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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942회 | 죽은 이들에게 배우는 우리 사회의 진실 | 이호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법의학자

죽은 이들에게 배우는 우리 사회의 진실 | 이호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법의학자 | 추천 강연 강의 듣기 | 세바시 1942회

 

 

죽은 이들에게 배우는 우리 사회의 진실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20대 여성 장애인이 빙초산 중독으로 사망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20대 지적 장애인 여성이 자살을 꿈꿀까요?

하나 더 해볼까요? 부인과 아들이 있지 아버지와 남편을 죽인 겁니다.

같이 동승했던 사람들은 하나도 다치질 않았어요.

그러면 여기서 걸러줬어야죠.

충분히 죽음에 대해서 잘못 관리되면 악용되고 억울한 죽음이 가려질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어쨌건 원인 불명의 죽음 등록 과정을 얘기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1️⃣ 원인 불명의 죽음이 너무 쉽게 처리되는 사회

강연자는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의문사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죽음의 원인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채 사망 등록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지적한다. 특히 자살로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고와 검증이 생략되면, 억울한 죽음은 영원히 드러나지 못한다. 죽음 관리 시스템의 허술함은 악용될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임을 강조한다.

2️⃣ 자연사와 비자연사, 그리고 검증되지 않는 사망 통계

자연사는 생의 주기를 다한 죽음이지만, 비자연사는 외부 요인으로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전체 사망자 중 상당수가 ‘원인 불명’으로 등록된다는 점이다. 사인을 모른 채 장례를 먼저 치르고, 이후 형식적으로 사망 신고가 이뤄지는 구조는 국가가 져야 할 ‘죽음 검증의 책임’을 방기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3️⃣ 생존자 편향이 가리는 구조적 허점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사례를 통해 강연자는 **‘생존자 편향’**을 설명한다. 돌아온 비행기만 보고 보강 지점을 판단하면, 실제 문제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회도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각만으로 안전을 판단하면, 이미 사라진 수많은 죽음 속에 숨겨진 제도의 결함과 구조적 위험을 놓치게 된다.

4️⃣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거울

외국의 검시 제도처럼, 특정 조건의 사망은 반드시 검증하도록 제도화해야 억울한 죽음을 줄일 수 있다. 강연자는 법의학자가 다루는 것은 단순한 ‘시신’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그 사람이 놓여 있던 사회·경제적 환경을 함께 돌아보게 한다.

5️⃣ ‘그들의 죽음’을 ‘나의 문제’로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정의로운 세상 가설’에 빠진다. 그러나 진정 필요한 태도는 죽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가져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고, 그 변화로 누군가가 보호받는다면, 그 죽음은 기억 속에서 살아 있는 의미를 갖게 된다.

6️⃣ 죽음으로부터 삶을 배우는 사회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한 번, 기억 속에서 한 번 죽는다. 강연자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바꾸고, 더 안전하고 공감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잘 죽는다는 것은 결국 잘 사는 것이며, 공감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한다.

 

 


 

 

이호
이호
죽음을 밝히면 삶이 안전하고 행복해지는 이유
죽음을 밝히면 삶이 안전하고 행복해지는 이유

 

 

반갑습니다.

법의 학자 이호입니다.

요즘 백세 시대라고 하죠. 여러분이 백세를 살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혹시 상상해 보셨어요?

아마도 자연스럽게 평화롭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것을 생각할 겁니다.

저희도 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다가 잠자듯이 가는 것을 다 소원 하죠.

 

근데 저는 평소에는 우리 죽음을 생각을 하지 않잖아요.

죽음을 생각도 않고 터브시 하고 또 기피하기도 합니다.

근데 저는 법의학자로서 매일 주검을 만나요.

그래서 주검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그 사람들이 나한테 우리들한테 던지는 교훈은 뭘까 매일 그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한테 가끔 사람들이 묻습니다.

법의학자는 뭐 새로운 줄 알아요?

법의학자들은 어떤 죽음을 원합니까? (당신들은)

저희도 역시 자연스러운 죽음입니다.

