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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913회 | 소비는 선택의 과정이다 | 김성준 시몬스 부사장‪@kbusajang‬

소비는 선택의 과정이다 | 김성준 시몬스 부사장‪@kbusajang‬ | 마케팅 브랜딩 소비자 광고 | 세바시 1913회

 

 

소비는 선택의 과정이다

 

 

침대 없는 침대 광고 침대 없는 팝업 스토어 어디서 그런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를 받냐

대신에 사회 안에서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확한 기능을 부여해 주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 기능을 주변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게 합니다.

저희는 침대 회사이기 때문에 일단 가격이 좀 하죠.

매일 소비가 일어나는 제품 아니잖아

요즘에 브랜딩은 정의당할 수 있어야 돼.

이게 왜 중요하냐면 소비는 선택인데 요즘 소비는

 

 


 

 

📘 세바시 1913회 요약: ‘침대 없는 침대 광고’로 배우는 진짜 브랜딩

연사: 김성준 (시몬스 침대 브랜드전략 부문장)


🧠 1. 핵심 메시지

“사람을 먼저 경영하라. 브랜드는 문화를 팔아야 한다.”


💡 2. 주요 내용 요약

  1. 조직 운영 철학
    • 회사는 위계가 아니라 ‘기능’으로 이루어진다.
    • 구성원의 일을 직접 통제(컴펌)하지 않고,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
    • “나투두 리스트(Not-To-Do List)” — 이것만 빼고 다 해도 된다는 원칙으로 창의성 확대.
    • “너는 회사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너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 자율성과 주인의식 강조.
  2. 브랜딩 철학
    • 요즘 브랜딩의 핵심: ‘정의당할 수 있는 브랜드’
      • 소비자는 검색을 통해 브랜드를 찾는다.
      • 따라서 브랜드는 스스로 정의되고 검색 가능한 ‘문화’를 가져야 한다.
    • 브랜드는 문화를 먼저 팔라.
      • 제품보다 문화와 스토리를 소비시키면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짐.
  3. 시몬스의 사례
    • **‘침대 없는 침대 광고’**로 독특한 브랜딩 시도.
    • 150주년 기념에 ‘하드웨어 스토어’라는 팝업 굿즈숍 운영 (성수동).
      • 침대 대신 쌀, 컵 등 굿즈 판매.
      • “공짜로 주면 기억 안 하지만, 돈을 내면 관계가 생긴다.”
    • 코로나 시대에는 ‘멍 때리기 광고’로 시대적 정서(피로, 무기력)를 공감하며 성공.
    • 해운대에서는 로컬 지도 프로젝트 진행 — 지역 상권과 함께 브랜드 문화 확장.
  4. 팬덤의 원리
    • 팬덤은 “모두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일부 코어 팬을 설득하는 것.”
    • 자발적 참여가 핵심 — 소비자가 ‘올리고 싶게’ 만드는 공간과 경험 제공.
  5. 개인 스토리와 교훈
    • IMF로 귀국, 패션을 향한 꿈, 뉴욕 유학, 리먼사태, 귀국 후 시몬스 입사.
    •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 “일단 해보라.
      아니다 싶으면 수정할 유연함,
      맞다고 믿으면 끝까지 밀고 갈 용기.”

🎯 3. 핵심 교훈

  • 사람 중심의 리더십이 창의적 조직을 만든다.
  • 브랜딩은 제품이 아니라 ‘문화’로 정의되어야 한다.
  • 공감과 시대 감수성이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다.
  • 인생의 성공은 완벽한 계획보다 유연한 실행과 지속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김성중
김성중
소비는 선택의 과정이다
소비는 선택의 과정이다

 

 

하. 안녕하세요 저는 시몬스 침대에서 온 김성준입니다.

어 회사의 공식 제 타이틀은 브랜드 전략 부문장 쉽게 말하면 마케팅하는 사람입니다.

마케팅 하는 사람이고 사실 저희는 침대 회사인데 침대도 물론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 그동안 몇 년간 침대 없는 침대 광고, 침대 없는 팝업 스토어 이런 걸로 마케팅 참 희한하게 한다고 이목을 좀 많이 끌었었거든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저한테 물어보십니다.

어디서 그런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를 받냐?

