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아이를 너무 사랑했지만 제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을 정말 많이 받았었어요.
- 사모님, 어머님 심지어 저희 어머니도 저한테 '우태 엄마야' 이렇게 부르시더라고요.
- 경력 단절 시기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더라고요.
- 이모님 비용을 아끼고 내가 집에서 애기를 볼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 이모님 비용 이상으로 돈을 벌 것인가?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아 경제적 힘도 같이 길러야 되겠구나
안녕하세요.
"관계자분 보고 계신다면 연락 기다릴게요." 멘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패션 크리에이터 이지은 '쥬니'입니다.
저는 크리에이터로 활동하지만 동시에 엄마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에서 엄마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우리 사회에서 엄마는 아직도 희생을 하는 존재로 잡혀 있다는 걸 직접 출산을 겪으면서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출산에 약간 그 경이로움이 있잖아요.
그래서 온 세상에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것도 정말 잠시 점점 이지은 제 이름 석자로 불려지는 날이 없어지더라고요.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병원에서부터 다들 '사모님' 아니면은 '어머님' '우태 어머님' 심지어 저희 어머니도 저한테 '우태 엄마야' 이렇게 부르시더라고요.
평생 제 이름을 부르셨는데 갑자기 우태 엄마가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이를 너무 사랑했지만, 지금도 너무 사랑하는 존재지만
제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을 정말 많이 받았었어요.
그래서 마치 내 삶이 점점 없어지고 모든 게 우리 아이 '우태'한테 맞춰져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엄마의 사랑은 = 사랑일까?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우태 엄마의 삶도 중요하지만 과연 내 인생보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진정 내 인생의 행복일까?
그래서 저는 제 이름 이지은 석자를 되찾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제 이름을 되찾는 과정을 말씀드리려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의 첫 회사는 키즈 유튜브 채널 1위였던 캐리 TV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이었어요.
그때 당시 2017년 당시 캐리 언니 열풍으로 정말 핫했던 회사였는데요.
캐리 언니가 하는 방송을 영어로 하는 캐릭터 '쥴리 언니'를 맡게 됐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1대 줄리예요.
원래는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는데,
아나운서 정규직을 뽑는 회사 중에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방송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없었어요.
그리고 뽑히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채용 기간이 아니었던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홈페이지를 찾아서 막 들어갔어요.
홈페이지에 막 메일 주소가 나와 있잖아요. 대표님 주소, CS 주소 다 나와 있어요.
그래서 그냥 있는 주소에다가 다 제 프로필을 그냥 메일로 보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전화가 온 거예요.
그리고 회사 임직원들 앞에서 3시간 동안 압박 면접을 갑자기 당했어요.
그러고 나서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이 됐습니다.
이렇게 아이를 낳기 전까지 뮤지컬 대회에 이렇게 주인공으로도 서보고
각종 대회에서 한국어 영어 동시에 진행하는 MC도 맡기도 했었고요.
정말 활발하게 활동을 해왔어요.
그런데 경력 단절 시기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더라고요.
출산을 하고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모든 오프라인 행사가 다 취소된 거예요.
저는 정말 다시 카메라 앞에 다시 서고 싶었는데 예정된 스케줄들도 다 캔슬이 되고 불러주는 것도 단 한 군데도 없었어요.
그리고 또 엄마가 되다 보니까 제가 아이 때문에 포기하는 선택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지더라고요.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도 사실 못하는 것들이 정말 많잖아요.
아기 엄마가 되니까 일단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을 왠지 모르게 못 입겠더라고요.
약간 짧은 치마도 예전에 잘 입고 노출 있는 옷들도 잘 입었었는데,
뭔가 제 색깔을 점점 없어져가고 잃어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니까 당장 커리어적으로도 큰 선택의 길에 놓였어요.
'이모님 비용을 아끼고 내가 집에서 애기를 볼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 이모님 비용 이상으로 돈을 벌 것인가?'
모든 선택이 아이 중심으로 하는 선택들이었어요.
진짜 마음이 힘들다 보니까 그때 정말 극단적으로 생각을 했었거든요.
내가 만약 내년에 죽는다면, 아니 다음 달 아니요. 아니면 내일 당장 죽는다면, 이게 내가 원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내가 이 생각을 하고 죽을 수 있을까? 당장?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제 스스로한테 질문을 했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아~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구나. 경제적 힘도 같이 길러야 되겠구나.
사회에서 내가 필요로 한 사람, 쓰임이 있는 사람이 돼야 행복하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그래서 제 자신부터 행복하고 성장해야지, 아이에게도 더 많은 걸 가르쳐주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한지, 제 마음속에 있는 솔직한 소리를 들으려고 많이 노력을 했어요.
저는 그때 방송을 너무나 다시 하고 싶었어요.
촬영을 준비하고 대본 정리하고 현장 가는 이 모든 순간까지
제가 여태까지 살면서 해본 일 중에 가장 행복하고 자랐다고 느꼈던 일들이었거든요.
