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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899회| 꿀잼 가족 썰 부자 빽가! 사실 고통과 손가락질투성이였던 사연 | 빽가 코요태 멤버, 포토그래퍼

꿀잼 가족 썰 부자 빽가! 사실 고통과 손가락질투성이었던 사연 | 빽가 코요테 멤버, 포토그래퍼 | #성장 #도전 #동기부여 | 세바시 1899회

 

 

꿀잼 가족 썰 부자 빽가! 사실 고통과 손가락질투성이였던 사연 | 빽가 코요태 멤버, 포토그래퍼 | #성장 #도전 #동기부여 | 세바시 1899회

 

 

제가 쓰레기통에서 먹다 남은 치킨을 먹는 걸 보신 거예요

야 어디서 저런 거지 같은 데리고 와서 좀 보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저를 거지라고 한 것도 슬펐고,

그러면서 아 내가 이걸 해서 뭐 하나 근데 그게 어머니가

 


🎤 요약 — “좋아하고 잘하는 걸 오래 한 사람” (백가 / 포토그래퍼 바이백)

🧠 내용 요약

  1.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 백가는 이태원에서 가난하게 자랐고, 화장실 문도 잠기지 않아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9살 때 부잣집 친구 집에서 쓰레기통의 남은 치킨을 먹다 친구 어머니에게 “거지 같다”는 말을 듣고 큰 상처를 받았다.
    • “커서 부자가 되어 문이 잠기는 화장실과 치킨을 마음껏 먹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2. 사진을 좋아하게 된 계기
    • 집에 있던 미제 카메라로 친구들을 찍으며 사진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 친구들이 자신의 사진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사진으로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 중학교 때부터 사진가를 꿈꾸며 공부했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 “가난한 사람은 사진을 할 자격이 없다”는 자괴감에 카메라를 팔고 포기했다.
  3. 춤으로 시작된 인생 반전
    • 춤을 잘 춰서 JYP에서 백댄서로 활동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 우연히 코요태 오디션을 보게 되어 객원 래퍼로 참여 → 정식 멤버로 합류.
    • 첫 계약금으로 어머니께 돈을 드리고, 남은 돈으로 다시 카메라와 필름을 사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4. 포토그래퍼 ‘바이백’의 탄생
    • 싸이월드에 사진과 글을 올리며 인기를 얻음.
    • 《보그》 매거진에서 연락이 와 사진이 실리고, 정식 포토그래퍼로 데뷔.
    • 타블로, 자우림, 비, 김태우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앨범 재킷을 촬영.
    • 가로수길에 ‘스튜디오 바이백’을 열며 포토그래퍼로서 입지를 굳힘.
  5. 죽음의 문턱에서 얻은 깨달음
    • 29세에 뇌종양 진단을 받고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겪음.
    • 회복 후 라이카(Leica) 최초의 아시아 모델이 되어 독일 본사 전시에도 참여.
    •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일과 삶을 이어감.
  6. 진짜 성공의 기준
    • 백가는 “화장실이 두 개 있고 치킨을 한 마리씩 시켜 먹는 지금의 삶이 내 성공”이라 말함.
    • 부자란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어릴 적 자신이 꿈꿨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함.
    • 자신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오래 한 사람”이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 것이 인생을 바꿨다고 강조함.
  7. 마지막 메시지
    • “하고 싶은 걸 정했다면, 그걸 오래 하세요.”
    •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 꿈이 나를 찾아옵니다.”
    • 가난했던 소년이 꿈을 지키며 버텨 이룬 이야기를 통해 꾸준함과 진심의 힘을 전함.

 


 

빽가
빽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버티면, 기적이 찾아옵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버티면, 기적이 찾아옵니다

 

 

이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코요테의 래퍼 백가이자 포토그래퍼 바이백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성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코요태의 메인 래퍼
코요태의 메인 래퍼
포토그래퍼 그리고 사업까지
포토그래퍼 그리고 사업까지

 

어 제가 가수 일도 하고 있고 또 인제 사진가의 일도 하고 있고 그리고 사업으로도 네 좀 그래도 많은 일을 좀 하고 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아 너는 정말 재능이 많다. 너는 뭐 이렇게 하는 것도 많고 뭐 돈도 많다.

