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허무, 그 틈에서 찾는 삶의 의미 | 김학철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 #세바시 #행복 #우울감 #삶 #시디즈 | 세바시 1902회
학생들이 묻거든요. 교수님 여기서 뭘 배울 수 있습니까?
허무와 고통은 확실히 알려줄 수 있다. 왜냐하면 숙제는 많고 성적은 안 좋을 거니까.
우리는 행복감이라고 하는 것을 쫓는 노예들로 다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SNS에 하는지 모르 모르겠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내 삶이 누추해요.
저는 이런 개인적 혹은 개인주의적 쾌락주의에서 이 삶의 무의미와 허물을 이길 힘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요약 — “삶의 허무를 이기는 힘, 의미를 찾아라” (교수 강연)
🧩 내용 요약
- 허무감의 시작과 질문
- 강연자는 겉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지만, 주기적인 허무감과 우울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 “왜 이렇게 허무한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삶의 의미, 허무와 고통, 기쁨과 보람’**이라는 수업을 열고 10년간 연구와 토론을 지속했다.
- 결과적으로 그는 더 이상 허무하지 않게 되었고, 인생의 큰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 삶을 짓누르는 네 가지 조건
- 불확실성 → 불안
- 희소성 → 박탈감
- 불가능성 → 좌절감
- 고통과 권태 → 무력감
- 이 네 가지는 인간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삶의 괴물’**과 같으며, 현대인뿐 아니라 고대인도 맞서 싸워왔다.
- 이집트 신화의 교훈 – 태양신 ‘라’의 싸움
- 고대 이집트인은 ‘혼돈의 괴물(아펙)’과 매일 싸워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태양신 라를 믿었다.
- 라의 전투는 인간이 매일 **어둠(혼돈)**을 이기고 **빛(의미)**을 되찾는 삶의 은유였다.
- 우리도 매일 자신의 혼돈과 싸워야 ‘오늘의 태양’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
- 근대 이후 무너진 의미의 세계
- 과학이 모든 것을 **“원인과 결과”**로 설명하면서, 인간 존재의 목적이 사라졌다.
- 그 결과 현대인은 ‘의미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다.
- SNS 시대에 우리는 “행복을 쫓는 노예”로 살고 있다.
- 다른 사람의 멋진 삶과 비교하며, 내 삶이 초라하다고 느끼는 ‘쾌락의 허무’ 속에 빠져 있다.
- 빅터 프랭클의 깨달음 — 의미가 생존의 힘이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 인간은 쾌락이 아니라 “내 삶이 의미 있다고 믿을 때” 살아갈 힘을 얻는다.
- 의미는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목적 의식에서 생긴다.
-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
- 세상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삶을 지속시키는 가치를 소박하게 찾아야 한다.
- 그 가치를 지켜 나가고, 누군가와 나눌 때 그 의미는 더 강해진다.
- 그는 여전히 우울이 찾아올 때면 “삶을 지탱해주는 가치의 구슬”을 떠올리며 자신을 다잡는다.
- 마지막 이집트의 질문
- 사람이 죽으면 신이 묻는다.
- “너는 살 동안 기쁨을 발견했니? 그리고 그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었니?”
- 이 질문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진짜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나의 기쁨이 타인에게도 기쁨이 되는 삶’**에서 온다.

이렇게 좋은 분위긴데, 제가 조금 심각하고 진지하고 어려운 말 좀 써서 강연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어 주기적으로 허무감과 우울감에 시달렸습니다.
근데 저의 객관적인 조건을 보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어요.
저는 뭐 직업도 괜찮고요 가정도 괜찮습니다. 아내도 좋고 아주 훌륭하고 또 자식들도 그만하면 괜찮아요.
전혀 제가 허무감과 우울감에 시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랬거든요. 학교에 있으니까 이점이 있습니다.
뭐냐면 제가 궁금한 것을 강의로 개설할 수가 있습니다.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수업을 하나 개설했습니다.
제목이 삶의 의미 허무와 고통 기쁨과 보람이라고 하는 책을 읽고 매주 보고서 쓰고 토론하는 그런 강의였습니다.
학생들이 묻거든요. 교수님 여기서 뭘 배울 수 있습니까?
허무와 고통은 확실히 알려줄 수 있다. 왜냐면 숙제는 많고 성적은 안 좋을 거니까
확실히 허무할 거고 확실히 고통스러울 거야. 그런데 기쁨과 보람은 모르겠어.
그렇게 솔직히 대답하고 제 자신도 거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렇게 그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최첨단의 과학인 뇌 과학부터 저 오래된 인류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까지를 쭉 살폈어요.
그리고 더 이상 저는 그 강의를 하지 않습니다.
한 10여 년간 한 것 같아요.
왜 더 이상 하지 않느냐 하면 제 삶의 큰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전 더 이상 허무하지도 않고 허무감에 시달리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이 찾아옵니다. 그런 것이 아예 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맞설 무기가 충분합니다.
제가 한 십여 년간 저희 학생들과 제가 같이 고통 속에서 또 밤을 새면서 책을 읽고 토론했던 그 과정을 여러분에게 그 결과를 말씀드리고 좀 어렵고 힘들지만 이 삶의 의미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초대하려고 합니다.
같이 가시겠어요?
우리 삶의 조건들을 살펴봤어요.
우리가 아 제가 이 허무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삶의 조건들이 있는지를 찾아봤어요.
일단 삶의 조건 중에 하나가 불확실성이에요.
불확실하다는 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까요?
불안을 줍니다. 불안이라고 하는 감정은 아 우리 뇌에서 파충류의 뇌라고 하는 데에서도 일어난데요. 거기가 주로 관장한대요.
그러니까 인류 진화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감정이고 가장 강력한 감정입니다.
이 감정이 우리 삶의 생명력을 앗아가요.
불확실성 다음에 어떤 삶의 조건들이 있을까요?
모호한 또 희소성이라고 하는 삶의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가지면 내가 못 갖고 내가 가지면 제가 못 가져요.
우리가 갖고 싶은 것들이 희소해요. 그래서 거기서 내가 갖게 되면 뿌듯하지만 대부분 내가 못 갔기 때문에 박탈감에 시달리죠.
불확실성 그다음에 희소성 그다음에 어떤 것이 있냐면 불가능성이 있습니다.

