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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826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우리는 위대합니다 | 김상현 청각장애인 야구선수 | 인생 강연 강의 듣기


강연 소개 : 절망적인 일들로 인해 슬픔에 빠져있던 제가 야구로 인해 희망의 끈을 다시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구나.”하고요. 저 또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도요.


게시일: 2017. 10. 24.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뭐라고 하시나요?

어느 학교 누구, 라고 하시나요? 나이로 소개하시나요?

저는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는 29살 김상현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마디가 더 붙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은 청각장애인입니다


장애는 제가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지만, 제가 선택한 불행이 있습니다

바로 술입니다

최근까지 술에 의지했었지만, 

지금은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고 새로운 꿈도 생겼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사실 저뿐만 아니라 제 동생도 청각장애인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힘들 때마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가끔 저에게 화도 내고 또 어느 날은 너무 미안해하셨습니다.



그걸 보는 게 힘들었는데, 고1 때부터 술·담배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잠시 동안 모든 걸 잊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다 2015년 봄에 간암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힘든 일이 닥쳐왔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놓고 친척들과 재판이 이어졌습니다.

정말 화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처럼 매일 술을 마시게 됐습니다.

가끔씩 동생과 친구에게도 화풀이하기도 했습니다. 

화내고 나면 늘 후회했지만 제 안의 분노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늘 외롭고 절망적인 기분에 술에 빠져있던 제가

희망의 끈을 다시 잡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야구, 그리고 저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구나" 하고요


저의 인생에 가장 고마운 분이 있다면 역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인 저와 동생을 많이 사랑해주셨고 

저희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형제가 저와 동생이 야구 할 수 있게 해주신 고마운 분이기도 합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저희 형제들이 공부하기 편하도록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충주 성심학교'로 전학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를 선택하신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야구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상샘이 좋지 않았던 저는 야구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야구를 하면서 자신감을 찾고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농아인 야구대회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 동생도 2014년까지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야구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야구부가 있는 대학진학을 권유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포기하고 공장취업을 선택했습니다


첫 번째는 어려워가는 집안 형편상, 아버지께 부담을 드리기 싫었고

두 번째는 농아인이기 때문에 

프로선수로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세계농아인 올림픽(데프림픽)에 야구국가대표로 나가고 싶었지만 올림픽에 야구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진학의 꿈도 야구도 그만두었습니다 


2015년 2월 초, 아버지가 간암 말기라는 것을 알게 되어

병간호를 위해 4년간 다니던 직장도 급하게 그만두었습니다

허망하게도 얼마 안 되어 아버지 생일 다음 날 새벽, 

2015년 3월 20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임종 순간, 눈도 감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장례식 동안 술을 많이 마시며 울었고 

조의금과 아버지 재산 등 돈 문제로 혼잡했던 친척들 앞에서 상을 엎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저희 형제를 위해 땅과 집을 상속해 주신 것을요 

돌아가시기 전에 저와 동생에 대해 늘 걱정이 많았다던 아버지 친구들의 말씀에 

무뚝뚝했던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을 느끼면서 또 한 번 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항상 곁을 지켜주시던 아버지가 안 계시니 당장 밥은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지 

세금은 어떻게 내야 하는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몇 달 동안 설거지를 쌓아놓아 곰팡이와 벌레가 생겨 

그릇들을 통째로 버릴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상실감에 저는 더 술에 의지하였습니다.

사촌 형의 제안으로 당구장 사업을 하게 됐는데, 몇 달 만에 접었고 

사촌 형과도 멀어지면서 제 몸과 마음은 더 망가졌고 


언제 웃었는지 모를 정도로 제 마음은 굳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구가 다시 하고 싶어서 

‘대구 호크아이 농아인 사회인야구단'에 입단하였습니다.


저 자신도 '농아인은 어둡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대구팀 선수들을 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았습니다.


특히 우리 야구단 단장님인 박영진 누나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런데 저와 달리 밝고, 지식이 많고, 저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오셔서 조언을 듣고자 고민 상담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청각장애인도 비장애인 못지않게 밝고 혼자서도 잘 해결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요 

단장님과 선수들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전기밥솥과 청소기를 사고 이사할 때 해야 할 일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도움은 저 자신에 너무나 실망해있던 저에게 새로운 저를 발견하게 해주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워낙 무뚝뚝하고 반항아 이미지가 강해서 사람들이 저를 어려워하는데 

우리 대구팀 선수들이 

'너 재밌고 웃긴다' 

'농담도 잘하고,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웃는 모습 괜찮은가요 ? 

(박수)


웃을 일이 없이 힘들던 저는 그런 저의 모습을 몰랐습니다 

무뚝뚝하다가 가끔 하는 농담이 빵 터지는 웃음을 주기도 하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야구다 보니까 잘 웃게 되는데 그 모습이 좋다는 칭찬이었습니다 


저를 따뜻한 관심으로 바라봐준 선수들의 진심 어린 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단장님과 선수들은 저를 불쌍히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저의 건강과 미래를 걱정해주었습니다 

술을 줄이고 일을 다시 해보라는 것과 공부를 시작해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진정한 도움은 좋은 말만 하거나 위로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곁에 그런 고마운 사람이 있습니까 ?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계시나요? 


