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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523회 |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을 구해줄 것들 | 김기범 축산물품질평가원 이력사업본부장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을 구해줄 것들 | 김기범 축산물품질평가원 이력사업본부장 | #동기부여 #커리어 #관계 | 세바시 1523회

 

죽음의 비밀을 쫓던 법의학자가 선택한 더 가치 있는 일?

 

 

 

저는 아직도 산풍 백화점 때의 일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감식을 할 때마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그리고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상태인 그 두 가지를 함께 목도하는 것은

정말 저에게는 감정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회의가 되기도 했죠. 

한 사람의 경험은 결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지나왔던 발자국을 돌아보시고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 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당신을 구해줄 것들

 

 

GATC 알파벳의 나열, 구아닌, 아데닌, 티민, 시토신 혹시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네 맞습니다. 바로 DNA. 

DNA는 모든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보물 창고입니다.

바로 여기 DNA를 가지고 분석하는 일을 제가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 DNA를 활용해서 과연 어떤 일을 했을까요? 지금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진실을 찾는 범죄수사 프로그램 CSI 등에서 자주 보셨을 겁니다.


증거물과 용의자의 혈액을 한 장비에 넣고 몇 분 후에 모니터에서 DNA가 일치 불일치 이렇게 멋있게 딱 뜨는 장면을.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고요.

DNA 범인을 특정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현장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과거의 정확한 진실을 말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혹시 제가 두 번째로는 무엇을 했는지 아실까요? 잘 모르시겠죠? 두 번째는 바로 축산물이력제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번호

대한민국에서 키워진 모든 가축과 축산물에도 비슷한 번호인 이력번호가 존재합니다.

이 이력번호를 통해서 가축이 태어나서 자란 곳은 어디인지, 몸짱이었는지 아닌지, 친환경적인 삶을 살았는지, 동물 복지 혜택을 잘 받았는지, 질병 이력, 그다음에 예방접종 이런 것을 빠지지 않고 했는지도 이력제로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력제가 올바르게 시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치면 지문 검증처럼 국내산 축산물에서는 DNA 검증 실시하고 있습니다.

농장에서 식탁에 올라오는 국내산 축산물의 모든 과정이 기록되고 투명하게 공개되니, 우리 축산물 제대로 믿고 드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뜸 인사도 없이 DNA 이야기를 하는 저 놈 대체 누구냐? 이런 의문이 드실 텐데요.

다시 한 번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DNA 분석 전공의 법이학자이자 축산물 이력제 전문가인 축산물품질평가원 김기범 이력사업본부장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정말 반갑습니다.

 



요즘은 대사병이라고 합니다. 

대사병? 대학교 4학년 병..

 

흔히 다 잘 아시는 대사 질환과는 완전 다른 질병입니다.

대학에 진학했으나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해답을 얻지 못해 허무와 우울에 빠져서 있는 상태의 대학생에 대한 신조어입니다.

더욱이 대학교 4학년이면 이제 취직을 막 생각해야 하는 때라 그 감정의 깊이가 더욱더 깊어지죠.

 

 

저도 물론 그랬습니다. 

요즘 세대랑 차이가 없었습니다.

축산악을 배워 앞으로 어떻게 어찌해야 하나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저에게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교통사고가 일어나서 6개월의 시간 동안 입원과 치료를 계속 번갈아 받아야만 했었습니다.

남들이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런 시기에 저는 너무 아파서 정신도 못 차리고 계속 치료만 집중하고 있었죠.

'아... 나는 이 이 생에서는 정말 취직은 힘들겠구나. 나는 망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병원에 누워서 아픔에 끙끙 거리고 있을 때, 제가 학부 시절에 인턴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때 대학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기범아. 대학원에서 공부를 좀 할 수 있지 않겠니? "

그래서 저는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치료 중이라 대학원에 입학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야 너 내 대학원생이 돼. 여기는 병원이니까 치료하면서 공부하면 되지 않겠니?"

그렇게 저는 그 선생님의 달콤한 말씀에 축산학을 포기하고 호로록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힘들 때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시는 교수님 있지 않습니까?

조심하셔야 됩니다. 

저처럼 너무 잘 될 수 있으니까요.

 

이정빈 석좌교수 ❘ 가천대 법의학과

 

그렇게 저는 법의학 분야 최고 권위자이신 이정빈 교수님의 법의학 교실에 입성하게 됩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과학 수사가 막 꽃을 피울 때였죠. 또 법의학은 세상의 정의 실현을 위해 있는 학문입니다.

이 큰 사명감에 저도 엄청나게 두근거렸죠. 

그때 DNA를 과학수사에 처음 막 활용하던 시기라 "나 이런 일 한다" 라고 말하면 되게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저는 큰 자부심을 갖고 일을 했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법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법의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법의학자로 일을 하던 당시 제가 진행하던 업무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신혼 불상자의 DNA를 분석해서 신원을 확인해 주거나, 가족들 간의 혈연관계를 확인해 주는 일을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 여러 연쇄 살인 사건이나 부산 어린이 유괴 살인 사건, 이태원 살인 사건 등에서 DNA 분석에 참여했었습니다.

 

이때 지도 교수님이 제가 이런 일을 할 때 말씀을 해 주셨죠.

"나는 죽은 자가 하고 싶던 마지막 메시지를 찾는다."

맞습니다. 

