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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940회 | 애프터스쿨 가희, 완벽주의 아이돌이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된 삶의 진리 | 가희 CEO of KISECREW

애프터스쿨 가희, 완벽주의 아이돌이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된 삶의 진리 | 가희 CEO of KISECREW | 추천 강연 강의 듣기 | 세바시 1940회

 

 

애프터스쿨 가희, 완벽주의 아이돌이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된 삶의 진리

 

 

막 그냥 막 혼자 막 그냥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너무 행복하고 평화롭고 좋더라고요.

정말 선물 같은 그런 시간들을 보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저를 찾아오셔서 잡으러 오신 거예요.

 


요약

  1. 강해 보이는 이미지 뒤의 부담과 시작
    강한 언니, 센 캐릭터로 기억되지만 데뷔 당시에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책임감 속에서 살았다. 늦은 나이의 데뷔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은 늘 마음을 쫓기게 했다. 춤에 대한 사랑으로 연예계에 들어섰지만, 그 사랑조차 증명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2. 춤을 향한 집념과 데뷔까지의 긴 시간
    아버지의 반대를 피해 가출까지 감행하며 춤을 선택했고, 수많은 무대와 트레이너 활동으로 베테랑이 되었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8년의 기다림과 3년의 연습생 생활 끝에 **가희**로 데뷔했지만, 예능 무대마다 완벽을 요구받으며 즐거움보다 부담이 컸다.
  3. 졸업 이후, 삶의 급격한 전환
    그룹 졸업 후 결혼과 출산, 그리고 발리 이주로 삶이 180도 바뀌었다. 처음엔 평화롭고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엄마와 아내의 역할 속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에 깊은 공허를 경험했다.
  4. 골방에서 다시 만난 ‘나만의 춤’
    어느 날 작은 방에서 아무 형식 없는 춤을 추며 억눌렸던 감정과 몸의 소리를 그대로 풀어냈다. 인정받기 위한 춤이 아닌,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한 춤이었다. 그 순간 춤이 자신을 살게 하는 본질임을 깨달았고, 늙어서도 춤추며 살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5. 가르침으로 확장된 회복과 새로운 꿈
    발리에 연습실을 만들고 독학으로 촬영·편집을 배우며 수업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큰 에너지를 얻었고, ‘가르치며 사는 삶’이라는 새로운 소명을 발견했다. 춤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되었고, 다시 꿈을 만들어 주었다.
  6. 한국 복귀와 춤의 재정의
    한국으로 돌아와 댄스 아카데미를 열고, 기본기와 체력을 중시하는 수업으로 남녀노소의 회복을 돕고 있다. 춤은 나이를 잊게 하고, 자신과 만나는 과정이라는 정의에 도달했다. 잃어버린 것을 돌아보는 시간은 헛되지 않으며, 몸을 움직일 때 삶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희
가희
나만의 리듬과 속도로 인생의 춤을 추세요
나만의 리듬과 속도로 인생의 춤을 추세요

 

 

반갑습니다.

저를 애프터 스쿨의 리더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시죠

센 언니 또는 군기 반장

거의 대부분의 모든 여자 아이돌의 중에 제가 최상위권의 센 캐릭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어땠을까요?

어 그때는 무조건 잘해내야 한다는 완벽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과 책임감에 항상 쫓기면서 지냈습니다.

그때 저의 별명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바로 노장돌이었습니다.

네 제가 데뷔하기에는 꽤 늦은 나이에 데뷔를 했거든요.

지금으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뭐 트로트로는 가능하겠네요.

근데 그때부터 어 저의 연예계 데뷔는 저의 춤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제가 춤을 얼마나 사랑했냐면요

저희 아버지가 춤을 추는 걸 굉장히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춤을 추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하루는 아버지가 저를 찾아오셔서 잡으러 오신 거예요.

춤을 못 추게 하려고 그때 제가 아빠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고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쳤어요.

