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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860회 | 자유롭게 꿈꾸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마음껏 사랑하라 | 김윤아 자우림 보컬

자유롭게 꿈꾸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마음껏 사랑하라



  • 사랑에 빠지자고요. 
  • 근데 저는 도덕적으로 지금 여러 사랑을 하면 안 되잖아요. 정말 힘들더라고요. 
  • 뇌신경 마비가 왔었어요. 마비 후유증 때문에 몇 가지 기능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채고 
  • 죽음 이 죽음은 항상 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 나와 자우림이 만든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겠구나.

 

뇌신경 마비로 죽음 가까이 갔던 자우림 김윤아가 깨닫게 된 인생 진실

 

안녕하세요. 김민아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선 제가 참 잘 못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게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긴장을 내려놓는 일을 정말 못합니다. 

뭐 근육과 관절들이 막 서로 항상 이렇게 막 당기고 있고 잘 때도 이완이 잘 안 돼요.

그래서 자고 나도 몸이 좀 뻐근하고,

자고 나면 원래 사람이 이렇게 좀 아 편안하다 쉬었다 이런 느낌이어야 되는데,

수면의 질도 당연히 좀 별로입니다.

몸만 그런 건 아니죠. 또 뇌도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요.

항상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되나... 눈앞에 보이는 처리할 일은 없나 막 이런 걸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다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이런 대비책이 필요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게 어쩌면 저의 원가정이 지나치게 엄격한 분위기였었기 때문에 

20년 이상을 진짜 한순간도 안심을 못하고 긴장하고 지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요.

어쨌든 저는 지금도 집에서도 소파에 잘 안 앉습니다.

제가 낮잠을 자는 날은 몸이 많이 아픈 날, 열이 있는 날,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날도 저를 보면 뭔가 부스럭거면서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향후 몇 년간의 계획 정도는 머리에 항상 있습니다.

지금 올해 내년 내후년의 계획이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인데

한 2년쯤 전에 이 길을 그냥 가다가 아무 맥락도 없이 하나의 문장이 머리에 뿅 하고 떠올랐어요.

 

 

나는 중도에 있구나, 나는 길의 중간에 있구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 절대 불변의 진리, 절대 불변의 명제가 뭘까요?

뭘까요? 영원한 건 없다. 죽음 끝은 있다. 저랑 비슷한 생각들을 다 하시네요. 역시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저도 여러분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죽음은 매우 멀 수도 있고요. 

어쩌면 당장 내일일 수도 있죠.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의 인생에는 마지막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곧잘 잊어버리는 진리죠.


 

저의 원가정 얘기도 아까 조금 했는데 제 생부는 오랫동안 여러 가지 병을 앓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걸핏하면 집 앞에 앰뷸런스가 와서 그를 태우고 갔어요.

생부가 입원을 하면 모친이 간병을 하러 같이 병원에 들어가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어렸기 때문에 좀 낯선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기도 했어요.

조부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생부의 형제들이 차례차례, 그리고 생부까지 모두 다 같은 병으로 차례차례 돌아갔습니다.

 

제가 여섯 살 때 귀여운 아이였는데요. 홍씨를 먹다가 씨를 삼킨 적이 있어요.

어느 겨울밤이었어요. 저는 제가 그날 밤에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씨를 먹었기 때문에, 6살이잖아요.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좀 단정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으면 해서 손을 이렇게 모으고 잠을 청했어요.

 

좀 더 자랐을 때부터 이 얼마 전까지도 저와 매우 가까운 친구들, 지인들이 세상을 너무 빨리 등지기도 했습니다.

 

죽음 

 

이 죽음은 항상 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태어난 지점에서 우리는 죽음의 지점으로 향합니다.

죽음이 아주 먼 미래에 닥칠 일이든 가까운 미래의 일이든 

나는 이 두 점 사이에 무척 광활한, 큰, 엄청난, 갈림길이 많이 나 있는 공간에 중간에 서 있다는 깨달음 나는 중도에 있다

깨달음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별거 아닌 이야기 같지만 저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최근에 다섯 번째 솔로 앨범 관능 소설을 발표했는데요.

 

이 새로운 깨달음 이후에 새 앨범을 작업하면서 저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앨범의 속지에 산문이 조금 들어가 있는데요.

첫 번째 문단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중도에 있다 나는 늘 완성된 지점을 좇아 나를 들들 볶아댔지만 인간에게 완성된 지점 따위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중도에 있다. 