법의학은 고인의 마지막 숭고한 메시지를 찾는 정말 대단하고 숭고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제 마음 안에는 항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사람과 함께 여유롭고 행복을 주는 즐거운 일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했던 일은 항상 사람들의 눈물을 동반하는 일이었죠.

 

저는 저는 아직도 삼풍백화점 때의 일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자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 시료를 채취를 했습니다.

이때 구분을 위해 시신과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생존 모습의 사진을 사망자의 침대에 붙여둡니다.

그 사진은 대개 그 분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 정말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이더라고요.

그 사진 속에서는 활짝 웃고 있는데,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시신은 너무나 싸늘하기만 합니다.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감식을 할 때마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그리고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상태인

그 두 가지를 함께 목도하는 것은 정말 저에게는 감정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회의가 들기도 했죠. 

 

또 다른 사건에서 신원 미상자의 DNA를 분석하고, 실종자 신원을 확인하여, 유가족분들께 전달해 드릴 때가 있었습니다. 

유가족분들은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셔서 매우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통곡을 하셨습니다.

"어딘가에서라도 잘 살아 있지 왜? 왜? 이렇게 차가운 주검이 되어서 돌아왔냐?"

제 가슴 한 편도 슬픔이 밀려 들어오더라고요.

이 가족에게는 실종자의 신원 확인이 오히려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앗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에 감정적으로 번아웃이 온 것 같습니다.

 

 

유성호 교수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마음 한 켠에 공화함을 품고 일을 하던 중에 여기 보이시는 분과 함께 일할 기회가 생겼죠.

감정적으로 매우 힘든 시절이었지만 유성호 교수님이 같이 일하게 되면서 많은 도움도 받고 저도 열심히 일해서 연구 성과도 많이 냈습니다.

 

비슷한 시기 대한민국은 월드컵에서 4강 진출의 꿈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한계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죠.

법의학 교수는 법의 유전학 하나만 아는 것으로는 많이 부족하죠.

법의 부검, 법의 동물, 법의 곤충 다양한 분야에 정통해야 했고, 부검을 하기 위해서는 의사 면허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수로서의 길을 포기하게 되고, 10년 만에 다시 대사병이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길을 다시 나서야 했었으니까요. 

애써 좋게 말해서 그렇지 사실 그때 꽤나 마음고생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가장인데 제가 제가 가장입니다.

그래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죠. 

 

 

저는 제 이력 정보를 한번 확인해 보았습니다.

지방 출신에 축산학과, 법의학 석사, 법의학 박사, DNA 분석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DNA 검증이 필요한 다른 분야를 찾아보자, 그중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는 무엇일까?

저의 발자국을 되돌아봤습니다.

 

 

당시 2008년은 이런저런 문제로 축산물 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최고조로 올라와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정부에서는 축산물 이력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DNA를 이용한 추가 검증 방법에 대해서 도입을 하려고 했었죠.

축산과학원에 계셨던 박진기 교수님께서 지금의 제 직장, '축산물품질평가원'이라는 기관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바로 입사 지원서를 넣었고, 법의학자에서 다시 축산인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동료가 하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세요.

저는 더욱 우정이 깊어졌습니다. 

 

 

그렇게 계속 이 길을 걸으니 이제 축산물 유전자 분석에서는 제가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경험은 결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

그가 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을까?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요.

그 포기가 미래에 어떻게 이어지게 될까를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때로 포기는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하고요. 포기가 또 다른 기회로 이루어지기도 하잖아요.

또 아무리 사소한 경험으로 보일지라도 경험의 가치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내가 지나왔던 발자국을 돌아보시고,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연설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 연설인데요.

 

Connecting the dots

 

순간에는 관련성에 대해서 저희가 알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보면 하나의 연장선상에는 연결된다는 것이죠.

법의학자로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제 인생에, 과거에 전공했었던 축산학이 지금 새 길을 열어준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로 경험과 고민에 대해서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다가 보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죠.

대개 사람들은 부탁을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그런 두려움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연구에서 보면 실제로 동료의 도움을 받는 경우의 75, 90%는 당사자가 직접 요청해서 라는 결과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많이 사랑하시고 그들이 주는 기회도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그 기회를 붙잡고 farm to table

농장에서 식탁까지 모든 단계에서 대한민국 축산물을 믿고 드실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기록 관리하는 이력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축사는 과학이 보증합니다. 

호우로 수백kg를 떠내려간 소를, 이력 번호를 통해 집에 돌려보내주기도 하고,

과거에는 만연했던 불법 축산물을 시장에 유통되지 않도록 지금 막고 있기도 합니다.

국내산 축산물만큼은 믿고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의 식탁에 행복을 지킨다는 것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축산물 구매 전에는 휴대폰 앱으로 이력 번호를 꼭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드리는 말씀인데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물어보십니다.

고기는 어떻게 해야지 잘 먹는지, 이걸 저한테 물어보시는데요.

생각보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 여러분들에게 하셨던 말,

"음식은 항상 꼭꼭 씹어 먹고, 골고루 먹어라."

이렇게 말씀하셨죠.

맞습니다.

고기도 고기의 맛과 향을 느끼시기 위해서는 꼭꼭 씹어서 드셔야 되고요.

여러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서는 양파, 마늘, 쌈, 채소 등과 골고루 함께 드셔야 맛과 건강을 다 챙기실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맛과 건강을 다 챙기실 수 있도록 당부드리며 

국민 여러분들께 앞으로도 안심하고 맛있는 축산물을 즐기실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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