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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946회 | "그정도면 됐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

"그 정도면 됐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 | 애도 대화 소통 | 세바시 1946회

 

 

"그정도면 됐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삶에 최선을 다해도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상실은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도 할 수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고

번번이 낙제해서 내 자신감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상실을 넘어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상실을 넘어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상실의 사건을 겪고 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슬픔이 올라옵니다.

애도는 이제 이 비탄이 슬픔을 표현하고 처리해 나가는 이 과정을 우리가 애도라고 하거든요.

 

지금 여러분은 제대로 애도하고 계신가요?
지금 여러분은 제대로 애도하고 계신가요?

 


 

1. 상실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

삶에 최선을 다해도 인간은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겪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배신, 실패, 자신감의 상실 등은 누구나 경험하며, 상실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 상실은 단순히 ‘죽음’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소중했던 것을 잃는 모든 경험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2. 상실 이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비탄과 애도

상실을 겪으면 슬픔, 즉 비탄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비탄은 억누르거나 줄여야 할 감정이 아니라 충분히 느끼고 표현해야 할 감정이며, 이 비탄을 표현하고 처리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애도’다. 애도는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인간의 존엄한 과정이다.

3. 상실의 다양한 유형 이해하기

상실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반려동물의 죽음, 관계의 단절(이별·이혼·절교), 건강의 상실, 직업·역할·지위의 변화, 소중한 물건의 분실, 그리고 존엄성과 정체성의 상실까지 모두 상실에 해당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상실을 일상 속에서 경험하며 살아간다.

4. 상실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진실

첫째, 누구도 상실을 피할 수 없다.
둘째, 상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상실은 잘못이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셋째, 상실은 우리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소망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드러나게 한다. 결핍과 아픔은 삶의 의미를 다시 보게 만든다.

5. 억눌린 슬픔은 언젠가 다시 찾아온다

큰 상실을 겪었을 때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미뤄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 특정 기억이나 계기를 통해 다시 터져 나온다. 비탄을 느끼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향한 중요한 단계다.

6. 건강한 애도를 위한 네 가지 과업

애도에는 방법이 있다.
① 상실을 인정하고 슬픔을 느낀다.
② 후회·미안함뿐 아니라 감사, 기쁨, 사랑의 기억까지 모두 나눈다.
③ 슬픔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한다(먹고, 자고, 움직이기).
④ 상실의 대상과의 관계를 삶 속 가치로 재통합하며 앞으로의 삶을 이어간다.

7. 애도에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

애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관계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른 속도로 진행된다. “이제 그만 슬퍼하라”는 말은 애도의 본질을 모르는 말이다. 애도에는 개인적인 시간만 존재할 뿐, 정답이나 기한은 없다.

8. 애도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충분한 애도 없이 슬픔을 덮어두면 마음에 큰 공백이 생긴다. 그 공백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애도의 시간으로만 메워진다. 슬퍼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고, 함께 침묵해 줄 사람이 있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박재연
박재연
상실을 경험한 당신이 비탄을 넘어 애도로 가기까지
상실을 경험한 당신이 비탄을 넘어 애도로 가기까지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을 한번 해볼게요.

한 아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막대 사탕이 있었는데, 이 사탕을 떨어뜨린 거예요.

우리가 이것을 상실의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은 이때 눈물이 똑똑 떨어지면서 굉장히 아이가 슬퍼해요. 이것을 비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옆에 있던 한 어른이 다른 사탕을 주는 거예요.

그런데도 아이가 그 사탕을 먹지 않고 울어야만 한다면, 그 시간을 우리는 애도라고 하겠습니다.

서 조금 쉽게 와닿으셨을 것 같아요.

 

여러분 이 작은 사탕에서 아주 귀한 소중한 사람의 인생 생명까지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상실은 인생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게 참 흥미롭게도 첫 탄생도 사실은 상실의 사건에서 시작됐죠.

엄마하고 뱃속에서 분리가 되어서 자궁과 우리의 탯줄이 딱 끊어지는 고통스러운 사건에서 시작한 게 사실은 생명의 탄생이었습니다.

죽음도 수많은 관계 그동안에 우리의 수많은 관계 업적과의 이별이라는 상실의 사건으로 또 마감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 우리가 상실을 다뤄볼 텐데 상실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종류가)

그래서 이걸 한번 저의 설명을 들어보시면서 나는 지난 한 해에 어떤 상실을 경험했는지를 대입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사랑하는 혹은 나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대상 의미 있는 존재의 죽음이 있습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혹은 지인이나 내가 사랑하고 아꼈던 반려동물의 상실이 있어요.