어 사실 저는 사람을 먼저 경영하라고 말씀 드립니다.

조직은 위계가 아니고 기능이거든요.

보통 회사 가면 이렇게 밑에서부터 이렇게 보고 올라가면서 컴펑컴펑컴하면서 가잖아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기능을 구분합니다.

저는 임원이기 때문에 회사를 설득하고 사업을 할 수 있는 버젯을 저희 대표님께 타오는 역할을 하고, 디자이너한테는 디자인을 맡기고 마케터한테는 마케팅을 맡기고, 그런 과정 속에서 저는 절대 그들의 일을 컴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들이 하는 일에 있어서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제가 사람을 먼저 경영하라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크게 두 가지를 합니다.

 

 

첫 번째는 NOT TO DO LIST 이거 이것만 빼고 다 해도 된다 라는 룰을 정합니다.

보통 회사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TO DO LIST 를 만듭니다.

그럼 보통 사람은 딱 그것만 하고 끝나요. 더 이상 생각하거나 노력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NOT TO DO LIST 를 만들어서 이거 빼고 다 해야 되니까 창의력을 창의성을 열어두는 거거든요.

 

 

 

또 하나는 너는 지금 회사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너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자기 애를 발견하게 합니다.

보통 회사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은 하기 싫잖아요.

이거 해야 되나? 꼭 해야 되나? 왜 해야 되나? 자꾸 생각하잖아요.

근데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자기 일을 사랑하게 되면은 또 자기 일이라고 인식을 하면 합니다. 열심히 성의 있게

 

그리고 자기의 일이 회사로 이어지고 회사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또 회사에서 어떤 이득이 생긴다면 그거를 나눠주고

너의 성공이 회사의 성공이고 회사의 성공 속에서 당신의 커리어의 발전도 있습니다.

라는 거를 굉장히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많이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일례로 사원 대리급도 어떤 실적이 있으면은 언론사의 인터뷰를 많이 내보냅니다.

보통 그러면 저희 인사부가 걱정하세요.

인터뷰 한 거 갖고 이제 이직한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어차피 삼 년 이상 안 다닌다고

대신에 사회 안에서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확한 기능을 부여해 주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 기능을 주변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게 합니다.

아 내가 할 줄 아는 게 있구나 아 나 이런 거 잘하는구나.

그러면 동기 부여가 굉장히 돼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게 되고 또 회사의 일로 이어지는 그런 선순환이 되는 걸 봐왔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저희 회사에 입사했을 때 저희 대표님이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돈을 쫓으면 돈도 성장도 없을 거라고 제가 또 아무래도 회사에 기업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는 너무 저희 회사 분량이 많을 것 같아서 여러분들이 많이 아시는 브랜드 중에 두 가지 예를 들고 왔습니다.

 

 

첫 번째는 patagonia 입니다.

의류 브랜드이고 그들은 매출의 1%를 지구사라고 해서 환경단체에 쭉 기부해 왔고 맨 마지막에는 4조짜리 회사를 통으로 비영리 단체에 기부를 해 버렸습니다.

비즈니스라는 게 항상 잘 되는 건 아니잖아요.

잘 될 때가 있고 또 안 될 때가 있고 업다운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행위를 통해서 어떤 회사의 정신이랄까요 문화 또는 이 회사의 이름 저는 교과서에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 중에 애플 애플은 저는 애플이니까 아이폰으로 세상을 바꿀게요 이렇게 얘기하지 않거든요.

저는 세상을 바꿀 거예요. 아이폰으로 애플이니까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먼저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어 예전에 마케팅은 스스로 어 나는 이런 브랜드야 라고 정의를 하고 그거를 끊임없이 메스미어를 통해서 주입을 시키거든요.

아 나의 브랜드 스토리는 이렇고 난 이렇게 진지하니까 저는 인정해 주세요.

저는 200년 동안 이 일을 했으니까 장인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브랜딩은 정의당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소비는 선택인데 요즘 소비는 아 여보 우리 이번 주말에 백화점 한번 가볼까 이렇게 안 하시거든요.

뭐 하나 사볼까? 그리고 보통 검색을 하시거든요.

브랜드가 소비자들한테 정의당할 수 없으면은 검색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파타고니아 치고 들어올 수 있는 그런 문화가 있다면 소비자들에게 선택될 수 있는 확률은 더 올라가겠죠.

