 디지털 시대에 사람 마음의 행로입니다

이제 사람은 절대로 고정된 무엇에 붙들려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직업에 내가 평생을 종사하겠다

이렇게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디지털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도 끊임없이 유동합니다

여기에서 저기로 이 직업에서 저 직업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서 길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정말로 우리는 정규직을 열망하는가?

그리고 그 정규직이 내 삶의 어떤 무게중심이 될 수 있는가?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거는

이제 백수라고 하는건 특별한 삶의 조건이거나

열등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거죠

아주 자연스러운 존재의 표현 형식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경제학적으로 백수는 인류의 미래다

이게 저의 첫번째 결론입니다




두번째는 백수의 계보학인데요

그러면 이게 시대가 낳은 불가피한 산물인가?

그렇다면 사람은 원초적으로 직업과 노동을 열망한다고 전제해야 맞겠죠

정말로 그렇게 직업과 노동을 원하십니까?

절대 그럴리가 없습니다

사람은 원초적으로 노는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랫동안 백수로 살면서

백수는 직업이 없는게 아니라 직업을 스스로 만드는 존재다

이거를 제가 실험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만들어서 저에게 부여했습니다

이렇게 다 만드세요 자기가 직업을

굳이 가질려고 하지 마세요 어디 들어가서

그랬는데 제가 동서양 고전을 쭉 섭렵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고 제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걸고도 배우고 싶은

고전의 스승들은 모두 다 백수 출신이라는 거에요

그 대표적인 분이 원조 중의 원조인 공자(孔子)입니다

공자는 주유천하하면서 너무 많은 이력서와 오디션을 봤어요

다 떨어졌어요

아무도 그를 써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어떤 결핍과 박탈감도 없이 기꺼이 백수의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스승이 됐습니다

백수로 살았을 뿐인데 그걸 모든 사람들이

지금 논어 없으면 동아시아는 다 쓰러집니다

살아갈 수가 없어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런데 부처와 노자는 아예 직업에 대한 욕망 자체가 없는 분이에요

그래서 동양사상의 위대한 스승들은 공자, 노자, 부처죠

이 제자들이 동아시아를 이끌어 온 소위 사대부라고 하는 계급입니다

근데 사대부는 어떤 집단이죠?

직업을 갖지 않는 집단입니다

과거를 봐서 관료가 되거나

그렇게 공적으로 헌신하지 않으면 책을 보면서 놀아야 됩니다

장사를 하거나 밭을 갈거나 공쟁이를 하면 이건 반칙이에요

그러면 사대부가 될 수 없어요


제 인생의 기폭제가 되었던 열하일기(熱河日記)

그 저자인 연암(燕巖) 박지원과 그의 친구들

파고다 공원 근처를 주름잡던 바로 백수지성의 원조 입니다

연암은 집안이 나쁜 것도 아니고 과거만 보면 바로 출세길이 열린 엄친아였어요

그런데 그거보다 그 길을 가지 않고 스스로 자발적 백수의 길을 가서

많은 사람을 백수로 만들었어요

저는 처음에는 그냥 이걸 모르고 열하일기에 열광하고 열심히 배우다가

너무너무 삶의 리듬이 비슷한 거에요 저하고

동네도 비슷해요 심지어

연암의 친구들이 왔다갔다 했던 데가 필동, 묵동 이런 데거든요


그런데 또 서양 고전을 읽다 보면 소크라테스나 디오게네스 같은

서양 철학사의 현자들도 전부 다 자유인 출신입니다

자유인이 뭡니까?

직업을 갖지 않는 존재입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는 직업을 갖는 건 노예에요

노예는 아주 확실한 정규직입니다

평생동안 하나의 직업을 갖고 더구나 세습까지 됩니다

그거보다 더 안정된 직장이 어디있겠어요?

그거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바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럼 자유인은 놀아야 됩니다

그러면 집에 있으면 어떻겠어요?

온갖 구박을 받겠죠?

그래서 광장으로 나옵니다

광장에 나와서 무엇을 합니까?

철학을 합니다

그게 바로 서양 사상의 토대를 만든 백수 지성의 화려한 향연이라고 할수 있죠


백수로 집안에서 분위기가 안 좋은 분들

광장으로 나오세요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고 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게 바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직업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와서 유독 노동에 대한 예찬과 직업에 대한 열광이 생겼습니다

왜 그럴까요?

삶을 위해서? 아닙니다 인간을 위해서? 아닙니다

화폐의 증식을 위해서 입니다

화폐를 무한히 증식하려면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노동을 열망해야 합니다

직업이 없으면 자기자신을 자책하고 자기를 괴롭힙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망상을 부여하는 거죠


그래서 억지로 정규직이 됩니다

그런데 정규직은 무엇을 꿈꿉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고 친구를 만나고

그 다음에 인생과 우주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

바로 백수가 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게

그렇다면 정규직의 미래도 역시 백수인거죠


여기에는 제가 어떤 트릭도 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있는 그대로 지금 말씀드린거고 있는 그대로 믿으셔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세번째 백수의 윤리학인데요

왜 정규직을 얻고 싶어합니까?

