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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을 통해 발견한 최고의 보물 | 심광주 LH 토지주택박물관 관장 | 세바시 885회


강연 소개 : 고고학자는 역사 속의 보물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보물 지도가 필요하지만 고고학자들에게 보물 지도는 보잘것없는 유물 한점 일수 있습니다. 고고학자인 저는 작은 실마리들을 통하여 어떻게 그 엄청난 보물들을 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찾은 세 가지 보물중 마지막에 찾아낸 가장 중요한 보물은 무엇일까요?


게시일: 2018. 1. 11.



[한국어]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LH 토지주택박물관 관장 심광주 입니다 


이 영화가 무슨 영화지 아시죠?

네 맞습니다 


인디아나 존스는 고고학자인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가 보물을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디아나 존스가 보물을 찾기 위해선 뭐가 필요하죠 

보물지도 입니다

이 보물지도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거기에 묻혀있는 보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활을 하는 겁니다 

모든 고고학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영화 속의 인디아나존스처럼 그런 보물을 찾아 다니지 않지만 

유적과 유물이라는 보물을 찾기 위해서 보물지도 같은 실마리가 필요합니다 

저는 고고학자로서 지금까지 제가 찾아낸 보물 중에서 


세 가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어떻게 찾았는지 

그것을 찾게한 실마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실마리는 #입니다 

1985년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이성산성을 발굴하고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건물터가 있었는데요 

어느날 그 건물터에서 토기한점이 출토되었습니다 

근데 그 토기에 이상한 부호가 세겨져 있는 겁니다 

아무리 봐도 우물정자 같진 않았습니다

저는 입구에 의미가 무엇일까 몹시 궁금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자료들을 막 찾아보다가 마침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경주에 있는 신라 고분인 호우총(?)에서 똑같은 부호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관련 기사 링크]

이 청동호라고 이름하는 청동그릇애 바닥에 # 부호가 쓰여져 있었고 그 아래 글자가 써 있었습니다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

'을묘년(415년), 3년 전 돌아가신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을 추모해 만든 열 번째 그릇'이라는 뜻의 16글자


이 청동호우는 바로 광개토대왕에 무덤에 제사를 지내기위해 만들었던 재기였던겁니다 

그런데 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제사를 위해서 만들었던 재기가 신라왕릉에서 출토된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고구려에서 잡혀갔던 신라의 왕자가 고구려로부터 들어올때 선물로 받아 온 것을 무덤 속에 넣어 줬기 때문일 겁니다 


이 청동호우가 광개토대왕과 관계가 있다면은 

제가 발굴한 그 토기에 있는 부호도 광개토대왕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고서에 이 한 장을 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습니다 

1994년 봄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누군가 찾아 왔습니다 

바로 소설가 故 최인호씨 였습니다 [기사]


제가 10년 전에 쓴이 보고서를 보고 

이 # 부호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된 최인호 씨는 저 보고 그 비밀을 함께 풀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풀어온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그 다큐멘터리의 필요한 모든 비용은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협찬을 받자고 했습니다 

(ㅎㅎ)

저는 도저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개발하는 회사에서 역사다큐멘터리를 지원 할 거라고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회사에서는 고구려 

그것도 광개토대왕과 관계된 내용이라면은 

국민들의 정서적 영토확장을 위해서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을 하고 

전액을 협찬해주었습니다 

(박수)

그리고 더 기쁜 것은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전 기간 동안 저를 

그 프로그렘에 참여하도록 출장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다큐멘터리 6부작 '왕도의 비밀' 입니다 (TODO : 영상링크를 찾을 수 없다 ....)