자연사라고 해요.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비자연사를 많이 만나거든요.

자연사라는 건 예를 들면 적혈구가 생명이 한 백이십일 됩니다.

그러면 백이십일이 되면 자연 소멸되거든요.

그런 것처럼 자기 생애 주기를 다 마치고 조용히 끝나는 걸 자연사라고 합니다.

비자연사라는 건요 갑작스럽게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생이 끝나는 걸 얘기를 해요.

흔히 뭐 범죄 자살 타살 이런 것들이죠.

 

이게 어떻게 보면 법의 학자인 저는 비자연사를 더 많이 만나게 돼요.

그런 비자연사의 죽음을 분석하고 또 그 사인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근데 정말 여러분들이 놀랄 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 년에 사망률이 되게 사망하는 사람이 이십이만 명 많게는 삼십사만 명까지 해요.

근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사인을 모르고 사망 등록이 되는 게 5 내지 10 퍼센트 정도 많게는 10 퍼센트 되죠.

 

한국의 사망 원인 2위 , '원인 불명'
한국의 사망 원인 2위 , '원인 불명'

 

표에서 보시면 이만 팔천 명 여러분들이 보면 사망률 일 위는 당연히 암이죠.

이위는 뇌혈관 질환 심혈관계 질환 이렇게 생각하시면 실은 2위는 원인 불명입니다.

사인을 모르는데도 사망 등록이 돼요. 이건 통계청 자료예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사인을 모르는데도 우리는 관심이 없는 죽음이겠죠.

사인을 모르는데도 통계청에 동사무소를 통해서 정확히 사망 등록이 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검증은 국가의 책무예요.

그 사회의 구성원이 사망을 하면 국가는 철저히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그때 화장 매장 허가증을 줘서 장례를 치르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나라는 혹시 여기 사망 등록 해보신 분 계신가요?

우리나라는 장례를 먼저 치러요.

그리고 사망을 안 날로부터 삼십일 이내에 동사무소 지역센터라고 그러나요? 거기에 사망 등록을 하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는 사망 진단서가 없어도 돼요.

성인 두 명이 보증만 쓰면 그냥 사망 등록이 됩니다.

인후 보증이라고 해요.

그걸 그래서 유스에서 제가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장례를 치르고 동사무소에 사망 등록하러 갔어요. 가보시면 어디에 용지가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헤매고 있으니까 동사무소 직원이 물어봅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저 사망 신고하러 왔습니다. 본인이신가요? 아 꼭 본인이 와야 되나요?

이렇게 되는 거죠. 이게 웃픈 현실입니다.

충분히 죽음에 대해서 잘못 관리되면 악용되고 억울한 죽음이 가려질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제 이 얘기를 제가 왜 끌고 왔냐면 우리들의 삶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하나 재미있는 얘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요.

영국 이제 독일군이 프랑스를 함락합니다. 근데 런던이 난리가 났어요.

그전에는 독일군 점령 지역에서 런던을 공습하고 싶어도 비행기 한 번 급유로는 런던을 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프랑스 파리가 함락되니까 도보 해협이 있죠 

이게 한 삼십 사 킬로 떨어져 있습니다. 한 번 급유로 런던을 공습할 수 있는 거리가 확보가 됐어요.

그러니까 오전에는 독일군이 와서 독일군 비행기가 런던을 공습합니다.

대응력을 보여줘야 되죠. 오후에는 영국 비행기가 프랑스 파리를 공습합니다.

근데 한 백 대가 갔다 오면, 적게는 오십 대 밖에 못 들어가요.

물론 구십 대 들어갈 때도 있지만, 매번 하다 보니까 전력 손실이 너무 심해요.

그래서 영국은 생각을 해 봅니다. 돌아온 비행기를 놓고 어디를 보강할까? 격추당하지 않도록, 또 강하게,

그래서 비행기 돌아온 비행기를 놓고 총탄 맞은 자리를 샜습니다.

 

피탄 표시점
피탄 표시점

 

저 중에 어디를 보강해야 될까요? 가장 많은 많이 맞은 자리 같죠?

