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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441회 | 변화의 시대, 생존을 넘어 성장하는 방법 | 강형근 에이치케이앤 컴퍼니 대표

변화의 시대, 생존을 넘어 성장하는 방법

 

 

  • 제가 29년 동안 아디다스에 일하면서 부장, 총괄부장 이사, 상무 전무 VP 
  • 그런데 55세 나이에 또다시 사표를 던지고 사실 그때는 제가 사장 수업을 하고 있어야 될 때입니다.
  • 뭐? 공대 대학원 학생으로 돌아간다고?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아디다스 전 부사장 55살에 임원을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이유

 

 

 

안녕하세요.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손흥민

 

손흥민

지금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손흥민이지 19살 때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 손흥민 선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19살 때 그를 찾아 찾아 발굴을 해서 지금은 베컴 메시와 같이 나란히 세계 일류급으로 후원을 받게 한 브랜드가 있었죠.

 

강형근 대표와 손흥민

 

그리고 여러분 아시죠? 

adidas

 

불꽃 모양 

이 불꽃 모양 마크가 한때는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맞죠? 

그래서 농 안에 있는 추리닝이 하나의 길거리 패션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신드롬을 만들었던 때가 있습니다.

 

나이키

 

그리고 여러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절대 깨부을 수 없는 벽이 바로 나이키라는 얘기는 거의 10년 15년 정도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 나이키의 아성을 드디어 2013년 제치고 2019년 초반까지 이끌고 왔습니다.

 

한국에서 아디다스 점유율이 나이키 점유율을 앞선다는소식


이런 매의 영광과 도전과 변화의 순간에 저희 팀과 함께 리더로서 이끌었던 강형근입니다.

 

 

사실은 여러분 변화 너무너무나 싫습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큰 대변화가 왔을 때는 정말 누구든지 다 숨어버리고 싶죠. 저는 25에 정말 말단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8번의 월드컵 그리고 7번의 올림픽을 치르면서, 나중에는 정말 전 세계 5만 명의 직원 중에 10명만이 할 수 있다는 글로벌 브랜드 디렉터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전 세계 10명 뿐인 아디다스 글로벌 브랜드 리렉터

 

얼마나 많은 시련, 얼마나 많은 도전, 얼마나 많은 변화를 제가 겪어야 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지금 30년 가까이 조직생활 해오면서 정말 저한테 굉장히 크게 다가왔던 거대한 두 변화가 있었습니다.

글로벌화 ❘ 디지털화

 

바로 그것은 글로벌이라는 대변화였고요. 하나는 지금도 거세게 불고 있는 디지털 변혁이라는 대변화였습니다.

IMF가 터지고 나서 정말로 본격적으로 글로벌이라는 대변화의 물결이 왔습니다.

저희 회사에도 큰 변화가 몰아닥쳤습니다. 

정말로 영어를 단 하나도 쓰지 않았던 사무실에서 갑작스럽게 영어를 써야 되는 본사와의 합병 소식이 왔습니다.

매일 영어를 써야 했고요. 매일 영어로 통화를 해야 됐고 매일 영어로 회의를 했어야 됩니다.

정말 그것은 고통을 넘어서 공포였고요. 늘 불안했습니다.

벌써 3일 전부터 외국인이 온다 그러면 잠을 못 잤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한테 물었습니다. 늘 열심히 일했던 사람인데

 

강형근 
너는 언제 동안 그렇게 공포에 떨고 
너는 어떻게 얼마 동안은 그렇게 불안하면서 살 거야?

 

 

그래서 제가 내린 결심은 바로 36살 나이에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한참 일할 과차장급의 나이였습니다. 

그 나이에 저는 모든 것을 내리고 공부를 하러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36살, 유학을 떠나다

 

사실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런 보장이 없었던 상황에서 정말로 저는 홀연히 떠났습니다.

정말 지금도 저는 생각이 납니다. 

그 비행기에 몸을 신고 갈 때 모든 걸 내려놓고 가야 된다는 그 심정을 느꼈을 때 저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1년이 지날 무렵쯤 돼서 저는 느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공포스럽고 그렇게 무섭게 느껴졌던 영어가 도리어 편하게 친숙함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무섭던 영어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됐다


그리고 정말 1년이 정말 어느 정도 지났을까요? 본사에서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문이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언제 오니 빨리 와라 언제 오니 빨리 와라. 그래서 결국은 정확하게 13개월 만에 저는 복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자마자 처음으로 쳐낸 작업이 바로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습니다.

