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H 사건이 있었을 때 뭐 억울하면 시험 쳐서 들어오시든지
-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시험만큼 공정한 게 어디 있냐?
-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습니까? 옳지 않다고 하면 왜 옳지 않지요?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저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상봉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주제 중에는 지난 19세기 이래 다양한 민중항쟁의 역사에 대해서 이른바 역사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농민전쟁 그리고 3.1 운동, 4.19 부마항쟁 518 거의 매달 6월 항쟁 그리고 촛불 최근의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는 가히 민중항쟁의 역사 박물관이다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크고 작은 봉기와 저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그런 역사가 많지 않은데 왜 한국에는 그렇게 끈질긴 어떤 저항과 또 봉기의 전통이 있었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발전시켜 왔는가라고 묻는다라고 하면 그냥 소박하게 얘기하면 한국인들이 부당한 차별에 고분고분 이렇게 당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근데 우리가 다른 모든 부당한 차별에 대해서는 그렇게 발끈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시민적인 연대 조직 그걸 통해서 뭔가 집단적인 어떤 저항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많이 바꾸어 왔음에도 불구하고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이게 개선되지도 않고 바뀌지 않는 그런 차별이 하나가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교육에 의한 차별입니다.
학벌에 의한 차별 시험 성적에 의해서 사람을 차별하는 거예요.
너 몇 등이야 너 어느 학교 나왔어 이런 거 있잖아요.
"니 친구 몇 등이냐? 몇 등이라고? 그럼 같이 놀지 마!"
뭐 이런 거 있죠?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게 과연 옳습니까?
이게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이제 강의 시작하면서 드리고 싶은 질문입니다.
말을 좀 돌려서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뭐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공교육이 존재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여러분 왜 왜 공립학교를 만들고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공교육 체제를 유지하는 걸까요?
근대적인 민주공화국에서 시민 공동체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 공교육 기관입니다.
뭔 말이냐라고 하면, 사람이 태어난 환경이 다 다르잖아요.
자란 환경도 다릅니다.
그런 환경에서 어린 미래의 시민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잖아요?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자연 발생적인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단절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몇 등이야? 너 친구 몇 등이라고? 놀지 마! 이것 단절입니다.
그러면 그런 어떤 마음의 단절이 장벽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하나의 민주공화국을 같이 만들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건 난센스죠. 그건 불가능해요.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한다면, 자연 발생적으로 생길 수 있는 차이가 단절로 이어지지 않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같이 배우고 같이 생활하고 같이 무상급식으로 식사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자라게 이제 하는 게 그게 공교육 특히 보통교육의 굉장히 중요한 기능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공교육이 어떻게 돼 있어요?
다 입시 교육, 시험 경쟁
이것 때문에 사람들을 점수로 이렇게 나누고 그다음에 차별하고,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도 이제 대학의 학벌에 따라서 거의 사회적 신분이 달라질 정도로 그렇게 되어버리니까
한국의 공교육은 어떤 동질적인 시민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기관이라기보다는
없던 차별도 만들어내는 그런 사회적인 차별의 장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왔습니다.
근데 우리가 이렇게 다 안다고 하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 것 같으세요? 여러분?
더 정확하게 제가 말씀을 드리면 이 교육에 의한 사회적인 차별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되게 이상하게도 다른 차별에 대해서는 그렇게 발끈하는 한국인들 거의 대다수가 성적에 따른 차별은
어? 그거? 당연한 것 아니에요? 정당한 차별 아니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이제 모든 문제가 생기 문제가 해결되지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최근에 이런 일 있었다면서요?
LH 사건이 있었을 때 거기 누군가가 그렇게 뭘 이렇게 SNS상에 뭘 썼다면서요?
'뭐 억울하면 시험 쳐서 들어오시든지'
왜 이 얘기가 듣는 사람은 기분 나빠하지만 이게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시험만큼 공정한 게 어디 있냐?라고 하는 어떤 사고방식, 그러니까 시험이라고 하는 게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정당화된 특권의 근거가 되어 있다고 하는 걸 말해주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습니까?
옳지 않다고 하면 왜 옳지 않지요?
학자들 또는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이제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이렇게 성적에 따라서 사람들을 차별한다 또는 사회적인 보상을 차등, 사회적인 보상에서 차등을 둔다 이런 제도 제도라면 제도를 가리켜서 능력주의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Meritocracy(메리토크라시)라고 이렇게 한 번쯤 아마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오늘 여기서 능력주의가 나쁘다는 말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회에서든지 간에 같이 사람들이 어울려 살 때는 보상 체계가 필요합니다.
