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희망이 모여 기적이 됩니다 | 김소민 '여기, 저 살아있어요' 저자 | 세바시 1909회 기적 희망 성장
드릴로 뼈를 뚫고 면돈날을 발 전체에 박아놓은 것 같은 불에 타 진물이 나는 속살에 알코올을 들이 붓고 있는 것 같은.
저는 말기 암 환자분들보다 더 많은 양의 진통제를 먹었고 주사를 매일 같이 맞았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고통을 가장 잘 참는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 요약
연사: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환자
주제: “기적은 아주 작은 희망에서 시작됩니다”
🩺 1. 극심한 고통의 시작
- 28세 때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인해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진단.
- 오른발의 통증으로 양말조차 신기 어려운 상태가 됨.
- “드릴로 뼈를 뚫는 듯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매일 100알이 넘는 진통제와 주사 치료를 받음.
- 발을 잘라달라고 할 정도의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음.
💡 2. 희망의 불씨를 살리다
- 척수 자극기 삽입 후 미세한 호전을 느낌.
- 재활 치료와 운동을 통해 통증을 견디며 서서히 회복.
- 4년 만에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기적을 경험.
- 부모님의 헌신과 기도, 어머니의 퇴직과 곁에서의 돌봄이 큰 힘이 됨.
🌦️ 3. 일상으로의 도전
- 비 오는 날엔 통증이 심했지만, 가족과 외식을 시도함.
- 결국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걷는 것이 가능한 단계로 발전.
- “작은 시도가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계속 도전.
🌙 4. 평범한 일상의 회복
- 통증으로 인해 음식도, 수면도 어려웠지만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노력. - 작은 시도들이 쌓여 지금은 약 없이 잠들 수 있는 상태로 회복.
💖 5. 기적의 의미
- 하루 100알 넘던 약을 이제는 세 알 정도로 줄임.
- 척수 자극기도 제거하고 자력으로 서서 강연할 수 있게 됨.
- “기적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희망과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임을 깨달음. - 진정한 강함은 고통을 참는 힘이 아니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의 힘에서 나온다고 강조.
🕊️ 메시지
“작은 희망은 모이고 모여 결국 기적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나 또한 도움을 청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24시간 내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을 매일같이 느껴야만 했습니다.
저주받은 질병이라고 불리는 CRPS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환자이기 때문이죠.

매일 100알이 넘는 약을 먹어도 사그라들지 않는 통증에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절하곤 했습니다.
항상 마우스 피스나 거지를 두껍게 물고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 치아에 금이 가고 깨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희망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웃는 모습으로 여러분께 강연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아팠던 것은 아닙니다.
28살 갑작스레 찾아온 대상포진으로 이제 막 꽃이 피어나려던 때에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주 재수 없게 대상 포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CRPS라는 희귀 난치병이 제 삶에 찾아온 것입니다.
저의 통증 부위는 오른발이었는데요 발에 닿는 모든 것이 통증이었습니다.

양말을 신는 것에도 아주 큰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양말을 신으면 양말 천이 닿아서 아프고 양말을 신지 않으면 맨발에 바람이 닿아서 아팠습니다.
당연히 신발도 신지 못했습니다. 사람이니 씻어야 했습니다.
샤워할 때 발에 닿는 물방울은 쇠구슬이 떨어지는 것마냥 아팠습니다.

물이 닿는 자극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면돈날로 멀쩡한 피부에 상처를 냈습니다.
면돈날에 의해 생긴 상처가 물에 닿으면 따가워서 아주 조금이나마 CRPS 통증이 분산되었기 때문입니다.
발이 땅에 닿으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와 두 발이 멀쩡하게 있지만 더 이상 걷지 못했습니다.
오른발은 통증만 일으키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가 되어, 담당 교수님께 발을 잘라달라고 울며 불며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발을 잘라도 여전히 통증을 느낄 거라는 답변만이 돌아왔습니다.
그 당시 찾아오는 통증을 기록해 둔 표현입니다.
드릴로 뼈를 뚫고 면돈날을 발 전체에 박아놓은 것 같은,불에 타 진물이 나는 속살에 알코올을 들이 붓고 있는 것 같은
이런 고통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받았습니다.
수십 번의 신경 차단술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통증이 악화되어, 저는 말기 암 환자분들보다 더 많은 양의 진통제를 먹었고, 주사를 매일같이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잡히지 않는 통증에 만 2년에 걸쳐 케타민이라는 주사를 맞다가 호흡신경까지 전부 마취되어 죽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몸에 척수 자극기라는 기계를 삽입하게 되었습니다.

