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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906회 | 머리뼈 절반을 잃은 전직 승무원의 생존법 | 우은빈 작가 ‪@woozakka

머리뼈 절반을 잃은 전직 승무원의 생존법 | 우은빈 작가 ‪@woozakka‬ 행복 희망 위로 시디즈 | 세바시 1906회

 

 

머리뼈 절반을 잃은 전직 승무원의 생존법 | 우은빈 작가 ‪@woozakka‬ 행복 희망 위로 시디즈 | 세바시 1906회

 

 

뭐지 이건?

어떻게 내가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머리가 반은 날아간 것 같잖아 나 어떡해

저는 머리를 다쳤고 왼쪽 관자놀이 3cm는 없습니다.

다 으스러졌거든요.

하지만 저는 사고 이전에는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세상에서 저답게 헤쳐나가고 있고

 


 

🎤 요약

발표자: 뇌손상 후 실어증을 극복 중인 여성 (전 승무원·은행원·작가·강사)
주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 핵심 요약

  1. 사고와 후유증
    • 2024년 1월 27일, 길에서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침.
    • 왼쪽 관자놀이 3cm가 소실되고, 뇌출혈·뇌부종으로 기억과 언어 능력을 잃음.
    • 의사는 생존 가능성이 낮고 언어·청각·후각 장애를 예고했음.
    • 현재도 실어증·청각 이상·후각 왜곡·시야 제한 등 후유증이 남아 있음.
  2. 가족의 사랑으로 회복
    • 특히 아버지는 ‘가방-방귀’ 끝말잇기처럼 재치 있는 언어치료법으로 함께 회복을 도왔음.
    • 남편은 겉으로 웃기만 했지만, 뒤에서 울며 아내의 회복을 기도했음을 나중에 알게 됨.
    • 부모님과 시부모님, 오빠까지 모두 웃음과 긍정으로 그녀를 지탱함.
  3. 사람의 시선이 만드는 기적
    • 첫 언어치료사에게 냉대받고 좌절했지만, 엄마의 격려로 다시 용기를 내어 새로운 치료사와 만나 말하기 자신감을 되찾음.
    • “사람을 사람으로, 사랑으로 대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신념을 얻게 됨.
  4. 환자에서 위로자로
    • 자신의 상처와 머리뼈가 없는 모습을 공개하며 유튜브로 같은 아픔의 사람들을 위로함.
    • 12년간 집 밖을 못 나왔던 우울증 환자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외출했을 정도로 큰 용기를 줌.
    • 병원에서도 낯선 환자들을 도와주며, “작게나마 도울 수 있을 때 행복하다”는 삶을 살고 있음.
  5. 삶의 태도 변화
    • 예전엔 성공과 목표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삶의 핵심이라 고백.
    • 고통 속에서도 가족의 웃음 덕분에 다시 웃을 수 있었고, 지금은 아픈 사람들을 돕는 것이 목표임.

💬 인상 깊은 말

“사람을 사람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혼자서 밝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은빈
우은빈
불의의 사고 그 후, 나를 지켜준 것
불의의 사고 그 후, 나를 지켜준 것

 

지금 이 순간 다들 저를 또렷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신데요.

보시는 것처럼 저는 머리를 다쳤고 또 머리뼈 수술까지 했지만 여전히 왼쪽 뼈 관자 놀이 3cm는 없습니다.

다 으스러졌거든요.

 

 

2024년 1월 27일 길에서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고, 그렇게 저는 그날의 기억을 다 잃어버렸어요.

제가 개도술 수술을 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가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온전한 회복을 장담하지 못했던 그때
온전한 회복을 장담하지 못했던 그때

 

수술은 잘 끝났는데 피를 너무 많이 쏟았어요. 수액으로 버티고 있지만 못 버티면 사망입니다.

그리고 깨어나도 언어 장애, 인지 장애, 청각 장애 그리고 후각 장애로 30대 여성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을 겁니다.

현재 저는 실어증 환자로 언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 병원에 통원하면서 언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명 현상이 심해서 귀에서 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아프게 나고요.

후각상실로 맛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다 느끼하고 엮겨워요.

눈에도 피가 쏟아져서 양쪽 눈 오른쪽의 시력을 잃게 되어 시야가 좁아졌어요.

