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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6회 가족신문이 가져온 조용한 혁명 | 조영헌 전 홍익대 교수, 현 고려대 교수


강연 소개 : 28년 전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가족신문을 만들어왔습니다. 어느새 역사학 교수가 된 지금까지도 학회 논문 발표보다 가족신문 발행날짜를 목숨처럼 지키고 살고 있습니다. 가족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 그 조용하고 거대한 삶의 에너지를 소개합니다.


게시일: 2011. 7. 10.




저는 내일 이런 자리에 서면 저를 역사학자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숨겨진 다른 직업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오늘 소개할 가족신문발행인편집인 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15분 동안 저는 저의 역사 전공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저희 가족신문과 관련된 저희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과거를 얼마나 자세하게 기억하시는 편이니까? 

혹시 1987년 1월에 무슨 일인지 기억하는 그런 황당한 분 계십니까? 


우리는 보통은 나쁜 기억은 잘 안 잊어버리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기억은 잘 잊는 편입니다 

저도 별로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닌데요 

아마 여러분 보다는 소소한 여러 가지 일들이 대해서 기억하는게 좀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에는 가족신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맛배기만 보여 드릴까요? 

저는 1987년 1월 2일에 가족들과 함께 "아웃오브아프리카" 라가는 영화를 재밌게 봤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국내도서
저자 :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 민승남역
출판 : 열린책들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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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월 7일에는 제가 있는 중학교에 교지 편집인으로 교지를 편집하고 편집후기를 쓰느라고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뭐 이런식입니다 


지난 28년동안 저의 가족에 매달 매달마다 있었던 일들은 소소하게 기록이 다 되어 있습니다 

바로 가족신문 때문이지요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그러니까 1984년 5월 25일 가족신문 창간호가 발행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지금까지 단 한 차례 빠진 거 없이 가족 신문이 늘 나왔습니다 

10년 동안은 매달에 한번 그 다음부터는 격월간으로 계속 나왔던 것이죠 


여러분이 잘 믿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제가 실물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것이 바로 

찢어 지려고 하는데요 

바로 28년 전에 나왔던 가족 신문 창간호 입니다

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여러분들에게 보내 드리기 위해서 이런 대형 작품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여기 맨 위를 보시면 호수와 뭐 이런 것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쪽에 보시면 바로 가운데에 비둘기집이라고 하는 재호가 있구요 


그 왼쪽에는 가훈 자강불식이란 가훈이 있고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


오른쪽에는 발행, 편집인 다음에 주소, 전화번호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여기까지가 기본적인 신문에 포맷(format)이고요 


그 다음에 커버스토리인데 커버스토리를 보면 

저희 아버님께서 '비둘기집 창간을 축하하며'라고 하며 그런 글을 써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운데를 보면 이 제법인데 앵글이라고 하는 제목에 이런 사진도 있습니다 

인물은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아래쪽에는 제가 직접 그렸던 네컷짜리 만화도 이렇게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 오른쪽에 보면 이제 드디어 가족신문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집 소식이 있는데요 

이 소식 중에 핵심은 바로 이 네 번째 제 동생이 학급신문 편집인으로 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저희 동생이 4학년때 학교신문 편집인이 되었을 때 

그것을 보고 저희 아버지께서 우리 집에서도 한번 가족신문을 만들어 보는게 어떠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게 바로 지금의 이 신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제 어렴풋한 기억으론 이것을 한 10부에서 20부 만들어서 저의 친척들에게 나눠 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정말 반응이 왔습니다 


2호를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에 나왔던 2호인데요 

저 이 기본 포맷은 비슷합니다 만은 이 커버스토리에 보니까 

사촌누나께서 훌륭한 가족신문 감탄하시는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그 아래보면 일기 라는 제목으로 해서 

초등학교 6학년인 제가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에 일기를 썼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읽어 보면 정말 유치찬란 하거든요 

그 다음에 당차게도 2호부터 '비둘기집 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어디로 연락을 해달라' 이런 내용까지 넣었습니다 


점차 독자들이 정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친척들을 시작으로해서 

저희 아버님 어머님의 친구분들 이웃집 그리고 저희 친구들 저희 선생님들이 축적이 되기 시작했던거죠

그러다가 어느새 저희 신문이 언론에 보도가 되기시작했습니다 

이게 23호에 실려 있습니다 

23호에 보니깐 KBS TV에 소개되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저희 신문이 당시에 유행하는 최고에 인기 프로그램 '오늘'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여러분들이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잠시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시죠 




사회자 : 저 조용헌군에 비둘기 집에는 지금 어떤 글들을 주로 싣고 있습니까?

