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힙합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쇼미 더머니 텐 그런 방송에 나가게 됐습니다.
아주 냉정한 피드백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비와이 카피켓 같다. 이 혼종은 뭐지?
생각이 굉장히 복잡해졌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23살 래퍼 아넌딜라이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세바시이라니 너무 좋습니다.
일단은 저를 많이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신 것 같아서 잠깐 이 사진을 한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튜브에서 '쉬어'라는 노래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서 이제 맨 처음에 얼룩말 같은 재킷을 입고 랩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이런 제스처 하고 막 이런 사람인데 그게 바로 접니다.
네 아넌딜라이트 조회수가 이제 700만이 넘는 동영상이긴 한데, 그래도 이제 저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말씀을 해 드리려 합니다.
저는 쇼미더머니 텐에서 처음으로 이제 얼굴을 알리게 됐습니다.
다른 참가자 분들은 이제 경력도 많으시고 이제 이름도 알려졌던 거에 비해 저는 진짜 완전 생 무명이어서 많은 분들이 제가 언제부터 이제 음악을 했는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랩을 들었었습니다.
집이랑 학교가 좀 멀었어 가지고 이제 아버지께서 저를 학교까지 매일 데려다주셨었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차 안에서 랩을 틀어주셨었어요.
그게 바로 아웃사이더 님 랩이었는데 이제 그걸 듣는데도 그냥 너무 신기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말을 빠르게 하지? 뭐 '상처를 치료해 줄 사람 어디 없나' 이러면서 아 그래서 그날부터 이제 랩에 정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사를 다 외우고 따라 부르면서,
그렇게 노래를 좀 따라 부르다가 중학교 1학년 때 그때부터 랩 가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거나 뭐 게임할 때 저는 이제 계속 가사를 쓰고 이제 노래를 불렀었습니다.
뭔가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음악 말고는 사실 취미가 별로 없습니다.
제가 또 이제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조금 약간 모범생 스타일인 것 같아서,
그래서 뭔가 음악을 하는데도 친구들이 저를 좀 재미없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이 저한테
'니가 뭐 힙합이야? 넌 게임도 안 하고, 욕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피우고, 힙합 스타일로 옷도 못 입고, (지금은 잘 입지만 네) 재미없는 범생이 같은 놈'
약간 이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애들이 그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덧 진로를 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이제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이제 업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걸 좀 취미로 남겨야 하는지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 거예요.
사실 여러분 세미 파이널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집의 가정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제가 13살 때 아버지께서 이제 회사에서 해고되시면서 좀 집에 빚이 좀 있었거든요.
빚을 갚기 위해서 이제 집을 팔고 집 크기를 확 줄여서, 외가 댁에는 거의 뭐 알리지도 않고 몰래 이사를 간 적도 있었고, 집에만 계셨던 어머니도 이제 일을 시작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음악을 하면 돈을 못 번다고 하는데, 이제 음악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게 맞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돈이 없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지 경험을 했으니까. 제가 하는 선택이 좀 맞을까 고민을 했었어요.
약간 좀 자랑 같지만, 원래 이제 중학교 때 전교에서 막 9등 정도 할 정도로 공부도 나름 했었었고, 전교 회장도 막 했었었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된 직업을 갖고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음악을 꼭 해야겠더라고요.
그게 돈을 많이 못 버는 일이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어려운 일이던,
이 일을 선택했다가 다시 다른 일을 선택하더라도, 제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용기 내서 부모님께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음악 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솔직히 엄청 혼날 줄 알았는데 진짜 정말 진지하게 들어주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그래하고 싶은 거 다 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때 이제 어머니 아버지께서 약간 적금 통장에 좀 이렇게 차곡차곡 모으시던 돈이 있었는데,
그 적금을 깨서 제가 음악 하는 데 이제 필요한 장비들을 전부 사주셨었어요.
그때 엄청 많이 사주셨는데, 그날 이후로도 다짐을 많이 했습니다.
이거 꼭 다 갚아드리고 더 효도해야겠다고,
그래서 그날 이후로부터는 제가 실용음악과 진학을 목표로 곡도 만들고, 가사도 쓰고 막 그랬었습니다.
친구들이 수능 준비하면서 열심히 공부할 때 저는 이제 학교 성적도 이렇게 준비를 하면서 계속 음악을 만들었었어요.