그리고 살면서 해본 것 중에 육아가 제일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 색깔을 다시 찾고, 이름 석자로 사는 삶을 위해서 힘을 기르고 싶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때 당시 저와 같이 일하던 PD님께서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틱톡이라는 플랫폼이 있는데 '쥬니' 님 한번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 그때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얘기를 그냥 스쳐 지나치지 않고 혹시나 나중에 내가 시간이 지나서 아무것도 안 돼 있을 때 그때 내가 그걸 했었어야 돼!라는 후회를 할까 봐 그런 미련을 남기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다시 내 이름으로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틱톡을 시작을 했어요.
원래 제 활동명이 '쥬니' 그대로 이어서 사용을 했는데요.
'쥬니'라는 이름은 제 한국 이름이 '이지은'이에요. 그래서 '지은이'를 빨리 하면은 뭔가 지은이 지이 준이라는 영혼 느낌이 나서 주니로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주니로 틱톡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저에게 틱톡이라는 플랫폼은 정말 고마운 플랫폼이에요.
'이지은'으로 살 수 있게 도와준 플랫폼이자 지금 제 커리어의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죠.
처음에 '틱톡'은 진짜 너무 생소하고 어려웠어요.
모두들 다 새로운 플랫폼 가면은 약간 좀 거부 반응도 들잖아요.
특히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근데 절심한 마음으로 그냥 바로 어플 다운로드하고 계정 만들어가지고 플랫폼 그냥 밤새 계속 그냥 보기만 하면서 공부하고
첫 영상을 올렸어요.
틱톡의 가장 큰 장점이 자본금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어요.
그래서 첫 영상을 남편이랑 이렇게 발댄스하는 춤을 이렇게 한 15분 정도 연습해서 올렸거든요.
그래서 밤 11시에 올린 영상이 다음 날 오전 7시가 되니까 1만 뷰가 넘었어요.
신규 채널인데 이렇게 처음부터 알고리즘을 탈 수 있다고? 그게 너무 놀라웠었어요.
그리고 틱톡 시장의 가능성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다음으로는 제가 이제 아까도 아나운서분께서 소개를 잘해 주셨는데 5개 국어 영상을 올렸었거든요.
제가 9살 때부터 스페인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를 조금 이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중국어랑 프랑스에서도 공부를 하면서 총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는데,
여러 나라에서 산 경험들이 있다 보니까 각 나라에서 '엄마'를 부르는 방법을 좀 촬영을 해봤어요. 재밌게
약간 미국 드라마나 유럽 영화를 보면은 엄마를 약간 좀 스위하게 엄마 마음이 아니면 마마 이렇게 부르는 느낌이 드는데,
한국어는 약간 우리나라만의 그 억양 있잖아요. '엄마~ 엄마~' 이런 짜증내는 말투를 불렀던 거 같아요.
난 엄마 많이 사랑하지만 그래서 각 나라의 언어로 엄마를 부르는 짧은 영상을 올렸어요.
근데 이게 또 바로 대박이 난 거예요.
그 뒤로는 남편과 우태에게 몰래카메라 하는 영상들을 이제 만들면서 연이어서 조회수가 터졌어요.
그러면서 채널이 이렇게 급성장을 했어요.
근데 남편도 본업이 있고 우태는 어린 아기잖아요.
여러분들 애들 데리고 뭐 하는 거 되게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복불복인 거예요.
얘는 촬영을 잘될 때는 얻어걸리고, 안 될 때는 진짜 촬영이 안 돼요.
그래서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연구를 하기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틱톡 영상도 진짜 추천 피드 많이 보고 편집을 제가 아예 하나도 못 했어요.
근데 편집 방법도 검색해 가지고 혼자 독학을 하면서,
나만 할 수 있는 콘텐츠,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옷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엄마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는데, 취미 활동이 쇼핑 가서 옷을 사 오면은 내가 새로 산 옷이랑 집에 원래 있던 옷이랑 코디를 다시 믹스매치 해가지고 집에서 그냥 혼자 패션쇼 하는 거예요. 어린데
그래서 틱톡에서 당시에 이제 '구찌 모델 따라잡기'라는 이제 챌린지가 있었는데 그거를 하기로 합니다.
제가 틱톡을 시작한 3년 전에는 대부분 챌린지 음원이 영어로 돼 있었어요.
그래서 그러면 나는 한국 사람들이 좀 알아들을 수 있게 한국어로 해보자
그래서 내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재미있게 혼자 촬영을 했어요.
그 당시에도 구찌 모델 따라잡기 챌린지는 사실 이미 트렌드가 한참 지난 다음에 제가 했거든요.
근데 며칠 만에 100만 뷰가 된 거예요.
그리고 한국말로 하니까는 대부분의 저희 시청자분의 99%가 대한민국으로 나와요.
다행히 제 개그 코드를 좋아해 주셔 가지고, 다른 브랜드 패션 따라잡기도 많이 했었고요.