 

 

 

그래서 저는 항상 문화를 먼저 소비시키라고 합니다.

문화를 소비시키면 브랜드가 소비되고 결국 제품 소비는 언젠가 이어지게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비는 선택이니까요. 저희가 브랜드 창립 150주년이었어요.

2020년도에 생각보다 오래됐죠 1870년도에 시작한 회사고 이천이십 년도에 어 150 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때 나투두 이것만 빼고 다 하자. 나중에 나투도 뭐였냐면은 샴페인 하지 말고 이런 펜스한 디너 하지 말고 전역하지 말고 브랜드 책 내지 말자. 근데 결국 책은 썼습니다.

그래도 역사가 150년이 되는데 한 번 기념을 해야죠.

그래서 대체 뭘 할까라고 생각을 하다가 한 네 평짜리 공간을 월세 한 150만 원 정도 주고 빌려서 굿즈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심플하게 그 굿즈 위에 저희 회사 로고와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150 150이라는 숫자만 거기 박아서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스토어는 성수동에 있었어요.

저희는 침대 회사이기 때문에 일단 가격이 좀 하죠.

매일 소비가 일어나는 제품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교체 주기도 길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저희를 저희 행사를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저희 주력 제품을 커뮤니케이션 하기는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대신 부담 없는 2천 원짜리 3천 원짜리 또는 1 2만 원짜리 굿즈를 만들어서 그 굿즈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려고 했고 장소는 성수동에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은 하드웨어 스토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침대는 크잖아요. 어딘가 하드웨어적인 문화가 있고 또 그런 하드웨어가 어울리는 성수동 여기는 원래 공업 지구였지 그런 느낌이 좀 살아있지 라고 해서 성수동에 굿즈 스토어를 냈습니다.

저희가 팔았던 굿즈들이에요.

 

 

저희는 본사가 경기도 이천에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쌀을 들고 다닙니다. 쌀을 저렇게 힙하게 포장해서 다닙니다.

그리고 저희는 스스로를 메이든 이천이라고 부르거든요.

 

 

저희가 단순히 구주를 파는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저희 메이딩 200 저희의 문화를 팔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2천 원 3천 원을 받고 또는 1 2만 원을 받고 왜냐하면 소비는 선택이라서 공짜로 나눠드리면 절대 기억 안 하세요.

아무것도 기억 안 하시거든요.

하지만 내가 지불하고 맺은 관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하시고 애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받고 파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강조했던 프로젝트입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됐던 그런 연도 해이기도 해요.

그래서 4인 이상 입장 제한이 그때 당시에 국가에서 좀 제한을 하고 있었고 저희는 프로젝트를 다 준비해 놓고 좀 고민을 했습니다.

이거 이 시국에 해도 되나? 모든 브랜드가 다 행사를 취소하고 이런 와중에 우리 이런 거 해도 되나 데 저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평수가 너무 작아서 어차피 4명 이상 입장이 안 됐거든요.

그래서 어차피 재고도 이만큼 쌓여 있고 그냥 고생한 친구들도 있는데 '그냥 해봅시다'라고 했고 굉장히 성공을 했습니다.

성공을 하고 나서 보통 일하면 회사에서 그러잖아요.

기분 좋게 이제 출근하면 이탄해야지 이탄이요. 저는 이탄 너무 하기 싫거든요.

왜냐하면 다 망하거든요. 속편을 너무 힘들거든요.

 

그런데 회사 안에서 이탄에 대한 이런 요구가 많으셔서 결국 이탄을 기획합니다.

 

 

 

 

그 이타는 시머스 그로소리 스토어라는 어떤 그런 청량한 이런 과일이나 과자나 그런 것들을 파는 어떤 가게를 기획하면서 이거를 어디에 낼까 고민하다가 어 부산 해운대 해리단길에 냈습니다.

6월 달에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여름에 바닷가 온 사람들은 기분이 좋거든요.

절대 뭐라고 안 하십니다.

그래서 해운대 해리단길에 냈고 그때는 이미 이제 코로나가 한 1년 정도 넘어서 사람들이 코로나에 어떤 뭐랄까 피로감 이전의 긴장감과 또 여행도 못 가고 여러 가지 일상이 완전히 뒤바뀐 그런 해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저희가 좀 주목했던 거는 로컬이었어요.

