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봉사 갔다가 끼와 흥을 배웠습니다 | 금대현 거제 돌고래봉사단 단장 | #봉사 #장애 #함께 | 세바시 1756회
장애인 모욕만 칠 개월 팔 개월 동안 계속하였습니다.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남자들끼리 서로 뭐 특수 부위 보고 이러면은 절친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장애인들하고 사실 절친이 돼 버렸어요.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 비해서 끼와 흥이 두 배 이상입니다.
그 끼와 흥과 그거를 풀 데가 없어서, 저희들이 그제도 관광호텔 지하에 아라비아 나이트클럽에서 장애인 장기 자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약
- 연사 소개: 거제도에서 배를 타며 ‘돌고래 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는 금대현.
- 봉사 시작 계기: IMF 실직 후 친구의 권유로 장애인 목욕 봉사를 시작, 7~8개월간 지속하며 장애인들과 절친 같은 관계 형성.
- 대중목욕탕 입장 도전: 장애인들의 목욕탕 입장을 거부당하자 시위와 협상을 통해 봉사자 1:1 동행 조건으로 입장 허용, 다양한 시설 체험 제공.
- 장애인 직업 체험 프로그램: 거제도 9개 장애인 시설 대상으로 사회적응·아르바이트 체험 운영(환경미화 등), 본인이 번 돈으로 직접 소비 경험. 15년간 운영하며 취업자 수를 수십 명으로 확대.
- 문화·여가 기회 제공: 장애인들의 끼와 흥을 발산할 수 있도록 ‘경남 장애인 장기자랑’ 개최, 비장애인과 한 팀으로 공연·경연 참여. 일부 팀은 비장애인 대회에서 수상.
- 교훈과 메시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부딪히며 살아야 이해·배려·양보가 가능,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함.
- 마무리: 인생의 절반을 남을 위해 쓰는 삶을 권하며, 장애인 편견과 비장애인 고정관념을 함께 허물자고 호소.

거제도에서 하루에 10시간씩 지금 20년 ~30년을 배를 타고 있는 남자 금대현입니다.
2003년 가을 저희들은 출동을 했습니다. 장애인 40명을 데리고 목욕 가는 날이었습니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목욕탕을 들어가는데, 목욕탕에서 차단이 되었습니다. 입장 거부를 당했습니다.
물론 2~30년 전 이야기를 이야기를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못 들어가는 이유를 이야기해 달라니까 첫 번째, 안에 계신 분들이 불편해한다는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로 장애인들이 목욕탕 가서 다치면 누가 책임질 거냐? 그래서 저희들이 이야기했습니다.
조심조심 또 조심하고 들어가는 손님하고 똑같이 돈을 낼 테니까 입장을 시켜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입구에서 시위를 하였습니다. 시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들어오는 손님들과 저희들이 보는 게 좀 안 좋았었는가 그 주인 사장님과 협의가 되었습니다.
협의된 게 장애인 한 명에 봉사자 안전 의원으로 한 명을 해서 원 + 원으로 같이 입장을 해라.
그래 입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장을 해서 우리 그 봉사자들한테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때 밀지 마라. 그리고 목욕을 강요하지 마라.
그 대신에 목욕탕 대중목욕탕 처음 가는 우리 장애인들을 위해서 우리 비장애인들은 다 안다 닙니까 목욕탕이 무슨 게 많은지
반신욕도 하고, 냉 폭포 샤워도 하고, 습식 사우나도 하고 등 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도 하고 하여튼 다 한 두세 번씩 돌고 모욕을 즐기다 놓으라고 그랬습니다.


2시간 목욕을 하고 장애인들이 나왔습니다.
장애인들 처음 하는 목욕이라 그런가 얼굴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그런 천사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어떻습니까? 오늘 화장도 하고 처음으로 나왔는데, 결혼식 이후로 처음 화장해 봅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좀 뺀 질 합니다. 그리고 약간 좀 뒤끝도 있습니다. 그런 내가
내 밖에 모르는 내가 어떻게 봉사를 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1998년 대한민국 외환위기가 왔습니다. IMF가 왔습니다.