초등학생 조영헌 : 

먼저 그 각 달에요 주제 되는 내용을 싣고 그 아래에는 그 달에 있었던 친척들 뉴스나 저희집 가정에 뉴스를 싣고요 

그리고 그 밖의 명언이나 만화 그리고 주장하는 글 등이 들어가게 되요

사회자 : 이것은 창간 10호 기념 메시지 까지 싣고 독자들의 글도 실리고 가족들의 생신 축하 

사회자 : 몇 부나 발행 했습니까

초등학생 조영헌 : 처음에 한 30부 정도 발행했는데요 지금 요즘에는 한 50부로 많이 늘어 났어요 



예 이런 식으로 해서 저희 신문이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요 

더 극적인 변화는 이제 보여 드릴 겁니다 

저희가 가족신문을 10주년을 기념해서 지난 10년치를 모아서 책으로 나왔습니다

'비둘기집 아이들'이라는 책인데요 

물론 아마 출판사는 이거 내고 망했다고 제가 듣고 있습니다 


비둘기집 아이들
국내도서
저자 : / 조영헌역
출판 : 고려원 1994.09.01
상세보기


근데 어쨌든 이 신문이 TV에 보도가 되기 시작 했는데 

당시 MBC에 나오는 '아침 만들기'라고 하는 프로에 저희가 나왔습니다 

당시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던 순간에 사회자였던 '손석희 아나운서'가 

맨 마지막 클로징멘트로 했던 말이 저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한번 보시겠습니다 



손석희 아나운서 : 

점점 뭐 ... 그 가족 신문도 굉장히 발전을 해 나갈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에 추세로 보면 뭐 ... 결코 기성 신문에 뒤지지 않는 ...

저는 그 서울 정보 600년 해 가지고 타임캡슐도 묻었는데

근데 바로 이런 신문 같은 것이 (타임캡슐에)들어가는 것이 훨씬 뜻 깊은게 아닌가 싶은데 연락 없었죠? 

아직 안 묻었으면 연락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장님


정말 방송에 힘이 대단했습니다 

그 다음날 서울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도 저희 가족신문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이죠 



그 결과 저희 10년치 기록이 앞으로 400년 후에 열릴 

즉 서울이 서울에 수도가 된지 일 천 년을 기념하는 서울점도 1천년기념 

즉 2394년에 개봉될 타임캡슐에 묻혀서 같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2394년 

상상이 되십니까? 


정말 10년 동안 꾸준히 가족신문을 발행한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400년 후에 개봉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주는 무게감은 저에게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오랫동안 보전되는 기록 문화가 가진 그 무게감이랄까요? 맛이랄까요? 

이런 걸 직감적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죠 


그런데 바로 그 무렵부터 

저는 역사학자로서에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금으로써 400년 전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족보와 그들의 기록을 찾아 다니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냥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까요? 


타임켑슐에 들어간 아후에 

제게 있어서 가족신문을 만드는 의미가 좀 바뀌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가족신문을 그저 재미로 

혹은 주변에 친척들에 격려와 칭찬이 좋아서 만들던 것에서 

이제는 400년 후 까지 중단되면 안 되겠다'라고 하는 그런 막중한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거를 오래 만들었을까?

한번 재밌는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창간호부터 지난 달에 만든 것까지를 가지고 

제가 강연 하고 있는 이곳에 무대를 한번 매꿔보기로 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나올까요?

한번 보실까요?



사실 저희가 생각했던것보다 

상당히 오래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 가까이 저 시간을 걸려서 저렇게 하나 하나 PD두명과 저와 재자 한명이 가서 이것을 만든것 입니다 

그러고 나서 저희는 저렇게 뻗었습니다 


자 저렇게 배열하는데만 근 한시간이 걸렸던 가족신문에 내용을 채우는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정말 하나 하나 보면 별거 아닌거 같은데 

28년을 모아 놓으니까 이게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지속성에 힘이죠 

꾸준한 글쓰기와 집착이 가져온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그래서 그런지 끈질기게 받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도대체 남들이 별로 보지도 않는 가족신문을 왜 그렇게 오래 만들었냐는 거죠 

정말 28년동안 단 한 차례 중단될 위기도 없었느냐고말이죠

아 왜? 없었겠습니까? 