저희가 어디 여행도 못 가고 회사도 못 가고 다 동네에서 있다 보니까 다르게 보이는 거예요.

제가 평상시에 아주 평범하게 다니던 길들이

아 우린 메이딩 이천 이니까 메이딩 부산을 만나서 이 로컬을 서로 알려봐야겠다라고 해서 단순히 구축하는 스토어만 만든 게 아니라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해운대 해리단기를 알리는 지도인데 그 동네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만 알리는 게 아니라 카센터 떡볶이집 심지어 점집 진짜로 그 동네를 알리는 지도를 만들어서 어 나눠 들이고 또 온라인 버전도 만들어서 또 온라인 안에서 이제 바이럴도 많이 시키고

이쯤 되면 이제 저한테 팬덤을 물어보시거든요.

아 그러면 시몬스는 그렇게 팬덤이 생겨서 SNS에서 많이 포스팅이 되고 그러면 그런 팬덤은 뭐예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만약 물으시는데 저는 팬덤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팬덤은 일부를 설득시키는 겁니다.

보통 10분이 계시면 회사는 그 10명을 다 나의 팬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죠.

 

팬덤은 일부 코어 팬을 설득시켜서 그 코어 팬을 자발적으로 그 행위에 참여시키는 겁니다.

포스팅 해 달라고 푸시하면 안 됩니다.

본인이 오프라인 공간이 너무 값지고 재미있어서 스스로 본인의 SNS에 플랫폼에 올리는 그런 행동 자발적 참여가 핵심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2022년도에요 코로나가 이제 거의 끝물이죠 그때쯤 됐을 때 저희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피곤하고 무서운 걸 넘어서서 그냥 화가 나 있었어요.

분을 참지 못하고 너무 이런 스트레스 받고 거의 그냥 정말로 너무 짜증이 나고 어쩔 줄 모르고 이런 상황에 아주 희한한 시료를 봤어요.

저희 회사 구성원이 누구 한 명이 이것 좀 보세요 라고 보여주는데 여드름 짜는 영상이에요.

어 뭐야 근데 그걸 막 보면서 막 재밌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봤는데 멍 때리는 아무 의미 없는 희한한 영상들을 그냥 보고들 있는 거예요.

뭔가를 반복적으로

맥도날드도 뭔가 이런 머핀을 만드는 그런 멍 때리는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어 그런 시료를 착안해서 아 이거다 싶어서 멍 때리기 광고를 저희는 기획하게 됐습니다.

시류를 잘 활용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 그런 사회가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시를 활용해서 광고를 냈고 어 제가 제 입으로 얘기하기는 좀 그렇지만 예 잘 됐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아 그거 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거든요.

 

 

이렇듯 기존의 소비는 취향 중심에서 이런 서사가 보이는 형태로 발전해 왔거든요.

그 이유는 SNS라든가 어떤 it 이런 기술들의 발전과 맞물려 있습니다.

기술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고 문화입니다. 그렇게 문화가 변해 온 거거든요.

본인들이 올리는 그런 스토리들이 히스토리가 되고 개개인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거죠.

소비가 예전에 그냥 사는 거였는데 이제는 SNS 안에서 보이는 겁니다.

서사처럼 모든 과정이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 입장에서는 회사 입장에서는 독특한 문화를 갖고 그 서사 안에서 소비자와 서로 소통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게 너무 중요해진 요즘입니다.

그럼 상황이 가진 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셜 비헤이비어 사회학적 행동쯤 될까요? 사회학 용어입니다.

즉 상황이 가진 힘인데 제가 아까 멍 때리기 광고 말씀드렸잖아요.

어떤 시류를 잘 타면 그 시류는 너무나 거세서 웬만하면 어 그 방향으로 잘 갑니다.

마케팅 버젓 안 드리고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시류를 잘 파악해서 그 슈리에 먹힐 것 같은 콘텐츠들을 미리미리 뿌려놓는 거 그런 작업들을 잘 해야 되는데 그럴려면은 그런 시류를 잘 파악해야겠죠.

 


 

이제는 저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이렇게 보기에 고생 되게 안 했을 것처럼 생겼잖아요.