사실 제가 정규 1집 정규 앨범을 냈는데 거 앨범에 쓰인 곡이 모두 고3 때 썼던 가사들이에요.
거기 그래서 보면은 모의고사 6월 모평이라고 하죠.
망해서 쓴 곡도 있고, 나는 과연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쓴 곡도 있고,
좋은 대학 가라고 하는 이제 선생님께 약간 왜 그러는 거지?
약간 이런 반항하는 마음이 들어서 쓴 곡도 있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제 수능을 앞두고 고3이었던 저희에게 교장 선생님이 수능 응원 겸 이제 훈화 말씀을 해 주시러 이제 반마다 이렇게 들어가셨었는데, 그 반에 들어오셔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인생은 오로지 대학 그것을 위한 수능 준비를 해야지 너희들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면 얼마나 떨리니 그러면 겨우 씨가 망하잖아 그러면 망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와 엄마 얼굴도 못 봐. 참 기구하잖아. 게임도 하지 마. 절대 도움이 안돼. 알바도 하지 마. 너무 위험해 안 돼. 그리고 수업 시간에 깨어 있어 성공해야지' 이런 말씀
그때 저는 맨 뒤에서 이제 살짝 졸고 있었는데 그 얘기를 듣는데 잠이 팍 깨는 거예요.
응원이 되는 게 아니라 힘이 좀 빠졌어요.
이게 뭐지? 하면서 그리고 성공해야지라는 말이 맴도는데 뭔가 성공이 무엇인지 스스로 좀 되묻게 되었습니다.
성공이 뭐지 선생님 말씀처럼 좋은 성적 받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을 가는 것이 성공하는 건가 내가 원하는 삶이 그런 성공을 하는 그런 삶인가 그래서 저는 그때 저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 세상이 정의하는 성공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입시를 준비해서 제가 원하는 이제 비트 메이킹을 배울 수 있는 실용음악과에 입학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3 때 했던 그런 고민들을 담은 곡으로 첫 앨범을 아까 말씀드렸던 정규 1집을 내고,
21살에 좀 이른 나이에 군대에 갔습니다.
마침 제가 입대했을 때 처음으로 이제 군대에 이제 핸드폰이 도입이 됐었어요.
그래 가지고 아 감사하게 사회와 소통을 할 수 있었는데,
근데 이제 그게 저에게 소통의 창구이자 또 이제 한편으로는 열등감 그리고 불안함을 자극하는 창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에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열심히 가사도 쓰고, 기존 아티스트 분들이 발매하는 새로운 음악들도 다 듣고 그랬었는데, 그런 음악들을 들을 때마다 저도 너무 음악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진짜 엄청
가사는 이제 핸드폰이 있어서 메모장에 이렇게 쓸 수 있었는데, 비트도 너무 만들고 싶었고, 이제 녹음도 해서 막 정식으로 발매도 하고 싶었는데, 군대에서 그걸 할 수가 없으니까 너무 답답한 거예요.
게다가 SNS를 통해서 이제 친구들이 막 음원 발매하고, 공연하고, 그런 걸 보니까 너무너무 부러운 거예요.
남들은 앞서 가고 있는데, 저만 뒤처진다는 생각을 하니까
열등감이랑 불안감이 좀 많이 몰려온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계속 가라앉았었어요.
자신감도 자존감도 계속 없어지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게, 그런 그 상황이 너무 싫었었어요.
그래서 군에 있는 동안에 그냥 가만히 있지 말고 그래 뭐라도 해야겠다
뭐라도 해야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제 개인 유튜브를 막 시작하고,
제가 군대 안에서 핸드폰으로 녹음했던 곡들을 이제 막 유튜브를 통해서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군대에 처음 업로드한 영상이 이제 군대에서 이등병 랩이라는 영상인데,
제가 이등병 때 느낀 심경을 재미있게 이제 랩으로 이제 만든 겁니다.
영상을 업로드했는데, 그때 약간 반응이 아니 군대 간 애가 이렇게 랩을 하는 영상을 올리네 이러면서
나름 많이 좋아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핸드폰으로 이제 녹음부터 영상 편집까지 이제 그냥 막 생활관에 이렇게 누워서 이렇게 막 했었거든요.