그런데 저희가 그 촬영을 할 당시만해도 중국은 이미 동북공정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 속에 편입 시키기 위하여 

아주 은밀하고 치밀하게 추진되어온 중국에 정책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에 방송국이 고구려 유적을 촬영 하겠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분을 위장해야 했습니다 

중국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묵한 좀체 말을 하지 않는 

과묵한 중국 관영 CCTV 기자로 제 신분을 위장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촬영을 들어갔고 

천신만고 끝에 많은 촬영을 했는데 드디어 거의 촬영이 끝나갈무렵 

저희는 현지주민의 신고로 한인공안(?) 당국에 체포가 됬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찍었던 모든 테이프는 다 몰수당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언가 방법을 동원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네 저희는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방법으로 

저희가 찍은 그 테이프와 새 테이프를 바꿔치기 해가지고 

한국에 들여오는데 성공했습니다 

(박수)


그런데 저희가 첫 촬영을 시작한 곳이 바로 고구려의 도성이였던 지방에 환도산성 이였습니다 

저희가 도착한건 7시 반이였고 8시가 되면 관리자가 출근하기 때문에 저희는 30분 밖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왕 공터에 그 밭고랑 사이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갑자기 감전이 된 것처럼 놀라운 충격을 먹었습니다 

왜냐면 바로 제 눈앞에 

제가 꿈에도 그리던 그 # 부호가 쓰여져 있는 기왓장 한점이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 부호를 들고 촬영을 하고 있는데 그때 영화 같이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하늘이 먹구름이 되더니 천둥 소리가 울리고 

제가 들고 있는 그 기왓장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거였습니다

저는 그 천둥소리를 들으며 역사의 천문을 열고 나오는 광개토대왕의 우렁찬 함성을 들을수가 있었습니다 

(박수)


그렇습니다 

이 부호는 바로 광개토대왕의 상징 부호였던것입니다 

이 광개토대왕의 상징부호가 고구려의 심장부 고구려 환도산성 왕공터에서 출토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호에 비밀을 발혀냈습니다 

바로 고구려는 천제지자 모하백여랑 

측 천재에 아들이고 울진을 외할아버지로둔 고주몽에 민족적 자긍심을 표출한거였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물이 결합된 부호 

이것이 바로 광개토대왕에 상징 부호였던 것입니다 

이 부호 하나로 인해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했던 광개토대왕을 우리의 기억속으로 다시 불러낸 것입니다 

(박수)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호로 인해서 고구려 유물의 눈을 뜨게 된 제 눈에는 갑자기 비늘이 벗어진듯 했습니다 

가는 데마다 고구려유물들이 저를 반기는 거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갔지만 전혀 발견 되지 않았던 그 고구려 유물이 제가 다가갈때마다 

마치 천 오백 년 동안 기다린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제 눈앞에 발견되기 시작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임진강 유역과 양주분지 일대와 아차산 일대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발견되기 적이 없었던 

고구려 성곽 40 여개를 제 손으로 직접 찾아내게 된 것입니다 

(박수)


이 고구려 성곽들은 바로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 장수왕에 의해서 

그들의 군대에 의해서 만들어진 고구려인들이 만든 성곽이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 이 유적 중 많은 수는 국가사적으로 지적이 됬고 많은 수는 발굴이 되서 

우리나라 고구려 고고학 연구에 기틀을 마련하게 됬습니다 




두번째 실마리입니다 주먹도끼 입니다 

2004년 남한과 북한이 관계가 개선되면서 LH에서 개성공단 건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한에서 개발사업을 하기는 하기 전엔 반드시 문화재 조사를 하는 것처럼 

개성공단 개발 하기 전에도 반드시 문화재발굴조사를 해야 된다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때마다 계속 거절했습니다 

우리가 다 돌아보았는데 

우리가 눈에 보이는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저희는 집요하게 요청을 했고 

마침내 남한과 북한의 전문가들이 그럼 현상을 한번 같이 돌아보자 

하는 정도까지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때 남한에서는 저를 포함한 저희 LH 박물관에 학예자들이 참여했고요 

북한에서는 평양에서온 사회 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김일성종합대학 이나 김형직사범대학(?)을 나온 젊은 고고학자 들이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가 