 

그렇다고 너무 저를 안쓰럽거나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전보다 더 강한 의지로 행복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런 사고에도 이만큼 회복된 것은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또 사랑으로 대하면 기적이 일어나거든요.

근데 대체 싫었죠 환자인데 왜 말을 잘할까 궁금하시죠?

이번 세바시 강연 원고는 제가 쓰고 수정한 다음에 가족 친구 언어 치료사가 첨사까지 다 해줬구요.

그리고 육십 이 번 정도 원고를 외우고 또 외우고 목이 쉴 정도로 연습을 했더니, 이 정도 수준입니다.

 

 

다치기 전에 저는 지금보다 말을 훨씬 정말 훨씬 더 잘 했거든요.

전 이전에 승무원, 은행원, 작가, 강사로서의 삶을 만끽하며 살아왔습니다.

 

 

즐겁게 강의를 다니다가 제가 직접 수강생들을 모아서 매번 마감이 되는 강의를 진행했는데요.

제가 꽤나 잘 나가던 사람이더라고요.

2024년에도 그저 승승장구할 나날만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고를 당하게 된 거죠.

 

뇌출혈 뇌 부종으로 뇌를 크게 손상됐기 때문일까요?

기억만 잃은 게 아니라, 처음엔 엄마도, 남편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제가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은 아빠였습니다.

 

나를 잡아준 기억, 아빠
나를 잡아준 기억, 아빠

 

아빠는 늘 웃는 얼굴로 저를 바라봐 주셨어요.

한 번도 제게 화를 내지 않고요. 단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뇌출혈에도 아빠를 기억하는 저를 보며 저는 사랑의 힘이 정말 강하던 걸 느꼈어요.

아빠의 변함없는 그 미소는 제가 실어증 환자여도 말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한데요.

여전히 명친 실어증으로 단어가 생각이 안 날 때가 많아요.

아빠는 그런 저를 위해 아빠만의 언어 치료법을 만들어 내셨어요.

지금 다 가지고 오신 가방 그 가방을 아빠는 집에서 병원으로 가지고 와서 보여주면서요.

은빈아 이게 뭘까? 제가 말을 못하면 노트에 기억 비읍을 적어서 보여주셨어요.

가발 가발이구나.

음 은빈아 가발은 아닌데 아 아빠 가방 가방이구나.

그러면 아빠는 단어를 맞춰서 또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셨는데요.

근데 가방으로 끝말있기를 이어가는 거예요.

또 해? 방 방 방 그러면 아빠는 은빈아 엉덩이 학문에서 자주 나오는 거 그리고 들려주세요.

어 아빠

아빠가 지금 낀 방귀 방귀 맞지? 아빠 자주 끼는 거 ~

그리고 같이 신나게 웃으면서 또 high five를 했습니다.

이렇게 아빠는 제 곁에서 사랑을 주고 계시답니다.

 

 

남편은 맨날 웃기만 하는 거예요. 여보 내가 다친 게 슬프지 않아?

그래도 또 웃어요. 아니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 와중에 유튜버 위라크 님이 저를 응원하러 병원에 와주셨는데요 남편이 박위님의 군대 후임으로 친한 동생이거든요.

전 위라크님을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보자마자 외쳤어요.

 

남편은 웃기만 해요. 저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남편은 웃기만 해요. 저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형님 남편은 제가 다쳤는데도 슬퍼하질 않아요. 저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랬더니 이 영상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내가 누군지 말을 못 해. 은빈이 같지가 않아. 막 승질내고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고 그래도 형 은민이 좋아지겠지 그래 은민이 좋아지겠지

희망을 잃으면 안 돼 승모가

 

저는 남편이 저를 걱정하며 그토록 울었다는 걸 그때까지 몰랐어요.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그리고 알게 됐죠.

남편이 날 진짜 사랑하는구나.

요즘도 여전히 남편을 웃고만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영상을 혼자서 돌려봅니다.

그리고 생각해요.

여보가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은 위라클을 만난 일이야.

남편의 숨김 없는 마음을 알게 해줬으니까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당신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당신이다

 

자기 개발 전문가 짐 론은 말했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당신이다.

다치고 나서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다섯 사람을 떠올려 봤어요.

엄마 아빠 오빠 남편 시부모님이 웃어서 나도 웃고 있는 거구나

그저 혼자서 밝을 수가 있는 게 아니구나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무기력하고 슬프면 난 밝을 수가 없는 거였구나

 

 

그런데 우리 가족이 그저 밝은 사람인 걸까요?