노력해도 안 돼요. 울어도 안되고 애써도 안되고 힘내도 안 되고 모든 자원을 다 동원해도 안 돼요.
그럼 어떤 감정이 옵니까? 희소성에서는 박탈감이 오고 불가능 불가능성에서는 좌절감이 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갑자기 느닷없이 고통이 닥쳐요.
내가 잘못해서 나한테 닥친 고통은 그렇다고 쳐요.
그런데 왜 교통사고가 갑자기 나한테 일어나서 우리 가족 중에 누가 다쳐야 되고 이렇게 되냐구요.
그러니까 그런 어처구니 없는 고통들이 일어납니다.
또 우리 삶을 살다 보면 그 고통을 당한다고 하는 거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고 하는 거 그거 굉장히 살기 힘들잖아요?
그리고 또 살다 보면 이 고통이 끝나면 고통이 있으면 이 고통만 좀 넘어가면 내가 좀 괜찮아질 거야 하고 그 고통에 맞서 싸우면 어느 순간 그 고통을 넘어서거든요.
그러면 뭐가 오는 줄 아세요? 권태가 옵니다. 인생이 지루해요.
요즘 그렇게 그 철학자가 유명하더라구요. 쇼펜하워 제 강의 시간에도 다 읽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한 멋진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의 사이를 오고 간다.시계추처럼
고통의 끝에 있다가 이것이 싹 가해지면 권태롭고 권태롭다가 이것이 싹 가아지면 고통스럽고
저는 거기에 동의하진 않죠.지금은.
그런데 고통과 권태가 그렇게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삶의 조건들이 있죠.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들 느닷없는 고통, 희소성 불확실성 또 뭐가 있었죠?

제가 말한 게 권태로움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 삶의 생명력과 좀 잘 살아봐야지 하는 삶의 의욕을 모조리 부서버리는 믹서기 같아요.
현대인에게만 그랬던게 아니더라구요.
고대인들도 이러한 삶을 괴롭히는 괴물들과 싸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해야 할 고대 신화는 이집트 신화거든요.
신화라고 얘기하니까 아이 뭐 신화 정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신화 식이나 되는 거예요.
신화라고 하는 언어를 통해서 그 상징을 굉장히 깊게 하는 겁니다.

거기에는 아펩(Apep) 이라고 하는 혼동 괴물이 있어요. 이 괴물의 가장 큰 심상은 뭐냐 하면 어둠이에요.
깜깜해요. 깜깜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건
불확실하다는 거고 불확실하다는 건 불안을 주고, 이런 심상이 바로 아펩이라고 하는 이집트의 혼동 괴물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이 볼 때도 이 아이라고 하는 혼동 괴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이렇게 존재하잖아요.
아이는 태어나고 연인들의 웃음 소리도 들리잖아요.
이집트에는 또 맥주가 유명하니까 맥주 먹고 기분 좋고 밥 먹고 이런 것들이 또 존재하잖아요.
그럼 어떻게 이게 존재할까?

이집트 신화는 이것이 라 태양신 라(Ra) 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양식 라가 어떻게 하느냐 매일 아침 태양이 뜨는 것이 혼동 괴물, 어둠의 괴물인 나를 물리치고 매일 아침 전투를 하는 거예요.
자기 삶을 억압해 오는 이 혼동 괴물을 이기고 빛을 생명력을 오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북돋아주는 신을 응원하고 그 신의 제사장이 돼서 하루를 또 사는 거예요.
이렇게 고대인들은 신화라고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 삶을 다져나갔습니다.
오늘도 라의 신는 떴네 오늘도 나는 살 수 있어 이렇게요.
그런데 이렇게 유지되던 세계가 근대 과학이 들어오면서 매우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예 근대 과학이라고 하는 건 뭐냐 하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택하는 거거든요.