실은 아브라함 빌던이라는 영국 수학자 젊은 수학자입니다.

 

공격을 당하지 않은 부위는 공격당했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취약한 곳이기에 공격당하지 않은 곳을 보강해야 한다
공격을 당하지 않은 부위는 공격당했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취약한 곳이기에 공격당하지 않은 곳을 보강해야 한다

 

그 수학자가 저기에서 하나도 안 맞은 자리를 지적합니다.

왜? 돌아온 비행기는 다 받고 돌아왔잖아요. 저 중에 안 맞은 자리를 맞은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게 생존자 편향이라는 거예요.

 

생존 편향
생존 편향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안전해요.

허점도 없습니다.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어요.

근데 우리 옆에 이만 팔천 명 있죠 그분들은 그분들이 사라진 걸 우리 모르잖아요.

왜 갔을까? 그 이만 팔천 명 속에 돌아오지 못한 비행기처럼, 그 이만 팔천 명 속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수는 뭘까?

안전의 미비점은 뭘까? 제도는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이걸 찾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을 들여다보면 우리도 이만 팔천 명 분석해 보잖아요?

그럼 대부분 혼자 사는 분, 사별했거나 혼자 사는 분, 또 교육 수준이 좀 낮은 분

또 사회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분, 우리보다도 더 훨씬 위험에 노출돼 있겠죠.

그분들은 원인 모르겠음, 그래도 이미 사망 등록이 돼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이게 이제 우리나라의 사망 등록 과정의 문제잖아요.

그럼 검시 제도를 한번 볼까요. 장애인 수용 수용 시설에서 이십 대 여성 장애인이 빙초산 중독으로 사망합니다.

사망 진단은 빙초산 중독으로 떼어졌고 그걸 가지고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는 화장을 합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가족들이 왔을 때는 황망하죠.

시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사 그 사망 진단을 뛰어준 의사한테 의심점이 있으니까.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자살로 보였다는 거예요.

빈병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뭐라고 할까요? 의심점이 없었다죠.

이렇게 해서 정리를 했던 겁니다.

근데 생각해 보세요. 이십 대 지적 장애인 여성이 자살을 꿈꿀까요? 그리고 빙초산을 구해 올까요? 어디선가?

어렵습니다. 설사 빙수상 중독이라 하더라도 그걸 먹게끔 방치하에 유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잖아요?

근데 중독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 되죠?

혈액을 검출해야 됩니다. 부검을 해야 돼요.

근데 이 사람은 전혀 또 화장했기 때문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요. 검시 제도가 범죄의 혐의점이 있을 때만 검사가 시작됩니다. 범죄의 혐의점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의심이 있는 사안 변사라고 해야 됩니다. 근데 변사를 의심해야 돼요. 의사가

의심 안 했는데요? 신고가 안 되죠. 신고해도 범죄 요점이 없죠. 그럼 우린 지나가는 거예요. 이게 우리나라의 검시 제도입니다.

오로지 범죄 연관성

변사라는 것은 애매하죠. 어떤 걸 변사라고 볼까요? 없어요. 가이드라인이 그래서 참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럼 외국은 어떻게 할까요? 선진국은?

선진국은요. 검시법 행정법으로 사법, 형사소송법이 아니고 행정법으로 검시법을 정해놨어요.

거기 딱 리스트 업이 돼 있습니다. 금방처럼

범죄 의심은 당연하고, 자살 의심 또 사고사, 약물 중독 의심, 수증이나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사람,

교도소 요양원 군대 수용시설에서 사망한 사람

오세 미만의 영아, 병원에서 퇴원한 지 십 살 이내의 사람

이런 사람들은 검시를 해야 된다라고 행정법으로 쓰여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사건을 보고 변사 의심이 있어서 신고하고 신고의 범죄 의심점을 보고 경찰이 수사를 해서 영장을 청구하고 이런 시스템이 아니고

책임 있는 기관이 리스트 업된 그 대상자에 대해서 검시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인을 명확히 밝힐 수 있죠. 억울한 죽음이 줄어들 수 있겠죠 바로 그런 겁니다.