저도 몇 년 전에 제가 정말 사랑하던 저희 반려견을 세상으로 보낸 경험이 있거든요.

 

 

 

네 두 번째는 뭐가 있냐면은 관계의 끊어짐의 상실이 있습니다.

한번 잘 생각해 보시면 여기에는요 사랑하던 사람이 만나서 혼인을 했을 때 이혼을 하게 되거나 혹은 별거를 경험하거나 이별을 당하거나 절교를 하거나 따돌림을 당하거나 혹은 그 관계상에서 고립과 소외감을 경험하는 상실이 있죠.

 

 

세 번째 상실에는 건강의 상실이 있습니다. 몸이 아파지는 거예요.

통증이 있거나 질병을 경험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신체적인 정신적인 어떤 능력을 상실하는 걸 의미합니다.

 

 

네 번째는 사회적 지위나 역할의 변화가 있습니다.

실직을 하게 되거나 이직을 하거나 혹은 은퇴를 하거나 전학을 하거나 자퇴를 하거나 공동체 이런 역할이나 관계의 상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소중한 물건이나 상징물의 분실도 그 아까 막대 사탕처럼 우리가 상실이라고 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애착 물건에 분실을 하거나 물질적인 상실도 중요한 상실의 사건입니다.

 

 

마지막은 자아나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조직에서부터 혹은 공동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혹은 폭력을 당하거나 정서적인 언어적인 신체적인 폭력을 경험하거나 나의 존엄성이 훼손되거나 그래서 미래에 대한 소망이나 자신감이나 목표를 상실하는 것도 우리의 큰 상실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에게 상실의 유형이 여러 가지가 되는데요.

상실은 첫 번째 상실의 유형 죽음을 포함하는 죽음보다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죽음은 상실의 아주 작은 일부 그러니까 상실은 일상적인 것에서 포함해서 누군가에게 죽음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사건을 다 포함한 아주 광활한 개념이죠.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소중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대상 사람 관계 혹은 물질 신념, 소망, 건강 등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의미하는데 상실의 사건은 인간에게 우리 모두에게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는 아까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굉장히 예뻐하던 강아지 저희 반려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 생일날 제 아들 생일날 크림 케이크를 먹었었는데, 얘가 우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얼른 식탁으로 올라가서 그 크림 케이크를 막 먹는 거예요.

강아지한테 당연히 크림이 안 좋으니까 강아지 콧잔등을 때리면서 야단을 쳤었거든요.

허망하게 저희 강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어느 날 이렇게 빵집을 지나가는데 크림이 이렇게 진열, 생크림 케이크들이 쭉 진열이 되어 있잖아요.

그걸 보는 게 덜컥 눈물이 나면서 한동안 케이크을 못 먹겠는 거예요.

바로 이런 사건들이 우리에게 모두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한 일 분 정도 시간을 드릴 거거든요.

지난 일 년을 돌아보시면서 여러분의 삶에도 방금 상실의 유형을 우리가 다양하게 나눠 보았는데 나에게는 어떤 상실의 경험이 있었는지를 머릿속으로 잠깐만 한번 떠올려 보세요.

 

 

떠오르셨을까요? 네 제가 1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1분 동안 무엇을 한번 작업해 볼 거냐면 옆 사람이 내 짝이거든요.

그래서 잠깐 어디에 대해서 나누시냐면 이렇게만 한번 간단히 나눠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박재현이고요. 저는 몇 년 전에 제가 아주 사랑했던 반려견을 떠나보낸 상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면 돼요.

 

'안녕하세요. 저는 박재현이고요.

저는 몇 해 전에 이직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것도 상실의 일부라고 저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면 돼요. 그게 뭐든 상관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며칠 전에 지갑을 분실했습니다.'

이것도 상실입니다.

어떤 것 들이 좋으니까 옆에 있는 분이랑 잠깐 30초 정도씩 내가 무엇을 상실했는지 나의 상실의 경험에 대해서 잠시 나눠보세요.

제가 시간 드릴게요.

 

 

 

네 나눠보셨을까요? 가볍게 또 중요하게 혹은 최근에 혹은 아주 오래전이지만 여전히 나에게 깊은 상실의 경험으로 남아 있는 사건들이 여러분 아마 삶에 한두 개씩은 있으실 겁니다.