그 당시 회사가 매각이 되면서 저는 자동으로 실직을 해버렸습니다.
저한테는 가장 힘들고 방황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날 또 같이 잘린 멤버들과 맨날 저녁에 술자리를 합니다.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답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내가 왜? 이렇게 구조조정을 당해야 하나 내가 왜? 대상자가 돼야 되지 이유가 뭐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세월호를 보내는 시절에 절친 행님 한 분이
내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좋은 데 가는 데 같이 가자 그랬습니다.
그때 저 혼자 애들 등지고 있는 시국이라서 좋은 데 가자니까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OK 그 다음날 저를 데리고 간 곳이 장애인 복지 시설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제 마음이 진짜 심란했죠. 심난하고 복잡하고 이런 시국인데,
아무 생각 없이 장애인 모욕만 7개월 8개월 동안 계속하였습니다.

모욕을 하면서 장애인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간식도 나눠 먹고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남자들끼리 서로 특수부위 보고 이러면은 절친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장애인들하고 사실 절친이 돼 버렸어요.
절실히 되면서 장애인들이 저희 저한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삼촌 장애인 목욕을 시키는데 저희들이 받기 싫은 목욕이 있고 안 하고 싶은 봉사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이다 예를 들어서 하루에 목욕을 세 번 네 번 합니다.
어머니들이 장이 시술 오면은 내 새끼처럼 안타까워서 딱 차이라 짝짝합니다.
목욕을 세 번 네 번 밀으면 여기 막 닭살이 일어납니다. 그죠?
그다음에 남자 장애인을 여자 봉사자들이 몸을 씻깁니다. 그런데 참 서로가 좀 약간 좀 거북스러운 봉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앞에 선두에 이야기했듯이, 장애인들을 데리고 도전을 한 게 처음으로 대중목욕탕을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박수 한번 나와줘야 되는데

장애인들과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장애인들도 꿈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있고 물론 저도 꿈이 있습니다.
저희 꿈은 제 꿈은 재벌 2세였습니다. 근데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하네요.

장애인들도 자기 손으로 좀 불편합니다.
불편한 몸으로 직업을 갖고 싶고, 하다 안 되면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그 당시에 제가 IMF로 실직을 하는 그런 시국에서, 직장의 소중함과 중요함을 너무 많이 아는 터라서
저 친구들 저 장애인들한테 직업을 알바를 한 번 시키고 싶은 게 제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한번 준비를 했습니다.
장애인 맞춤형 사회적응 체험이라고 했습니다.
거제도에 장애 시설이 아홉 군데가 있습니다.
그 아홉 군데에, 일하고 싶은 장애인 아르바이트 하고 싶은 장애인을 모집을 하였습니다.

사진에 놓지만 150명가량이 신청을 하였습니다. 인원이 생각하고 너무 많은 관계로 두 조로 나뉘었습니다.
A팀 B팀, A팀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쪽으로 해가지고 바닥에 끔 제거 작업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B조는 일반 시민들이 댕기는 도로 잔디밭 화단에 담배꽁초 죽고 또 금 제거 작업을 시켰습니다.