그들의 눈앞에서 제가 바로 이 석기를 한점 줃었습니다 

북한 고고학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은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구석기시대 주먹도끼 였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개성공단 발굴조사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북한땅 계성에서  남한과 북한의 고고학자들이 함께 모여서 발굴하는 성과를 거둬내게 된 것입니다 

(박수)


사실 저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경쟁적인 여건이나 여러가지 상황이 안되서 

고고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됬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취직을 하고 나니까 

회사동료들은 문화재계에 스파이가 들어왔다고 저를 무시하고요 

문화재계에는 고고학을 하는 사람이 개발 사업자의 앞잡이가 되어서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저를 무시했습니다 

인생 참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까지 고고학에 대한 꿈을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니까 

어느 순간 회사에 LH 박물관이 만들어지게 됐고요 

문화재 조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꿈이였던 남북공동문화유적 발굴조사 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박수) 


제 꿈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가슴 속에 보물 같은 꿈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그때 바로가 아니더라도 

한참 돌아가더라도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고 그 결과 많은 것들을 찾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중요한 것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요한 것은 찾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리고 그 중요한 보물을 찾게하는 실마리는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습니다 

2010년 봄이었습니다 

당시 토지공사 주택공사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회사를 소용돌이 쳤고 

여러가지 환경이 변했 했습니다 

저도 그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박물관 안에서 제 위치가 흔들려 버리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피땀흘려 만들어 놓은 박물관이 서서히 서서히 붕괴되는 거 같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느 순간 제가 이뤄놓은 성과와 제 자신이 하나가 되어 버린거 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진짜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견딜 수가 없어서 

생전 처음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팔뚝에 굵은 정맥주사 바늘이 꼿히는 순간 일상이 멈춰버렸습니다 

검사 결과에 따라서 앞으로의 삶도 중단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여러 가지 조사를 한 끝에 저보고 

대장과 소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술은 5시간이 넘는 대수술 이였고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수술이후에도 저는 한동안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은 저의 장기의 일부만 잘라낸게 아니었습니다 

저의 환부도 도려낸거 같았습니다 


왜냐면은 제가 그동안 열심히 일을 하느라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11시 12시까지 야근은 밥 먹듯이 했을뿐만 아니라 

쉬는 날 하루 휴가 하루도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은 견딜 수가 없는 

일 중독자 있음을 제가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다 폐허였습니다 

저에 열정이라는 이름의 그 불꽃은 저희가 성과를 남겼지만 

제 주변은 온통 까맣게 태워버린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찾은 보물과 자신이 하나가 될 때 

놀랍게도 자신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제가 비로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지 진짜 잘 사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외부로만 향하던 저희 시선을 저희 내면으로 돌리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자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서서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저를 볼때  하나가 되어 있었던 

저의 보물들과 하나가 되어 있던 자신이 서서히 분리가 되는 것을 제가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제 자신을 찾게 된 것입니다 

(박수)


많은 분들은 고고학자들이 보물을 찾는 과정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고고학자가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지루한 시간들과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들을 견디는 이유는 

아무에게나 알려지지 않았던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그 보물을 찾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쩌면 지금까지 영화속 인디아나존스처럼 

제 삶은 전체가 보물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30대에는 # 부호 하나를 통해서 고구려역사와 문화재를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해서 그 보물을 찾았고요 

40대에는 주먹도끼 하나를 실마리로 해서 남한과 북한의 최초의 공동 발굴조사라는 보물을 찾아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는 물론 대단히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50대에 아픔이라는 실마리를 통해서 찾아낸 보물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은 제 자신이라고 하는 그 보물이야 말로 

지금까지 그 모든 성과가 오늘을 있게 만든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각자 자기 자신이 직접 찾아야할 보물들이 다 있습니다 

그 보물 찾기 위해서는 실마리가 필요합니다 

그 실마리는 때로는 우연이란 이름으로 때로는 필연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사라집니다 

그 보물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그 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계신 분들도 그 보물을 찾아내어

보물같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저에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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