나는 늘 완성된 지점을 쫓아 나를 들들 볶아댔지만 인간에게 완성된 지점 따위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놓아주어야 한다 어디든 마음껏 흘러갈 수 있도록 우리는 멈춰진 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화살표이며 따라서 여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나를 놓아주어야 한다.

어디든 마음껏 흘러갈 수 있도록, 우리는 멈춰진 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화살표이며, 따라서 여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저의 또 한 가지 참 잘 못하는 일 또 있습니다.

 

저는요. 

순수하게 아름다운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잘 못 부르고 잘 못 씁니다.

사랑 좋죠. 사랑 좋죠? 사랑 싫어하는 사람 없는 거 같애. 사랑 뭘까요? 인간은 왜 사랑에 빠질까요? 

인간만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동물들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곤충들은?

 

다소 엉뚱한 질문 같지만 음악에 따르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엘라피제랄드의 듀엣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새들도 그걸 해요. 벌들도 그걸 하죠. 심지어 교양 있는 벼룩들도 그걸 합니다.

로맨틱한 해면도, 양식장 일굴들도 그걸 해요. 차가운 케이프 코드의 조개들도 뜻하지 않게 그걸 하고 게으른 해파리들조차 그걸 하지 뭐예요? 우리도 그럽시다. 사랑에 빠지자고요.

 

Birds do it (새들도 그걸 해요)
Bees do it (벌들도 그걸 해요)
Even educated fleas do it (심지어 교양있는 벼룩들도 그걸 합니다)
Let's do ti (우리도 합시다)
Let's fall in love (사랑에 빠지자구요)

Cold Cape Cod clams, (차가운 코드 곶의 조개들도)
'gainst their wish, do it (뜻하지 않게 그걸 하고)
Even lazy jellyfish, do it (게으른 해파리들조차 그걸 해요)
Let's do ti (우리도 합시다)
Let's fall in love (사랑에 빠지자고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못하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예술의 절대적인 소재잖아요.

영원한 소재잖아요. 

 

그래서 계획하기를 좋아하고, 저 자신을 시험하는 걸 좋아하는 저는, 또 신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언젠가 꼭 사랑 얘기로 꽉 찬 음반을 만들어야지. 

 

나는 중도에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저는 그리하여 

완전히 새로운 방식과 화법으로 새 앨범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 사랑 노래를 쓰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세요?

경험 

경험 너무 중요하죠. 

대상 

사랑에 빠진 뇌가 필요합니다.

근데 저는 도덕적으로 지금 여러 사랑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뇌를 속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뇌가 얼마나 귀여운지 아세요?

가상현실에 잘 속아 넘어가요. 

여러분 우리 다 그렇잖아요.

로맨틱한 영화 보고 나오면 마음이 막 말랑말랑해지면서

나도 연애하고 싶다~ 막 그런 생각이 들고

스케일이 또 막 큰 영화 보면 나오면서 가슴이 막 웅장하지 않아요.

저는 이런 영화들을 보았습니다.

 

대미지, 여왕 마고, 언헤이트풀, 헤어질 결심, 새해, 안나카레니나, 몽탕 가들, 화약 연화

듣기만 해도 막 현기증 나죠.

이런 치명적인 러브 스토리들을 반복해서 보고 또 봤어요.

뜨겁게 막 불타오르고 결국은 피로 물들어서야 끝나는 그런 사랑 이야기들.

귀엽고 어리석은 제 뇌는 금세 제가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을 하더라고요.

진짜 

해보세요. 

그리고 진짜 사랑을 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들을 막 열심히 만들어내더라고요.

저는 대상 없는 사랑을 했지만, 여러 가지 연애 여러 가지 단계를 정말 모두 다 마주했습니다.

이 새 앨범에는 10년 전에 만들기 시작한 곡도 들어있고요.

오래전부터 단어로만 존재했던 곡들도 완성돼서 수록이 됐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뇌가 만들어낸 새 노래들도 들어있어요.

 

대상이 없는 사랑 

여러분께 해보시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정말 힘들더라고요.

내 마음속에서는 사랑이 정말 흘러넘치고 막 여기 고이는 것 같아 무릎까지 빠지는 것 같아.

그런데 그걸 나눌 사람이 없잖아요. 정작 

실제로 혹독한 짝사랑을 한 셈이라고 생각돼요.