이렇게 했기 때문에 퀄리티가 낮은 영상들이었지만, 그냥 그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요.
그리고 그 작업들 덕분에 저녁하고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곡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게 저녁을 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음악 활동을 미친 듯이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2021년 올해죠. 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곡 50곡 만들기를 목표로 세웠는데요.
제가 2020년 12월에 전역을 했는데 지금까지 43곡을 발매를 했습니다.
11개월 만에 이만큼 많은 곡을 발매할 수 있었던 건, 제가 군대에서 썼던 많은 가사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들을 이렇게 골라가지고 이건 좀 괜찮겠다 이러는 것들을 골라가지고 비트를 만들고 이제 곡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렇게 열심히 곡을 발매를 하고 활동을 하다가 이제 하나의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대한민국 힙합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쇼미 더머니 텐 그런 방송에 나가게 됐습니다.
저는 사실 쇼미더머니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처음 나가 보았어요.
그동안 계속 기회가 있었는데 뭔가 상황이 막혀서 못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아 그래 뭐든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지원을 했는데, 출전 자격이 주어진 거죠.
진짜 진짜 너무 신기하고 기뻤어요.
제가 TV로만 봤던 분들이 저한테 '야 너 진짜 잘한다 와 너 너 잘한다' 이렇게 해 주시니까 진짜 뭔가 신기하고 행복했었어요. 완전
사실 제 첫 앨범에 이제 도망가고 싶어라는 노래가 있는데, 쇼미 출연하는 걸 상상하고 뭔가 그 무대에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쓴 노래가 있을 정도로 뭔가 쇼미 더머니가 굉장히 저한테 동경의 무대 같았거든요.
그러다가 이제 방송이 나가고 이제 많은 응원들도 있었는데, 동시에 이제 냉정한 아주 냉정한 피드백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쟤는 약간 BY 카피켓 같다. 이 혼종은 뭐지? 벌써 하나의 기존 래퍼들 플로우가 다 있는데, 얘처럼 색깔 없는 애들은 별로다
이렇게 애매한 애들은 음악을 오래 못 한다 이런 류의 이제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사실 좀 걱정이 됐었어요.
왜냐하면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그분들만의 특유한 색을 가지신 분들이 정말 많이 계셔서,
색깔이 없다는 피드백은 저한테 굉장히 큰 결점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생각을 막 했어요.
색깔이 없으면 어떡하지? 이러다 너무 늦으면 어떡하지? 결국 내 색을 못 찾으면 어떡하지?
빨리 내 색깔을 좀 찾고 싶다.
그렇게 방송을 하는 중에도 그런 고민을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생각이 굉장히 복잡해졌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색깔이 없는 게 아니라 여러 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랩을 좋아하지만, 그냥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곡을 만들 때 제가 생각하고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곡에 넣으면서 음악을 이렇게 만듭니다.
그런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과하지 않고, 조화롭게 잘 섞으면서, 다양한 느낌의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단점이 아닌 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방송에 출연한 거여서, 이런 피드백을 듣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쇼미 더머니 파이널까지는 이제 진출을 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세미 파이널 무대에서 탈락을 하게 됐는데, 진짜 방송 보시면 알 거예요.
막 제가 아 아쉽다 이러면서 이렇게 내려오는 게 있는데, 너무 아쉽지만 저는 그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거든요.
대중들에게 인지도 있는 우리 프로듀서 형들이 작업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한테 효과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법을 배웠고,
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강약을 조절하고 텐션을 조절하는 법도 배웠어요.
그리고 저의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었고요.
저의 꿈은 이제 여러분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면서 저 아던딜라이트라는 앨범을 완성시켜 가는 것입니다.
저라는 앨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보자면 이제 한... 한 곡 한 3개? 정도 만든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너무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그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어쩌면 더 생생하게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했던 6학년의 저에게 음악은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제가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았던 피난처이자 든든한 힘이었고요.
당시 저의 꿈은 너무 높아 보였고 다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제가 믿는 신도 보이지 않아서 만질 수도 없고 막 다 할 수도 없을 것 같았고요.
하지만 그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는 꿈과 믿음이 제게 다리가 되고 날개가 되어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그런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그냥 거기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불안하더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가는 삶입니다.
그럼 저는 여기서 이만 강연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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