시아버님은 사실 무뚝뚝 하세요.

그런데 저에게는 마치 제가 어린 아이인 것처럼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해요.

아버님 제가 이렇게 다친 것 자체가 아프게 된 것 자체가 정말 죄송해요.

나는 은빈이가 더 활발해져서 좋은데, 은빈이 전에는 춤 안 췄잖아. 근데 다치고 나서 오히려 신나게 춤도 추잖아.

그 모습이 얼마나 나를 웃음 짓게 하는지 몰라.

남편도 MBTI T인데 저한테만 F인 것처럼 반응합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 남편 시부모님이 제가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않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절망했는지 알게 됐어요.

 

오빠의 메모
오빠의 메모

 

하루하루를 기록한 오빠가 있거든요.

오빠의 일기를 얼마 전에 건네 받았어요.

덕분에 가족이 제 앞에서만 웃으려고 노력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환하고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는 거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호의적인 사람만 만난 건 아니었어요.

명칭 실어증 환자인 저는 다치게 된 이후 단어를 기억하지 못해서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처음으로 만난 언어 치료사님께서는 저에게 그림을 보여주시면서 그림과 맞는 단어를 연상시켰어요.

 

첫 번째 언어치료사와 함께 한 수업
첫 번째 언어치료사와 함께 한 수업

 

그림엔 샌드위치가 있었고요 포도도 있고요 횡단보도랑 신호등이 있어요.

근데 제가 어떠한 단어도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럼 그럴 때마다

아 또 말라 또 틀리네 아 왜 자꾸 틀리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럼 저는 치료를 마치고 엄마 나 말 못하니까 다시는 강사 안 해도 되니까 너 이제 언어 치료 안 배울래

그런데 엄마가 딱 한 번만 다른 언어 치료사에게 받아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의사에게 언어 치료사를 바꿔달라고 말하러 갔는데요. 엄마가 저보고 말하라는 거예요.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제가 뇌를 쥐어 짜내면서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 말을 언어 치료사에게 전달했는지, 병실로 바로 찾아오시더라고요.

조금 무서웠는데, 엄마가 또 니가 직접 얘기하라고, 아예 병실에서 나가시는 거예요.

어 엄마? 아 나 말 못 하는데,

 

그렇게 40분 동안 언어 치료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전 말하기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엄마도 분명 뭐라도 말하고 싶었을 텐데요.

엄마는 그렇게 제가 직접 말할 수 있게 뒤에서 기다려 주셨어요.

엄마는 제가 저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위로했던 강사였던 저를 다시 떠올리게 해주신 거죠.

 

 

첫 번째로 만난 언어 치료사랑 언쟁이 오간 이후에 결국 병원을 바꿨고요.

 

언어 치료를 받는 모습
언어 치료를 받는 모습
언어 치료를 받는 모습
언어 치료를 받는 모습

 

지금은 친구처럼 편안한 이재웅 언어 치료사님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튜브에 악플이나 자꾸 틀리는 단어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저를 대신해서 더 슬퍼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때로는 눈물까지 흘려주세요.

 

 

다치기 전에 저는 아픈 사람에게 환자에게 집중하지 않았어요.

제가 하는 일, 저의 성공적인 삶과 목표에 집중했어요.

근데 환자가 되고 나니까 환자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쓸쓸하고 외로워서 화를 내는 환자도 있고요 다 포기하고 무기력한 환자도 있어요.

환자는 의사 간호사 치료사 보호자의 한마디에 그 순간적인 표정에 상처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환자에게는 상량하고 다정한 시선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 역시 한 번씩 거울을 볼 때마다 왼쪽 머리뼈 5분의 2를 드러낸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요.

뭐지? 이건

어떻게 내가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무슨 머리가 반은 날아간 것 같잖아

심지어 꿀떡 침을 삼키니까 뇌가 움직여 나 어떡해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은빈아 그게 뭐 어때서 너는 너일 뿐이야 여전히 어 예쁘고 멋있어

 

내 상황을 받아들이며 시작한 기록
내 상황을 받아들이며 시작한 기록

 

저는 그때부터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용기내어 병원에서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찍었습니다.