이런 혹독한 짝사랑을 하다 보니까 어느 날은 새벽에 작업실에 앉아서 그냥 A- 코드를 짚었을 뿐인데,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

그냥 나왔어요. 

어떻게 된 거지? 그러다가 곧 또

'당신을 원하는 게 잘못인가요?'

가 이어지더라고요.

그날 새벽에 2시간 동안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라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새 노래가 완성됐습니다.

항상 내면으로 침잠해서 울면서 앨범들을 만들었는데,

그랬던 작업들보다 이번 작업에서 빠져나오기가 훨씬 더 힘들었어요.

이전에 만들었던 곡들, 경험을 토대로 만든 곡들, 뉴스 보고 만든 곡들, 피아노나 기타를 쓰다듬으면서 

막 몰두해서 생각하고 막 뇌를 날카롭게 막 만들어서 기능시킬 때 만든 곡들 

예전에 쓴 곡들은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졌거든요.

 

하지만 새 노래들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시작이 되었죠.

제가 제 뇌를 속이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새 노래들이 저에게 저에게도 무척 신기하고 소중해요.

저와 저희 팀이 데뷔하고 이제 햇수로 28년 되었거든요.

그동안 자우림이 11장의 정규 앨범, 7장의 스페셜 앨범 그리고 김윤아로 5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는데요.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아직도 가보지 않은 길이 이렇게 있더라고요.

 

 

 

2011년에 자우림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을 만들고 나서 

제가 면역력이 너무 약해져서 뇌신경 마비가 왔었어요.

저는 선천성 면역 결핍 자라서 지금도 매달 치료를 받고 있는데요.

당시에 뇌신경 마비로 후각, 미각, 총각, 총각, 냉온감

그리고 얼굴부터 이제 이렇게 상체 근육과 미주신경까지 다 영향을 받고 문제가 생겼어요.

지금도 사실은 마비 후유증 때문에 몇 가지 기능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채고, 사실은 또 약간의 발성장애가 남았어요.

이거는 힘으로 계속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때 마비로 입원했던 병원에서 고생하면서 만들었던 8집 앨범 완성본을 받아 들었는데요.

그 앨범을 보면서 아 이게 나와 자우림이 만든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일할 때 제일 중요한 청각에 이상이 왔기 때문에 뭐 장담할 수 없겠더라고요.

 

물론 다행히도 청각도 그렇고 근육들도 어느 정도 회복이 돼서 지금 보시다시피 이렇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 그 경험 이후로는 항상 이번 일이 내 마지막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욱더 더욱더 모든 걸 다 쏟아부으면서 일하게 되었어요.

아니 마지막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이 순간 가장 밝게 타올라야 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어요.

 

인생도 어떻게 생각하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 마지막 지점이 언제 올지 모른다면,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른다면,

오늘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서 웃고 울고 살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아직도 저에게 가보지 않은 길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고 제 안에 등불은 여전히 밝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모험을 하고 싶어요. 

어떤 모험에서는 꽃을 따오기도 하고, 친구를 얻어오기도 하고, 또 어떤 모험에서는 다쳐서 돌아올 때도 있겠죠.

하지만 어때요?

살아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이 맥락으로 가장 환하게 빛나는 곡은 장밋빛 인생이라는 노래인데요.

사랑의 강렬한 아름다움과 관능이 가득한 곡입니다.

 

너의 입맞춤이 나의 낮과 밤을 붉게 물 드리고, 사랑에 취한 세상은 어지러이 반짝이네.

너의 눈동자는 나의 두려움과 기쁨과 설렘의 삶 

쏟아지는 별빛 속에 춤을 추는 그대와 나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노래를 통해서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다른 부분이에요.

 

영원히 사랑만 할 수 있다면 좋겠네. 

떨어지는 장미꽃잎 같은 나날 속에 

마지막이 없다면 그 무엇이 아름다우리 

사랑은 마지막 장면에 완성되리.

 

우리가 중도에 있다고 시작된 새 앨범 속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나는 중도에 있다. 

시간과 장소와 사람을 가르는 무수한 갈림길 사이에서 많은 선택을 하고 계속 방황하다가도 언제나 나로 돌아올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음악은 계속되고 나는 기꺼이 죽음과 함께 춤을 출 것이다.

 

여러분

살아있잖아요.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모험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힘껏 행복하고 힘껏 고민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