그대로 가출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음 DJ 디오씨 보아 렉시 지누션 등등 당대 최고의 선배 가수님 들의 무대에 제가 있었습니다.

댄스뿐만 아니라 댄스 트레이너로도 활동을 많이 했는데요.

그만큼 약간 댄스계에서 약간 베테랑으로 좀 인정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전 저에게 아이돌 데뷔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실 춤을 좋아하게 된 것도 가수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가수가 되고 싶은데 그 꿈이 계속 실패했기 때문에 그 춤 신 안에서 머물러 있었던 거거든요.

그런데 그 모든 시간 20대의 그 초중반의 모든 시간 8년이라는 시간 후에 제가 드디어 기회가 온 거예요.

그리고 3년의 연습생 세월을 지내고 그리고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애프터 스쿨은 강하고 당당하고 파워풀한 에너지로 다른 여자 아이돌과는 굉장히 차별화를 둔 무대를 가진 그룹으로 그때 데뷔를 했는데요.

그만큼 예능에 나가면 항상 춤을 추기를 원하셨었어요.

대표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건 강심장세바퀴에서의 비온새 안무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춤을 췄던 스타킹.

어 그때의 예능이에요. 지금 모르시는 분들 계신가요?

그때 정말 최고로 인기가 있었던 예능이었는데, 어 그럴 때마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보는 분들 그리고 방청객 분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제가 밤을 새더라도 완벽하게 그 무대를 준비해야 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예능이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항상 부담이 됐었으니까.

하지만 또 그 모든 과정이 또 저희 애프터 스쿨의 활동 과정이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죠.

그러다가 멤버들과 헤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애프터스쿨을 졸업을 하고 이제 홀로 서기를 했는데요.

그 후에 제 인생에는 정말 큰 변화가 찾아왔어요.

그리고 또 건너 건너 세월을 뛰어넘어서 이제 또 새로운 별명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발리댁 가이입니다. 네 결혼과 두 번의 출산 이후에 삶의 터전이 갑자기 낯선 발리라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도 갑자기 삶이 180도 바뀐 경험이 있으신가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건강한 두 아이를 낳은 것은 정말 축복이고 은혜고 행복한 일인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주마처럼 일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은 저에게 회복이고 휴식이고 안정이었습니다.

상상은 하지 못했지만 어 제가 평소에 서핑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혼자서도 막 3개월씩 혼자 살면서 서핑을 즐길 정도로 발리를 좋아했었는데요.

그런데 그런 곳에 막상 이사를 가서 사니까 오히려 처음에는 너무 행복하고 평화롭고 좋더라고요.

정말 선물 같은 그런 시간들을 보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이렇게 애만 보다가 나라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거 같은 정말 막막한 그런 시간을 보냈어요.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인지 조차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아 이대로 시간은 그냥 흘러 흘러 나라는 사람은 그냥 늙어가는구나.

나는 없어지는구나.

내가 아니라 그냥 가정의 엄마 아내로 사는구나.

 

 

 

네 근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작은 방에 저희 집에 작은 방에 있는데 거기에서 혼자 그냥 춤을 췄어요.

춤이 너무 추고 싶어서 정해진 동작도 없는 그냥 막 춤에 가까웠어요.

막 그냥 막 혼자 막 막 그냥 이게 뭔지 모르겠어. 그냥 춤이 너무 추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 전에는 춤을 출 내 춤을 보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의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춤들을 췄다면 이번에는 제가 그 골방에서 쳤던 춤은 정말 너무 달랐어요.

그냥 그때 췄던 춤들을 제가 기록해서 가지고 있는데, 그때 그 모습을 보면 거의 그냥 막 내뿜더라고요.

몸을 주체를 못하고 그냥 막 쓰는 거예요.

 

 

 

 

 

그냥 자유롭게 온몸을 폈다가 구부렸다 바닥에 굴렀다가 발을 찾다가 막

재즈도 아니고 힙합도 아니고 컨템퍼러리도 아닌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섞여 있었어요.