덕분에 저는 회사를 소개받아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저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률용어처럼 어려운 글은 잘 이해 못 하던 저를 도와서 지인들이

집 등기 서류를 함께 봐주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의 명의가 모두 어떤 친척들의 명의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명의변경의 의미를 잘 몰랐던 저는 난생처음 소송을 시작하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처음엔 민·형사 소송을 신청하면서 법이 공정히 해결해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망 후에 너무 경황이 없었고 말도 잘 못 하고 안 들리기 때문에 
설명도 제대로 못 듣고 가까운 친척들에게 인감과 인감증명서를 건네준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야구밖에 몰랐던 저는 지식이 부족했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피 같은 땅과 사망보험금, 조의금들을 돌려받지 못했고 
뭔가 속아서 당한 것 같은 억울함과 배신감이 컸습니다 

길고 힘든 소송을 더 끌어봐야 승산이 없다는 주변의 말에
소액의 합의금만 받고 끝내게 되었습니다 

제 기대와 달리 법이 
장애인들의 억울한 사정까지 다 해결해주지는 않더군요 
저희 모르게 소중한 아버지 유산을 처분할 수 있도록 
인감과 인감증명서를 맡긴 것이 두고두고 후회됩니다 



이 일로 아주 소중한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돈 때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교훈과
아무 상관 없는 나를 도와주는 새로운 가족을 얻었습니다 

야구단 사람들은 물론이고 친구 어머니가 
반찬이나 명절 음식을 챙겨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런 소소한 관심과 도움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떠나셨던 어머니가 뒤늦게 제가 처한 일을 아시게 되어 
힘들었던 저를 위로해 주셨고 
그 과정에서 예전보다 가까워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타인을 조건 없이 도울 때 그 도움은 1회로 끝나지 않고 
남을 진심으로 도울 때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돕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를 도우면서 단장인 박영진 누나는 청각장애인들이 금융사기에 쉽게 당하고
법률적으로 피해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들을 돕기 위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친척과의 소송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저를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청각장애인이 법에 약하니까 
도와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올해 1월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행복팀 투자사기' 범죄단체의 실체와 금융사기 예방방법들을 알려서 
많은 청각장애인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고 저도 옆에서 돕고 있습니다

행복팀 투자사기 사건농아인사회의 조희팔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아주 큰 사건인데
청각장애인들로만 구성된 사기범죄조직이 
같은 처지의 청각장애인들에게 대기업회사를 만들어준다며
투자하면 3배, 5배 이상 이익을 준다고 사기를 쳐서 
농아인 피해자가 500명 이상에 이르고, 
피해 금액이 최소 280억 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현금을 빼고 통장 거래내역만 280억이라 
실제 피해 금액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합니다

사기당한 사실에 충격받은 농아인 아저씨 한 분이
지난 6월에 자살하기도 하셨습니다

머리 좋은 농아인들이, 말 못하고 정보에 취약한 농아인들에게
집 담보대출, 고금리 대출, 사채를 받게 시켜서 원금을 다 가져가고
대부금과 이자는 피해자가 계속 갚아가게 했다고 합니다
20년 평생 모은 저금이나, 아기 돌 반지까지 갖다 바친
피해자들도 있는데 아직 재판 중이라 합니다

KBS 시사프로그램에 방영되기도 했지만 
청각장애인 관련 사건이라 사람들이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번 기회에 청각장애인 피해자들의 아픔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청각장애 특성을 이용하여 피해당한 점이 
저의 사례와 비슷하다 보니 저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제가 겪었던 경험으로 다른 농아인도 도와주면 
큰 힘이 될 거라는 단장 누나의 조언에 
피해자들과 상담할 때 함께 나서게 됐습니다. 참 신기하죠 ? 

저와 누나의 만남이 또 다른 사람들을 돕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어색하고
그분들이 고맙다고 말해오면 기분이 묘했습니다
늘 도움만 받던 제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지금 혹시 힘든 일을 겪고 계시나요?

가장 힘들었던 고통과 경험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믿고 견뎌내시기를 빕니다 

저는 장애인들의 아픔은 같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나서야 
더 힘이 된다는 걸 깨달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사이버 수업에 필요한 컴퓨터 공부도 자신이 없었고 막막했는데 막상 해보니 두려움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꿈과 목표도 생겼습니다.
바로 농아인 사회복지사입니다.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제가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아버지 산소에 가서 많이 울었는데 이제는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곁에 없지만 아버지가 남겨준 사랑은 제 가슴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늘 최선을 다하라, 나중에 다 함께 모여서 행복하게 살자"
고 하신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아직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많이 힘드신 분들 계신가요? 
만약 혼자서 힘들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에 주저하지 마세요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단 시작해보시고 도움을 받고 난 후엔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세요

작은 관심, 진심 어린 말 한마디, 따뜻한 웃음은 정말 저같이 외롭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힘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남을 도울 수 있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저도 받은 만큼 돕는 사람이 되어서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요즘 세바시 강연을 준비하면서 한가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의 공무원 친구들과 함께 경주로 가족 여행을 갔었습니다. 
저와 동생이 둘 다 청각장애이다 보니 아버지 친구분들이 호기심에 궁금해하셨는데 
저는 그런 관심이 부담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에 아버지도 마음이 좋지 않아서 경주에서 구미까지 택시 타고 집에 돌아왔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술을 많이 드시더군요
저는 어린 마음에 화를 냈습니다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왜 청각장애인으로 낳았어요?”
하지 말아야 했을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다음날 아버지는 저에게 직접 연락은 못 하시고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셔서 '형을 데리고 집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를 보고는 "아들, 아빠가 너무 미안해" 말씀하시며 많이 우셨습니다 


세바시 무대에 선 지금의 저를 보신다면 아버지가 참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 지켜봐 주고 계시겠죠 들리신다고 믿으며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그때 제가 철없이 한 말 제가 더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게요" 

감사합니다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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