지나가시는 일반 시민들이 보시고 아... 꼭, 장애인들이 저렇게 해야 되나? 그냥 돈 한 푼 용돈 주고 말지.
그런데 장애인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당당하게 돈을 벌어서 내가 먹고 싶은 거 사 먹는 그런 걸 원했습니다.
그래서 두세 시간 일을 하고 그리고 저희들이 한 시간당 만 원씩 포함해서 점심값 포함해서 일당을 지급을 했습니다.
일당을 지급하면, 우리 장애인 친구들은 그 처음 받아보는 자기가 벌어본 돈으로 마트 가고, 식당에
그때 가서 우리 홈프르스 식당이죠 홈프르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주문을 해서, 사 먹고, 계산하고
또 남은 돈으로 원래 가지고 싶은 시장에 가서 또 직접 사고 계산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는 프로젝트 이런 체험을 15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맨 처음 시작할 때는 사실 한 4명 정도만 취직이 되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씨가 그 불씨가 커지고 커져서
지금은 한 60여 명이 각 지역에서 소상공인 분들과 그리고 그 지역의 마트 세일 마트 홈플러스 마트 이런 데에서 대차를 하고 진열을 하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십니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비장애인들, 일반인들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겠습니까?
뭐 노래를 하고 그리고 술 먹고 뭐 좀 돈이 좀 있으면 춤을 추고, 나이트클럽 가신다면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서 끼와 흥이 두 배 이상입니다.
왜 두 배 이상이냐 장애인들은 풀 데가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끼와 흥과 그거를 어디서 풀어야 되는데 풀 데가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는 거죠.
20년, 25년 전에는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적었습니다.
식당에 가서 장애인들이 밥을 먹는 테이블이 있습니다.
주위에 비장애인들, 일반 시민들은 앉지를 않습니다. (20년 30년 전에는요.) 지금은 조금 달라졌겠지만요.
영화관, 마트, 노래방 뭐 특히 아까 이야기했던 나이트클럽 이런 데는 더더욱 꿈을 못 꾸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장애인의 끼와 흥을 풀 수 있는 공간 자 우리가 한번 판을 깔아줘 보자.
그리 시작한 게 경상남도 장애인 장기 자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애 시설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한 팀이 되어서 연습을 하고 출전을 하는 거죠.
막춤 추고 이런 게 아닙니다. 각 시설별 A 시설비 시설 B 시설이 쫙 있는데 아홉 개 시설에 장애인 팀이 만들어져 갖고 출조를 하는 거죠.

그제도 관광호텔 지하에 천사백 평 규모의 아라비아 나이트클럽에서 장애인 장기 자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경진대회를 붙이고 그다음에 사이사이에 아시지 않습니까?
나이트 타임이 있습니다.
봉사자들과 장애인들이 왕창 나와서 막 떼춤을 추는 거죠.
그래서 장애인 장기 자랑을 하게 되었죠.
한 3회 때 그때 대상 받은 팀이 있습니다.

휠체어 팀이라고, 그 휠체어 팀이 당당하게 비장애인 나가는 스포츠 댄스 경진대회에 나가서 우수상을 받은 겁니다.

근데 참 특이하지 않습니까? 우수상 받고 나서 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신기해 놓으니까 지역 행사 할 때마다 찬조춤을 하는 겁니다.
와 이 짭짤하게도 들어온다 아닙니까 출연비가
그다음에 삼일 땐가 진짜 춤 잘 추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민성이라고
그 원장님한테 안 보이는 그 친구가 안 보이는 겁니다.
그 그 원장님한테 원장님 오늘 민성이 안 왔습니까? 그 춤 잘 추는 친구 어디 아픕니까?
그랬습니다. 원장님
와 금단장 그 친구 3개월 전에 하늘나라 갔네.
좀 가슴이 좀 찌하답니다. 그래서 그래요? 그러니까 원장님이
그래도 금 단장 그 친구는 그래도 이런 데도 한 번 와 보고 이렇게 즐기고 소원 풀어서 그래도 고맙네 그러면서
저도 작은 위안을 하면서 후회도 하고 보람도 하는 그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내심 한 번 더 할걸
그리고 조금 더 당겨 갖고 그 친구가 한 번 더 경험을 한번 해줄걸, 그런 마음을 좀 느꼈습니다.
여러분 저 제 생각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살려면은, 같이 만나고, 비비고, 싸우고, 박치기하고 이래야지
같이 살아가면서 절충이 되고 배려가 되고 양보가 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조건 장애인이라고 빼고, 무시하고 빼고, 이런 거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장애는 그냥 그 모습 그대로를 봐주셔야 됩니다.
장애인의 장애는 그 모습 그대로를 봐주세요.
어느 유명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생의 반은 나와 가족을 위해 쓰고,
인생의 반은 남을 위해서라고 하대예
여기 관중 오신 분들도 인생의 반은 혹시 남하게 쓸 일이 있으면
저희와 함께, 저와 함께 장애인의 편견을 조금만 좀 허물어주시고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고정관념(固定觀念)을 조금만 더 허물어주시는데 같이 불씨가 되어 주었으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저는 내일 또 배를 10시간 타러 또 가야 됩니다. 내일 또 배 타러 가야 되는데 오늘 월차 쓰고 왔습니다.
거제도에서 돌고래 봉사단 금 단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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