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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936회 | 흥 MAX🔊 세바시를 압도한 꽃미남 소리꾼의 판소리 & 최초공개한 그의 다음 계획🌟 | @ichcap9294 | 현역가왕 김준수 판소리

흥 MAX🔊 세바시를 압도한 꽃미남 소리꾼의 판소리 & 최초공개한 그의 다음 계획🌟 | 세바시 1936회 | @ichcap9294 | 현역가왕 김준수 판소리

 

 

흥 MAX🔊 세바시를 압도한 꽃미남 소리꾼의 판소리 & 최초공개한 그의 다음 계획🌟

 

 

 

아니 여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수긍이요 아닌 게 아니라 참말로 좋아. 좋아 얼씨구

 

정말 저 나름대로의 거의 감정을 쏟아서 열창을 했었는데 열창을 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면은 친구들이 이렇게

혼자 집에서 울었어요.

제가 도대체 뭐가 되고 싶어서 저러나 하지만 이제 저는

 

 


🎤 요약

김준수는 판소리 ‘수궁가’의 토끼처럼 위기의 순간을 통과해 온 여정을 통해,
전통 예술이 오늘의 관객과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강연의 핵심은 기교가 아니라 진심,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입니다.

1️⃣ 판소리는 멀게 느껴졌고, 그래서 더 고민했다

  • 어린 시절 민요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판소리에 매료됨.
  • 그러나 또래 앞 무대에서 공감의 벽을 체감.
  • 그때의 다짐:
    👉 “이 시대와 소통하는 소리꾼이 되자.”

2️⃣ 관객과 함께 만드는 예술

  • 판소리는 소리꾼–고수–관객이 함께 완성하는 예술.
  • “일고수 이명창”을 넘어
    👉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의 시대.
  • 취임새(얼씨구, 좋다)는 박수가 아니라 참여의 언어.

3️⃣ 포기 직전에서 돌아온 길

  • 가정형편으로 한때 소리를 내려놓을 결심.
  • 두 달의 공백 끝에 깨달음: 내가 설 자리는 결국 소리.
  • 새벽 연습, 작은 무대부터 모든 기회를 붙잡음.

4️⃣ 창극과 확장의 도전

  • 국립창극단 입단 후, 판소리와 다른 요구(연기·무용·합주)를 학습.
  • 방송·밴드 협업·해외 무대까지 도전 확장.
  • 중심은 변하지 않음: 우리 소리의 맛을 더 많은 사람에게.

5️⃣ 진심은 언어를 넘어 닿는다

  • 해외 완창 무대에서 언어 장벽을 넘어선 공감과 기립박수 경험.
  • 무대의 기준은 ‘잘해내기’가 아니라
    👉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는 마음.

6️⃣ 위축 대신 책임을 선택하다

  • 큰 무대에서의 떨림을 책임감으로 전환.
  • 내가 작아지면 판소리와 동료들까지 작아진다는 자각.
  • 관객의 응답이 예술가를 다시 세운다.

🌱 결론

판소리는 과거의 음악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관객과의 호흡, 진심의 전달이 있을 때
전통은 살아 움직이며 세계로 확장된다.


 

김준수
김준수
우리 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을 꿈꾸다
우리 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을 꿈꾸다

 

 

 

아니 여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수궁이여? 아닌 게 아니라 참말로 좋아. 좋아.

얼른 안에 들어가서 나 훈련대장 좀 빨리 좀 살게 좀 해 주시오.

그때요 별주부는 영덕전 어른 들의 공손히 복지하여 여자오대 수궁 만리 나갔던 별주부 연신이오.

용왕이 반기하자 토끼를 어찌 하고 왔는고? 예 토끼를 생그마야 저 ~ 궐문밖에 대령하였나이다.

클랑은 빨리 잡아들이도록 하여라 하고 영을 내려놓으니

네가 이놈 토끼네~ 토끼 기가 맥혀 불러 벌금 떠며

아이고 나 토끼 아니오.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내가 개요. 개 같으면은 너 옥 좋다.

삼목 다음에 너를 잡아 약게장도 좋거니와 니 가을 내려오게 탁 달여 먹고

네 껍질을 벗겨내어 잘약 모아서 깔기 되면 어혈 내륙 혈담에는 암벽 해촌의 명약이라 이 강아지 뭐라 가자

아이고 나 토끼 아니오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내가 마마마 마가지 새끼지요~

말 같으면은 더욱 좋다. 성감 후관족이라 요단 항장 절리 말로다.

오남 호배금으로 죽음 뼈 사 갔으니 너를 산채 모아다가 대왕전에 받쳤어.

그러면 전금상을 아니 놀이야 둘 그래 우 ~

토끼는 열을 막아요 밝은 한 초장대로 꼭 찔러 들어와 음매가

토끼 잡아들였소.~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소리꾼 김준수입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방금 들려드린 대목은

충신 자라가 병든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육지에 토끼를 깨워다가 수궁에 데려와서 잡아들이는 대목입니다.

제가 얼마 전 한 시상식에 초대받아서 축하 공연을 했습니다.