근데 그 보상 체계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지 간에
공동체 내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의 어떤 행위, 자기의 어떤 업적 그걸 통해서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 모두를 위해서 기여를 했으면 이익을 주었으면 그 사람한테 얘 따는 떡 하나 더 먹어라. 우리 하나 먹을 때는 두 개 먹어 괜찮아
문제는 그 사회적인 보상의 기준 이 문제입니다.
그게 얼마나 공정하냐? 그게 우리가 생각할 때 합당하냐?라고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에요.
한국 사회에서처럼 시험을 잘 보고 학교에서 학업 성적이 좋아서 흔히 하는 말로 상위권 대학을 나오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무언가 사회에서 특별한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것이 거의 제도화되어 버린 상황이라고 하는 이 현실이 지금 이제 문제입니다.
이거 올바른 보상 체계인가요? 아니다는 거죠.
이유가 뭡니까? 이거예요.
구체적인 행위나 활동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다른 기준을 가지고서 저 사람 보상해 줘야 돼 이렇게 하게 되면 이게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제가 이제 여기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봅시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어떤 과학자가 있어요.
근데 이 사람이 백신 또는 치료제를 자기가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번 가정을 해봅시다. 근데 이분이 TV에 나와서 내가 그런 걸 가지고 있는데요. 나한테 보상해 주세요.
먼저 돈을 엄청나게 많이 주시만 예를 들어서 나한테 어떤 특별한 특권을 주시면 내가 그거 해드릴게요라고 얘기를 한다면 너 해봐하고 나서 얘기해라고 우리 누구라도 말할 것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믿어라고 말할 것 아닙니까?
보상은 행위에 대해서 주어지는 거예요.
말에 주어지는 게 아니고, 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고요.
그걸 통해서 구체적으로 발휘된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의해서 나온 기여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주어지는 거지 잠자고 있는 능력에 대해서 주어질 수는 없잖아요. 그죠?
다른 생각을 좀 해봅시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제가 같이 생각해 보고 싶은 게 뭔고 하니 시험 성적이 능력의 지표라고 하는 말이 별로 그렇게 옳은 말이 아니에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운전면허 시험이 1등 했습니다. 운전면허 시험 어렵게 낼 수 있잖아요. 얼마든지 어렵게 낼 수 있어요. 1등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최고의 기사 됩니까? 그거 아니죠?
그건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근데 왜 다른 시험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 안 하실까요?
근데 어쩌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시험 본 사람이면 다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모든 걸 잘할 거다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다고 생각을 해서, 시험만 가지고서 특혜를 바라고 또 주고 하는 그런 이상한 사회가 되어 버렸냐라고 하는 게 제가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점입니다.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학교에 있으면서 저 스스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시험이라고 하는 게 우리의 재능 자체를 억압합니다. 우리의 자연스러운 어떤 소질과 능력을 개발하는 데도 그게 엄청난 장애가 된다라고 하는 이유 때문에 제가 더욱더 가슴이 아픕니다.
먼저 객관식 시험을 생각해 봅시다. 객관식 시험이 뭔가요? 정답 찾기예요.
근데 우리의 삶에서는 옳고 그른 것을 가려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답을 찾는 걸 배워야 돼요.
근데 인생의 모든 일이 다 답이 있는 게 아니에요.
정답을 찾는 일에만 이렇게 길들여지면 이게 정신의 자발성 창의성에 치명적으로 손상이 됩니다.
정답이 없는 일에서는 인간이 결국은 스스로의 어떤 창의적인 어떤 상상력을 가지고서
'야 이런 경우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이렇게 해야 되는 거거든요. 근데 이렇게 못하는 거예요.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이 문제가 이제 자꾸 문제가 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시험을 조금 더 복잡하게 내면 창의성이 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통합교과형 이렇게 출제 이렇게 하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요.
정신이 복잡하게 구속될 뿐입니다.
객관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이게 변별력 때문에요.
채점의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엄격하게 객관적으로 검증이 돼야 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토시 하나라도 잘못 썼다가 이게 내가 감점받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강박 관념이 있기 때문에요. 피차 간에 이런 경우에 주관식 시험 또는 논술 시험 이런 거 한다고 하더라도요.
서술형으로 쓴다고 쓰는데, 출제자의 의도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이게 이제 주관식이든 객관식이든 시험에 길들여진 정신은 뭔고하니 대답하는 데 길들여지는 정신입니다.