나는 이 작업에서 돌이켜 볼 때 상실의 사건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시는 분 혹시 계실까요?

자 다시 그러면 나는 최소한 작더라도 한 개 이상의 상실의 사건은 다 떠올랐다 하시는 분 손 한 번만 들어봐 주실까요?

네 이렇게 보시면 대부분의 분들이 손을 드셨습니다.

 

 

 

 

상실에는 세 가지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누구도 상실의 사건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라는 겁니다.

삶에 최선을 다해도 우리가 살면서 상실을 피할 수가 없었다는 거죠.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도 할 수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고, 친구들로부터 그 무리에서 소외를 당할 수도 있고, 갑자기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수도 있고, 업무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결실을 맺지 못할 수도 있죠.

소망을 상실할 수도 있고 번번이 낙제해서 내 자신감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상실에 대한 중요한 진실은 상실이 우리 모두나 누구나가 겪는 일이기 때문에 이 상실의 사건으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피해나 아픔을 주지 않는 이상은 상실 자체가 결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라는 진실입니다.

왕따를 경험했다는 거 혹은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경험, 취업 실패의 경험, 실연이나 이혼의 경험, 내가 어릴 때 부모가 부재했었던 경험 이 모든 것들은 사실 사회적으로도 혹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게 아니잖아요 그저 내 삶의 아픔인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건 부끄러워 하는 실패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세 번째는 상실의 본질이 무엇인가?인데 상실은 우리에게 우리가 실제로 원했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아주 집중시켜 주는 힘이 있습니다.

에릭센이라는 교수님이 계셨어요.

 

 

인생의 의미라는 책을 제가 작년에 굉장히 행복하게 읽었었던 책이었는데 거기에 어떤 내용이 나오냐면 자유로운 사람에게는 수많은 소원이 있지만 감옥에 갇힌 죄수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의 소원만 존재하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의 소원이 있지만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소원만이 존재한다.

어떤 결핍의 경험은 사실 상실의 사건을 낳고, 그리고 그거는 애도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실제로 삶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의미를 수원 하는지를 아주 분명하고 또렷하게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 혹시 살면서 정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된 경험을 당해 보신 적 있으세요?

작더라도 크더라도 믿었던 만큼의 불신이 싹트고 원망이 서리고 너무나 큰 실망감과 좌절감을 경험해 본 분이라면 관계상에서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돼요.

그리고 소중한 저 같은 경우에 반려견을 떠나보내신 분들이라면 우리의 관계 속에서 애착과 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값 비싼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제가 하나의 사례를 설명드릴게요.

한 한 분이 계셨어요. 이분은 아주 어렸을 때 그 부모님과 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고 바로 친가를 떠나야만 했고, 아버지께서는 이제 새로운 분을 만나서 재혼을 하셨어요.

그래서 덩그랗게 태어난 이 아이를 누가 키우셨냐면 친할머니가 보듬고 안고 키우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친할머니 하고 수많은 추억이 있었지만 그게 어떤 건지도 잘 모르고 그냥 자신의 일상이었기 때문에 살았어요.

어느 날 본인이 다 사회인이 되어서 성장한 이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엄마이자 아빠이자 나의 모든 것이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몇 년 동안 눈물이 나지 않더래요.

그래서 이제 고모나 삼촌이 너는 어떻게 이렇게 애가 독하냐 어떻게 눈물 한 방울이 흘리지가 않냐? 이렇게 많이 이런 얘기를 들은 거예요.

그런데 자기도 이유를 찾지 못했대요. 눈물이 나지 않는 걸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어느 날 이제 자기가 어릴 팥을 되게 싫어했는데, 가족들을 위해서 항상 할머니께서 팥이나 잡국밥을 하시다가 이 손주가 팥을 싫어하니까 자기를 위해서만 흰밥을 해 주셨던 할머니가 갑자기 기억이 나더래요.

그리고 몇 년 이후에 한참이 지나서 혼자 어느 날 집에 앉아 있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지더랍니다.

그리고는 몇 날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냥 펑펑 울고 말았대요.

이게 상실의 사건입니다.