 

 

저는 가끔 의사로서 법의학자지만, 저는 저도 진료한다고 그래요. 부검을

왜냐하면 의사만이 할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생물학적 죽음 건강에 대해서 하고 있지만 저는 사회적 죽음을 봅니다.

우리는 비록 제가 만나는 환자는 심장이 멈춰서 주검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있는 사회적 구성원이에요.

그분은 제가 만난 뒤에 주민등록이 말소가 됩니다.

이 죽음에 대한 건강성은 어떻게 할까요? 재산이 많거나, 지위고하 다 따질 필요 없죠.

 

죽음의 육하 원칙이 완성되어야만 억울한 죽음이 사라질 수 있다
죽음의 육하 원칙이 완성되어야만 억울한 죽음이 사라질 수 있다

 

우리 구성원의 한 사람의 한 사람의 죽음은 육화 원칙이 완성됐을 때만이 종결이 돼야 됩니다.

사회적 지금은 그런 식으로 해야만 우리는 죽음에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독일의 병리학자가 있어요. 루돌프 비루라는 분인데요

그분은 질병은 단순히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다 질병의 원인은 생물학적 요인이 아니고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 경제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죽음도 마찬가집니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죽음에 이르게 됐던 그 사회적 경제적 배경을 봐야 됩니다.

 

죽음은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이 있습니다.

나의 죽음은요 언어 모순입니다. 왠지 아세요? 내가 있으면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이 있으면 내가 없습니다. 내 것이란 죽음은 언어의 모순입니다.

그들의 죽음은요 엘리자베스 여왕 돌아가셨다고 시금 전표 한 사람 없습니다. 관련이 없으니까

우리는 항상 너의 죽음을 생각해요.

내 주변 사람, 친구, 가족, 지인들 그래서 그때는 애도와 상실을 얘기를 합니다.

근데 그들의 죽음을 얘기할 때요. 우리하고 무관하잖아요.

근데 정의로운 세상 가설이라는 게 있어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사회를요. 참 정의롭고 공정하고 안전하고 질서 있고 조화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그래서 어떤 문제가 터지잖아요? 그런 세상은 똑같은데 그 희생자가 일탈했기 때문에 부주의했기 때문에 가지 말라고 해서 갔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렇게 된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귀인 오류라고 해요. 사람의 문제다.

 

죽은 사람에게 죽음의 책임을 전가하며 사회는 안전하다 착각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에게 죽음의 책임을 전가하며 사회는 안전하다 착각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근데 이것은 죽은 사람한테 그 죽음의 책임을 전가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종종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었어 우리 세상은 그 외에는 안전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그들의 죽음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밀어내는 대신 가까이 가져와야 됩니다.

불상사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 알베르 까미가 패스트에서 쓴 인용한 글입니다.

누군가는 죽었어요. 불상사죠 그분은 불상사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불상사를 닥친 겁니다.

그분과 점심 먹기로 했죠. 그분과 가을에 여행 가기로 했죠. 그분과 미리 뭘 하기로 했잖아요.

그 사람의 부존재입니다.

부존재를 당한 우리가 불상사를 당한 거예요.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래서 우리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있었던 그 죽음이 그 사람을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인식하는 거예요.

단지 그들을 애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 사안을 봐야 되는 겁니다.

그 안에는요. 사회 시스템의 부재, 구조적 허점, 제도의 미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죽음이 그걸 얘기해 주는 거예요.

비행기의 동체, 하나도 안 맞은 자리, 그 부분이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나하고 무관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들은 나하고 관련시키다 나하고 관련이 있다 이렇게 보자는 겁니다.

살아있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죽음을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됩니다.

 

 

사람은 두 번 죽습니다. 심장과 폐가 멎어서 죽는 생물학적 죽음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무슨 죽음인지 아세요? 그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 기억의 죽음이 있습니다.

 

기억의 죽음
기억의 죽음

 

저는 쉽게 말씀드릴게요. 저는 제 증주 할아버지를 몰라요.