척수 자극기를 삽입하고 아주 조금씩, 정말 개미 눈꽃만큼 좋아진다고 느껴지는 날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깜깜하기만 했던 제 삶에 찾아온 이 희미한 희망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야만 했습니다.
CRPS 증상 중 하나로 통증 부위는 강직이 되고 점차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끝없는 재활 치료와 운동을 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통증이 시작된 지 4년째가 되던 어느 날, 저는 아무런 보조기의 도움 없이 두 발로 걸어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다시 두 발로 걷게 된 건 단 한 순간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매일같이 이 약 물고 진행한 치료와 재활로 희망의 조각을 얻었고, 그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 기적이 되었습니다.

사실 두 발로 걷는 순간에도 통증이 심해 제대로 걷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보조기의 도움 없이 두 발로 걸어야 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모든 의료진 분들이 인정한 최고의 보호자였습니다.

통증 환자가 힘든 사실 중 하나는 증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보호자분들도 많은데, 저희 부모님은 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해 주셨습니다.

특히나 딸의 간병을 위한 엄마의 퇴직은 또 하나의 희망 조각을 모으게 해 주었는데요
혼자 있었다면 통증에 지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을 텐데
엄마의 설득에 날씨가 좋을 때면 같이 손을 잡고 집 앞에 나가 5분이라도 걸어보았습니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면 곁에서 응원해 주는 엄마를 보며 다시 힘을 내었고,
잃어버렸던 미소까지 점차 되찾게 되었습니다.
기적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저는 아프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CRPS는 신경계 질환이라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통증이 더 심해져 응급실에 가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하루는 비가 오는 가족들이랑 차를 타고 외식을 하러 나갔다 오는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여기 왼편에 있는 사진이 제가 그날 아빠 차에서 혼자 창문에 이렇게 적어 놓은 낙서인데요
조금은 위태로웠지만 다행히 저희는 밥을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저는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죠.
하지만 이는 실패한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비 오는 날 가족들이랑 외식을 했다는 기억 자체가 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몸의 상태를 살피며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도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비 오는 날이면 직접 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두 발로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져 지치고 힘드신 분이 계실까요?

투병 중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은 오히려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아무 별 볼 일 없어 보일 만큼 아주 작은 시도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우리의 모든 시도는 또 하나의 희망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내 몸을 사랑하는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입니다.
이미 건강을 잃어버린 환자인 제가 잘 먹고 잘 자는 이런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애써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긴장을 했을 때 음식을 먹으면 체하곤 하죠.
제 몸은 통증이 쓰나미처럼 계속해서 밀려와 초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음식을 먹으면 항상 소화제를 먹거나 화장실에 가서 개워내해야 했습니다.

먹고 토하고를 반복했지만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계속해서 한 입이라도 더 씹어 삼켰습니다.
이것이 환자인 제가 해야 하는 임무이기도 했고요.
밤에는 수십 발의 약을 먹고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통증이 약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할 수 있는 시도는 모조리 해 보았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누워 몸을 이완시키는 스트레칭을 해 보고,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음식과 영양제를 저녁 시간에 먹어보고,
아로마 향을 배게에 뿌려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떤 것들은 전혀 소용이 없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주 사소한 노력들은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해 주었고,
이 노력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아무런 약의 도움 없이 잠을 잘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는 기적은 갑자기 단 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희망과 노력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 바로 그것이 기적이었습니다.

때로는 희망이 너무나도 작아 나에게 찾아온 건지 모를 때도 있고, 분명 눈앞에 보였던 것 같은데 금세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하루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며 버텨내었더니 모든 시간들이 모여 기대할 수조차 없었던 오늘의 기적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현재 저는 하루에 100알을 넘게 먹던 약을 줄이고 줄여 평균 세 알 정도만 먹고 있습니다.
또한 회복의 첫 발자국이 되어 준 척수 자극기마저 작년 여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지금 이 순간 아무 기계의 도움 없이 여러분 앞에 두 발로 서서 강연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저는 세상에서 고통을 가장 잘 참는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고통을 통해 누군가에게 제 짐을 지어주는 관계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투병 중 저는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해결책이 없는 질병이었지만 저를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주신 담당 교수님들
저보다 더 간절하게 저의 호전을 바라며 곁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신을 해 준 가족들
또 그런 가족들이 버텨낼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준 친척분들과 지인분들 덕분에
저에게 그리고 저희 가족에게 기적은 찾아왔습니다.
기적은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환자로서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가족들과 가족들을 지탱해 준 주변 사람들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을 주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 보세요.
반대로 나에게 그 작은 희망이 필요하다면 용기내어 어려움을 먼저 고백해 보세요.
작은 희망은 모이고 모여
우리 모두에게 기적이 찾아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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