 

상실의 진실로 이걸 한번 들어가 보면 할머니는 돌아가셨죠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걸 비가역성이라고 하는데 이 죽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상실의 사건이 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부재와 새어머니하고의 삶이나 할머니 손에 자란 것은 상실의 사건이지만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세 번째 할머니하고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깊은 사랑이나 감사의 경험은 살면서 이 사람이 앞으로 굉장하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할머니를 보내고도 눈물 한 방울이 몇 년 동안 나지 않았다는 건 우리는 이걸 보면서 뭐를 알 수 있냐면

대부분 우리가 어떤 상실, 극심한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을까봐 그것을 우리의 일상 속 어딘가에 꾹꾹 담아서 밀어놓은다는 진실이에요.

다행히도 이분은 몇 년 후에 혼자서 그렇게 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 다음 단계로 가게 됩니다.

그게 바로 비탄입니다.

 

 

자, 그럼 비탄은 뭐를 의미하느냐? 상실의 사건을 겪고 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슬픔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이 슬픔을 엘리자베스 키블로로스라는 죽음악의 한 연구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상실 수업이라는 책에서 당신이 30분 울어야 될 것을 20분으로 줄여서 울지 말라.

이 말은 온전히 내 슬픔에 집중하고 충분히 울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악에서 린드스트롬이라는 한 학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인 존엄의 일부이다.

당신이 마음껏 올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의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비탄이라는 것은 그림자가 풍경의 깊이를 더하듯이 삶의 의미와 조망을 더해주는 것이 바로 비탄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마음껏 울고 힘이 빠진 자신의 몸을 느끼고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시간을 가져도 좋다 아니 사실은 그래야만 한다라는 거죠.

 

 

두 번째는 비탄이 왜 필요하느냐? 이 비탄이야말로 우리를 이제 애도의 과정으로 안내해 주는 감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비탄이라는 감정 자체는 곧 애도는 아닙니다. 

애도는 이제 이 비탄이 우리가 슬픔을 표현하고 처리해 나가는 과정으로 안내하는데 이 과정을 우리가 애도라고 하거든요.

그 과정을 다시 상기하면서 기리고 절차를 치르게 되는 것 이게 곧 애도의 과정이 됩니다.

애도하는 과정은 절대로 피해서도 안 되고 덮어두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애도하는 과정에는 분명한 방법이 있었다는 걸 오늘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워든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애도를 다룰 때 우리에게 네 가지의 중요한 방법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상실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사랑한 누군가는 떠났다 나는 이별했다 나는 실직했다 나는 몸이 아프다 내 건강을 어느 정도 잃었다는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상실의 사건을 분명하게 하는 겁니다.

 

 

두 번째 아까 그 할머니가 돌아가신 분의 경우에는요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그 깊은 상실의 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게 있습니다.

충분한 감사를 나누지 못했던 거, 거기에 대한 아쉬움, 거기에 대한 후회, 거기에 대한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들을 충분히 말해 보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애도에서 이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할머니하고의 관계에서 행복했던 즐거웠던 거 웃겼던 거 누워서 할머니의 턱을 만지면서 말랑말랑한 살을 만졌던 그 행복 할머니가 궁둥이를 두들겨 주면서 재워줬던 그 편안함, 할머니한테 투정 부려도 할머니가 다 받아주었던 그 감사의 기억들,

그리고 도망가면서 할머니가 나를 잡지 못할 거 알면서도 할머니를 놀리며 뛰어갔던 그 즐거웠던 기억들 이런 것들을 다 나누는 게 애도예요.

애도는 슬픔만 나누는 게 애도가 아닙니다.

그 사람과의 대상과 내가 상실했더라도 그 관계가 이별했더라도 나빴던 점, 슬펐던 점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고마웠던 점 감사했던 점 즐거웠던 점 행복했던 점까지 우리가 모두 나누는 게 애도의 과정입니다.

여기에 전제가 있었죠. 타인의 눈치를 조금도 보지 않고, 온전히 나의 슬픔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세상에 적응하는 겁니다.

특히 가족의 상실을 대할 때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경우들이 많아요. 여러분

아이들은 집안의 큰 상실의 사건 앞에서도 반드시 잃지 말아야 되는 게 뭐냐 하면 아이들은 일상을 유지해야 돼요.

학원을 가고 학교를 가고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잘 때가 되면 재워야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받아들이고 슬픔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상을 유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때가 되면 밥이 안 먹혀도 일어나서 좀 밥을 먹고 때가 되면 잘 시간 낼 때 잠이 잘 오지 않아도 잠을 청하고 힘이 나지 않아도 하루에 10분에서 20분 정도는 걸어서 움직이고 이런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애도 가정에 있었다는 걸 우리가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넌 지금 밥이 넘어가냐?라고 말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왜? 밥은 먹어야 되는 거니까

넌 잠이 오냐? 잠은 자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만 이 애도 건강하게 치를 수 있다는 겁니다.