제 몸이 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냥 자유롭게 움직이는 춤이었죠.

네한 번도 그렇게까지 춤을 춰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정말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나가 춤을 추지 않아서 그랬구나 아 정말 답답했구나 춤을 추지 않아서 힘들었구나.

 

 

그때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박가희는 춤을 춰야 살 수 있구나 어 늙어가면서도 춤을 추면서 늙어야겠다.

할머니가 돼서도 나는 춤을 추면서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마다 자신만의 춤이 있을 거예요. 네 여러분들도 다 자신만의 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다른 모양 다른 속도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겠죠

그때의 경험으로 저도 저만의 춤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발리에서 운동을 위해서 음 항상 몸을 움직였는데 그때마다 제가 이렇게 사진도 찍고 SNS에 올려서 그냥 근황도 전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막 좋은 응원의 메시지도 보내주시고 보기 좋아요.

언니 뭐 열심히 살아서 좋아요. 뭐 나도 운동해야지 이런 얘기들도 많이 해 주시고 좋았는데

하지만 그걸로 절대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연습실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발리에 제가 그 골방에서 춤췄던 그런 연습실을 만들었어요.

사람들에게 더 나의 춤이나 운동을 더 자세히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을 했는데,

거기 뭐 아무도 가르쳐 줄 데도 없고 배울 데도 없잖아요.

혼자 다 독학했어요. 영상 촬영부터 어 뭐 편집 음악 자막 그냥 그 유튜브를 보면서 다 독학을 했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새벽 4시가 되도록 이러고 있는 거예요.

편집을 하느라고

 

 

 

 

근데 또 거기서 지인의 아이들을 몇 명 가르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굉장히 에너지를 얻더라고요. 가르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또 깨달았죠.

아 나 이거 해야 되겠구나.

나 가르치면서 살아야겠구나.

춤을 가르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혼자 추는 춤도 더 자유로워지고 새롭게 나온 노래가 있으면 다 따라서 해보고 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혼자 살고 싶어서

정말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예전에 춤을 출 때는 어 그 인정받고 싶은 그런 욕구 때문에 부담감을 느꼈다면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정말 편안하게 춤을 추게 되고 춤이라는 자체가 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또 다른 꿈이 생겼어요.

꿈이 없어서 꿈이 사라져서 너무 힘들었었는데 다시 춤을 추니까 또 다른 꿈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그 꿈이 바로 댄스 아카데미에요.

 

 

 

이쯤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은데요.

혹시 여러분에게도 이전에 사랑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그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잃어버리고 사는 지금이 견디기 힘드신가요? 그 시간이 상실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시간은 분명히 의미 있는 시간일 거예요.

저에게 지난 그 시간, 그 힘들었던 순간이 없었다면 춤에 대한 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또 얼마나 간절한지 제가 몰랐을 테니까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으니까요.

그래서 예전에는 사랑했지만 지금은 내 손에 없는 무언가가 있는지 한번 자신에게 질문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발리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절대 쉽지 않았어요.

제가 한국에 돌아온 지 지금 1년 한 3개월이 됐어요.

어 그렇지만 이번에 돌아올 때는 이 춤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저의 열망이 단단했기 때문에 힘든 일도 다 있게 되더라고요.

 

제가 느낀 그 치유의 시간

그리고 다시 꿈을 발견하게 되는 그 경험을 다른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의 방향이 정확하고 비전이 확실하다 보니까 감사하게도 저를 도와주시는 분도 생겼어요.

덕분에 제 힘으로만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지금 그 위치에 아름다운 아카데미가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댄스 아카데미는 좀 다른 점이 있어요.

바로 춤을 잘 추게 만들어주는 기본기를 단단하게 해주는 매일 다른 기초 체력 수업이 진행됩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기의 마음, 자기의 표현을 하려면 다른 모든 장르를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한 가지만 하면 그거밖에 모르게 되잖아요.