본 적이 없습니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생전에 뵌 적이 없어요.

저희 아버지는 아십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그때 증주 할아버지는 영원히 돌아가시는 겁니다.

그게 기억의 죽음입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날 때, 그 사람의 기억을 더 이상 하지 못했을 때, 그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우리 공군 이해람 중사 어머니의 텔레비전 인터뷰를 봤어요.

인터뷰의 마지막은 그렇습니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리 딸이 바꿔 놓은 법이 있어서 그 때문에 누군가가 나 보호받았어 나 그래서 그 사람을 기억해야 돼 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 인터뷰가 제 가슴에 왔습니다. 누군가를 책임을 지고 처벌하는 건 당연해요.

근데 그 죽음을 통해서 제도가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고, 그 시스템을 기억해 주는 것이 그분의 죽음의 가치를 죽음의 의미를 높여주는 거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제 어떻게 보면 죽음에서 배운 교훈으로 삶을 바꾸자는 게 있어요.

 

 

의학도들한테 참 잘 알려진 라틴어 병원이 있습니다.

 

Mortui vivos docent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Mortui vivos docent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모트가 비보스 도슨트 그렇습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가르친다.

해부학 교실에 있어요. 시신이 산 사람을 가리키니까 법위학은 그렇게 안 합니다.

죽음으로부터 삶의 배우자 살아있는 사람들이 배우자 무엇을 분석해 보니

이 죽음은 피할 수 있었잖아. 피할 수 있었잖아. 막을 수 있었잖아. 예방할 수 있었잖아.

바로 그런 관점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게 죽음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한 사람의 죽음을 그 가치를 높게 해 줍니다.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게 저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맞닥뜨린 제가 생각할 때는요

 

어쨌건 원인 불명의 죽음 등록 과정을 얘기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더 나은 삶을 살자는 겁니다.

공감, 엠퍼시란 말 아세요? 공감입니다.

공감을 제대로 표현한 영어 표현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거예요.

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입니다.

우리는 그 신발을 똑같이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할 수 없어요.

똑같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공감에서 더 나아가 공명이 됐을 때 같이 눈물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감에서 더 나아가 공명이 됐을 때 같이 눈물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감을 공명으로 바꾸고 싶어요.

사의 메아리처럼 어딘가 누군가의 소리 없는 외침에 대해서 울림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 울어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우리 공동체를 살아가는 하나의 자세 사랑 관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잘 죽는다는 건요 잘 산다는 전제에 있습니다.

 

 

제가 세바시 강연을 했던 김영일 교수님이신가요?

최근에 강연을 잠깐 들었는데 그게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있죠?

거기서 생존한 사람들은, 수용되기 전에 정말 책임감을 갖고 인내하고 각고의 노력으로 뭔가 고난을 극복했던 사람이 아니고요.

수용되기 오 년 동안 행복한 사람, 행복의 기억이 많은 사람,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 행복한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 결국은 최종적으로 생존했던 최근에 어떤 발표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행복한 마일리지 우리가 지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관계와 사랑을 나누는 이런 것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공포, 불안 이런 걸 이겨내는 힘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만 됩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행복하고 어떤 세상이요? 안전한 세상, 환경이 먼저여야 됩니다.

 

지금 여기가 맨 앞
지금 여기가 맨 앞

 

저는 이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이문재 시인의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예요.

맨 앞이 맨 끝입니다.

맨 끝이 맨 앞입니다.

저는 죽음을 보면서 삶의 끝을 봅니다.

잠의 끝을 보는데요. 근데 여러분 나무를 보세요.

나무의 맨 끝은 어디죠? 새순입니다.

새싹입니다.

맨 끝이 맨 앞입니다.

 

전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고 삶을 바꾸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게 역자리 한번 외치고 싶은 얘기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또는 축복 속에서 한 생명이 태어나죠.

똑같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우리의 관심 속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죽음이 삶에 던지는 그 물음에 대한 답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 얘기 여기까지 공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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