물론 한일 월드컵 멋지게 쳐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의 월드컵 그리고 다섯 번의 올림픽을 쳐내면서 부장 총괄부장 이사, 상무 전무 VP 계속 도전 도전 새로운 영역에 대해서 시도 시도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매일 정말로 공부를 하는 저에게 2018년 저는 큰 변화의 대물결을 또 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도 거세게 불고 있는 바로 디지털 변혁이라는 물 그리고 4차 산업이라는 큰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4차 산업 혁명

 

저는 그냥 신문을 펼칠 때마다 뉴스를 볼 때마다 AI, 빅데이터, 스마트 팩토리 이런 낯선 용어가 처음에는 저하고 무슨 상관이지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느꼈습니다. 

뭐지? 나는 정말로 준비가 되어 있나 정말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아 정말로 이거는 또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피할 건가? 도전할 것인가? 그리고 저는 또 생각했습니다.

쓸려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폭풍 가운데로 뛰어들 것인가? 정말 생각을 했습니다. 1년 정도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린 결정은 55세 나이에 또다시 사표를 던지고 사실 그때는 제가 사장 수업을 하고 있어야 될 때입니다.

그런 자리에 도리어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뭐? 공대 대학원 학생으로 돌아간다고?"

주변 사람들이 정말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끊고 그냥 등록금 내고 등록해버렸습니다.
사표를 만류하는 석 달 넉 달 동안을 다 만류를 뿌리치고 저는 학교 수업을 들어갔습니다.

대학원 시절 강형근 대표

 

아마 제가 지금 그때 그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면 또 조금 아찔해집니다.

여러분 저는 큰 대변화, 작은 변화들은 누구나 다 매일매일 다 조금씩 잘 관리를 하고 계신다고 저는 봅니다.

저는 큰 대변화가 물결이 오면은 정말 저에게 묻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나에게 어떤 기회가 있나? 그리고 나는 이런 큰 대변 하에 정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늘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55세 나이에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보장이 되지 않은 나이에 저는 또다시 학생의 길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말이죠.  많은 곳에서 도리어 사장직 제안에 들어왔습니다.

저 사람은 이제 공부가 다 끝나가니까 이제 우리 회사로 영입을 하면 되겠구나.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식품그룹 회사 사장 그리고 유명한 골프 브랜드 사장 그리고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 사장 제안을 여러 차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이 아니라 평균 나이 32세인 500명이 엠제트 세대들이 일하는 디지털 회사였습니다.

 

평균 나이 32살 디지털 기업 입사


저는 저한테 또 물었습니다. 

이렇게 극심한 극심한 세대 교체를 겪는 이 시기에 과연 나는 강영근이라는 사람은 정말 엠제트 세대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아재가 아니라 그네들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는 소통법을 정말로 구사할 수 있을까?

저는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또 저 자신에 대해서 또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MZ 세대들과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반성도 했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열정이 가득한 저 엠지트 세대들이 어떻게 보면 2030 세대들이 가장 똑똑한 세대들입니다.

그 사람들은요 정말 열정에 사로잡혀 있고, 그 사람들은 인정을 해주고, 감사해 주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더욱더 잘될 수 있도록 내가 행동으로 도움을 해주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정말 주인공 짱이라는 것을 인식을 심어줄 때

그 사람들은 정말 멋지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람을 저는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한 거예요.

인정 감사 도움 장짱

 

인감도장 무슨 계약할 때 찍는 인감도장이 아니라 바로 이들을 인정해 주고 감사해 주고 도움을 주고 으로 만들어주면 정말로 나 역시도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계기로 저는 또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왜 내가 전에 있던 회사에서 더 많이 인정을 해주지 못했을까?

더 감사하다는 말을 못했을까?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을까?

더 이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지 못했을까?

정말로 저는 성찰하고 반성했습니다.

 

정말로 좋았습니다. 

이거는 제가 스스로 이런 작은 회사를 선택했던 저는 보너스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이런 대변화는 

저는 유난히 대변화가 오면요 굉장히 선제적으로 더욱더 공격적으로 변하는 기질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큰 대변화도 중요하지만 소소 작게 일어나는 작은 변화도 사실 정말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여러분 저는 직장생활 30년 동안 정말로 자신 있게 지켰던 루틴이 있습니다.

뭔지 아세요? 바로 칼퇴입니다. 

 

말단 사원회부터 들어가서 고위 임원이 들어갈 때 퇴근 1호가 접니다.

눈치를 안 봤냐고? 제가 모르겠습니다. 제가 눈치가 없었든지 눈치를 안 봤는지 아마 둘 다 다 해당될 수도 있었는데요.

정말로 저는 칼퇴를 정말로 지켰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뭘까요?

또 한 가지가 바로 이겁니다. 1년 365일 동안 저는 내복을 입고 잡니다. 수면 양말을 신고 왜요? 

저는 이제 감기가 걸리기 싫었거든요.

감기가 걸리면요 몸이 아프고요. 몸이 아프면 그다음 날 회사 가기 싫습니다.