막 이렇게 보고 되게 부러워하는 분들이 좀 계셔요.

 

 

근데 사실 저는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지 않아서 좋아하고 잘하는 걸 오래 하는 사람이에요.

저희가 그래 왔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고 어떤 것들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방금 제가 말한 좋아하고 잘하는 게 어떤 것이길래 제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저는 어린 시절에 좀 가난하게 살았어요.

 

남들에 비해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남들에 비해 가난했던 어린 시절

 

지금 제 친구들이 이런 얘기하면 야 우리 때 이런 일이 있었어 할 정도로 좀 어렵게 살았는데요.

저는 이제 그 당시 때 이태원이라는 동네에 살았어요.

어릴 때부터 근데 소위 좀 어려운 친구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좀 위험한 우범지대였어요.

 

길가에 화장실
길가에 화장실

 

근데 보시다시피 길가에 있어요. 저희 집 화장실이 그러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뭐 마음만 먹으면 그냥 화장실 들어올 수 있는 무슨 공중화장실처럼 되어 있었는데, 이게 누가 들어올까 봐 무서운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볼 일도 마음대로 못 보는 거죠.

그래서 항상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한 손으로 물고를 잡고 있었어요. 이렇게

그래서 아 나는 이 다음에 커서 부자가 되면 꼭 화장실이 문이 잠길 수 있고, 물이 내려가는 데 살고 싶다는 생각을 그 나이 때부터 한 거예요. 8살 9살 때부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치킨입니다.

정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치킨이고 어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이 페릭한 치킨 새 펠리칸 같은 치킨 있잖아요.

네 그게 지금 9살 때인가 아마 방송에서 갑자기 양념 치킨이라고 막 그 최양락 선배님이 아시죠? 까나 치킨 아시잖아요.

 

 

그게 나오는데 와 저런 게 있어 치킨의 양념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진짜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그 어린 나이에

그러다가 이제 부잣집 친구 집에 놀러 갈 일이 있었는데 근데 이제 소파에 이렇게 앉아 있는데 이 옆에 현관 입구에 페리카나 치킨 그 봉투가 이렇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게 보니까 이제 다 먹고 버리려고 앞에 내놓은 건데 이 냄새가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갖고 이거를 이제 제가 9살 때거든요 이렇게 열었어요. 냄새가 장난이 아닌 거야.

뭔가 이 달콤하고 막 이 감칠맛 나는 그 MSG 향이 너무 많이 올라오니까 제가 이거를 먹으면 안 되는데 천사와 악마가 싸우잖아요.

야 안 돼 먹지 마. 야 맛만 봐 먹지 마 안 돼 야 먹어야 돼.

이렇게 싸우다가 제가 그걸 잡았어요.

그래서 그들이 먹다 나면 그 뼈에서 그 양념 맛을 좀 느껴보고 싶어서 이렇게 막 먹고 있는데 갑자기 막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 친구의 어머니가 나왔다가 제가 쓰레기통에서 먹다 남은 치킨을 먹는 걸 보신 거예요.

 

 

근데 그게 어머니가 저한테 야 어디서 저런 거지 같은 새끼를 데리고 와서 좀 보라고 제 친구한테 손가락질 하는 거 먹는 거 보라고 지금 우리가 먹는 쓰레기 지금 먹고 있지 않냐고 너무 창피한 거예요.

그 어머니가 손가락질 하면서 저를 거지라고 한 것도 슬펐고 제 친한 그래도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저를 이제 거지로 보고 어머니가 너 쟤랑 놀지 말 테니까 나는 친구를 또 읽을 거가 걱정이 되는 거예요.

