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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510회 내 삶의 힘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조선희 사진작가


강연 소개 :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사입니다. 말할 때 음율이 느껴져 자꾸 속으로 되뇌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어감이 들어있기 떄문입니다. 전 그리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그 놈에겐 멋진 엄마이기를 바라는 소망을 내려놓지 못합니다.아들과의 남미 여행을 꿈꾸고 지금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의 세계가 날아들길 꿈꾸는 제 얘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게시일: 2015. 1. 19.



(박수)

안녕하세요 조선희입니다


(박수)

저는 사진가이고 대학교수이기도 하고 책을 4권 낸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엄마이죠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굉장히 바쁜 '나쁜 엄마'입니다


사실 오늘도 저희 아들이 일년에 한번 밖에 없는 학교 발표회였어요

근데 마침 딱 이 시간과 겹쳐서

제가 거기를 못 갔습니다

저희 아들에게 제가

엄마가 그 날 모르고 약속을 따블로 잡아서

스케줄이 있어서 못 갈 거 같다 라고 말했더니

아홉 살 난 그 녀석이


"엄마 괜찮아 엄만 늘 바쁘잖아"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슬쩍, 아주 슬쩍 저에게


"엄마, 그 약속은 바꿀 순 없는 거야?"


라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다 엄마신가요?

(네)


저랑 같군요

슈퍼맘이 되지 말라고 말할려고 나왔습니다

저는 슈퍼맘이 되지 않으려고 2006년, 저희 아들을 임신 했을 때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의 아들에게 좋은 엄마이기 보다는 멋진 엄마이고 싶었어요

우리 아들이 나중에 컸을 때


"이 세상에 누가 제일 멋있는 여자야?" 라고 물어봤을 때

"우리 엄마" 라고 말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가끔 이렇게 치맛바람이 있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제가 저의 아들 축구 게임 때

그것도 거창한 축구 게임이 아닌 축구교실 축구 게임 때

사진찍으러 들어갔다가 찍힌 사진인데요

주변사람들은 말했죠


"엄마가 사진가니까 이렇게 큰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주고 참 좋겠다"


라고 말했어요

저희 아들이 "저는 엄마가 사진 찍어 주는 게 제일 싫어요"


정말 싫어합니다, 사실

제가 핸드폰 카메라로라도 사진 찍어 줄려고 하면

막 고개를 흔들고 사진 못 찍게 막 도망다녀요

뭔가 방해를 하고 싶은

엄마는 나를 절대 잘 찍을 수 없어

이런 마음이 있는 건지

왜인지 제가 어제도 물어 봤는데 대답하지 않더라구요

저도 아직 그 이유는 모릅니다



이 사진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2학년이었던 소풍 사진인데요

그 녀석의 나이와 같은 나이였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앉아 있는 파란색 체육복을 입은 아이가 접니다


얼마나 부모님의 관심과 애정이 없었으면

소풍날 체육복을 입고 갔을까요?


저희 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둔 장사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저희를 할머니 손에 키우셨죠

저도 물론 저희 아들이 한 명 밖에 없지만

할머니 손에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을 느끼기 전에

결핍을 먼저 배우고 산 아이였습니다

저는 결핍이 물론 슬픈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은 에너지를 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한번 입 속으로 해 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음률이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데 잘 생각해보면

그러나 뭔가 할 수 있다는 굉장히 딴딴한 느낌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할 수 있어

그런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제 생활 모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해 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엄마가 돼 보리라 노력하리라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대학생 시절에 찍었던

저의 첫 번째 작업 사진입니다

저는 1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저기에 걸린 사진 중에 약간 조그만 사진이 저의 아버지입니다

저는 결핍이 있는 아이로 자랐고

애정 결핍이죠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고 아버지를 잃고 더 많은 결핍이 있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 결핍이 결국 저를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24살 때 사실 사진기도 없었고 돈도 없었습니다

근데 정말 사진이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평생 살면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라고 생각했을 때

단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사진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데뽀로 김중만 선생님을 찾아갔죠

저는 사진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가난한 학생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진을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었죠

만약에 제가 결핍이 있는 아이로 자라지 않았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러지 않았더라면 김중만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을 거고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996년에 '이정재'라는 배우를 만났죠

그 배우를 찍을 때에도

인천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나왔어요

처음에는 이정재씨를 구경했죠

근데 나중에는 저를 구경했어요

왜? 굉장히 남자처럼 생긴 여자 아이가

땅바닥에 드러눕고 바다 속에 들어가고

그러니까 굉장히 이상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는 그 때

단지 좋은 사진 한장 찍고 싶다 라는 그 생각 하나로

추운 겨울이었지만 사진을 잘 찍지는 못했지만

정말 마음을 다 해서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진은

1999년에 세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그것도 당연히 이코노미겠죠?