일상을 유지하는 노력이 애도의 과업 모델의 세 번째라는 걸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가 뭐냐면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삶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통합하는 겁니다.

그럼 무엇과 통합하느냐 상실의 대상과 통합하는 겁니다.

나는 그 관계를 통해서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채울 것인가?

할머니하고의 관계를 통해서 얼마나 사랑이 중요한지 수용이 중요한지 사랑받았던 기분이 어땠는지 이제 나의 삶에서 내가 만나는 소중한 그 대상과 나는 이 소중한 사랑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거 이게 에도의 과업 모델의 네 번째입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그러나 새롭게 재통합하는 과정.

 

 

 

자 그러면 여러분 다시 한번 손을 들어보겠습니다.

아까 우리가 모두 나는 저마다 작든 크든 상실의 사건을 모두 경험해 보셨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충분히 슬퍼했고 온전히 내 슬픔에 집중했으며 그리고 건강한 애도의 방식을 통해서 나는 애도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보실까요? 한번 뒤돌아보시죠.

몇 분이 손을 드셨는지. 제가 볼 때는 10분이 채 손을 들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이게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애도를 할 줄 모르면 타인의 애도도 기다려주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래요.

'애도에는 도대체 얼마 간의 시간이 필요한 겁니까?'

애도의 과정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애도 상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애도에는 정해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우리 주변에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생각해 보실 때도 떠오르시는 말일 거예요.

수많은 임상 끝에 나온 이 결론이라면 우리가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왜 하면 안 되는지가 여기 정해져 있습니다.

애도에는 오로지 개인적인 시간만 존재할 뿐 정해진 공식적인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의 종류가 같을지라도 예를 들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더라도 배우자하고의 관계 아버지 하고의 관계 세 자녀가 있다면 이 세 자녀가 아버지하고 맺었던 관계의 질과 경험이 다 달라요.

그러니까 비탄의 반응도 다르고, 비탄과 애도의 과정은 오로지 개인적인 시간만 있을 뿐이라는 것,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모두 알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우리에게 애도가 왜 필요한가?입니다.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는 애도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이 실행이 없으면 여러분 인간의 이 내면에 지금 저를 보시면 저도 여기 상체가 있잖아요.

이쪽에 이 내면에 굉장히 큰 구멍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구멍을 다른 어떤 걸로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아까 막대 사탕을 잃어버렸던 아이를 한번 다시 떠올려 볼까요?

왜 그 아이는 어른이 막대 사탕을 새롭게 주었는데도 그걸 바로 먹지 않고 끝끝내 울었을까요?

많은 어른들은 야 사탕 새로 줬으니까 이거 먹으면 돼 눈물 그쳐라고 야단칠지 모릅니다.

그런데 새 사탕을 손에 쥐고도 이 아이가 충분히 울어야 되는 것

그리고 그 사탕이 누구한테 받은 것인지, 그 사탕이 나에게는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를 들어주는 작업,

그리고 그 아이가 그걸 말하는 작업이 오로지 이 구멍을 새 사탕으로 메꿀 수 없고,

그 구멍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으로만 채울 수 있다는 걸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사실 저마다의 삶에서 상실을 경험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또 저도 그렇습니다. 비탄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앞에 누군가가 비탄에 잠겨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잘 애도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면 너무 좋겠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비탄을 느끼고 애도하고자 할 때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요 우리 곁에서 조용히 침묵하면서 그 자리를 함께해 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애도에 대한 정말 깊은 말을 한 슈나이드만이라는 학자가 애도라는 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것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슬퍼하고 그 사람의 기억을 계속해서 소중히 여기는 이 심오한 능력이 우리 고귀한 인간의 특징 중에 하나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설사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야 이제 좀 그만해라 적당히 해라 이제 좀 지겹지도 않냐?라고 말을 하더라도 여러분

그거는 그 사람들이 애도의 중요성을 몰라서 하는 말일뿐입니다.

조금도 신경 쓰지 말고, 조금도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슬퍼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고 내가 그 상실의 대상과 좋았던 점, 힘들었던 점을 표현하고 마음껏 터놓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하고 반드시 또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성으로만 살지 못하고 마음과 가슴과 정신과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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