 

가난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던 삶
가난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던 삶

 

나는 단지 그 치킨이 너무 궁금해서 맛을 본 거였는데 저는 친구도 잃고 거지가 되고 막 짓밟힌 느낌이 들었고 진짜 한 시간 넘게 울다가 그냥 그렇게 집에 들어갔어요.

음 저는 그렇게 이제 어린 시절을 자랐고

 

 

제가 근데 유일하게 이태원 살면서 좋았던 거는 그 춤 추는 거 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했어요.

저희 집이 가난했었는데 그 미제 카메라가 하나 있었어요.

근데 그거를 이제 집에 있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그 친구들을 막 찍어주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막 포즈는 뭐 이렇게 이렇게 수건으로 막 슈퍼맨 하고 날라차게 하고 뭐 다 그런 거죠.

근데 그거를 이제 다 찍고 엄마한테 그 이나를 뽑아달라고 하면 엄마가 이제 한 번씩 뽑아줬어요.

그럼 제가 이걸 갖고 동네에 나가면 친구들이 다 저한테 모이는 거예요.

뭔가 내가 약간 주인공이 된 듯한 그리고 제가 찍어준 사진을 보면서 애들이 막 즐거워하는 거야.

그러면 나는 어 저거 내가 찍은 건데 얘네들이 좋아하네 약간 그때부터였어요.

내가 사진을 찍은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구나!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아 나는 사진가가 돼야지 중학교 때부터 사진가를 꿈꾸며 사진을 공부했고요.

 

 

지금 뒤에 보이는 97년 4월 26일 용산 가족공원에서 첫 작품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저게 이제 제가 처음으로 현상하고 인화해서 만든 제 첫 작품이어서 제가 저렇게 써놨어요.

그래서 저때부터 이제 사진가의 꿈을 꾸면서 계속 사진을 열심히 공부했죠.

 


 

그러다가 대학교를 가고 싶은 학교를 이렇게 몇 군데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이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성현아 대학교 너무 축하한다. 근데 내년에 가면 안 될까?

딱 그러는 거예요.

보통 원래 드라마 같은 데 봐도 어머니가 아무리 힘든 일을 하시고 그래도 대학교 등록금 같은 건 딱 미리 마련해 주시고 막 그런 영화나 드라마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 집은 또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냥 진짜 없는 거였고, 음 알겠어요 알겠어요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는데 그거를 그런 돈 때문에 포기를 당하니까 제 과거가 다 부정당한 느낌이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아 내가 이거 해서 뭐 하나 그지? 이렇게 열심히 해가지고 내 목표에 성공을 했는데도, 나는 들어갈 자격도 안 되는 돈이 없으니까 자격이 없는 거죠.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 사진 이건 뭐 그냥 소위 돈 있는 새끼들이랑 하는 거지 나 같이 가난한 새끼가 무슨 사진이야 그러고 이제 사진 다 접었어요.

카메라 다 팔고 그리고 내가 할 줄 아는 건 춤밖에 없으니까 그냥 계속 춤을 쳤습니다.

소위 몸빵.

 

가난으로 사진을 포기했지만 춤은 시작되었다
가난으로 사진을 포기했지만 춤은 시작되었다

 

네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고 네 그래서 저는 이제 백댄서 생활을 했어요.

JYP라는 회사가 처음 설립될 때 박지윤 박진영 이런 분들의 안무팀을 하면서 그냥 백댄서로서 되게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되게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은 계기에 누군가가 이제 오디션을 한번 봐라.

그래서 네가 뭔 오디션을 보냐 나 춤밖에 못 추는데 그래도 한번 봐라 해서 오디션을 보러 갔던 곳이 코요테의 사무실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개건 래퍼로 한 번만 한 앨범만 참여하는 걸로 했는데 생각보다 그때 코이트가 인기가 너무 많을 때니까 뭐 데뷔하자마자 맨날 1위 하고 방송에서도 너무 많은 섭외가 들어오고 그러면서 연예인이 되게 괜찮구나 돈도 잘 버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이 하루에 막 그렇게 돈을 버니까 정산을 받는데, 안 믿기는 거야. 이게 말이 돼?