아파서 누워 있는 날에도 엄마 나 빨리 찍어줘 이렇게 아픈 것도 영상으로 빨리 찍어줘 나 결국 다 나을 거잖아

찍었어? 그리고 유튜브에 바로 올렸습니다.

 

세상에 공개하기 시작한 나의 모습
세상에 공개하기 시작한 나의 모습

 

한국 최초로 머리뼈가 없는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공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뇌출혈, 뇌부종, 뇌종양, 뇌전증 등 저처럼 머리와 뇌 손상을 입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댓글은 물론이고 메일과 DM이 쏟아졌어요.

 

 

얼마 전에는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난치성 뇌전증을 앓고 있고 우울증으로 12 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구독자님을 만났는데요. 저를 만나기 위해서 12년 만에 바깥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것 자체가 감동이었어요.

만나서 제가 조언을 했을까요?

민정 언니 저는 우울증을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제가 무슨 조언을 해드리겠어요.

그저 언니 마음 속 이야기 듣고 싶어요.

유독 우울한 날엔 마음이 어때요?

오랜만에 오늘 이렇게 세상 바깥으로 나오니까 기분은 어때요?

 

그렇게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우린 친구가 되었어요.

세바시 강연 이후에 민정 언니랑 같이 쇼핑도 하고 조용한 카페로 놀러 가는데요.

저는 유튜브로 말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까 만나면 같이 웃고 함께 울면서 그저 잘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물론 저도 낙담하고 절망하는 순간 있어요.

보통 하루 종일 힘들어도 먹고 마시는 순간만큼은 즐겁잖아요.

저도 먹는 거 진짜 좋아했는데요.

지금은 쉽게 먹을 수가 없어요.

맛있는 고기라는데 매습 걷고요 향신료가 좋다는데 고약하게 느껴져서 먹는 시간이 너무 괴로워요.

대체 언제쯤 익숙해질지 막막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픔과 불행에 집중하지 않고 다시 굳세게 힘을 내요.

제 앞에는 항상 밝고 따뜻한 가족들이 있었잖아요.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괴로웠을 텐데도 저에게만은 티 내고 싶지 않아서 애쓰던 가족들이라는 거였어요.

은빈아 오늘 날씨가 좋던데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기분은 좀 어때?

은빈이 앞으로 무슨 일 하고 싶어? 유튜브 할래?

사진이나 영상 빨리 찍어줄까?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대해준 가족들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대해준 가족들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대해준 가족들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대해준 가족들

 

 

가족은 그렇게 느낀 표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와 쉼표로 제게 다가온 거죠.

그 물음표 덕분에 저는 제 자신에게도 제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요.

매일 병원에 통원하면서 언어 치료를 받고 여러 가지 검사도 받고 있는데요

 

병원에서 제가 누가 보이겠어요?

환자들이 보여요.

지난주에는 한쪽 눈이 없는 할아버지가 헤매는 게 보였어요.

할아버지 혹시 어디 가시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병원에서 나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병원 밖에서 수납 창구를 찾으시는 거예요.

수납 창구 병원 안에 있어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수납 창구까지 같이 가서 알려드렸는데요.

아주머니가 너무 고맙다고 또 만나자고 그러셔서 제가 외쳤습니다.

병원에서 또 만나면 안 되죠. 그러니까 또 화나게 웃으셨는데요.

순간 너무 행복했어요.

 

이렇게 먼저 다가가고 작게나마 도울 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걸 느끼는 요즘입니다.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떤 분들은 물어보세요.

혹시 사고가 없었더라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생각 안 하세요? 저도 사람인데 생각하죠. 여전히 머리뼈 수술 자국이 믿기지가 않고요.

실어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매일 언어 공부, 단어 공부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사고 이전에는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세상에서 저답게 헤쳐 나가고 있고,

이런 저의 모습을 감싸 안아주는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다쳤다고, 쉽게 우울하지도 않아요.

내가 혼자서 밝고 긍정적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제는 제가 환자에게 저처럼 아픈 사람에게 또는 마음이 괴로운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저만의 새로운 목표도 생겼고요.

여러분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혹시 지금 힘드신가요?

많이 아프고 생각지도 못한 안 좋은 일이 생기셨나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궁리하며 답을 찾고 계시진 않아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만의 다짐과 각오가 뚜렷해지진 않으셨어요?

제가 같이 고민할게요.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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