18년 대학 들어오기 전까지 이런 종류의 시험에 계속 길들여지다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다 보면요.
이고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근데 모든 학문의 발전, 과학기술의 발전이라고 하는 건 남들이 던지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데 졸립합니다.
제일 유명한 예가 뉴턴의 사과입니다.
사과가 떨어질 때 당연히 밑으로 떨어지는 거죠라고 생각을 할 때
뉴턴이 안 있는데 가만히 있거라 저게 왜 밑으로 떨어지지? 위로 올라가서 별이 되지 않고
전설 같은 얘기지만 그래서 왜 밑으로 떨어지는지 물었다는 거고
거기서 근대적인 물리학의 패러다임 근대적인 물리학의 기초 체계가 놓였다는 것 아니에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대답이 아니에요.
대답이 아닙니다. 대답은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쳐보면 돼요.
어떤 문제에 대해서 대개는 거기에 필요한 대답이 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말씀을 이 시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폐해에 대해서 이제 드리고 끝내겠는데요.
인간의 재능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다양해요.
그런데 그중에서 특별한 어떤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많은 재능 가운데서 하나가 이렇게 특별히 이렇게 뾰족하게 삐져나온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죠? 이게 불균형의 산물입니다.
특별한 재능 흔히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들 근데 꼭 뭐 모두가 천재가 아니어도 되죠.
각자가 다 자기 나름의 재능이 있는 것 아니에요? 그 재능은 다 불균형의 산물입니다.
모든 걸 다 원만하게 잘하는 사람이 어떤 하나 잘하는 거 보셨어요? 여러분?
저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모자라는 부분이 반드시 생겨요.
쟤 왜 저렇게 멍청하냐 저런 부분에 있어서는 이렇게 말 듣는 부분이 꼭 있습니다. 제가
12년 교육과정을 그렇게 우리가 밟게 하고 나서 학생들이 이제 이 대학에 들어올 때 보면 또는 대학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지만 평균적으로 한국 사람들 참 똑똑합니다. 근데 평균적으로 똑똑하고 평균적으로 범속해요.
그 이유가 이렇게 불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 줘야 되는데 어떤 건 못하고 다른 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줘야 되는데 그걸 우리 허락을 하지 않아요. 이 범속함이 근데 근본을 이제 파고 들어가면 그게 타율성입니다.
"이거 해 저거 해"라고 하는 걸 열심히 해요. 우리 아이들이 착하게, 예의 바르게, 말 잘 듣고
근데 그렇게 해서 이제 18년 동안 살고 이제 어른이 돼서 이제 뭐 이렇게 사회에 나옵니다. 또는 대학에 들어옵니다.
근데 자발적이지 않은 거예요.
근데 여러분 모든 재능은 자발성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모든 재능의 본질이 활동이거든요.
열정적인 활동인데 열정적인 활동의 본질은 자발성이에요.
반대가 뭐냐? 자발적으로 아무것도 못한다. 타율적으로만 움직인다.
이거 물질의 관성이고요. 이게 무능입니다.
오직 외적 자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거 이게 무능인 거예요.
인간은 그런 존재 아닙니다. 그건 사물적인 존재고요.
인간은 자발적으로 내적인 충동, 내적인 열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가 그게 인간이고 그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재능이 나오는 겁니다.
한국 교육이 좀 과격하게 표현해서 무능한 인간을 양산해 낸다.
들어가는 인풋에 비해서 최근에 윤여정 배우께서 정말 좋은 말씀 하셨더라고요.
왜 최고가 되어야 되냐 최중이면 안 되냐? 자기는 경쟁 싫어한다 감명받았어요.
제가 지금 묻고 싶은 게 이거예요.
학교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고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게 해주고 꼭 해야 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자기를 이기고 인내하면서 할 수 있는 어떤 그런 걸 만들어주되 그러나 내면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그런 교육과정이 한국의 교육과정이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겁니다.
4차 산업시대라고 해요. 4차 산업시대에 제일 중요한 게 창의성이다라는 말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듣습니다.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이 우리 사회를 이만큼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다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교육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결코 부인하는 것 아닙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교육도 바뀌어야 돼요.
디지털 시대로 갔는데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나라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교육도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걸 위해서 우리도 이제는 미신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미신? 성적에 의한 차별은 공정한 차별이다라고 하는 미신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질문드리면서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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