개건 라이프 앨범이 끝났는데 회사에서 멤버들하고 사장님이 너 정식 멤버로 한 번 할래? 제의를 하신 거예요.

 

객원래퍼에서 코요태 정식 맴버로
객원래퍼에서 코요태 정식 맴버로

 

당연히 OK를 했고 그때부터 이제 제가 코이트에 이제 정식 멤버로 들어가서 계약금이라는 게 있어요.

계약금을 받아서 어머니 다 드리고 한 10%를 남겼어요.

이거 가지고 뭐 하지? 친구들하고 좋은 데 가서 근사한 데서 술을 마실까? 아니면 좋은 차를 사?

막 그러고 그랬는데 제가 어디 가 있냐면 제가 그때 고등학교 때 쓰던 그 카메라랑 필름을 다시 샀어요.

그냥 필름으로 사진을 계속 찍었어요. 계속 찍고 그 그 정을 때 예전에 사이월드 아시죠?

네 근데 이제 저는 이제 오락을 잘 못 해요.

근데 종민이 형이 스타크래프트를 잘해서 종민이 형 따라서 PC방 갔는데,

종민이형이 계속 오락하고 나는 할 게 없어 갖고, 그냥 뭐 이렇게 테트리스 하고 이러고 있는데,

옆에 사람이 사진을 막 올리고 막 글을 쓰는 거예요.

이게 뭐예요? 그랬더니 사이월드래요.

OK 그럼 내가 나는 사진을 찍으니까 사진을 찍고 그냥 뭐 내가 생각나는 글을 써야겠다.

그래서 이름을 뭘로 할까? 하다가 포토 바이 원래 누구누구 하잖아요.

그래 100시니까 숫자 100 그래서 바이백라는 필명을 갖고 사이드에다가 이제 사진이랑 글들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막 방문자 수 이런 거 하잖아요.

방명록이랑 근데 이게 퍼가요 이런 거 스크랩도 엄청 많이 그러니까 처음에는 몇 개 안 됐던 것들이, 어느 순간에는 정말 몇 천 명씩 와 가고 막 너무 많은 제기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다가 쪽지, 이가 온 거예요.

여기 버그 매거진인데 일반인 사진가 분들 중에 사진이 좀 좋으신 분들을 싣는 코너가 있는데, 바이백 님의 사진을 싣고 싶다.

사진가가 꿈이던 친구한테 정말 사진으로만 인정을 받아서 보그라는 세계적인 메거진에 제 사진이 실린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실제로 이제 사진이 실리고 너무 좋았어요.

근데 다음 달에 그 에디터 분이 연락이 온 거예요.

'저희 편집장님께서 백가지 사진이 너무 좋은데 정식으로 포토그래퍼로 데뷔를 하시면 어떨까요?'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보그에 포토그래퍼로 데뷔를 한다고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래갖고

'알겠습니다. 너무 영광입니다.'

하고 8 페이지짜리 화보를 받았어요.

 

 

첫 화보의 모델이 에피카이 타블러였습니다.

그때 타블로의 재킷을 화보를 찍었는데 에피카이의 앨범 재킷에서 찍어달라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에피카이를 찍었죠.

그랬더니 얼마 있다가 내리라는 그룹에서 앨범 자켓에서 찍어달래요.

그러더니 자우림, 비, 뭐 뭐 김태우 너무 많은 가수분들이 이제 일이 오기 시작하고,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보그에서 엘르로, 코즈모폴리턴, 바자 너무 많은 매거진들이 저한테 일을 주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때 제 전 재산을 털어서 가로수 길에다가 스튜디오 바이백이라는 것을 오픈하고,

지금까지 계속 사진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프로 포토 그래퍼 By100 으로
프로 포토 그래퍼 By100 으로
프로 포토 그래퍼 By100 으로
프로 포토 그래퍼 By100 으로

 

그렇게 해서 너무 너무나 코요테로서도 잘 되고 포토그래퍼 바이백으로서도 승승장구하려다가

 


 

제가 한번 아프기 시작합니다.