사실 약간 금수저 같고 아니에요. 저도 고생 진짜 많이 했습니다.

맨날 승승장구만 한 거 아닙니다.

저는 90년대 초반에 유학을 갔습니다. 달러 800원일 때 98년도에 IMF가 왔어요.

갑자기 달러가 2천 원까지 치솟으니까 버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그때는 대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왔는데 처음에서 그때서야 처음으로 제가 미래에 대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도대체 나는 뭘 해 먹고 살까? 뭘 하고 싶은 걸까?

아 나는 패션이 너무 좋아. 그러면 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처음으로 뭔가 직업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사디라는 학교가 있었어요. 삼성에서 운영하는 디자인 학교였는데 사디에 혼자 시험 보러 갔습니다.

떨어졌어요. 떨어져서 실망을 하기보다는 저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자존심이 상해서 아 됐어 그러면 나는 뉴욕으로 곧장 갈래 라고 해서 뉴욕에 있는 학교를 딱 가려고 몇 개 알아봤더니 팔순스 디자인 스쿨이라고 패션 디자인으로 유명한 학교인데 그 학교가 너무 가고 싶었어요.

 

 

네 갈 수가 없었어요. 한 번에 왜냐하면 제가 그 전에 있던 대학교에서 하도 공부를 안 해서 학교를 이 년이나 다녔는데 학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다시 1학년부터 재입학을 해서 어딘가에서 다시 시작했어야 됐거든요.

그래서 어딘가에 원서를 내고 2001년도 8월 달에 뉴욕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뉴욕이 이런 곳이야 나가 도전하고 싶은데 여기서 내 자리 하나 파고 싶은데 뉴욕에는 정작 뉴욕에서 나고자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성공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많거든요.

이 뉴욕에서 내 자리 한번 가져봐야겠다라고 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결국 제가 원하던 파선스 디자인 스쿨에 편입을 했습니다.

근데 제가 원하던 패션 디자인을 못 했어요. 제가 미대생이긴 한데 그림 못 그리는 걸로 유명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디자인 경영을 전공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참 잘하고 열심히 하는데 생각보다 돈 버는 데는 뭔가 어두운 거예요.

그래서 아 디자이너가 돈 벌 수 있게 돕는 직업이 미래에는 좀 유망하겠다 싶어 갖고 디자인 경영을 전공하고 그렇게 원하는 뉴욕에서 취직을 했습니다.

취직을 해서 제 꿈은 또 하나 그거였어요.

패션이다 보니까 패션이다 보니까는 이 패스 에비뉴 5번가 여기 패션의 중심에 내 책상을 갖고 싶다.

그렇게 꿈을 꿔서 인턴 과정을 거쳐서 어 결국 취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센트럴 파크가 제 책상에서 이렇게 보이진 않지만 이렇게 뺏어 보이면은 그런 회사에 취직해서 꿈도 이뤘는데 곧장 리먼 사태가 난 거예요.

2008년도에 저는 주니어의 비자를 받아야 되는 외국인인데 짤리게 생긴 거예요.

저 같아도 저 안 쓸 것 같거든요.

그래갖고 제가 또 인사부 HR에 달려가서 아 이게 한국 지사가 있을 텐데 저 좀 보내달라 싶어서 2009년도에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대기업도 다녀보고 또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쳐보고 그리고 시먼스라는 회사에 입사해서 마케터로 소위 좀 저는 친한 친구들끼리 얘기하는데 아 시먼스 와서 내가 팔자가 바뀌었다.

제가 마케터가 될 거라고 생각 못 했었거든요.

 

 

 

많은 분들이 저한테 도대체 그러면 도대체 그 추진력은 어디서 나냐? 도대체 그 열정은 뭐냐?

너의 그 전략은 뭐냐? 라고 많이 물으시거든요 근데 저는 그냥 무조건 나가서 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절대 계획은 세우지 마세요. 계획대로 안 돼요. 일도 인생도 그냥 뭐 원하는 방향이 생기셨으면 나가서 일단 하시고

단 딱 두 가지만요

뭔가를 하시면서 아니다 싶으면은 그 계획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과

그리고 처음에 맞다고 생각한 그 방향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자세만 있으면 됩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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