그다음에 핫한 드라마 속 펜트하우스 재벌집 막내아들 이런 드라마 속 캐릭터 패션도 따라 해보고
그리고 약간 생활 속에서 어이없는 상황들 있죠.
예를 들어서 여러분 백화점에 환불하러 갈 때 세게 입고 가야죠. 무조건
아무 말도 못하고 바꿔주게 코로나 백신 맞으러 갈 때 여러분 오프셜도 입어야죠. 주사 잘 맞게
이런 패션의 영상들을 이제 영역을 넓히면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는 틱톡에서 틱톡 크리에이터 랭킹에서 1위를 연달아서 정말 한 달 넘게 유지를 했었어요.
그리고 항상 초반에는 제가 모든 영상의 초반에 멘트를 날려요.
관계자님 보고 계신다면 연락 기다릴게요.
멘트를 이렇게 꼭 하다 보니까 진짜 관계자분들이 영상을 좋아해 주시고,
저와 작업을 하고 싶어 해 주셔서 광고가 많이 붙기 시작했어요.
정말 말 그대로 된 거죠.
그리고 심지어 어이없는 상황 패션 있잖아요.
아까 코로나 백신 맞으러 갈 때 오피셜도 있고, 그런 것들은 이제 저희 팬분들이 내가 그 관계자다 이러면서 막 재미있는 댓글을 달아주기 시작하신 거예요.
근데 여러분 패션이라는 거는 패션 크리에이터는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가요.
끊임없이 새로운 옷이 필요하거든요.
근데 그때 마침 메트로시티 브랜드와 인연이 시작이 됐어요.
그래서 메트로시티 엠베사드를 시켜주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활동할 때 필요한 모든 의상을 메트로시티에서 매주 협찬을 해주세요.
이렇게 점점 저를 필요로 하고 찾아주시는 브랜드 관계자분들이 많아지면서,
"아~! 내가 이제 진짜 안주하지 말고 더 잘해야겠다"
책임감도 생기고 진짜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성공을 하려면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정말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말이 있잖아요.
배움의 끝은 없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행복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저는 무언가를 배우고 성취했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 결과는 사람들의 사람들이 내 콘텐츠를 많이 알아봐주고 즐기면 즐기면서 봐주실 때 되게 뿌듯하고 행복하더라고요.
제 틱톡 채널을 잘 성장시킬 수 있었던 또 저만의 비결이 있는데요.
바로 성공할 걸 가정해서 미리 준비를 했어요.
저는 틱톡 시장이 국내에서도 미국처럼 커질 거라고 예측을 했었어요.
이 그래프처럼 옛날에는 틱톡이 미국에서도 유튜브보다 밑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치고 올라왔거든요.
근데 그 미국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시장의 흐름을 3년 내로 한국으로 다시 오더라고요.
제가 틱톡을 시작했을 때 당시에는 2020년도 이미 미국에서는 틱톡 시장이 활발했었어요.
그래서 뉴스 기사를 통해서 또 영어를 좀 하니까 찾아가지고,
다양하게 성정한 성장한 틱톡커들의 사례를 많이 공부하고 분석을 했어요.
그중에 전 세계 1등 틱톡 소녀 찰리다멜리오라는 소녀가 있거든요.
다멜리오 자매예요. 둘 다. 근데 16세 나이에 틱톡으로 이름을 알려서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지금 제2의 카다시안으로 할리우드에서 정말 핫해요.
그래서 저도 미리 시간이 날 때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를 했어요.
그리고 프로필도 찍으러 갔어요.
심지어 출판사와 계약도 미리미리 했어요.
그러고 나서 틱톡으로 돈 벌기라는 책을 출간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안 됐을 때를 대비를 해서 준비를 하잖아요.
근데 저는 제가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걸 가정하고 목표를 향해서 그냥 달려갔어요.
그러다 보니 더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데 제 책 제목이 틱톡으로 돈 벌기인데, 저 사람 필름이 몇이야? 저 사람 돈 번대? 이렇게 했을 때 대답 못하면은 그 창피함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리고 지인분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에도 나가고 온라인 강의도 미리미리 하게 됐어요.
이렇게 자료들이 모이니까는 맛보기 강의를 한 거잖아요.
이렇게 혼자 스튜디오에서 줌 강의를 한 거예요.
그리고 가장 의미 있는 강의는 현재도 진행 중인 세종 사이버대학교 강의거든요.
제 책을 교재로 사용하는 슈퍼 강의가 설립되면서 지금 담당 교수로 매년 세종사이버대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성공을 가정하고 미리 준비해 두니까
이 순간이 왔을 때도 수월하게, 기회가 왔을 때 실수를 덜하게 되면서,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된 것 같아요.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 색깔을 잃지 않고, 나답게 주도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엄마가 되면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제 이름을 잃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땡땡맘이 아닌 원래 활동명인 '쥬니' 제 이름을 걸고 계속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행복한 내가 되고 성장하는 우태 엄마가 되기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름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행복한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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