(비행기를) 타고 아디스 아바바를 갔었어요

그 때 찍었던 이영애씨 사진입니다

이 때도 그리 큰 돈을 받고 가지는 못했습니다


겨우 스튜디오 월세 낼 정도

그 때까지도 돈을 잘 버는 사진가가 되겠다라던가

유명한 사진가가 되겠다라던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애초에 아무것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사진을 찍는 게 좋았고

누군가 저에게 일을 주는 게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세월이 지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에게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어떤 브랜드를 찍게 됐는데



이 브랜드는 제가 지금도 찍고 있어요

한 16년 정도 됐죠

이 일로 하여금 그 전에는

그 전에는 한 컷당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받는 사진가였다가

이 사진으로 해서 한국에서 제일 비싼 광고 사진가가 되었습니다

(박수)


저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에 대한

항상 물음표가 저한테 따라다녔어요

오늘도

저는 매일매일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가끔 일기를 씁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질문을 저에게 했어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아침에 제가 그런 일기를 썼죠


다른 사람이 가진 걸 부러워하고 욕심내는 사이에

내가 진짜 가진 걸 잃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지 말아야지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의 아들, 나의 남편

지금 제가 함께하는 이 소중한 시간의 귀중함보다

다른사람들이 가진 것에 더 시선을 두고 더 부러워 하기도 합니다

저도 가끔 그렇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보다 다른 사진가가 찍은 사진이 더 잘 찍은 것 같고

다른 사진가가 하는 일이 더 좋은 일인 것 같은

그런 욕심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물론 오늘도 그런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그런 일기를 쓰게 됐겠죠



제가, 2004년이군요 벌써

2004년에 결혼을 했어요

그 당시에도 사람들이 모두 "조선희가 결혼을 해?"

"나는 안 하고 뭐 하고 있는거야? 나는 못하는 거야?"

"어떻게 조선희가 결혼을 하지?"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혼을 했죠

(웃음)


그리고 2006년에 임신을 했습니다

2005년에 했군요 2006년에 낳았으니까

그리고 아들을 얻었습니다



저 사진이 첫 번째 가족사진입니다

(웃음)


굉장히 못생겼군요

지금이 더 예뻐요

2006년에 애를 낳고 제가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제가 한 8개월에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10개월 정도 쉬었습니다

쉬고 다시 돌아왔는데 정말 전화 한통 없는 거에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


"조선희가? 에이 너무 오바하지마"


그렇게 말합니다

근데 그 때 저는 느꼈습니다


'아, 조선희라는 사람 아무것도 아니구나'

'오만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제 아들이 준 첫 번째 선물이었습니다

조선희 오만하지 마라

너 아니래도 사진 잘 찍는 사람 많다

저는 그 전에 제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제 사진을 좋아하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한 번도 사회에 제 도움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죠

근데 임신한 그 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세상에 필요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부도 하고 재능기부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진짜 희한하게도 마침 그 때 그런 일들이 들어오더라구요



첫 번째 위에 왼쪽에 있는 분은 싱글맘이신데

아름다운 재단과 같이 했던

싱글맘을 위한 기부를 위한 일이었구요


두 번째 위쪽의 오른쪽 거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겪고 있는 여성분들을 위한 재능기부였습니다


밑에는 나눔의 집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초상사진이라고 해야 될까요? 인물 사진이었습니다


지금도 여러가지 재능기부 여러가지 그런 걸 하고 있는데

제 아들에게 나중에 크면 꼭 그 말을 하고 싶습니다

너 덕분에 엄마는 덜 이기적으로 살았다


물론 저는 아직도 이기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더 이기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근데 아마도 그 말은 저희 아들에게 늘

저희 아들이 좀 더 크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저는 아들을 낳고 참 고민이 됐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에는 굉장히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람인데

어떡하면 좋을까


그 때, 제가 친한 언니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슈퍼맘이 되려고 하지 마라

10분을 놀아도 네 아들이 

'우리 엄마는 날 너무 사랑하는구나'

'우리 엄만 내 친구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게 놀아줘라

그런 말을 했습니다

사실 그 언니는 그 말을 저에게 했는지 기억 잘 못합니다

(웃음)


근데 저는 그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10분을 놀더라도 한달에 하루를 같이 보내더라도

정말 그 친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이거는, 일주일 전에 제가 요르단으로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요르단 사진입니다

요르단에 갔더니 사람들이

"결혼을 했나요?" "자식은 있나요?"

이렇게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어, 아들 하나 있다" 이랬더니

"그럼 아들은 어디있냐?

"왜 같이 안왔냐?" 라고 묻더라구요

"아들은 집에 있다"

굉장히 의아한 표정을 하더라구요


저는 사실 아들을 내팽게치고

혼자 열흘 동안 페트라와 와디롬 사막을 다녀왔습니다

저희 아들이 그 날 아침에

돌아오는 날 아침에 공항에 나왔더군요

그러면서 

"엄마, 내일 또 내일 바로 스케줄 있어요?"

이렇게 물어보더라구요

"엄마 너무 피곤해서 어떡해요?"


참 제가 아들 잘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 꿈은 저의 아들과 남미 여행을 하는 겁니다

약속을 이미 했죠

근데 그 친구가 지킬지는 모르겠네요

남미 여행을 같이 하면서 정말 삶에 대해서

엄마와 아들로서가 아닌

나이 한 35살 차이 나나요?

35살 차이 나는 친구로서

인생을 얘기하면서 같이 여행하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그리고 제 꿈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의 아들이 나중에 

"이 세상에서 저는 저희 엄마가 제일 멋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이 30년 후 저를 찍은 겁니다

30년 후에도 사진기를 들고 그냥 저 자신을 사랑하면서

제 아들을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싶습니다


한글자막 : 정규호 (korea4241@hanmail.net) 

한글검수 : 최두옥 (dooook@gmail.com)


저도 일맘 (Working Mom)이지만 저희는 슈퍼우먼이 될 수 없죠

무언가 둘 중의 하나는 약간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희 아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 보다

저를 더 많이 사랑하는 걸 선택했습니다


매일 행복한 일맘을 응원합니다!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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