대극장에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 이 객석을 확인하기 전에

 

토끼 잡아들여라 ~ 

 

하는 것처럼 제가 잔뜩 긴장한 채로 대기했었는데

그때가 아마 저에게는 가장 떨리는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기죽지 않고 당당히 토끼처럼 이렇게 살아 나왔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판소리라는 음악은 과연 어떤 음악일까요?

아마 여러분들께서 우리의 판소리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음악이라는 거는 잘 알고 계시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는 멀리 있는 음악처럼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무대에 숱하게 서왔지만 여전히 판소리라는 음악은 관객들에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때가 많은 것 같다고 저도 느끼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떠한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우리 수군가 속 토끼의 이야기처럼

그러한 고비를 만났을 때 제가 헤쳐나가는 방법을 오늘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음악 시간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 이런 민요들을 담임 선생님께 배우면서 유난히 민요를 배울 때 제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또 이 민요에 나오는 어려운 음들이 많잖아요 뭐 꺾는음이라든지 떠는음 이런 국악의 식임 새를 잘 표현한다고

선생님이 엄청 칭찬해 주셨어요.

그래서 결국에 제가 이제 지역에서 열리는 전통 자랑 겨루기 대회에서 학교 대표로 참가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옛 음악이 아니라 정말 신세계 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리꾼들이 이렇게 부채를 들고 말로 풀어내는 아니리

 

아니리
아니리

 

그리고 방금 들려드렸던 소리 그리고 이게 부채를 들면서 너름새라고 발림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너름새
너름새

 

이런 동작과 같이 함께 관객들까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이 판소리가 되게 관객들과 주고받는 어떤 즉흥성 그리고 문학성 그리고 예술성을 인정받아서 2003년도에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판소리가

 

큰 자부심으로 시작했던 이 판소리를 배우고 나서 학교 조회 시간이라든지 어떤 장기 자랑 시간에 선생님들 또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소리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럼 제가 흥부가 중에 아주 슬픈 대목 형에게 매맞는 대목 이런 소리를 할 때가 있었는데

정말 저 나름대로의 거의 감정을 쏟아서 열창을 했었는데

열창을 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면은

무대가 끝났는데 친구들이 이렇게 그래 멀뚱이 저를 이렇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정적만 흘렀습니다.

그때 기분이 뭐랄까요

나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 제가 이제 느꼈죠.

아 내가 하고 있는 이 소리가 내 또래 친구들에게 공감하기가 어렵고 또 멀리만 느껴지는 음악이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소리꾼이 되자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소리꾼이 되자

 

 

이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소리꾼이 되자고 용기 있죠 이럴 때 관객분들께서 이 박수 소리도 너무 좋지만

 

얼씨구 좋다 잘한다

 

그 후로 내가 하고 있는 이 판소리를 정말 잘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엄청나게 노력을 했었는데 학교가 끝나면은 집에 가기 전에 동네 회관에 들러서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이렇게 놀고 계시면 거기 가서 막 무조건 소리를 하는 거예요.

 

또 이제 학교 가지 않는 주말을 이용해서 어머니 손 잡고 저희 집 근처에 월출산이 있었어요.

월출산 등산로에 올라가서 제 물이 흐르는 계곡물 바위 위에 올라가서 바위를 북을 잡아서 북채만 가지고 막 바위를 땅땅거리면서 막 연습을 하고 그러니까 등산하시는 분들이 내려가다 소리가 들리니까 쉬시다가 소리를 듣다가 가시고

그렇게 마치 저는 이제 무대처럼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소리꾼이 되기 위해 지나온 노력의 시간들
소리꾼이 되기 위해 지나온 노력의 시간들

 

 

그렇게 이제 예술고에 진학해서 대학을 목표 삼아서 열심히 나아가다가 저에게 고비가 한 번 찾아왔습니다.

부모님께서 이제 시골에서 농업을 하셨었는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이제 학교의 학비라든지 제가

설리 스승님께 받는 레슨비라든지 이런 게 많이 밀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 저 오늘부터 소리 안 하겠습니다.

그랬었어요.

 

그렇게 말씀드리고 이제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엄청 많이 울었어요.

버스 안에서 진짜 발걸음이 너무 무겁고 막 그런 기분이었었는데

결국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어떻게 돈을 벌어야겠다는 계획도 없으면서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을 흘러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소리 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선생님 다시 열심히 소리 해 보겠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받아주셨어요.

그렇게 마음을 잡고 학교 등교하기 전에 새벽에 학교 전공실에 올라가서 소리 연습하고 학교 등교하고

또 이제 학교 수업이 다 끝나면 야자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연습실로 곧바로 올라가서 소리 연습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학교 생활도 병행해 가면서 오디션을 막 바깥으로 다 보러 다녔어요.

무대에 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지원하고 작은 역할 뭐 큰 역할을 따지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제 인생의 큰 변화의 시점이 한 번 있었는데, 2012년도에 국립창극단이라는 곳에서 객원 주연 오디션이 공고가 났어요.

또 겁도 없이 제가 도전을 했죠.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제가 합격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배우로서 첫 데뷔를 했었고 그 다음 해에 국립창극단에서 정식 단원을 뽑는 공고가 났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지원을 하게 됐죠. 그런데 또 아주 운이 좋게도 제가 합격하게 됐어요.