스물아홉 살에 자꾸 기절을 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피곤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너무 쓰러지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엑스레이 찍으러 병원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CT를 찍어보세요.

그래서 왜요? 그랬더니 뭐가 보이는 것 같아

그 이제 너무 궁금하잖아.

그리고 이제 간호사 분께서 뭐 백성현 환자 뭐 들어오세요. 이제 의사 선생님하고 또 앞에 앉았죠.

백가씨 뇌종양입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 제가 제가 의학적 지식이 없어서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뇌종양 뭐 심장병 백혈병 이런 건 뭔가 되게 암 그런 거 되게 큰 병 아닌가요? 그랬더니 저 사진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뇌종양
뇌종양

 

제 머리에 저만한 크기의 암이 있다고요. 그러는 거예요.

나는 뇌종양이야.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너무 건강했으니까 얼마나 무서워요.

 

건장을 잃었다
건장을 잃었다

 

근데 안 그러면 제가 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해가지고 이제 급하게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 전날 수술 동의서라는 거를 쓰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그 옆에서 이제 그거를 해야 돼요.

내가 죽어도 책임 없다. 사인을 해야 되는데, 그런 거를 하게 하는 게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렇지만 어떻게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수술을 했고, 저는 건강해졌습니다.

 

 

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어떤 카메라 회사에서 연락이 와요.

라이카 카메라에서 저한테 그 라이카의 최초의 아시아 모델 이 됐다고 그래서 제가 이번에는 독일로 가서 라이카 회장님을 만납니다.

 

라이카 카메라 AG 회장
라이카 카메라 AG 회장

 

하나같이 저분하고 같이 만나서 식사를 하고 미리 카메라를 받고 그래가지고 전시를 하고

그리고 지금 제가 포트 그래프로서의 제가 지금 되어 있어요.

코요테도 당연히 지금 너무나 저희는 20년 넘게 많은 분들이 사랑을 해 주셔서 잘하고 있고요.

 

 

저는 지금 치킨을 반반 안 먹습니다. 한 마리 한 마리 지킵니다.

이제 그 정도 플렉스가 해요. 저는 저보다 돈 더 많으시고 훨씬 유명하신 분들 많아요.

하지만 제가 원했던 제 바람과 제 꿈은 화장실이 있는 집 그리고 치킨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재력이 되는 부자 근데 저는 부자예요.

 

나는 지금 부자입니다
나는 지금 부자입니다

 

전 지금 화장실이 집에 두 개 있습니다. 화장실 두 개 있고 치킨 반반 안 시켜 먹어요.

한 마리 한 마리 시켜 먹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성공했죠

 

 

네 저는 너무 만족하고 살고요.

너무 충분해요.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지 않아서 좋아하고 잘하는 걸 오래 한 사람입니다.

저 지금도 사진 찍고 있고 지금도 춤추고 있어요.

이 정도면 열심히 한 거 맞죠?

여러분들도 지금도 꿈이 있으시고 하고 싶으신 게 있을 거예요.

했다가 그만둔 것도 있고 근데 한번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가,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뭔가, 그걸 정하면 그걸 가야 돼요.

적어도 오늘 제 얘기를 들었다면 저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시길 바라요.

버티고 포기하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제 삶에 만족하게 된 이야기,

 

 

지금 분명히 힘든 분들 계실 거예요.

고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 없으니까

제 얘기를 듣고 그 고양이와 맞닥뜨렸던 그 치킨을 먹고 울면서 집에 갔던 코 막고 화장실(문)을 잡았던 그 소년이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시고 제 이야기에 여러분들이 힘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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