가기 싫은 회사 억지로 가는 마음, 어떤 마음 아시죠?

그래서 저는 제 건강을 지키고 싶었고, 제 에너지를 지키고 싶었고, 그다음 날 아침에 눈 뜨면 가고 싶은 회사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더 일을 잘하고 싶어서, 저 에너지를 전날부터 관리를 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칼퇴를 했던 사람이 저는 이제 공부를 하면서 두 사람을 만난 겁니다.

 

초격차 ❘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의 초격차를 책을 지은 권 회장님이셨습니다. 이분은 정말 40년 동안 칼퇴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너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아니 저렇게 칼퇴를 하고도 저렇게 삼성전자 보통 하면 밤 10시에 퇴근할 줄 알고, 출근이 있으면 퇴근이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 동안 칼퇴를 하면서 도리어 저 삼성전자의 수뇌진까지 올랐다는 그 권오현 회장님을 만나고 너무너무 반갑고 '아! 이런 사람이 또 있었구나'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이 계신데요.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바로 LG생활건강의 차석용 부회장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더 빨리 퇴근하신답니다. 오후 4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이 정말로 들어가서 그냥 잠을 잤을까요?

저는 내일을 위한 준비를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29년 동안 아디다스에 일하면서 너무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너무나 영광스럽게도 훌륭한 스타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데이비 백컴, 지네딘 지단, 무하마드 알리 보이시죠?

이 신바에 바 엄청난 부상을 당했던 데릭 로즈 그리고 지네딘 지단 그런데요.

데이비 백합이 한국에 왔을 때 따로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98년도 프랑스 월드컵 전후로 해서 3~4년간 아주 심한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도리어 그런 공황 장애를 자기는 맹렬한 연습을 해서 매일 밤에 2~3천 개씩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리오넬 메시 한국에서 왔었죠? 리오넬 메시가 축구를 시작한 나이가 6살입니다.

그런데 리오넬 메시가 11살 때 성장 장애 판정을 받습니다.

 

 

청청 병력 같은 소리입니다.

그래서 리오넬 메시는 축구를 포기할까 건강하다가 지금 리오널 메시가 어떻습니까?

축구 황제가 돼 있습니다. 신장이 얼만데요? 169cm입니다.

EPL 평균 신장이 180에서 190이라고 본다면 상상이 안 되는 숫자입니다.

 

 

옐레나 이신바예바

 

그리고 이신바예바 2011년도 우리나라 대구를 찾았습니다.

원래 체조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키가 너무나 빨리 성장하는 바람에 장대 높이 뛰기 선수로 변항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세계 기록을 28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신기록 28개 보유

 

 

 

그래서 저는 이 사람들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또 배웠습니다. 그리고 또 확인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수많은 핸디캡, 수많은 부상, 수많은 슬럼프, 수많은 신체적인 핸디캡을 다 극복했던 도전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얘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챔피언이 아니다. 자기들은 도전자라고 저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게 됐습니다.

그 사람들한테 있어서 고난과 시련은 바로 축복이 가장되어 들어오는 선물로 만든 장본이구나 도전자구나 저는 그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저한테 큰 용기를 줬습니다.

 

 

저는 지금도 평생학습을 실천하고 사는 도전자입니다.

그리고 요즘 스펙을 많이 쫓지만 정말로 스펙보다 더 중요한 건 뭘까요?

여러분 같이 공감을 해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열정이고 태도이고 그런 태도를 있게 해주는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용기이자 저는 배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저는 너무나 지금 행복합니다. 

제가 만약에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장직을 택했더라면 과연 저는 지금 행복해야 할까?

아마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요?

제 자신이 행복해야 정말 성공이 아닌가요?

저는 지금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성장하고 싶은 많은 젊은이들을 위해서 코칭을 해주고 멘토링을 해주는 이 자체가 너무 너무나 행복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 운동선수가 90분의 엄청나고 격렬한 축구 선수들이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충분한 수분 공급을 합니다. 엄청난 물을 마십니다. 이미 갈증을 느끼기 시작할 때는 이미 늦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서퍼는요 파도가 내 몸을 치기 전에 먼저 그 파도 위에 올라갑니다.

저는 그것을 스포츠 하는 사람으로서 많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무수한 대변화가 저는 또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겪었던 글로벌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글로벌 대변혁 앞으로 어떤 변화의 물결이 올지 모릅니다.

여러분들 이런 큰 대변화가 왔을 때, 여러분들 안전지대로 숨으시겠습니까?

아니면 공포에 질려 있겠습니까? 

여러분들 위대한 서퍼처럼, 파도가 우리를 덮치기 전에 큰 대변화의 물결 위에 서로 같이 먼저 선제적으로 뛰어오르면 어떨까요? 저는 이 말씀을 오늘 드리며 15분의 토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