하지만 또 창극 배우로서의 이제 무대를 임할 때 아 또 제가 하고 있는 이 판소리와는 너무나 많이 다른 거예요.

무대에서 발 떼는 법 연기 무용 소리 제가 채워나가야 될 것들이 너무 숙제처럼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어요.

그래서 아주 가족은 혹독했지만 저에게는 그래도 아주 행복한 순간들이었죠.

그랬던 시간들이 지금 입단한 지가 횟수로 12년 차가 또 되었습니다.

 

 

 

이 창극을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고유의 음악극이라고 하는데요.

이 판소리라면 오늘 고수가 없지만 소리꾼과 또 고수 두 사람이 소리를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음악 위주의 1인극 형태라면 이 창극은 작품 속에 주인공들이 정말 많이 등장하고 또 많은 소리꾼들이 역할을 맡아서 나누어서 하기 때문에

대사와 연기 무대 이런 장치 등이 사실적이라는 것이 또 판소리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창극
창극

 

그래서 이 창극은 판소리의 극적인 성격이 이제 부각되고 들을 거리 위주에서 보고 들을 거리로 바뀐 어떤 종합 예술의 형태의 무대이죠.

이렇게 창극을 통해서 많은 관객분들을 사실 만나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는 여전히 목마름이 있었죠.

그래서 창극뿐만이 아니라 또 방송 활동 또 밴드와의 협업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게 됐었는데, 물론 힘듬도 있었고 또 힘에 부칠 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소리꾼으로서 이 소리 하나에만 매진해도 저에게는 모자랄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마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이라든지 저희 직접적인 스승님이라든지 제가 도대체 뭐가 되고 싶어서 저러나 분명 그러셨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 저는 우리의 소리의 맛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하고 싶고 그런 열망을 기억해서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 목표는 결코 저 혼자 할 수 없고 바로 앞에 계시는 관객 여러분들이 정말 필요하거든요.

이럴 때 얼씨고 절씨구 좋다 잘한다가 나와야 되는데 판소리에서는 정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일고수 이명창
일고수 이명창
일청중 , 이고수 , 삼명창

 

 

일고수 이명창 하지만 요즘에는 일청 중 이고수 삼명창이라고 하는데요.

이 시대에 함께하는 관객들이 없다면 결국에는 고수와 이 소리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죠.

저는 판소리가 왜 좋은지

왜 즐거운지 이 100마디 말보다는 소리꾼으로서 활동으로 관객들을 설득하고 또 끌어안고 싶다는 그게 가장 저의 포부고 그게 또 제 숙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얘기했던 시상식 이야기처럼 사실 예전에 어린 시절이었다면 한 없이 좀 약간 작아지고 뭔가 위축되고 처로 한 나를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 무대를 어떻게 봐줄까 걱정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을 내가 사로잡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가 만약 여기서 위축된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판소리 그리고 함께하는 많은 선생님들 또 후배들까지 작게 만들어 버리는 어떤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관객분들께서 다행히 취임새도 같이 따라 해 주시고 큰 박수와 환호로 함께 해 주셨었는데

어떤 후기들 중에서 이것이 국힘이다 아까 말씀하셨었는데 자랑스럽다 이러한 후기들을 보면서 정말 제가 너무너무 감격했고 혼자 집에서 울었어요.

그 정도로 정말 너무 기뻤던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굳은 마음도 어찌 보면 또 걷다 보면 지치고 또 슬럼프가 오기 마련이잖아요.

저는 그럴 때면 내가 소리를 처음 좋아서 시작했던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리고 옛 명창 선생님들의 소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또 지금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소리꾼들의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면서 지금의 현시점에 내 주소를 좀 돌아다보는 그런 시간들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제 걷고 있는 이 길에 뭔가 욕심이 앞설 때가 분명히 있어요.

무대를 잘 해내야지 이런 앞선 마음만 뭔가 갖고 더 내려와서는 허함이 공허함이 심한 것 것 같아요.

 

반대로 오늘 내 이야기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무대에 임할 때면 관객들은 그 진심을 알아봐 주시고 또 같이 함께 감동을 느껴주시고 같이 함께 따라와 주시더라고요.

몇 년 전에 명창 안숙 선생님과 외국에 나가서 우리의 소리 완창판 소리를 외국 관객분들께 들려드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관객들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 또 소리꾼들이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거기에 쏟아내는 감정들을 같이 함께 느껴주시고 무대가 다 끝난 뒤에 엄청난 환호와 기립으로 환호해 주시더라고요.

 

저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정말로 오늘도 여러분들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짧은 시간 동안 저의 진정한 이 마음과 이 소리가 여러분들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앞으로의 저의 도전 또한 멈추지 않겠습니다.

 

우리 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

우리 소리로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그런 꿈을 향해서 여전히 저는 달려가고 있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때 유명 가수들만 쓴다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소리꾼으로서 우뚝 서서 여러분들을 모실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날까지 여러분들 모두 다 건강하시고 여러분들 앞날 또한 저도 같이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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