아마 다 연애하고 싶어서 그러실꺼에요

돈이 있어야 연애를 한다고 생각하시니까

그러면 연애를 해서 뭐합니까?

결혼을 해요

결혼을 하면 그때부터 스위트홈이 이루어질꺼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지옥이 시작이 되죠

멜로의 다음 버전은 막장 드라마입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

그 다음에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연봉을 얻었어요

그래서 집이 스위트해졌다고 쳐요

그 다음에 뭘 합니까?

자식을 낳아서 다시 그 레일에 올라오게 합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거죠

이게 바로 소유와 증식이라고 하는 삶의 척도입니다

무수히 더 많은 걸 가져야 되고 더 누려야 되고 더 빨리 더 넓게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 지도 모른 채

소유와 증식을 향해 달려갑니다

설국열차에서 보셨죠

머리칸으로 가봤자 별 볼일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옆문으로 나가셔야 되요


그래서 소유와 증식을 끊임없이 추구했는데 결과가 뭡니까?

삶의 번뇌와 몸의 질병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것도 주지 않았어요

근데 왜 그러냐면 소유와 증식은 반복입니다

그 반복은 삶의 새로운 가치를 생성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얻는 건 권태나 우울증이 올 수 밖에 없어요

이것을 우리가 인류의 미래라고 미래적 비전이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인류의 비전은 이렇게 바뀌어야 됩니다

소유에서 자유로 증식에서 순환으로

이미 문명사적으로 그렇게 축이 이동을 했거든요


그렇다면 백수는 존재 자체가 자유고 순환입니다

더이상 사회를 위해 뭐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그 자체가 문명의 대 비전탕구에 서있는 거에요


그러면 백수는 무엇을 하냐?

자기를 온전히 배려하는 일만 하면 됩니다

자기 앞가림만 잘하면 된다 이런 뜻입니다

더 무엇을 위해서 하지 않으셔도 되요

이것이 주는 자유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많은 걸 가질수록 책임과 부담과 의무는 무한히 같이 증대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것이죠?

이런 것을 이미 인류는 몇 천년 전부터 갈고 닦았습니다

서양 그리스 로마에서는 이것을 자기배려의 윤리라고 했고

동양에서는 양생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가 말씀을 드릴까요?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공공자산을 갖게 됐습니다

지금 이 장(場)도 공짜로 오셨죠? 공짜죠?

굉장한거 아닙니까? 이걸 공짜로 누릴 수 있다는거

그러면 내가 백수라고 합시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 삶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냐면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세요

그 다음에 걸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공공도서관으로 가세요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책과 요즘은 다 인문학 강의가 있습니다

책과 인문학 삶의 지혜가 있는 거

이거보다 더 고귀한 삶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 도시락을 쌌어요

그러면 자립을 했습니다

내 힘으로 먹고 삽니다

그 다음에 어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내 두발로 걸어갑니다

이게 엄청난 일이죠

걸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세요 걸을 수 있는 권리

많이 가질 수록 우리는 신체가 무력해지는 걸 이미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차가 좋으면 뭐합니까?

내 다리를 쓸모없게 만드는데요

백수는 이런거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냥 가세요 돈이 없기 때문에 그냥 걸어가세요

그러면 그 하루를 가장 고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인류가 원하는 최고의 삶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게 바로 양생의 진리다

이렇게 살 수 있으면 무병장수는 따놓은 당상이에요

뭐 다른게 필요없어요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건 뭐냐?

백수들끼리의 연대와 네트워크 입니다

거기 가면 많이 있습니다 청년백수, 중년백수, 정년백수

나이 신경 쓸 거 없어요

직업, 과거의 직업 다 신경 쓸 거 없어요

어떤 것도 다 넘나들 수 있는 시대가 됐거든요

그래서 네트워크 하세요 알바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든지

아니면 정말 철학을 가지고 일 년 동안 같이 공부를 하든지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 안에서 무엇이 생성됩니까?

새로운 윤리적 가치가 생성됩니다

그 가치의 핵심은 뭐냐?

화폐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두 번째, 스위트홈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인간관계의 지도가 그려져야 됩니다

백수 못지 않게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 가는 건 솔로(Solo)입니다

일 인 가족이 조만간 몇 백만, 천만에 이를 겁니다

백수면서 솔로면 완벽하죠


그러면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과거적 의미의 가족 틀 안에서

살 필요도 없고 살 수도 없게 됐습니다

나오세요

그러면 거기 무수히 다른 종류의 패밀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합니까? 이제 소유와 증식이 아니니깐

우정과 지성을 통해서 소통과 순환의 기예를 터득하는 거죠

이것은 인류가 공자 이후 소크라테스 이후

몇 천년 동안 갈고 닦고자 했던 삶의 경지입니다

정규직은 이렇게 할 시간이 없어요

공공자산 이용할 시간이 없어요

그렇다면 이제 백수가 이런 윤리를 새로 이끌어 내서

고생하는 정규직에게 좀 나누어 줘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백수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글자막 : 김견홍 (kkhwai@naver.com)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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