그래서 춤과 운동을 꼭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수업을 만들었습니다.

몸을 움직이면서 내가 살아 있고 운동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건지 이 건강한 바디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사람들이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는 마음에서 여러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매일 그 수업에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의 몸 상태가 발리에서와 한국에 와서와 수업을 들을 때와 정말 다르게 변화되고 회복이 되더라고요.

댄스 아카데미를 통해서 또 춤을 추면서 행복해하시는 분들을 또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어떤 분들은 이 춤을 따라 하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거야.

몸이 안 되니까 막 동작이 너무 힘들다고

그런데 이게 그렇게 재밌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나이가 많으신 네 회원분이 계셨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아이를 등교시켜 놓고 여기에 나와서 이 운동하는 이 시간이 너무 힐링이고 저 자기에게 행복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근데 그걸 보니까 제가 참 보람되고 기쁘더라고요.

그 밝아지는 얼굴을 보니까 어 나 너무 잘했다. 사람이 많건 적건 상관이 없이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모든 것에 감사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정말 나답게 살고 있구나를 느꼈어요.

저는 대표만 맡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수업도 진행을 하는데요.

저녁에는 그 노장돌로서의 그 경험을 살려서 프로가 되기 위한 아이돌이 되기 위한 아이들을 위해 오디션 반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이게 다 남편이 없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네요.

정말 든든한 조력자이자 아이들을 잘 케어해 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큰 힘이 되어주는 남편이 있기에 제가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서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네 고마워요. 준무 씨.

 

 

 

 

네네 애프터 스쿨에서 발리댁 가이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먼 길을 돌아왔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저의 선택이었고 어 저니까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지난 여정이 있었기에 춤에 대한 저의 정의도 내리게 됐어요.

나이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춤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와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과정으로 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거죠.

그렇게 알게 된 저만의 그 춤의 정의는 어 저를 살아있게 하는 행동이자 저를 저답게 하는 버팀목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단단한 자존감을 원해요. 그렇죠? 네 하지만 절대로 한 번에 채워지지 않아요. 그렇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일 그리고 내가 열정을 받쳐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찾을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살게 하는 그 무언가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춤이 있는 것처럼요.

 

요즘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주말에 저희 댄스 아카데미에 아이들이 수업을 하거든요.

꼬마들이 막 와요. 그런데 그 시간에 그 통창을 통해서 하늘이 보이고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와요.

 

 

근데 그 햇볕을 받으면서 아이들이 춤을 추는데 막 꺄르르르 막 우당탕탕 이런 모습을 보는데 제가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그 노을이 지는 그 시간대에 저도 저만의 연습을 하곤 하는데요.

그때 제가 아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가 넘치더라고요.

 

데뷔하기까지 그 10년의 수많은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 세월

그리고 새 앨범을 내면 반드시 해내야 하고 반드시 완벽해야 한다는 그 집념

그리고 노장돌로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썼던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모두 안아주는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 다음 스텝의 꿈도 또 생겼어요.

이렇게 꿈이 없어서 너무 걱정이었는데 살다 보니 꿈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또 생기는 거예요.

이제는 어떤 꿈이 생겼냐면

춤을 모르던 분들이 춤을 새롭게 만나면서 인생이 살맛 나기를 바라는 꿈이 생겼어요.

춤을 추면서 나 요즘에 너무 삶았나 이런 마음을 느끼셨으면 좋겠는 꿈

그리고 제가 가르친 아이가 무대에서 반짝반짝 미치도록 빛나는 것을 보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너무 도와드리고 싶어요.

자신만의 리듬 속도 그 춤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고 싶더라고요.

 

 

여러분을 살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으신가요? 잃었던 꿈이 있다면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지 마세요.

몸을 움직이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멈춰 있지 않고 계속 새로운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그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데 좋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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