크게 2번에 위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대학 입학 시험에 두 번 연달아 떨어지면서 발생했습니다 

저와 두 살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요 

제가 삼수 할 때 제 동생도 고3 수험생이 된 겁니다 

이쯤되면 1년 정도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저희 아버지께서는 대학입시와 동일하게 가족신문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궁여지책으로 꾀를 내신 것이 바로 여러분 다 아시는 이솝우화를 가지고 

가족신문에 면수를 채워나가는 것을 1년 동안 지속한겁니다 

이렇게 해서 일년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저와 동생이 모두 각각 박사 논문을 쓰겠다고 

각각 중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2003년도에 다가왔습니다 

가족 이제 뿔뿔이 흩어졌으니 

아 이제는 쉬어도 될 때가 됐나 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당시 점 점 세력을 떨어지고 있는 이메일(e-mail)에 주목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동생에게 원고 기사를 받아서 

한국에서 여러가지 기사를 모아서 

중국에 있는 저에게 보내면 제가 중국에서 마지막 편집을 해서 이제 한국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그걸 출력 하시고 

저희 어머니를 시키셔서 어머니가 문방구가서 복사하시고 우체국에가서 발송하는 것까지 

이렇게 해서 저희 가족이 전 세계 흩어 있을 동안에도 가족신문은 죽지 않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가족이고 대단한 아버지십니다 


이는 사실 엄청난 에너지에 축적이고 또 시간에 소요입니다 

저에게 이런 28년 동안의 가족신문에 발행은 크게 3가지 변화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매달 무언가를 써 내야한다는 그런 부담감 가운데 

저에게는 글로 무엇을 표현해야 된다는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와 동생 모두 지금은 글쓰기로 승부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원고 마감시간을 지키는 것이 몸에 베었습니다 

이게 사실 어릴 땐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도 압니다 

그런데 이거를 끊임없이 반복을 하다 보니까 

제가 대학교에 들어본 이후로는 

단 한 차례도 레포트 마감시간을 어겨본적이 없는거 같습니다 

가족신문에 덕택 이지요 


세 번째는 가정의 소소한 이야기들에 의미를 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우리 가정만에 정체성이 확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학교에서 가르켜 주는 것이 아닌데요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저의 가치관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크게 두 가지 가치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인데요

저는 늘 성장 하고 싶어 하고 사실 저는 늘 변덕스럽지만 

저의 변화는 그래서 저는 조용한 혁명이다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첫 번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작은 핵가정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대화, 편집, 기능에 분담 이런 것들은 

오늘 날 가정에 해체요 대화의 단절이라고 하는 현대의 흐름 가운데서 더욱더 소중한 가치로 저희들에게 다가 왔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저희 가족 신문 117호 1994년 1월 호에 실린 커버스토리입니다 


당시 1994년은 UN이 지정한 세계 가족의 해였거든요 

그 제목이 이렇습니다 

사회 심장부에 가장 작은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자 

이것이 유엔이 제정한 당시에 표어 였습니다 

그리고 부재로는 주제로는 

'가족 : 변화하는 세계속에 인적 자원 그리고 그 책임'입니다 

정말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요 

바로 커져야 한다고 하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 지는것입니다 

만약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려고 하고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는 순간 

가족 신문은 바로 망하는 겁니다 

아주 제한된 독자이지만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그 관계를 유지할 때 

가족신문에 핵심 포인트는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지속하는 것이 아름답다


둘째는 오래 지속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죠 

한번 두번 시도하는 것 

혹은 1년 2년 하다가 마무는 것 

이것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 지속하는 끈기를 통해 체득하는 자신감과 펀치력은 

그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입니다 


저는 이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도 

시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6개월 1년 2년 아니 10년이 지속되어서 장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면 

이 사회에 큰 울림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을 보여 드리면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혹시 누군지 아십니까? 



1993년 8월에 세상을 떠난 한 그저 평범한 노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매체도 이분의 죽음을 보도 하지 않았고 

이분이 세상에 남긴 영향에 대해서 주목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단 하나의 매체는 바로 그 저희 가족 신문이고 이 분은 저희 할아버지십니다 


저는 가족 신문에서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편집하고 기사를 쓰면서 

문득 '우리 할아버지 정신은 무엇일까?' 이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친척들에게 혹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아는게 있다면 좀 글을 써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드렸죠 

그랬더니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상시에 글을 부탁하면 그렇게 글쓰기를 꺼려하던 친척들이 글을 보내주기 시작한 것이고 

뭔가 할아버지에 대한 공통의 소통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여 쌓여진 글이 바로 뒤에 보시는 것처럼 

저희 우리 할아버지라고 하는 책자로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 땅의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들이 이렇게 소중하게 재조명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일은 이 땅에 메이저 신문사나 방송국이 해야할 일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각 가정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론의 장이 필요 합니다 

저는 가족 신문이 이러한 최적의 장소와 공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이러한 일들 기록하고 나누고 보존하는 

이 조용한 혁명에 함께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 : 여러분의 '공감' 클릭은 제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