방법론적 자연주의라는 건 뭐냐 하면 이 세상을 설명할 때 모두 이 자연 세계 내에서 일어나는 원인과 결과로 해석하는 거예요.
종교나 신화나 어떤 이야기가 인간이라고 하는 건 이런 존재고 이런 목적이 있어 라고 얘기해 주면
사람은 목적이 있으면 의미가 생기고 그 의미의 세계 속에 살았어요.
근데 근대 세계가 들면 들어가면서 과학이 시작되고 난 후에 그런 거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인간 왜 있어?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서 생겼어요.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되고 유기물에서 생명이 생기고 생명에서 의식이 생겼어요. 인간이 됐어요.
여기 무슨 목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그런 건 없어요.
물이 백 도 씨에서 끌어요. 왜 끌어요? 그냥 외부 온도가 백 도씨 이상 가해졌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모든 것이 어떻게 되냐면 우연의 세계예요.
우연의 세계에는 의미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중세 이전까지 근대 이전까지 과학의 세계 이전까지 그렇게 쌓아왔던 의미의 세계가 무너지고 그 폐허가 된 상황 속에서 우리 현대인들이 택했던 건 대부분 뭐냐하면 개인주의적 쾌락주의입니다.
쾌락주의라는 건 뭐냐면 우리 삶의 쾌 좋은 건 늘리고 불쾌 고통은 줄이는 거예요.

오늘날 세계에 보면 특별히 에스엔에스가 발달하고 난 후에 우리는 행복감이라고 하는 것을 쫓는 노예들로 다 살고 있습니다.
행복감을 쫓아가죠. 여러분은 어떤 SNS 하는지 모르겠 모르겠는데 행복감 혹은 행복이랑 연결된 그 장면들을 한 번 SNS에 떠올려 보시죠.
한적한 카페에서 멋진 차를 좋은 차를 마시는 장면을 찍어서 올립니다.
좋은 음식을 찍었다고 올립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나도 찍어 올리지만 없다가 내 삶이 뭔가 잘못된 거 같아요.
그것과 비교하면 내 삶이 누추해요. 아 저는 이런 개인적 혹은 개인주의적 쾌락주의에서 이 삶의 무의미와 허물을 이길 힘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많이 들어보셨던 빅터 프랭클리라고 하는 분의 얘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이분이 유대인이라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셨습니다.
거기 사진을 보면 삐쩍 마르고 먹지 못하니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요.
아마 개인주의적 쾌락주의자면 그곳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우슈비치에서는 그렇게 자살한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빅터 프랭클이 나중에 그가 아주 유명한 세계에서 유명한 심리학자가 되고 쓴 얘기가 결론이 이겁니다.
인간은 의미가 자기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아우슈비치에서 살아남는 그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쾌락을 쫓아서가 아니라 내 삶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하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 데서 위추라고 하는 아까 말했던 우리 삶의 생명력을 갈아 먹는 온갖 종류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 했던 겁니다.
저는 쾌락을 쫓으라고 행복감을 쫓으라고 하는 사회에 대해서 여러분 하고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의미를 찾고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서서 목표와 목적을 세우고 싶어 하고 물질과 그것이 주는 쾌락에 메이지 않는 가치를 향한 열망을 우리 가슴 깊이 품고 있다고 그리고 바로 그런 깊은 의미를 구현하려고 할 때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삶의 히어를 우리가 맛보게 될 거라고 이 히어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사면 뭐 좋은 자동차, 좋은 집, 좋은 물건을 사면 그 기쁨에 시간이 길어야 얼마 안 간다고 하는데 이 기쁨은 우리 삶의 생명력을 되찾아 줄 거라고 저는 그렇게 제 십 년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의 결과로 여러분 앞에 말씀드립니다.
한마디로 말씀하라고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에 목말라 있습니다.
온갖 곳에서 온갖 사람들과 비교하는 대신에 내가 내 삶을 지속하게 하는 그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소박하게 하나씩 찾아가시죠.
저는 그렇게 해서 제 삶을 아 나는 이것을 하기 위해서 이 가치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살 만한 삶인 것 같아 라고 하는 소박한 가치들을 하나 둘씩 찾기 시작해서 아직도 우울과 허무감이 밀려올 때마다 제 주머니에 손을 놓고 제 삶을 유지시켜주는 가치의 구슬들을 돌리다가 다시 꺼내봅니다.
그리고 나는 살 수 있고 살아갈 수 있고 내 삶은 의미 있어 라고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실행할 때 꼭 주변에 누군가 하고 이 가치를 나누고 싶다고 얘기하면 굉장히 도움이 되고 힘이 된다고 하는 걸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굉장히 소박한 결론인데 십 년이나 걸렸습니다. 제가 고 고대 이집트 신화 얘기를 했으니까 고대 이집트에
아 이야기 하나 하는 걸로 여러분하고 나눈 얘기를 맺으려고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가게 되고 고대 이집트의 이야기입니다.
저승에 가게 되고 그때 한 질문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서 이 사람을 천당으로 보내거나 혹은 지역으로 보낸답니다.
미리 그 질문을 좀 알려드릴까요?
이겁니다.


너는 살 동안 기쁨을 발견했니?
그리고 그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었니?
이 질문은 사실 죽은 사람들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을 위한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참된 의미에 목말라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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